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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보내고 마희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담임선생님은 마희가 아파서 결석했다고 말
씀해 주셨다. 은오와 안나가 걱정스런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날 하교길에 마희
의 집을 찾았다. 마희 어머니가 그녀들을 만나주셨다.
“마희는.. 많이 아파요?”
“응..”
“많이요..? 그럼 병원에 있어요?”
마희 어머니가 고개를 저으셨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아픈 것 같아.”
“네?”
두 사람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마희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자세한 건 나도 잘 모르겠지만 먹을 것을 거부하는 걸 봐서는 아마도..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나봐.”
“그래요?”
마희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이셨다.
“이거.. 마희가 좋아하는 초콜릿인데요.. 전해 주세요. 얼른 나으라고.. 보고 싶다고도.. 전해 주세요.”
“그래.. 고맙다.”
두 사람은 어머니께 인사를 하고 집을 나왔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알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지..”
은오가 안나의 팔을 잡았다.
“설마.. 동수한테 물어보려고?”
“그럼 어떻게 해.. 얼마나 상처를 크게 받으면 학교도 안 오고, 밥도 안 먹냐고.. 그 자식이 뭐라고 한 거야.. 분명히..”
“그래도.. 우리가 물어 본다고 사실대로 말해주겠어? 조금 더 마희를 기다려보자.”
“진짜..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는 건 유일하게 마희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제일 우울하잖아..”
“그러게..”
두 사람은 무거운 마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겨울방학이 시작되었다. 12월 31일 저녁에 은오와 안나는 다시 마희의 집을 찾았다. 이번에도 어머니가 그녀들을 맞아주셨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두 사람으로 집안으로 들어가 마희 부모님께 새해 인사를 드렸다. 마희어머니가 떡과 차를 내주셨다.
“마희가 만들어 놓고 간 거야. 너희들 오면 주라고..”
“마희.. 어디 갔어요..?”
“괜찮아요?”
마희 어머니가 미소를 지으셨다.
“우리는 마희가 통통해도 상관없었어. 마희는 우리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예쁜 딸이니까.. 하지
만 마희가 변하고 싶은 모양이야. 지금은 다이어트 센터에 들어갔어. 선생님과도 상담을 마쳤
고, 학교에서도 허락을 받았어. 내년 3월 개학할 때.. 그 때 학교에 갈 거야.”
“그래요?”
은오와 안나는 마희가 만든 떡을 입에 넣으며 눈물을 훔쳤다.
“저희가 아무 도움이 안 돼서.. 죄송해요.”
“아니야. 마희가 너희들과 친구라서 너무 행복하다고 했어. 하지만.. 이번에는 꼭 하고 싶은 가봐.”
“네..”
두 사람은 그렇게 마희의 집을 나와 헤어졌다. 집에 들어간 안나는 엄마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인사를 하고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현관에 낯선 신발들이 눈에 들
어왔다. 그녀는 신발을 벗다가 다시 신고 나갈까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엄마가 나오시면서 그녀
의 마음을 읽으신 듯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셨다.
“어서 와..”
“다녀왔습니다..”
안나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엄마를 바라보았다. 안에서 그 분과 그분의 아들이 나왔다.
“안녕하세요.”
“그래요. 친구 만나고 오는 거예요?”
“네.”
“마희는 어때?”
지금 그녀는 낯선 사람들과 그녀의 친구인.. 상처받은 친구인 마희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거짓말로 둘러댔다.
“괜찮아졌대요.”
“그래? 다행이네.. 저녁은?”
“먹었어요.”
그녀는 그들과 함께 거실에 앉아 이야기를 하며 새해 타종방송을 봐야 하는 건지 고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새 그녀는 엄마 손에 이끌려 소파에 앉아 엄마가 건네주신 귤을 까서 먹
고 있었다. 드디어 카운트다운을 하고 있었다. 예정대로라면 은오랑 마희랑 저 자리에 가서
타종 소리를 들으며 소리를 지르며 해피 뉴 이어를 외치고 끌어안았을 텐데.. 그녀는 가슴이
먹먹해 지는 걸 느끼고 있다가 순간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가까운 미래의 남동생의 시선을 느
끼고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시선을 피할 줄 알았는데 그녀의 시선을 받아 그대
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히려 무안해진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새해가 되는 소리에 방
송이 시끄러워졌다. 엄마와 그 분이 다정한 눈빛으로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하고 있
었다. 그녀는 속이 답답해져왔다. 숨을 몰아 들이마시고 있는데 엄마와 눈이 마주치자 웃으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한 번은 엄마를 바라보고, 한 번은
그 분을 바라보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엄마보다도 그 분이 뭔가 감동을 받으신 것 같
은 얼굴이 되시더니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시고는 그녀에게 10만 원짜리 수표를 건네셨다.
그녀는 하마터면 귤이 목에 걸릴 뻔했다. 양 손을 들어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절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인사만 했는데.. 너무 큰 돈이에요.”
“내가 주고 싶어서 그래요. 필요한 거 있으면 사요.”
“정말 아니에요.”
그녀는 구원의 표정으로 엄마를 바라보았다. 엄마가 미소를 지으며 그 분을 바라보셨다.
“그래요. 너무 과해요. 그러면 저도 재원군에게 그렇게 해야 하잖아요..”
“아.. 당신은 안 그래도 되는데.. 재원이도 내가 주면 되지..”
“그건 맞지 않아요.”
“그런가..”
두 분의 또 다시 다정한 모드에 그녀는 몸둘바를 몰라 고개를 돌리다가 그저 조용히 있는 그와 눈이 다시 마주쳤다. 순간 그녀는 그가 안쓰러웠다.
‘저 아이도 나만큼 이런 자리가 얼마나 싫을까.. 곤혹스럽겠지. 싫겠지. 도망가고 싶겠지.’
그녀는 자신보다 2살이 어린 그를 애처로운 눈으로 바라보다가 엄마와 그 분을 바라보았다.
“좀 졸려서요. 그럼, 조심해서 가세요. 다음에 또 봬요.”
“저기.. 새해도 되고 했으니 말이야.. 결혼식을 조금 당겼으면 하는데..”
엄마가 또 청천병력 같은 말씀을 하셨다.
“2월 9일에 가족끼리 조용히 식사하는 것으로 결혼식을 대신하고, 이사는 8일에 하려고 해. 너희들 생각은 어때?”
그녀는 귤을 너무 먹었나 생각했다. 위에 있던 쓴 물이 식도를 타고 위로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녀는 엄마를 바라보았다.
‘엄마.. 약속이 다르잖아요..’
하지만 엄마는 그녀의 생각을 모른 척 눈을 돌려 재원을 바라보았다.
“저는 좋아요.”
그녀는 방금 전까지 안쓰럽게 생각한 그를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너도 나랑 같은 마음이 아닌거야? 넌.. 좋아?’
그녀는 마른 침을 삼키며 고개를 돌려 엄마를 바라보았다.
“너무.. 갑작스러워서요.. 엄마랑 단 둘이.. 이야기를 했으면 하는데요.. 그럼.. 다음에 봬요.”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 분에게 인사를 하고 엄마를 잠깐 노려본 다음에 그녀의 방으로 들
어가 문을 닫고 그 문에 등을 대고 기대었다. 깊은 한 숨이 나왔다. 눈물이 찔끔찔금 났다. 손
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기분이 우울해진 은오는 집에 들어가려고 하다가 여전히 불이 꺼진 집을 바라보다 걸음을 옮
겼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이모찻집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안경이 다시 뿌옇게 되었다. 그녀는 안경을 벗고 주머니에서 천을 꺼내 닦으며 인사를 했다.
“이모~.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어, 은오야~.”
그녀는 안경을 다시 쓰고 천을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반갑게 미소지으며 그녀를 반겨주는 이모와 눈인사를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분위기 좋은 이모의 찻집에는 빈자리가 없었다.
“자리가 없네요.. 다음에 다시 올께요.”
“미안해..”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모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는 인사하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그러다 누군가와 부딪쳤다.
“죄송합니다.”
“어, 미안.. 은오야..”
그녀가 고개를 들자 우진이 서 있었다.
“선생님..”
두 사람은 길을 걸었다.
“구기자차를 마시려고 했더니만..”
은오가 피식 웃었다.
“마희가 아프다고?”
“어떻게 아셨어요?”
“교무실에서 들었어. 많이 아프대? 사실은 그것도 궁금해서 간 건데.. 이모님께 들으려고.. 내가 담임은 아니니까 집으로 전화하기는 좀 그렇잖아..”
“네..”
“많이 아프대?”
“그런가 봐요.”
“후우~~. 마음이 아프겠구나.”
은오가 눈물이 고인 눈을 아래로 내렸다가 우진이 못 보게 고개를 돌려 슬쩍 눈물을 손가락으로 닦아냈다.
“그렇게 마음이 아파?”
“제가요?”
은오가 코맹맹이 소리로 말을 하고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며 고개를 저었다.
“마희가.. 마희가 많이 아프겠죠. 아픈데도 우리가 찾아올 줄 알고.. 떡을.. 만들어 놓았더라구요..”
다시 은오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맛있었어?”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이 볼을 타고 내려왔다.
“이상해요. 외모가 다는 아니잖아요. 마희처럼 착하고, 마음이 따뜻한 친구를 저는 태어나 처음 만났어요. 그 마음을 알아주는 남자를 만날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
“만날 수 있을 거야. 그게 지금이 아니라는 것 뿐이야. 언젠가는 마희의 마음을, 곱고 아름다
운 마음을 알아차릴 녀석이 나타나 마희를 행복하게 해 줄 거야. 지금 만나도 결혼 할 수 있
는 것도 아니잖아.. 그래? 넌 지금 사귀는 남자와 결혼까지 생각하는 거야?”
엉뚱한 그의 말에 그녀는 조금 우울한 마음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마희는 행복하구나. 좋은 친구들이 있어서.”
“아무 도움도 못 되는 걸요..”
“친구는 힘들 때 가만히 기다려 주는 거야.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그가 손을 들어 목도리에 코를 묻고 훌쩍이는 은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느새 그녀의 집
앞에 도착했다. 아직도 그녀의 집에는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집을
바라보다가 은오를 내려다보았다.
“부모님이 늦으시는 구나..”
“꽃가게를 하시는데요. 아직 가게문을 닫으실 시간이 아니거든요.”
“그래.. 조심해서 들어가. 즐거운 방학 보내고.. 개학하고 보자.”
“네. 안녕히 가세요.”
은오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그가 멀어지는 모습을 조금 바라보다가 모퉁이를 돌아 선생
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몸을 돌려 현관 앞에 섰다. 그녀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길모퉁이에서 그녀가 집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우진은 현관문이 닫히자 몸
을 돌려 그도 집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엄마, 약속이 다르잖아요.”
그 분과 그 아이가 가고 난 후 그녀는 방에서 나와 엄마를 바라보았다. 엄마는 접시들과 찻잔을 치우며 그녀를 바라보지 않고 대답하셨다.
“고작 1년이야. 1년 정도는 함께 살면 좋잖아..”
“엄마..”
엄마가 싱크대에서 설거지를 하시자 그녀도 주방으로 들어갔다.
“내년에 대학 들어가면 따로 나갈 살 테니까 그 때 결혼하시라고.. 그렇게 약속하고 지난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낸 거잖아요. 어떻게.. 이렇게 금방 약속을 어기실 수가 있어요?”
설거지를 마친 엄마가 수건에 손을 닦으시면서 몸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엄마.. 임신했어..”
그녀는 비명을 지르지 않으려고 입을 틀어막았다. 몸을 돌려 방으로 들어갔다.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그녀는 이 악몽에서 빨리 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그녀의 방문을 두드리셨다.
“안나야.. 문 열어. 문 열고 엄마랑 얘기해. 응?”
하지만 그녀는 충격으로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안나야..”
“죄송해요.. 내일.. 엄마.. 내일 이야기해요.”
밖에서 엄마의 한숨소리가 들렸다가 엄마의 발소리가 멀어지는 걸 들으며 그녀는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밤새 생각하느라 그녀는 잠을 한숨도 자지 못했다. 아침에 문을 열고 밖으로 나
오니 엄마도 소파에서 날을 새신 모양이었다. 그녀가 엄마 맞은 편 자리에 앉았다.
“하세요.”
“안나야..”
“1년쯤이야.. 괜찮아요. 일단.. 축하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하지만 임신은 축하받을 일이잖아요. 생각해보니까.. 엄마가 그렇게 나이가 많이 않더라구요..”
그랬다. 엄마가 그녀를 낳은 나이가 지금 그녀보다 고작 1살 많은 나이였다. 엄마의 나이가 마흔도 되지 않았다. 항상 젊고 예쁜 엄마가 자랑스러웠던 때도 있었다.
“마흔 넘어서 늦둥이 낳는 사람도 있다고 하던데.. 건강하세요? 엄마랑 아가.. 모두?”
엄마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 분은.. 뭐라고 하세요?”
“.....”
“분명히 축하해 주셨겠죠?”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괜찮아요. 제가.. 엄마 인생에 걸림돌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 그냥.. 철이 없어서.. 그래서 그랬어요. 죄송해요.”
“아니야.. 내가.. 미안해..”
“아니에요..”
엄마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 옆에 앉아 그녀를 안아 주었다.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엄마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그래.. 1년쯤은 같이 살 수 있어..’
그녀는 손을 들어 엄마를 안았다.
“그런데요, 엄마..”
“응?”
“각서를 써 주셨으면 좋겠는데요..”
엄마가 포옹을 풀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종이랑 볼펜 가져올게요. 1년 후에 다른 말씀 하시면 곤란하거든요.”
안나가 미소를 지으며 엄마를 바라보았다.
엄마와의 약속이 적힌 종이를 들고 방으로 들어온 안나가 종이를 서랍에 넣었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면서 책상에 볼을 대고 엎드렸다. 눈에서 눈물이 흘러 책상을 적셨다.
“잘.. 지낼 수 있을 거야.. 후우.. 1년이니까..”
안나가 눈을 감았다.
개학을 했다. 짧은 방학을 마치고 - 물론 곧 봄방학을 할 테지만- 그녀들은 마희가 없는 학교에 갔다.
“잘 지냈어?”
“응.”
“얼굴이 안 좋아 보인다.. 무슨 일 있었어?”
“이따 점심에.. 지금은 머리가 아파.. 보건실에 다녀올게.”
“그래.”
은오를 먼저 교실로 보내고 안나는 보건실문을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두통약 좀 주세요..”
보건선생님이 그녀에게 약과 물을 건네주었다.
“아침은 먹었어?”
“네.”
그녀가 대답을 하고 약을 입에 넣고 물을 마셔서 삼켰다.
“감사합니다.”
“더 심해지면 다시 와.”
“네.”
안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보건실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은오와 함께 급식실로 갔다. 식판과 수저를 들고 배식줄에 섰다.
“무슨 일이야?”
“내일 이사하고 다음 주에 식 올리신댄다.”
“그래?”
“별로 안 놀라는 눈치다?”
은오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곧 하신다고 하셨잖아. 어차피 하실 거 미루는 게 의미 있어?”
“그런가..?”
“그렇지.. 내일 이사해?”
“응. 오늘 일찍 들어가서 짐 정리 해야 해.”
“결혼식은?”
“그냥 양가 가족끼리 식사하는 걸로..”
“그래? 그런데 왜 머리가 아파?”
두 사람은 배식을 받고 자리에 앉았다.
“그게..”
다시 생각하자 머리에 두통이 찾아왔고, 음식을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왜..”
안나는 한숨을 내쉬고 몸을 앞으로 숙여 혹여 다른 사람이 들을까봐 조용히 은오에게 속삭였다. 하지만 역시 그렇게 놀라지 않은 은오의 반응에 오히려 그녀가 당황했다.
“뭐 그런 걸 갖고 두통은..”
은오가 숟가락을 들어 국물을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난 잠도 못 잤는데 넌.. 왜 안 놀래?”
“내 예상보다 조금 빠르긴 하시지만.. 예상은 했었어. 넌.. 안 했어?”
“그럼~. 말이 되냐? 나도 있고, 거기도... 있는데..”
“어머니가 젊으시잖아. 그 분도 젊으시다면서..”
“그렇긴 하지만.. 이상하잖아..”
“이상하다고 생각하면.. 이상할 수도 있지만, 또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면 또 별거 아니야.”
“남 일이라고.. 너 그렇게 말하기야?”
은오가 피식 웃었다.
“물론 그런 것도 있긴 하지만.. 축복받을 일에 네가 두통약을 찾으면.. 얼마나 마음이 불편하시겠어. 그렇지 않아도 네 눈치 보고 계시는데..”
“엄마가?”
“그럼.. 어머니가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건.. 어른이라서 그런 거야. 똑같이 두렵고, 걱정되시
지 않겠어?”
“애늙은이..”
“그런가..?”
은오가 피식 웃자 안나도 피식 웃었다. 은오의 말에 왠지 구원받은 기분이 들면서 안나도 숟
가락을 들어 국물을 한 입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안나는 교실로 가고, 은
오는 선생님이 부르셔서 교무실에 갔다가 프린트물을 손에 들고 오는 길에 말하기 좋아하는
혜진이 다가와 은오 옆에 걸음을 같이 하며 따라왔다.
“궁금한 게 있어서 그러는데..”
“.......”
혜진이 새초롬하게 입을 오므렸다. 하지만 그녀는 원하는 걸 얻기 전까지는 절대 물러서는 법
이 없는 아이였다. 그렇게 자신의 궁금증을 해소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이상한 성격의 소유자
였다. 은오는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뭐가 궁금한데..”
은오가 포기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혜진을 바라보았다.
“마희 말이야.. 자살시도 했다면서?”
은오는 너무 깜짝 놀라 하마터면 프린트물을 복도 바닥에 떨어뜨릴 뻔했다. 커다랗게 뜬 눈으로 혜진을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은오가 큰 소리로 혜진을 다그쳤다.
“왜 큰소리야.. 깜짝 놀랐잖아..”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본 사람이 있다고 했어. 작년 크리스마스에 마희가 동수랑 만났다면서..”
혜진이 말을 하면서 은오의 표정을 살폈다. 여기까지는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안 혜진이 다음을 이야기했다.
“동수가 마희 같은 여자는 자신과 가만히 5분만 있어도 그냥 넘어 온다면서 장담했었대. 그런
데 두 사람이 같이 경양식집에서 마희가 울면서 나가더래. 그 후로 학교에 안 오니까.. 동수한
테 차여서 충격 받아서 자살시도를 해서 병원에 입원했다고..”
“뭐?”
“하긴.. 동수같은 애가 뭐가 아쉬워서 마희 같은 애랑 데이트를 하겠니?”
“왜? 마희가 어디가 어때서?”
혜진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풉! 하고 웃었다.
“야~. 아무리 친구라고 해도 말은 바로 해야지.. 그럼 너는 동수랑 마희가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건..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해. 사람을 좋아하는 건.. 외모가 다가 아니니까..”
“무슨 소리야~. 외모가 80. 나머지가 20이야. 특히 남자들은 예쁜 여자를 마다하지 않을 걸? 아닌가.. 외모가 90인가..?”
혜진이 혼잣말을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도.. 그건 너무 심하잖아.”
“내가 소문 낸 거 아니야~. 나도 궁금하니까 물어 보는 거잖아.”
“......”
“다행히 살아있긴 한가 보구나? 그런 일로 그러는 건 너무 슬프다.. 생각했어. 다행이다.”
하지만 은오는 혜진의 말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은오의 눈에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혜진은 그녀의 반응 보며 미소를 짓고는 몇 마디 혼자 더 말을 하고는 총총거리며 자리에서
떠났다. 은오가 같은 반 아이에게 자료를 건네주며 “이거 교실에 좀 갖다 놓아 줘.” 라고 말
했다. 눈물을 닦으며 “저기.. 동수 교실에 있어?” 라고 묻자 “아니, 아까 옥상으로 가던데?”
라고 말하고 자료를 받아 교실로 가는 같은 반 아이의 모습을 보던 은오가 옥상으로 걸음을 옮겼다. 은오가
옥상문을 열자 그 곳에 있던 학생들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구동수.. 어디 있어? 구동수 어딨냐고!”
평상시에 조용한 그녀가 화가 난 모습에 남학생들이 움찔하며 그가 있는 곳을 가리키자 그 쪽
으로 걸음을 옮기자 실내화에 간밤에 내린 눈이 밟히는 소리가 들렸다. 은오가 다가가자 동수
가 벽에 기대어 있다가 몸을 일으켰다. 은오는 턱에 힘을 주고 그에게 다가가 짝! 소리가 나
도록 그의 뺨을 때렸다. 그가 붉어지는 볼을 손으로 감싸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뭐 하는 거야?”
은오는 대답을 하지 않고 다른 쪽도 때리려고 손을 들자 그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그러자
은오가 발로 그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억! 소리를 내며 그가 정강이를 붙잡고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그가 벌떡 일어나며 인상을 썼다.
“이 기지배가.. 왜 이러냐고!”
“뭐? 가만히 5분만 있어도 넘어와? 넌.. 사람이 아니야. 아니니까 사람을 상대로 그런 말을 하지.. 구동수? 넌.. 개동수야. 아니.. 개똥이다!”
“......”
그가 이제야 무슨 소리인지 이해를 하고 입을 다물었다. 은오는 그를 때린 손이 아파 다른 손으로 그 손을 감쌌다.
“이해가 빨라서 좋네.. 너.. 한 번만 더 우리 친구 마희를 무시하면 죽을 줄 알아. 알았어?”
“이게 지금.. 뭐하는 거야!”
체육선생님이 은오와 동수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은오와 동수는 체육선생님에게 끌려 교무실로 들어갔다. 담임선생님 앞에 열중 쉬어 자세로 섰다.
“은오가.. 왜 그랬을까?”
담임선생님이 은오를 바라보며 슬쩍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럼 동수가 말 해 볼래?”
하지만 동수도 입을 열지 않았다.
“두 녀석 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어떻게 해..”
담임선생님이 머리를 긁적이셨다.
“공부도 잘하고, 문제도 안 일이키는 두 녀석이 옥상에서 싸움을 하다니.. 다른 아이들의 말을 들으니 일방적으로 은오가 동수를 때렸다는데.. 사실이야?”
“네.”
은오가 대답하자 동수가 슬쩍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동수를 바라보지 않았다.
“폭력은 안 돼. 더군다나 학교에서.. 모범생인 은오가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그
냥 넘어가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할 테고.. 어젯밤에 눈이 많이 내렸더라. 체육선생님도 화가
많이 나신 것 같고.. 은오는 운동장에 쌓인 눈을 싹 치우고 집에 돌아가도록 해.”
“네..”
“저도.. 같이 하겠습니다.”
동수가 말하자 은오가 그를 노려보았다.
“너는 피해자야. 네 부모님이 은오를 고소 할 수도 있다고.. 그렇게 되는 건 원하지 않는다.”
동수네 집은 부잣집이었고, 충분히 그렇게 나올 수도 있었다.
“너는 조용히 집에 들어가고, 혹시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걸 네 부모님이 아시게 된다면.. 그 부분은 네가 알아서 처리해 주는게.. 은오를 위한 일이야. 알았어?”
담임의 말에 동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럼, 가 봐.” 라고 말하시는 담임선생님에게 두 사람은 인사를 하고 교무실을 나왔다. 안나가 발을 동동 구르며 은오를 기다리고 있었다.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선생님이 불러서 교무실에 갔으면서 왜 저 녀석이랑 같이 교무실에 다시 가게 된 거냐고..”
“먼저 가. 운동장에 쌓인 눈 청소 하고 가야 해.”
“뭐? 왜?”
“이야기 하자면 길어.. 이따가..”
은오가 안나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 있었던 거지? 뭐야..”
은오가 교무실에서 멀어지자 말을 했다.
“진혜진이 와서 마희가..”
은오는 차마 그 끔찍한 말이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동수한테 차여서 자.. 살을 시도했다가 병원에 입원했다고..”
동수가 조금 떨어져 걸음을 걷다가 멈칫 섰다. 안나는 인상을 쓰며 은오를 바라보며 말했다.
“뭐?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문이..”
“그러니까..”
“저 자식이 마희를 찼대?”
“그것 때문에 화가 나서 때린 건 아니야..”
“때렸어?
은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자식이 마희..같은 여자는 5분만 그냥 가만히 있어도 넘어온다고 했었대.”
안나가 기가막히다는 표정으로 동수를 노려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그래? 그래서.. 마희가 넘어오니까.. 찼어?”
동수가 눈을 피했다. 안나가 눈물이 나오려는 걸 참으며 동수를 노려보았다.
“은오한테 맞은 걸 감사하게 생각해.. 난 아마.. 멈추지 못했을 거야.. 너 같은 인간이 제일 싫어.. 사람 갖고 장난치는 자식들..”
동수가 굳은 표정으로 안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알아..” 라고 말하고 교실로 걸음을 옮기는 모습을 바라보며 인상을 쓰던 안나가 은오에게 다가왔다.
“아 씨.. 이렇게 추운 날 무슨 운동장 눈 청소야.. 여기가 군대야? 나도 같이 해. 같이 하면 더 빨리 끝날 거 아니야.”
“넌 이삿짐 싸야지.. 내일 이사 간다면서..”
“아.. 맞다.. 아씨.. 짜증나..”
“걱정 하지마..”
안나가 속상해 하며 은오를 바라보았다.
“미안하다...”
은오가 미안해서 어깨가 축 쳐져 있는 안나의 양 팔을 잡았다.
“네가 왜.. 지금 마희가 얼마나 피땀 흘리며 열심히 노력하고 있겠니? 여기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해 줘야지. 아마 내 소문으로 마희에 대한 소문은 어느 정도.. 괜찮아 지겠지..”
“정말.. 너무 짜증나..”
은오가 미소를 지으며 안나와 함께 교실로 돌아갔다. 그날 오후 수업이 모두 끝나고 안나는
운동장에 쌓인 눈을 청소하는 걸 도와주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얼마 남지 않은 눈을 은오는
삽으로 떠서 리어카에 담았다. 장갑도 없는 은오의 손은 금세 빨갛게 되었고, 뻣뻣하게 굳어
서 마음대로 손이 움직이지 않았지만 얼른 끝내려고 열심히 움직였다. 리어카를 끌고 운동장
한 쪽으로 발을 옮기려는데 이젠 기운이 떨어져서 인지 힘겨웠다. 낑낑거리며 한 발, 한 발을
힘들게 옮기고 있는데 그녀의 머리위로 남색 패딩 점퍼가 덥혔다. 그녀는 놀라 패딩을 들고
뒤를 돌아보니 장갑을 들고 그녀에게 다가오는 우진의 모습이 보였다.
“선생님..”
“여학생을 혼자 어떻게 눈을 치우라고.. 차라리 반성문을 쓰라고 하지.. 따귀 때린 것 치고는 벌이 너무 세다.. 얼른 장갑 껴.”
우진이 내미는 장갑을 바라보고 있으니까 그가 피식 웃으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러더니 인상을 쓰며 그의 양 손안에 그녀의 양 손을 감싸듯 잡았다.
“얼음장이네.. 호~~~. 춥지.. 진짜.. 선생이라는 사람들이.. 쯧..”
그녀가 피식 웃자 그가 그녀의 손에 입김을 불다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선생님이 같은 선생님을 욕하셔도 되는 거예요? 그리고 여긴 학교인데요? 누가 보고 소문이라도 이상하게 내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이상한 소문? 아~~. 뭐가? 선생이 혼자 힘들게 과한 벌을 받고 있는 제자가 손이 굳어서 스
스로 장갑을 낄 수 없어서 손을 녹여주고 있는 게.. 잘 못인가? 남학생이어도.. 좀 기분은 이
상하겠지만 그래도 해 줬을 거야. 자.. 이젠 장갑을 낄 수 있겠다.. 그래도 많이 했네?”
“안나가 조금 전까지 도와주다가 갔어요. 이삿짐을 싸야 해서..”
“그래?”
그가 그녀의 손에 장갑을 끼워 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어깨에 패딩점퍼를 둘러 소매로 그녀를 묶었다.
“참.. 작아.. 이게 묶이네..”
“안 작아요. 옷이 큰 거지..”
“그래. 안나가 제일 작지?”
은오도 피식 웃고는 다시 리어카를 끌려고 하자 그가 그녀를 잡았다.
“뒤에서 밀어. 내가 끌게.”
“아니에요..”
“아니긴.. 얼른 나와. 춥다..”
은오가 리어카 안에서 나와 뒤에 가서 밀었다. 두 사람이 모든 눈을 다 치운 시간은 저녁 8시
였다. 얼굴은 붉어졌고, 땀이 송글송글 맺혔지만 땀이 식으면서 몸이 떨렸다. 우진의 차에 오
른 그녀는 너무 추웠다가 따뜻한 히터가 나오는 차에 있자 졸음이 왔다.
“은오야. 집에 다 왔다.”
그가 그녀의 집 앞에 차를 세우고 몸을 돌려 뒷자리에서 자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
의 집을 보니 아직 불이 꺼져 있었다. 그가 한 숨을 내쉬었다. 몇 시간 전의 일이 떠올랐다.
집에 가려고 차에 타려는데 동수가 그를 찾아왔다.
“삼촌..”
우진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엄한 얼굴로 동수를 바라보았다.
“선생님.”
“그래.. 구동수 학생. 무슨 일이지?”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동수에게 자초지종을 들었다. 동수는 자신에게 실망을 크게 느끼며 고개를 돌렸지만 동수의 눈에 고인 눈물을 우진이 보았다.
“알았어. 넌 집으로 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럼.. 부탁드립니다.”
동수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몸을 돌렸다. 우진은 교문 밖으로 나가 가까운 곳에서 파는
점퍼와 장갑을 사서 운동장으로 갔다. 조그만 은오가 땀을 흘리며 눈을 치우는 모습을 바라보
았다. 손이 시린지 붉어진 손에 입김을 불었다가 다시 삽질을 하고 있었다.
“여학생에게.. 삽질이라니.. 무슨 생각을 하는 선생이야..”
그는 속으로 화가 치밀었다. 뒷좌석에서 잠이 든 은오가 뒤척였다. 그는 다시 눈을 들어 그녀
의 어두운 집을 바라보다가 차를 다시 출발시켰다. 눈을 뜬 그녀는 눈을 비비며 밖을 바라보
았다.
“선생님.. 여긴 어디에요?”
“깼어? 배고프지?”
“아니..”
“아니긴.. 내가 배가 고파서 그래. 맛있는 거 사주라.”
“네?”
“뜨거운 국물 먹으면 괜찮지 싶은데.. 가자.”
차에서 내린 그들은 부대찌개 전문 식당에 들어갔다. 은오는 안경을 닦느라 정신이 없는데 주인아주머니가 나오셨다.
“어? 우진 왔어? 오늘은 제자랑 같이 왔네? 들어가.. 춥지?”
두 사람은 조용한 방으로 들어갔다. 따뜻한 물을 먼저 아주머니가 주시자 은오는 물컵에 물을
따르려고 주전자를 잡으려는데 우진이 먼저 잡았다. 그리고 그녀의 물컵에 물을 따라 주고 자
신의 물컵에도 물을 따랐다. 은오는 컵을 양손으로 잡고 호~ 불고 한 모금 마시자 뜨거운 김
에 안경에 하얀 김이 서렸다. 다시 테이블에 컵을 내려놓고 안경닦이천을 다시 꺼내자 그가
피식 웃었다.
“안경 닦느라 정신이 없구나.”
그녀가 손에 안경을 들고 닦으며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며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모
습이 흐리게 보이자 눈을 가늘게 뜨다가 안경을 마저 닦고 다시 썼다. 그를 바라보자 그가 물
을 마시며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었다가 녹아서 그런지 귀와 볼이 붉어
져 있었다.
“감기 걸리시는 거 아니에요?”
“음..? 왜?”
“열이 있으신 것 같은데.. 얼굴이..”
그가 손을 들어 볼을 만지더니 “괜찮아.. 따뜻한 곳에 들어와서.. 그래서 그런 거야.” 라고 말했다.
“자주 오시는 곳이에요?”
“여기? 응.. 대학때부터 다녔으니까.. 우와.. 벌써 10년이 넘은 단골이네.. 너무 춥고 감기가 올 것 같으면 여기 와서 먹고 가곤 했었어. 선생이 되고 나서는 자주 못 왔지.”
“대학 때 선생님은 어떤 학생이셨어요?”
“나?”
“네.. 학교 다니셨을 때도 인기 많으셨을 것 같아요.”
“별로.. 1학년 때부터 애인이 있었거든.”
“정말요?”
“응.”
“우와~~.”
“너는.. 사귀는 사람은 없다고 했고.. 좋아하는 남학생도 없어?”
“네.”
“즉답이네? 왜? 또래는 어려 보여서?”
“아니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서 대기업에 취직해서 돈 많이 벌 거에요.”
“부자 되려고?”
“네.”
그가 피식 웃었다.
“부자 되면 뭐 할 거야?”
“부모님이랑 여행가고 싶어요.”
그가 물을 마시고 다시 안경을 벗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여행?”
“네. 제대로 여행을 가 본적이 없어요. 꽃집을 하시거든요. 꽃집 일이라는 게 그래요.. 새벽부
터 밤늦게까지.. 정말 바쁘거든요. 그래서 돈 많이 벌면 꽃가게에 아르바이트 하는 사람 두고
같이 여행도 다니고, 이렇게 맛있는 음식도 사 드리고.. 그러고 싶어요.”
“은오는.. 참.. 착하구나..”
“선생님도 부모님께 잘 하실 것 같은데..”
“난.. 별로..”
“그래요?”
“응. 그래도 연애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들어?”
“네. 시간이 아깝거든요. 주위에 남자친구를 사귀는 애들을 보면 만나면 만나서 싸우고, 안 만나면 안 만났다고 싸우고, 기념일을 챙겨야 하고.. 귀찮은 일 투성이더라구요.”
“그렇지만은 않아. 귀찮은 일을 왜 하겠어.. 그 귀찮은 일도 행복하게 만드니까.. 그러니까 좋아하고, 사랑하고, 연애를 하는 거지..”
“그래요? 그럼 선생님은 대학교 1학년때부터 연인이셨던 분이랑 행복하셨어요?”
그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그녀는 자신이 실수한 걸 깨달았다.
“죄송합니다. 제가.. 추웠다가 더웠다가.. 정신이 없나봐요. 죄송합니다.”
그가 피식 웃더니 오른손으로 턱을 괴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헤어졌어.”
그녀가 놀란 얼굴로 두 손을 들어 마구 저었다.
“하지 마세요. 제가 들을 자격이 없는 일을.. 물어서 죄송해요.”
그가 풉! 하고 웃더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뭘 자격이 없어~. 다른 반에서는 벌써 얘기한 이야기야. 하도 첫사랑 얘기 해 달라고 졸라서.. 말해 줬어. 너만 특별한 거 아니니까 괜찮아.”
“아.. 네..”
“부모님이 반대를 하셔서 헤어졌어. 그래도 난 기다린다고 했고, 그녀와 자주 갔던 찻집에서 일 년에 몇 번씩.. 우리들만의 기념일에 찾아가고 있지.”
은오가 고개를 약간 숙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왜?”
“음.. 가슴 아프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아름다워요.”
“뭐?”
그가 인상을 쓰며 웃었다.
“누군가를 그렇게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사랑한다는 건.. 정말 위대해 보여요. 선생님은 참 멋진 사랑을 하고 계시네요.”
“그래?”
“네.”
“너라면.. 너라면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겠어?”
“음.. 저는 돈을 벌어야 해서.. 어렵겠네요.”
그가 배꼽을 잡고 웃었다. 아주머니가 부대찌개를 들고 들어오셨다.
“우진이 웃는 모습을 오랜만에 보니까 좋네.. 맛있게 먹어요.”
“네. 감사합니다.”
그녀는 아예 안경을 옆에 내려놓고 맛있게 찌개를 먹었다. 그가 그녀의 접시가 빌 무렵이면 국자를 들어 찌개를 떠 주었다. 두 사람은 다시 그녀의 집으로 갔다.
“정말 오늘은 감사했습니다. 도와주신 것도.. 맛있는 저녁도.. 감사합니다.”
그녀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가 미소 지으며 그녀의 집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집은 불이 꺼져있었다. 그가 고개를 숙여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손을 들어 머리를 쓰다듬었다.
“들어가라. 내일 보자.”
“네. 조심해서 가세요.”
집에 들어온 은오는 온 몸이 쑤시고 춥고 이상했다. 세수랑 양치질만 하고 방에 이불을 깔고
누웠다.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었던 그녀가 전화벨이 울리자 바닥을 기어 밖으로 나왔다. 힘겹
게 수화기를 귀에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여보세요..”
<역시.. 감기 걸렸지?>
선생님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들려왔다.
“선생님..”
<한.. 10분 후에 집 앞으로 갈 테니까 병원 갈 준비 하고 나와. 알았지?>
“아니에요..”
<아니긴.. 10분 후야..>
“네..”
은오가 대답을 하고 수화기를 내려놓고 시계를 바라보았다. 부모님은 어느새 가게에 가신 것
같았다. 욕실에 가서 세수를 하고 양치질을 했다. 거울을 바라보자 얼굴을 창백해져 있었고,
눈 아래에는 보기 흉한 그늘이 만들어져 있었다. 입고 있는 트레이닝복위에 점퍼를 입고 목도
리를 대충 둘러 묶었다. 그리고 안경을 쓰고 나오는 걸 잊어버리고 지갑을 들고 밖으로 나오
자 우진의 차가 보였다. 문을 잠그고 차 옆으로 가자 우진이 운전석에서 내려 그녀에게 다가
왔다. 가까이 다가오는 그를 자세히 바라보려고 눈을 가늘게 뜨고 집중했다. 우진의 입에는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선생님도 감기 걸리셨어요?”
우진이 조수석문을 열어 주었다.
“아니에요.. 기운이 없어서 뒷자리에 누울께요.”
은오는 혹시나 누가 보면 선생님에게 피해가 갈까봐 뒷좌석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
았다. 우진이 열고 있던 조수석문을 닫고 빙 돌아 운전석에 앉았다. 잠깐 사이에 추위를 느꼈
는지 그가 몸을 떨며 히터를 4단계까지 올렸다. 은오가 조수석 의자에 이마를 기대고 몸을 숙
이고 있자 그가 손을 뻗어 은오 이마를 만졌다.
“열이 많네.. 약 먹었어?”
은오가 고개를 저었다.
“선생님은요?”
“나도 아직.. 병원 같이 가자.”
“오해 받아요..”
은오가 피식 웃으며 말하다 기침을 했다.
“오해는.. 같이 가는 거야.”
그가 차를 출발시켜 병원에 도착해 같이 진료를 받고 약을 처방받고 함께 죽집에 가서 죽을 먹었다. 몸이 안 좋아서 그런지 죽도 많이 먹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그녀의 집 앞이었다.
“자꾸.. 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폐는.. 굶지 말고, 이거 먹어. 약도 먹고..”
그가 어느새 포장한 죽이 담긴 쇼핑백을 내밀었다. 은오는 고개를 저었다.
“선생님 드세요..”
“먹어. 대기업 들어가려면 얼른 나아서 공부 열심히 해야지.”
은오가 웃으며 쇼핑백을 받았다.
“감사합니다.”
“들어가.”
“네. 조심해서 가세요.”
한 편, 이삿짐을 옮기는 안나는 얼굴에 어색한 미소를 짓느라 양 볼에 경련이 일 것 같았다.
이제까지 그녀가 사용하던 방보다 한 네 배는 큰 것 같은 커다란 방에 공주풍으로 꾸며진 방
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려와서 점심을 먹으라는 소리에 아래층으로 내려가려고 문을 열자
맞은 편 방에서 문이 열렸다. 안나는 다시 방안으로 들어와 문을 얼른 닫았다.
‘왜 하필 맞은편이냐고.. 싫은데..’
재원이 내려가는 소리가 들리자 그녀는 조금 더 있다가 문을 열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는데..”
걱정스런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그 분에게 다시 예의 그 미소를 지어야만 했다.
“마음에 들어요. 감사합니다.”
네 사람이 점심 식사를 하고 설거지를 그녀가 하고 다시 방으로 올라와 조그만 짐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낯선 방에 누워 천정을 바라보았다.
“내 나이가.. 이제 열아홉인데.. 공주풍의 방에서 잠을 자게 될 줄이야..”
그녀는 앞으로 이 곳에서 일 년을 지내야 한다는 생각에 불편해서 잠이 잘 오지 않을 것 같았
지만 어제 은오를 도와 눈을 치우고, 집에 와서 짐을 싸고, 오늘 풀었더니 몸이 피곤해서 생
각보다 금방 잠이 들었다.
월요일 아침에 교복을 입은 안나가 방문을 열고 나와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학교까지 태워 줄까?”
그 분이 기사분에게 말씀하시려고 커피잔을 내려놓으시면서 식탁에서 일어나 그녀를 바라보며
물어보셨다. 남동생은 그 분 맞은 편 식탁에 앉아 아메리칸 식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가
빵을 오물거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안나는 고개를 돌려 그 분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버스 알아 놓았어요. 다녀오겠습니다.”
“아침은?”
“원래 잘 안 먹어요.”
거짓말이었다.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는 엄마를 바라보며 씽긋 웃었다. 그녀는 밖으로 나오자
숨이 제대로 쉬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버스정류장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버스정류
장 근처에 있는 수퍼에 들어가 빵이랑 커피우유를 사들고 밖으로 나왔다.
교무실에 들어 간 우진은 자신의 책상위에 놓인 유자청이 담긴 병을 바라보았다. 오른손 검지손가락을 들어 마스크를
내리며 병을 바라보았다.
“유선생님은 인기도 많으세요. 감기 걸리셨다고 유자청까지 받으시고..”
“누가 놓은 건지 보셨습니까?”
“아니요? 누군지 아시겠어요?”
그가 피식 웃으며 자리에 앉아 유자청병을 들었다.
“김선생님.. 유자차가 어디에 좋은지 아십니까? 이게 말입니다..”
그가 유자차의 효능에 대해 설명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
****
명절연휴가 다가왔다. 수업을 마치며 은오가 안나에게 축하인사를 전했다.
“어머님께 축하드린다고 말씀 드려 줘.”
“그래.. 알았다~. 감기는 좀 어때?”
“많이 좋아졌어.”
“명절에 뭐해?”
“뭐.. 아마 목요일 하루 부모님이랑 성묘 갈 것 같아. 내일이랑 금요이일은 혼자 있을 것 같고.. 아니면 부모님 가게 가서 돕거나..”
“나도 가서 도울까?”
“그렇게 피할 생각만 하지 말고..”
“하아~. 여행을 가자고 하시는데.. 신혼여행은 두 분이 가시라고.. 우리까지 데리고 갈 필요는 없잖아..”
“하긴.. 혹이 둘이나 같이 가면.. 로맨틱하지 않으실 텐데..”
안나가 눈을 가늘게 뜨고 은오를 바라보자 은오가 피식 웃었다.
“힘들면 언제든지 찾아 와.”
“알았어~.”
“마희한테는..”
“잠깐 들를까?”
“그래. 부모님께 드릴 과일 상자 들고 가자.”
“그래.”
두 사람은 마희가 정말 너무 보고 싶어서 사과와 배가 함께 들어 있는 과일상자를 둘이 함께 들고 마희 집을 찾았다.
“고맙다. 마희도 너희들 보고 싶다고..”
“건강해요?”
마희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이셨다.
“아마.. 깜짝 놀랄지도 모르겠어.”
“그래요?”
“응. 많이 날씬해 졌거든. 우리 딸이 그런 눈, 코, 입을 갖고 있는 줄 몰랐다니까.. 그렇죠, 여보?”
마희 아버지도 흐믓한 미소를 지으시면서 고개를 끄덕이셨다.
“뭐.. 원래 예뻤으니까..”
“네..” “맞아요.”
두 사람도 조금 가벼워진 마음으로 두 분께 인사를 드리고 집을 나왔다.
“해피 설~.”
“너도 해피 설~. 전화할게.”
“응.”
두 사람도 각자 헤어져 집으로 향했다.
첫댓글 순정만화보는느낌처럼 수채화같은소설~~~~다음편도얼른올려주세요
아. . 일찍올린다는것이. . ^^ 곧 올릴께요. . ^^
나도 저런때가 있었지... 오래전 그느낌을 나게해주시네요.. 잔잔하게 그때의 감성이 느껴집니다. 글감사합니다.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감사해요.. ^^
쭉이어보고있어요ㅎ
^^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
해피설~~! 학창시절의 추억에 잠깁니다!!!
ㅋㅋ 그러신가요? 저도요. . ^^
은근히 재미있네요!!!
그런가요..? ^^ 감사합니다.. ^^
ㅎㅎ점점 중독되어지네요~
^^ 좋은 말씀.. 감사해요
흥미로워요
그렇게 생각해 주셔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