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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선물해 주신 영국 왕실에서 마신다는 귀한 차, 다빌스 오브 윈저 중에서도 나는 얼 그레이 홍차가 좋다. 진하게 우려진 빛깔 속에 산뜻하게 아침을 깨우는 향기가 벌써 떠나신 지 일주일 된 엄마 냄새를 맡는 것처럼 설렌다.
나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름 모를 앙증맞은 새 한마리가 베란다에 살포시 날아와 잠시 머물다 휭하니 바람처럼 가버린다. 그렇게 친정엄마와 두 남동생도 한국에서 날아와 3주간의 짧은 여정을 마치고 다시 푸드덕 날아갔다.
3주간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던 거실, 소파 베드 두 개가 펼쳐지고 트윈 메트리스까지 식탁 옆 바닥에 깔면 꽉 들어차던 거실. 밤마다 길게 연장해서 일곱 식구가 오밀조밀 둘러앉았던 오래된 손때 묻은 나무 식탁.
막둥이 삼촌이 앉았던 자리, 작지만 움푹움푹 패인 자국들이 바닷가재의 딱딱한 껍데기를 깨다가 남긴 흔적이란 걸, 삼촌이 다녀간 자국이란 걸 가고 나서야 알았다. 엄마와 나의 왕 집게발까지 깨부수느라 힘 좀 썼던 막둥이 삼촌의 살가움이 지금도 따스하게 전해온다.
사실 나는 ‘명분’이라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왠지 거창한‘대의명분’을 앞세워 정치적 기득권을 챙기기에 급급했던 역사가 떠올라서였을까.
그러나 이번 계기로 깨달았다. 때론 명분이 꼭 필요함을.
지금 우리가 사는 집은 방 세 개짜리이지만 네 식구 사는데도 그리 넓지 않기에 방문객을 선뜻 환영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단 방문객을 위한 방이 없고, 화장실도 1 1/2이며, 무엇보다 아침부터 밤늦도록 자영업을 하는 우리네 삶이 그러하다. 마음은 있었지만 이런저런 상황과 맞물려 건강이 그리 양호한 편이 아닌 친정엄마, 그래도 한 번 다녀가시라는 말을 감히 꺼내지 못했었다.
그런데 친정엄마가 두 남동생 거느리시고 밴쿠버에 다녀가시겠다고 하셨다. 엄마와 가장 가까운 큰 언니의 무남독녀 과년한 외동딸이 늦게나마 올리는 작은 결혼식에 참석차 오신다는 명분이었다.
엄마는 수야 언니 어릴 때 한국에서 돌봐주었던 기억으로 수야 언니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하셨다.
그래, 명분이 있으니 모든 사소한 불편과 어려움쯤은 능히 뛰어넘을 수 있었다. 나도 엄마도, 동생들까지도…
게다가 내가 캐나다에 온 지 어언 30년이 다 되어가는데 막둥이 남동생은 그간 가족에 장인, 장모님까지 부양하며 사느라 마음 편히 내가 살던 토론토, 밴쿠버에 한 번 다녀가지도 못했었다. 그게 늘 마음 아팠다.
우리 삼 남매가 이곳 밴쿠버에서 처음으로 다시 뭉친다는 사실에 새삼 설레기까지 했다.
문득 정현종 시인의 “ 방문객“ 이란 시가 불현듯이 스쳐 간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내 나이 23살에 캐나다에 왔으니 동생들과의 추억은 그저 어릴 때 그리고 잠깐씩 한국 방문했을 때의 짧은 기억들뿐이다. 둘째는 미혼이고 엄마와 같이 사는 까닭에 여러 차례 함께 방문해서 쌓인 추억이 그래도 많다.
최근에 한국 방문했던 2015년 5월 1일, 막둥이가 운전하고 둘째와 우리 삼 남매는 엄마 모시고 남해 여행을 떠났었다. 천주교 용인 공원묘지 납골당에 계신 외할머니를 찾아뵙고, 대전 현충원 아버지 묘비에 헌화하며 추모의 시간을 가졌었다. 그리고 전주 전동성당, 한옥 마을, 순천 낙안읍성 민속마을, 벌교, 여수 오동도 관람, 통영, 가천 가다랭이 마을, 곳곳의 맛집 탐방 등등…
그리고 5년 만에 이곳 밴쿠버에서 엄마를 선두로 다시 뭉친 우리 삼남매. 오랫동안 떨어져 산 세월 탓인지 잠시나마 함께 하는 시간이 애틋했다. 그동안 살아오며 딸로서 큰 누나로서 해주지 못한 많은 아쉬움을 한꺼번에 만회하고픈건 나의 지나친 욕심이었을까.
첫 주는 사촌 언니의 결혼식 일정으로 바쁘게 지나갔다.
수야 언니는 신혼여행으로 이곳 밴쿠버에서 출항하는 하와이 크루즈 여행을 택했다. 속 깊은 언니는 팔순을 훌쩍 넘기신 연로한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함께 떠나는 의미 있는 여행을 준비했다.
또한 1960년 당시에 보사부의 전액 국비 장학생으로 총 300명 중 발탁된 6명의 재원 가운데에서 3명은 하와이 대학에서 공부했다고 한다. 큰 이모님이 그중 한 분으로 1년간 보건학을 전공하셨다 한다.
수야 언니는 그런 어머니를 위해 하와이 대학을 둘러보는 추억 여행을 계획하며 큰이모님의 편지를 하와이 대학의 총장에게 보냈다.
2019년 9월 하와이 대학에서 VIP로 초청받아 학생들 앞에서 연설까지 하셨다 하니 참으로 오래도록 기억될 의미 있는 추억 여행이 아닐 수 없다.
9월 10일, 결혼식 하루 전날, 우리 식당에서 웨딩에 초대받고 참석하는 모두를 위한 저녁 식사 모임이 있었다. 식사 후 간단한 선물 증정식이 있었는데 우리 가족이 전한 결혼 축하 카드의 아름다운 신랑 신부가 tied the knot이라는 표현처럼 서로 줄로 연결된 모양을 보고 이런 카드는 처음 본다며 너무나 기뻐했다.
또한 캐나다 왕립 조폐국에서 2019년 발행한 핑크골드로 하트 문양을 아로새긴 결혼기념 은화 선물을 무척이나 고마워했다. 바쁜 저녁 식사 시간이라 경황이 없어 세세하게 더 잘해드리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어찌하랴, 마음과 정성을 다했으니 그것으로 위안할밖에…
드디어 9월 11일, Brockton Point Lighthouse in Stanley Park, 등대가 바라다보이는 야외 잔디밭에서 작은 웨딩으로 간단히 치렀다.
아담한 키의 신부는 하얀 면사포를 휘날리며 노란색 카라를 손에 꼭 쥐고, 순백색의 귀여운 웨딩드레스를 입고 씩씩하게 리무진에서 내렸다. 그 뒤로 키가 훤칠하고 사람 좋게 생긴 연상의 신랑과 큰 이모님, 이모부님이 뒤따라 내리셨다.
엄마랑 동생들이 도착하던 날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고 연일 겨울 우기처럼 흩뿌리는 비 소식에 걱정을 했었는데 엄마의 기도 덕택인지 다행히 결혼식 당일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
스몰 웨딩 업체 관계자와 사진사, 기타리스트 그리고 결혼식 주례 목사님이 오시고 결혼식은 빠르게 진행되었고 이내 부부가 되었음을 가족과 친지 그리고 친구들 앞에서 공표했다. 스텐리파크의 토템폴을 배경으로 여럿이서 기념사진도 찍었다.
Sunset Dinner Cruise에서의 웨딩 리셉션, 오랜만에 만난 사촌 동생 대일과 정답게 회포를 풀었고 다음날 딤섬 브런치로 뒤풀이까지 엄마와 동생들 그리고 모두가 짧은 해후와 긴 이별을 아쉬워했다.
둘째 주는 세찬 빗속에 우산을 쓰고 캐나다 플레이스, FlyOver Canada에서의 4D 영화관람, 개스타운, 아트 갤러리를 구경했다. 또한 린 케년 공원의 흔들다리, 캐필라노 현수교, 스카이 워크를 둘러보고, 집뒤편의 산책로와 딥코브의 산행까지 흐린 날씨였지만 알차게 보내도록 나는 동생들을 종용했었다.
날마다 밤늦게 귀가해도, 살찌는 소리가 들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파티는 계속 이어졌다. 막둥이 삼촌이 맛나게 구워준 스테이크 디너, 1인 1 랍스터 디너도 기억에 남는다. 물론 남편과 아들이 한껏 솜씨를 낸 온갖 종류의 스시와 사시미 그리고 특별히 주문했던 방어와 성게를 맛나게 먹으며 마셨던 수정방이라는 독한 중국 술도 잊지 못할 것 같다. 나는 그냥 입에만 갖다 대도 취기가 올라 끝내 작은 술 한 잔도 비우지 못했던…
우리의 결혼 27주년과 친정엄마의 79세 생신 기념으로 그라우스 마운튼 정상에서 모두가 함께한 저녁 식사. 비가 와서 구름이 뭉게뭉게 떠다니고, 안개가 자욱해 더욱 몽환적인 분위기에서 맛있게 식사를 마쳤다. 소화도 시킬 겸 빗속을 터벅터벅 걷다가 마치 횡재하듯 맞닥뜨린 사슴 가족들.
그리고 우리가 찾아간 그리즐리 베어 동물원에서 만난 Coola와 Grinder. 각기 다른 지역에서 사고로 고아가 된 그리즐리 두 곰이 형제처럼 의지하며 자라고 지내는 곳. 이제 곧 동면에 들어갈 녀석들의 서로 다른 얼굴과 몸집이 눈앞에 아른거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곤돌라를 타고 내려왔다.
셋째 주는 엄마와 동생들을 위해 밴프 프리미엄 패키지, 3박 4일 일정의 여행을 보내드렸다. 피곤한 여정이었지만 장엄한 록키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에메랄드빛 호수의 예쁜 추억을 가슴에 새기셨으리라 믿는다. 오가며 만난 멋진 록키의 풍광을 두 눈에 그리고 마음에 오랫동안 담아두고 내내 일상이 힘들 때마다 떠올리며 위안을 삼을 수 있기를…
막둥이 동생은 록키에서 비도 맞고, 눈도 맞고, 단풍도 구경하고 이 세가지를 한 곳에서 다 경험했다며 여행 소감을 얘기했었다. 다행히 구경할 때는 날씨가 좋아 헬리콥터도 타고 설상차, 곤돌라도 타고 두루두루 날씨 덕에 잘 둘러보고 올 수 있었음에 감사해했다.
떠나시기 전날 토요일, 캐나다 한국문협에서 매년 가을 주최하는 한카 문학제 행사가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여독으로 인한 몸살로 함께 하지 못하셨다. 대신 막둥이 동생이 팔이 아프도록 동영상을 찍어 보여드리는 거로 대신했다.
엄마는 내게 시 낭송을 잘했다며 칭찬해 주셨고, 함께 하지 못해 아쉬웠던 나의 마음을 그렇게 달래주셨다.
마침내 떠나시는 일요일 새벽, 일찌감치 서둘러 7시에 공항으로 출발했고, 셀프 수속을 마치고 짐을 부친 후 아침 식사를 했다.
이제는 헤어져야 할 시간, 덤덤하게 눈물을 보이지 않았고,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대신하듯 따뜻하게 포옹하며 그렇게 헤어졌다. 머지않아 다시 만날 것을 믿기에…
떠나고 나니, 좀 더 잘해 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만 새록새록 맴돈다.
엄마 좋아하시는 시원한 생선 지리 한 번 못해 드렸고, 큰삼촌 먹고 싶다던 수제 버거집 한 번 같이 못 가고, 막둥이 삼촌은 얼큰한 한식이 얼마나 먹고 싶었을까… 미안한 맘이 자꾸 커진다.
지금도 의젓한 막둥이 삼촌이랑 큰삼촌 그리고 엄마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설 것만 같다.
2019년 9월의 그 기분 좋은 명분, 사촌 언니 수야와 스티브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호주에서의 결혼 생활이 서로를 신뢰하고 사랑하며 의지하는 평생 동반자의 삶으로 이어지기를….
또한 기꺼이 멀리서 와서 결혼식에 참석하고 축하해 준 친정엄마 그리고 두 남동생. 때론 명분으로 말미암아 뛰어넘을 수 있는 크고 작은 산들…
그 끝엔 기분 좋은 산들바람처럼 추억이 머문다.
런던 온타리오에 사시는 큰 이모님, 이모부님 두 분의 건강과 장수와 날마다 행복을 염원하며…
오늘도 우리 부부는 가진 게 별로 없어도 마음이 부자라서, 두루두루 베풀며 살 수 있기를 빌어본다.
첫댓글 복이 많으신 분들입니다. 어머님 오래 오래 잘 모십시요. 어머니을 95에 여의었는데도 늘 가슴이 아픕니다. 마음이 부자고 마음이 행복한 것이 제일 이지요.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이은세님.
가정의 화목과 건강, 행복을 빌어요.
저희 어머님이 복 받으신 분 맞아요.
하나님의 은혜로 화가로서의 제 2의 인생을 멋지고 당당하게 살아가시거든요.
착하고 선하게 날마다 최선을 다해 살다보면 좋은 날은 반드시 오리라 믿어요!
불교에서도, 기독교에서도 하느님, 신은 각자의 가슴에 계시다고 하죠. 교회와 절의 형식보다 가슴에 계신 하나님이 기뻐하실 쪽으로 살면 복받고, 행복해진다고...그래서 내 앞에 섰는 거지부터 대통령까지 현신해 오신 예수, 부처라 생각하고 대하는 것이 진솔한 삶이라고...우리 앞세대의 어머님들은 종교조차 모르고도 그렇게들 열성으로 착하게들 사셨을 겁니다. 두루 화목하시고 건강하십시요.
나름 진솔하게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요.
식당을 하면서 많은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죠. 어느 한 영혼 소중하지 않은 영혼이 없어요.
저희 식당에 뭔가 고치기 위해서나 일하러 온 사람들 그냥 보낸적 없어요.
항상 따뜻한 밥 한끼 대접해서 보냈고, 바쁜 사람들은 테이크 아웃해서 보냈지요.
그래야 제 마음이 좋으니 저 좋으라고 하는 일인 걸요.
댓글과 관심어린 말씀 한마디에도 힘이 나네요!
오늘도 즐겁게!!
3주 동안 만리장성을 쌓았군요.
혜진씨 부부의 넉넉한 마음이 헤아려지고, 정감 넘치는 가족 친지들 모습이 상상이 되네요.
언젠가 또 한 번 뭉쳐 으샤샤 하면서 나머지 회포를 풀기 바래요. ^*^
저희 가족이 언제 또 기쁜 명분으로 한자리에 모일런지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아들 녀석 결혼식 즈음? 아직은 기약이 없지만요.
글을 올리고도 자꾸 수정할 부분이 보여서 고치게 되네요.
혜진님, 아주 귀한 가족 재상봉을 하셨군요.
지난 날들을 돌이켜 보면 삶이 바쁘고 빠듯할때 더 많은 것들이 이루어졌던 것 같습니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에요.
글을 읽으며 저의 어머님께서 작은 딸과 함께 첫 번 방문오셨다가 딸은 제게 남겨 두고 혼자 돌아가셨던 때의 서운함이 떠오릅니다.
무슨 명분으로라도 기회 있을 때 진행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요.
어머님께서 다시 방문하실 희망을 가지시고 건강하게 지내시기를 기원합니다.
김진양 선배님.
한카문학제 때 우크렐레 연주하시며 새로운 도전하시는 모습 참 좋았습니다! 멋지세요! ^.~
왕성한 취미생활과 더불어 문협에서도 귀감이 되는 선배님으로 변함없이 남아 주세요.
늘 영육간에 강건하시고 평안하시길....
이번 주(토요일)부터
U&레이디에 2회에 걸쳐 게재된다우.
예정이군요. 감사합니다.
토요일에 신문 픽업하러 가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