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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8-8~11일 강원도에서) | ||||
s.John(사도) | 자매님. 저는 하느님을 만나고 행복해 하시는 분을 뵈면 참 기쁨, 행복을 느낍니다. 오늘도 놀랠일이 있었답니다. 늘 가까이 뵙고 싶던 황 모니카 수녀님을 왠 세상에, 수요일 강의 끝나시고 오신다고 소식을 전해 들었으나 왔다갔다 하다가 못 만났답니다. 아 글씨 아침 7시 미사에 뒤에 앉아도 되는데 수녀님이 앞으로... | 2005/08/11 | ||
s.John(사도) | 앉으래요. 아 그래서 앉아서 있다가 고개를 슬쩍 옆을 보니 와 와 와 황모니카 수녀님과 함께 미사를 드리고 있지 않겠어라우. '하느님 참 신비입니다. 마음속으로만 생각해도 신앙안에 기도는 꼭 들어 주시는 것만 같습니다." 참 신비입니다. 아버지 하느님. 왠 세상에 강원도 고성 피정의 집에서 황수녀님 옆에 앉아 미사 | 2005/08/11 |
주님, 저는 제 안에 진정한 권위가 있음을 발견하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 ?유형을 위한 기도문중에서
참고도서 : David Daniel, Enneagram Essential & Don Richard Riso, Enneagram Transformations
추기:
신앙안에 잊혀지지 않는 '무지개'
견진 성사를 받고
집으로 돌아올 때
우리 가족 모두
하늘에 걸린 '무지개'를 보았다.
지금도 그 날 그 광경을 모두 잊지 못하고 있다.
[가톨릭 신문 - 성서 말씀 나누기에서]
다니엘(11) / 내용(7) - 2005년 8월 28일 가톨릭 신문에서 (마치 격려하듯이...)
글 -김혜윤 수녀 <미리내 성모성심수녀회·광주가톨릭대 교수〉
삶속에 떠 있는 무지개 발견할 때 인생의 참 의미 깨달을 수 있어
책이 빡빡하게 들어선 작은 내 서재에는 아직도 몇 권의 동화책이 꽂혀 있다. 전문서적들과 함께 꽂혀 있는 동화책이라니, 역시 정서가 언밸런스야, 하던 누군가의 지적이 기억난다. 아마도 동화가 주는 단순한 행복과 비현실적 순수가, 내게는 아직도 위안이 될 때가 있어서 인가 보다.
그중에도 제일 좋아하는 이야기는 무지개를 소재로 한 동화이다. 그런 동화를 읽는 데는 단 한 번도, 이걸 읽어야 하나? 라는 갈등을 겪어본 적이 없고, 처음 나온 졸서의 표지에도 무지개를 그려 달라고 했을 정도이니, 무지개를 좋아하는 수위가 보통을 넘었음은 충분히 가늠된다.
그래서일까. 사실은, 비밀인데(?), 박사학위 최종 시험을 보는 날 아침에도 활짝 웃고 있는 무지개를 보았다. 꿈이 아니라 실제로…. 아침기도를 마치고 옥상에 올라갔을 때였는데, 어떻게 무지개가 뜬 그 짧은 시간에 거기 올라가게 되었는지, 혼자서 감탄에 감탄을 연발하며 간직하고 있는 흐뭇한 우연 중의 하나이다. 물론 여름이었고, 지중해성 기후인 로마의 기후를 참작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긴 했다.
지난번에도 친구 수녀님과 서점에 갔다가 은근히 동화책 코너에서 어슬렁거리는 나를 보고, 웬 동화책? 이냐며 의아해 하길래, 으응- 조카 주려구, 했다. 하지만 우리 집 가족사를 훤히 뚫고 있는 그녀인지라, 조카 아직 돌도 안됐잖아, 하며 즉시 태클을 걸어 왔고 나는, 으응-, 고모가 누구니, 날 닮아서(?) 머리가 좋아. 한글 금방 깨칠거야…. 하고 또 얼버무렸다. 그냥 내가 보려고, 하면 쉬웠을 걸, 둘러치는 나를 안됐다는 눈으로 쳐다보는 그녀에게 왠지 창피하고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권력과 힘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폭풍우 속을 걷고 있는 사람들은 그 폭풍우 이면에 있는 무지개를 보지 못한다. 그러나 어쩌면 그게 우리 삶일 지도 모른다.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권력 잡은 이들의 폭력을 견뎌야만 하고, 다스리기 위해 다스림 받는 위치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지개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노동의 시간들이 삶이 아니라, 무지개와 함께 사는 아름다운 시간이 삶임을 깨달을 때, 비로소 진정한 삶은 시작된다.
각자의 삶 안에 떠있는 무지개를 보지 못하고 평생을 사는 것은 너무 불쌍하고 잔인한 일이다. 그러니 여유를 내어 하늘을 볼 일이다. 하늘나라는 지금, 여기에, 우리 안에 이미 와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무지개를 보지 못하듯, 하느님 나라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을 뿐.
느부갓네살. 신생 바빌론을 신흥 대제국으로 탄생시켰던 장본인이었던 그 역시 하느님 없이 자신의 힘만으로 혁혁한 성공을 이루었다고 생각해왔던 인물이었다. 이제 우리가 살펴보게 될 다니 4장은 하느님 없이 성공하고 출세하며 꽤 인생을 잘 꾸려왔다고 생각하던 그가 인생 유전 끝에 어떻게 해서 하느님을 만나고 신앙을 고백하게 되는지, 그 파란만장한 과정을 소개해준다.
무서운 고통의 끝에서 만나게 된 하느님은, 그가 마침내 발견한 인생의 무지개가 아니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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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리따스 피정의 집 앞 바다가 너무 경이로워 담은 사진입니다.
사진에 피정의 집 정경을 담기에는 너무 부족합니다.
주님!, 저에게도 까리따스 피정의 집에 갈 수 있도록 자비를 청원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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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까리따스 피정의 집 앞 바다가 너무 경이로워 담은 사진입니다. 사진에 담기에는 너무 부족합니다.
사진이 나오지를 않아 볼 수가 없습니다. 다시 어떻게 좀 해 주시어요.
다만 우리가 무지개를 보지 못하듯, 하느님 나라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을 뿐. - 김 혜윤 수녀님 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