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주의 화가 중에서 가장 급진적인 성향을 지녔던 그는 굵고 빠른 필치와 두터운 채색, 캔버스에 직접 짠 순색
계열의 색채를 통해 자신의 충동적이고 격정적인 기질이 반영되어 있는 표현력 넘치는 작품들을 선보였다.
블라맹크는 “직관이 예술의 기초를 이룬다”고 믿었으며, 단 한 번도 루브르박물관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는 사실
을 자랑스럽게 여길 만큼 과거의 거장들로부터 배우는 것을 경멸했다. 그에게 회화는 자연발생적이고 열정적이
며 매우 신체적인 활동이었다. 그는 화가의 감성에 의해 인지되는 감정이 진정한 주를 이루는 풍경을 화폭에 담았
다.
블라맹크는 1907년부터 아프리카의 문화와 세잔(Paul Cézanne)의 작품을 연구하면서 입체감의 표현에 주력하
기 시작했다. 몽마르트르에 있는 피카소의 작업실 ‘바토 라부아르(세탁선)’에서 피카소와 공동 작업을 하며 명도
가 좀 더 낮은 색채와 입체주의적인 요소가 가미된 작품을 발표했다. 이듬해에는 회색과 흰색, 짙은 청색을 두텁
게 칠한 풍경화로 방향을 바꾸어 어두운 색조 속에 견고한 화면 구성을 보여 세잔의 영향을 엿보게 했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이 지나치게 주지주의적이라 생각하고 이후에는 본래의 뚜렷하고 철저한 프랑스 표현주의 양식으로
돌아왔다.
블라맹크는 1920년대부터 더 이상의 큰 변화 없이 자연을 대상으로 폭풍에 휩싸인 하늘과 들판, 길의 정경 등을
담은 풍경화와 정물을 즐겨 그렸다. 그는 1958년 뤼에유 라 가들리에르(Rueil–la–Gadelière)에서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