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병 이어 -
☆ 2016년 다해 4월8일 금요일 [(백) 부활 제2주간 금요일]
[수도회] 마음을 열어 나누는 공생의 길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사도 5,34-42
† 복음 요한 6,1-15
◈ 오늘의 묵상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자, 필립보는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 먹게 하자면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 하고 대답합니다. 이는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는 태도이지요.
그렇지만 안드레아는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는
소년을 예수님께 데려옵니다. 소년이 가진 보리 빵은 당시 가난한 이들이
먹는 음식입니다. 만일 그 소년이 자신의 것이 보잘것없다고 예수님께
드리기를 부끄러워하며 숨겼다면, 그 결과는 어떠하였겠습니까? 수많은
사람이 배불리 먹었던 그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그 많은 사람에게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란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이지요. 그렇지만 그것이 일단 예수님의 손에 쥐어지자 모두가
배불리 먹고도 남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작은 것이라도 기꺼이 받으시고, 오히려 그것을 유용하게
쓰신다는 점에 주목해야 하겠습니다. 사실 우리 각자의 능력이나 재능은
따지고 보면 보잘것없기만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작은 정성과
희생이라도 이를 주님께 바치면, 엄청난 열매가 맺어지지 않습니까?
어쩌면 우리가 가진 것과 우리의 있는 그대로를 주님께 드리려 하지
않기에, 우리 주위에 이런 나눔의 기적이 연달아 일어나지 않는지 모릅니다.
- 매일 미사 -
◈ [인천] 주님의 말씀에 더 큰 힘을 얻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2016년 다해 4월8일 부활 제2주간 금요일
제1독서
"사도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았다고 기뻐하며 물러 나왔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5,34-42
복음
<예수님께서는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원하는 대로 나누어 주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15
제가 있는 갑곶성지에는 기도틀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기도용지에 자신의
기도를 적어서 꽂아놓는 틀인 것이지요. 사람들이 낮에 순례하면서 꽂아놓은
기도 내용을 새벽에 일어나 성당에서 기도할 때에 모두 빼서 저도 같은
지향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기도하기 위해 지향들을 빼서 읽어보면 주로
병의 치유, 부의 축적, 사람들과의 일치 등의 내용이 담겨 있더군요. 즉,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적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솔직히 기적을 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자신의 복잡하고 힘든
문제들이 척척 해결되길 원하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도 참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유만을 가지고 있는 분들은 주님을 쉽게 떠나게 될 때가 많습니다. 눈에
보이는 가치, 세속적인 가치만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더 큰 가치를
지향하는 주님의 뜻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에 반해서 주님의 말씀으로 힘을 얻는 분이 있습니다. 그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삶 안에서 어떻게 생활해야 할지를 깨닫게 되고, 그 힘으로
기쁘게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인간적인 기준으로 볼 때에는 너무나도 힘든
상황에서도 참으로 기쁘고 행복하게 사십니다. 세상이 깜짝 놀랄만한
기적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마음속에서는 어떤 기적을 체험한 것보다 더
큰 기쁨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
과연 지금은 주님의 말씀이 필요한 것일까요? 아니면 주님의 깜짝 놀랄만한
기적이 필요한 것일까요? 지금 제가 있는 갑곶성지에는 복잡한 문제들을 참
많이 걸려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신경도 쓰이고 또한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정말로 주님의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서 이 문제들을 다 해결해
주셨으면 하는 기도가 저절로 나옵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함께 하는 곳이 되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솔직히 세상의 기준과 방법으로
해결하려고도 했지만 별 성과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함께 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또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하자 신기하게도 조금씩
문제의 해결책들이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랐던 많은 사람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보다 기적에 이끌렸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빵의 기적 후에는
예수님을 쫓아와서 임금으로 삼으려고 하지요. 이렇게 따랐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나중에는 어떻게 변했을까요?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던 예수님을
향해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임금으로 삼으려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피해서 예수님께서는 산으로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세상의 기준과 방법을 내세우는 자리를 피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기도함으로써 주님의 자리를
만들어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기적에 이끌리는 우리가 아니라, 주님의 말씀에 더 큰 힘을
얻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 안에서 큰 기쁨과
행복을 간직하게 됩니다.
늘 행복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자주 변해야 한다(공자).
이스라엘의 오병이어 성당.
광고의 힘
초등학생인 사오정이 시험을 보는데, 그 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죽음에 임박한 사람들이 평안히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옆에서 간호하고
돕고 돌보는 일을 무엇이라고 하는가?”
정답은 당연히 ‘호스피스’지요. 그런데 사오정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답을 적었다고 합니다.
‘보람상조’
광고를 통해서 ‘호스피스’가 아닌, ‘보람상조’라고 적을 수 있게 하다니 그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깨닫습니다. 하긴 예전의 광고 카피 중에서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입니다.’라고 있었지요. 그리고 실제로
초등학생들이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즉, “다음 중에서
가구가 아닌 것은?”이라는 시험문제가 있었는데, 거의 모두가 ‘침대’에
표시했다고 합니다. 침대는 과학이니까 말이지요.
세상의 말과 행동들, 항상 맞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눈에
보이는 기준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에 빠질 때가 너무나 많은 것
같습니다. 그 너머에 있는 주님의 기준을 따를 때,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오병이어.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 [서울] 부활 제2주간 금요일
2016년 다해 4월8일 부활 제2주간 금요일
<예수님께서는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원하는 대로 나누어 주셨다.>
† 요한 6,1-15
국회의원 선거의 열기가 뜨겁습니다. 올해는 20대 총선이라고 합니다.
사전투표제가 있기 때문에 투표당일에 시간이 없는 분들은 오늘과 내일
투표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지역과 국가를 위해서 봉사할 수 있는 후보를
선택해서 투표를 하면 좋겠습니다. 선거는 한바탕 축제가 되면 좋겠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비난을 일삼고 흠집을 내는 후보보다는, 미래를 향한 정책과
대안을 제시하는 후보를 선택하면 좋겠습니다.
대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투표를 하였으니 34년이 되었습니다. 군대에 있을
때인 1987년도부터 제 손으로 대통령을 뽑을 수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제가
선택한 분이 대통령이 되었고, 어떤 때는 다른 분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선거가 끝나면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비록 내가
선택한 사람이 당선되지 않았을지라도 기쁘게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당선된 사람은 낙선한 사람을 위로하고, 떨어진 사람은 당선된 사람에게
축하의 박수를 건네면 좋겠습니다.
우리 앞에는 많은 도전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먹거리를 해결해야하는
경제문제, 언젠가는 함께 해야 할 북한과의 화해와 협력 그리고 통일문제,
시급하게 다가오는 저 출산과 고령화 문제, 문화와 전통을 이어가는 문제,
더불어 잘 살아야하는 복지문제, 민족의 미래가 달린 청소년 교육문제 등이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정당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국가적인 과제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문제해결의 패러다임을 찾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문제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위해서 모여든 사람이 많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어디에서 구할까요?’
두 번째는 걱정과 근심입니다. 빵을 살려면 돈이 필요한데, 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본당에서 사목을 할 때도, 교구에서 일을 할 때도 늘 따라오는
문제입니다. 재정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여기에 머물면 좋은
결실을 내기 어렵습니다. 중도에 포기하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곤 합니다.
세 번째는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궁하면 통한다고 합니다. 아이가 가졌던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개는 ‘마중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천 명이
풍족히 먹고도 남았습니다.
사도들은 감옥에 갇혔어도, 매를 맞았어도, 멸시와 조롱을 받았어도 모두들
기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오히려 그런 멸시와 조롱을 받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함께 하면 반드시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커다란 능력이 있었음에도 미련 없이 세상의
명예와 권력을 뿌리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떠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와서 당신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 권위는 있었지만
권위적이지 않았던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힘은 있었지만 그 힘을 언제나
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서 사용하셨던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박수칠 때 떠나지 못합니다. 욕망과 욕심 때문에 그동안 얻었던
명망과 덕을 상실하고, 쓸쓸하게 퇴장하게 됩니다.
이번 선거에서는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후보를 선택하면 좋겠습니다.
근심과 걱정보다는 정책과 대안을 제시하는 후보를 선택하면 좋겠습니다.
욕심을 채우려는 후보보다는 겸손하게 봉사하려는 후보를 선택하면
좋겠습니다. 민주주의는 최고의 선택방법은 아닙니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택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주님, 아드님의 십자가로 저희를 구원하셨으니, 주님 사랑으로 저희를
지켜 주시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에 이르게 하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서울] 어린이가 예수님 마음을 움직였네요.
2016년 다해 4월8일 부활 제2주간 금요일
어린이가 예수님 마음을 움직였네요.
많아 넘쳐서가 아니라 부족해도 서로 나누는 건 항상 아름답습니다.
오병이어(다섯 개의 빵과 물고기 두 마리)로 수천 명을 먹이신 기적.
이 기적의 진행은 기도와 나눔이란 과정이지만 좀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콩 한 알도 나눠 먹으라는 옛 우리말이 늘 생각나는 이 대목입니다.
어린이가 등장하여 욕심 없이 내 놓은 점 또한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음식 내어놓는 어린이가 예수님 마음을 움직였네요.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요한 6,9)”
- 서울 대교구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 -
◈ [수도회] 마음을 열어 나누는 공생의 길 - 기 프란치스코 신부
2016년 다해 4월8일 부활 제2주간 금요일 요한 6,1-15
“예수님께서는 빵과 물고기를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주셨다.”(요한 6,11)
마음을 열어 나누는 공생의 길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아이가 내놓은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장정만도 오천 명이나 되는 군중을 먹이십니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주고도 남은 조각이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으니 경이로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빵의 표징은 ‘새로운 파스카’를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옛것의 종합이실
뿐 아니라 옛것을 무한히 초월하는 ‘새로움’ 자체이심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모두의 배고픔을 해결해주시고 고통과 아픔에서
해방시켜주시며, 모든 생명에 힘과 생기, 위로와 희망을 주시는
‘생명의 빵’(6,7)이심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복음의 빵의 표징을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엄청난 양으로 부풀리셨다는 점에 눈길을 돌려서는 안 됩니다. 빵과
물고기의 양적 증가에 초점을 맞추어 이 표징을 보려 한다면 우리 또한
세상적인 기준과 인간적인 계산으로 예수님을 오해했던 필립보나
안드레아와(6,7-9)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오천 명을 먹이신 빵의 표징에서 중요한 것은 빵의 증가가 아니라 닫힌
마음을 열어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과 생명을 건네도록 하셨다는 점입니다.
사실 사람들은 각자 자기가 먹을 음식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사랑의 행적을 보면서 닫혀 있던 마음의 벽을 헐고
지녔던 음식을 서로 나누어 먹게 된 것입니다.
빵의 표징에 관한 말씀에 비추어 나를 돌아봅니다. 하느님의 뜻을 추구하고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필립보와 안드레아처럼 인간적인 효율성을
추구하거나 세상적인 해결책을 찾느라 마음을 빼앗기곤 합니다. 또 빵의
표징을 보고 체험하고도 몰이해에 빠져 예수님을 억지로 임금으로 모시려
했던 군중들처럼(6,15), 예수님을 나의 필요와 내가 만든 틀에 맞출 때도
있습니다.
빵의 표징은 소유가 아닌 존재, 나눔을 통한 생명의 확장을 살도록
재촉합니다. 사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 시간, 피조물, 신앙, 가족,
친구, 교회, 재능, 재물 등 얼마나 많은 것을 지녔습니까! 이 모든 것들이
오늘 복음에 나오는 각자가 일용할 양식으로 지녔던 빵입니다. 이 빵들을
나만의 것으로 간직하지 않도록 마음을 열어야겠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사랑과 선을 행하는 것은 물론이요, 지닌 바를 기꺼이,
그리고 남김없이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물질과 돈, 권력의 우상에
사로잡히지 않고 이기심과 탐욕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겠습니다.
집단적 이기주의와 자본의 권력화 앞에서 아이의 보잘것없는 빵처럼 미약한
것이라 해도 내어줌을 통한 공생의 길을 찾아나갔으면 합니다.
오늘도 생명의 빵으로 자신 전부를 건네주신 예수님을 본받아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내가 지닌 모든 것과 자신을 서로에게 내놓은 우리들의 ‘빵의
기적’을 살아냈으면 합니다. 참으로 가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나눌 마음이
부족해서 더 사랑하지 못함을 아파하는 오늘입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 [수도회] 알타반의 말씀사랑
2016년 다해 4월8일 부활 제2주간 금요일
"저 사람들 일에 관여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저들의 그 계획이나
활동이 사람에게서 나왔으면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에게서
나왔으면 여러분이 저들을 없애지 못할 것입니다." (사도 5,38-39)
여러분은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에 관여를 많이 하는 편인가요?
사실 남의 일에 "밤 놔라 대추 놔라" 할 일은 아니지요.
그런데도 우리는 쉽게 다른 사람의 일에 관여합니다.
때로는 사랑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의 일을 좋게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관심을 가져주는 것은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일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판단하고 심지어 정죄하는 일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땐 아무리 개입하고 싶어도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오늘 가말리엘이 하는 말을 곱씹어 보며 나는 다른 사람의 일에
정말 사랑 때문에 관여하는지 아니면 쓸데없이 관여하는지
신중하게 돌아보는 오늘 되시길 빕니다.
- 작은 형제회 오상선 바오로 신부 -
◈ [수도회]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남은 조각을 모아라."(요한 6, 12)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6년 다해 4월8일 부활 제2주간 금요일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남은 조각을 모아라."(요한 6, 12)
우리의 허기는 주님없이는 채워질 수 없는 사랑의 허기입니다.
우리의 허기가 향해야 할 곳은 언제나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빵으로 오시는 주님을 통해 관계의 의미를 다시 깨닫게 됩니다.
주님을 보는 것에서 빵의 기적은 시작됩니다.
빵 조각을 모으듯 우리 삶의 모든 것은 다 소중합니다.
성체성사는 삶 전체를 관통하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먹여 살리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약한 빵으로 오시며 우리를 살리십니다.
강한 것만이 아니라 작고 약한 조각들이
우리의 삶을 떠받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또한 우리의 약한 조각들을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잊혀지고 버려진 것 안에서 우리는 부활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부활의 내려앉은 모습이 빵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성체성사의 신비처럼 서로의 약함까지도 버려지는 일이 없도록
서로의 약함을 받아들이는 사랑의 마음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사랑의 허기를 채워주시기 위해 당신 먼저
약하고 작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시기 때문입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청주] 내어놓을 빵과 물고기 |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6년 다해 4월8일 부활 제2주간 금요일
<예수님께서는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원하는 대로 나누어 주셨다.>
† 요한 6,1-15
내어놓을 빵과 물고기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천 명이 먹고도 남았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이해가 되지 않는 일도 믿음 안에서는
가능한 일입니다. 주 하느님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먹고도 남았다’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면 이 이야기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먹고도 남았지만 결국은 때가 되면 또 배가 고플 것이고,
또 먹어야 하는데 그때마다 기적을 베풀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천 명을 먹이신 빵의 기적 안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야
하겠습니다.
필립보나 안드레아는 인간적인 계산에 밝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군중의 배고픔에 대한 걱정을 하실 때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고 말했습니다. 단순한 생각을 그대로 말한 것입니다. 계산이 밝으니
주님을 몰라봅니다. 결국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항상 부족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권능을 믿을 것 같으면 ‘제가 가진 것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모두를
내 놓으니 나머지는 당신이 채워주십시오!’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주님께서는 차고 넘치도록 베푸십니다. 베풀면 베풀수록 베풀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하찮게 보일 수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것에 대한 감사를 드렸고 나누었습니다. 필립보와 안드레아가
'이백데나리온 이상'의 세상의 가치에 골몰해 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논리로는 이해하지 못할 또 다른 세상의 가치를 보여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은 일을 떠오르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빵을 손에 들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물고기도 그렇게 하시어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남은 것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가 가득 찼습니다. 주님께서는 차고 넘치도록
주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은총을 주시는 주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분으로부터 주어진 은총의 결과물에 머물러 있을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채워주실 수 있는 분을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똥은 쌓아놓으면 냄새가
나지만 뿌려지면 거름이 됩니다. 물질도 마찬가지입니다. 뿌려지면 선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하찮고 의미 없어 보이는 것이라도 먼저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물질적인 결과물에 매여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이분은 정말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시다."하며 억지로라도
임금으로 삼으려고 한 것을 보면 그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
말은 모세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 이스라엘 백성에게 남긴 말과 연관
됩니다. 이 때 모세는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 동족 가운데에서 나와 같은
예언자를 일으켜 주실 것이다"(신명18,15).하였습니다. 바로 그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탈출하도록 한 모세와는 달리 백성을 죄악으로 부터 구원할
메시아이십니다. 예수님은 정치적 해방을 이룬 모세와는 다른 영적
해방자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습니다. 깨닫지 못하는
군중들을 피해 외로이 하느님 곁에 머물렀습니다. 예수님께서 홀로 있다는
것은 곧 ‘하느님 아버지와 같이 있다’는 말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늘
한적한 곳을 찾으시며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는 곧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적인 계산을 모두 주님께 맡기고 그분의 권능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네가 하는 일을 주님께 맡겨라. 계획하는 일이 이루어질
것이다”(잠언16,3). “네 길을 주님께 맡기고 그분을 신뢰 하여라, 그분께서
몸소 해 주시리라”(시편37,5). 영적인 해방, 탈출을 위해 내가 예수님께 내어
놓아야 할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무엇인가? 미루지 않는
사랑을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