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구석에 있던 먼지쓴 아주 오래 된 책에
눈이 가 그것을 펴자. 이런 이야기가 눈에 들어온다.
1977년 8월, 미국에서의 사건이었다.
12세의 소년이 ‘골암骨癌’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하고 있었다.
부모는 소년을 위하여, 프로야구팀의 스타선수에게,
(한국이라면, 이대호선수 정도일 것이다.),
“저의 아들을 위해 전화 한 통화 부탁드립니다.”라고.
그 선수는 병원에 전화를 걸어주었다. 그리고,
“오늘밤 시합에서, 그대를 위하여
홈런칠 것을 약속한다”라고, 그렇게 말해 주었다.
소년은 매우 기뻐한다.
그날 밤, 가만히 티브이를 보고 있자.
그는 약속그대로 홈런을 친 것이다.
소년은 눈을 반짝이면서 매우기뻐하였다.
이때, 프로야구팀의 메니저가
한 장의 메모를 티브이의 아나운서에게 건네주었다.
아나운서는, 그것을 읽어주었다.
“지금의 홈런은, 골암으로 입원한
소년과의 약속을 완수한 것입니다.
아름다운 우정의 홈런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소년은, 그때 알은 것이다.
“내 병이 암이었다고.”라고,
몇 번이고 중얼거린다.
그리고 2주일후, 소년은 죽었다고 한다.
정말 슬픈 일이다.
구단의 메니저나 아나운서가
부주의였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조금 더 주의 깊었으면 좋았을 것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들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전부 다 열심히 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선수도 메니저도 아나운서도,
모두 다 소년을 위하여 열심히 했었다.
그런데, 그런 선의도, 순간 인지하지 못했던
작은 부주의로, 반대의 결과를
나타낸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정말 슬픈 일이다.
그런데, 그것이 이 세상의 모습이다.
절대로 오해해서는 안 되는 것이,
“열심히 하지 마, 노력하지 마”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열심히 해도, 노력해도,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안 되는 일도 있다.
잘못되는 일도 많고, 오해사는 일도 있고,
불행하게 되는 일도 많다.
그것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것을 알지 못하면, 우리는
타인을 용서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상대가 알고 일부러 했다 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쪽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
결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는 일도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