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28일(수)
* 시작 기도
주님...
바울 사도는,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였습니다(고전 15:10).
그런데 저는 주님을 향한 열정도 은혜에 대한 감사도 점점 식어갑니다.
그 열정의 불꽃, 은혜의 불꽃을 다시 일으켜 주옵소서.
싸늘하게 식어버린 이 가슴을 성령의 불로 다시 태우소서.
한 달 넘게 잿빛 하늘에 안개비가 계속 됩니다.
온 몸이 축 처지고 마음도 무겁습니다.
이런 환경에 지배 받지 않고 그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더하여 주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십자가 앞에 잠잠히 무릎을 꿇습니다.
주의 피로 날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우소서.
나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사오니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나를 이끄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욜 2:28-32
제목 :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30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31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 나의 묵상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이 주신 밀과 포도주와 기름 곧 양식을 먹되 풍족하게 먹고 마실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놀라우신 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찬송할 것이며 다른 이방인들로 인하여 다시는 조롱을 당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이제 하나님은 이스라엘 가운데 계셔서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더 이상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않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될 것이다.
한편 회개한 후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받는 복중의 복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영을 충만히 받는 것이다(28-32절).
그래서 자녀들은 예언을 하고 노인들은 꿈을 꿀 것이며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을 모든 남자와 여자에게 부어 주시겠다 약속하신다.
또한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푸실 것인데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을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사도 베드로가 오순절 성령을 받은 후에 예루살렘 성에 나가서 수많은 유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였다.
바로 그 현장에서 나타난 성령의 역사를 이 본문 말씀을 인용하여 선포하였다.
가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성령의 역사는 베드로가 복음을 전할 때 수많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각자 자기들 나라의 언어로 알아듣고 의아해 하면서 이상하게 여기기도 하였다.
이런 기적을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역사로 그 현장 가운데 나타내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피와 불과 연기는 다름 아니라 여호와의 큰 날, 곧 종말의 때에 일어날 징조로써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를 의미한다.
마지막 때에 이 십자가의 피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이지만, 이 피를 믿지 않는 자는 구원에서 멀어지게 될 것이다.
불은 하나님의 심판의 상징적인 단어이다.
불은 모든 것을 태우는 역할을 하는 심판의 도구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지 않는 자들은 결국 이 불 심판을 통하여 다 태워져 죽게 된다.
그러나 또한 이 불은 다른 의미를 가지는데, 마지막 때에 임한 성령의 능력과 역사를 뜻한다.
그래서 종말의 때에 복음을 듣고 생명으로 사는 자들은 그 심령이 성령의 불을 받아 뜨거워져서 죽어가는 영혼들을 바라보며 애통하는 마음으로 견디지 못하여 한다.
연기 기둥 역시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실 때 옹기점 연기 같이 치솟게 하셨다.
(창 19:28)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지역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 가마의 연기같이 치솟음을 보았더라.
무엇보다 이런 심판 앞에서도 남은 자들이 있는데 그들은 바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다.
그런 자들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을 은혜로 입은 남은 자들이다.
이런 자들은 어떠한 환난과 고난 가운데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십자가에서 흘린 주의 피를 믿고 주님과 연합하여 하나가 되는 자들이다.
이런 자들을 사랑하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기까지 사랑하셨다.
그 사랑은 오늘 본문처럼 말로 다 할 수 없는 다함이 없는 사랑이다.
그 사랑의 결정체인 십자가의 보혈을 믿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
세상의 가치관과 그 뜻에 부합하게 사는 자들은 하나님께 합한 자들이 될 수 없다.
이제 그들은 그런 부정한 곳에서 나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함을 입고 날마다 그 안에서 교제와 사귐이 있는 연합됨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자녀로써 영생을 누릴 수 있게 된다.
(고후 6:14-18)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나는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누리는 물질의 풍요함을 예수 믿는 우리도 동일하게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고 얻은 풍요가 오늘 이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누리는 물질적 세상적 풍요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다윗이 하나님 잘 믿고 왕이 된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 잘 믿고 이 땅 위에서 그런 부요함을 누리자고 설교하였다.
요셉이 죽음의 고난을 견디고 난 뒤에 하나님께 복을 받아 애굽의 총리가 된 것처럼 우리도 우리에게 닥친 고난을 잘 견디면 하나님께서 그런 높은 자리에 앉혀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고난을 이기라고 선포하였다.
오늘의 본문처럼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지은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이전과 같이 물질적 세상적 영적 복을 받을 것이라 믿었고 또한 그렇게 성도들에게 설교했던 자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한다 해도 이 땅 곧 만물 안에서는 그런 삶이 지속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언약은 이 땅 곧 만물 안에서 이루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 곧 영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영생도 하나님의 나라도 잘 몰랐기에 그저 하나님의 복을 이 땅에서 받아 누리는 것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 스스로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끊임없이 헷갈리고 혼미하며 도대체 이게 뭐지, 라는 의문을 가졌다.
물론 구약의 그 당시에 하나님이 베푸신 물질의 복, 건강의 복, 명예의 복 등은 실제였다.
그러나 오늘 우리들에게 있어서 그 말씀들은 모두가 상징이다.
구약의 성도들이 그런 복을 받았다고 해서 우리도 그와 동일한 복을 받기 원한다면 우리는 정말 불쌍한 자들이 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이 마지막 때, 곧 종말의 때에 그것보다 훨씬 좋고 완전한 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완전한 복인 영생은 모르면서 이 세상 만물 안에서 결국 없어지고 말 그런 명예와 물질과 건강의 복들만 추구하며 사는 것은 그야말로 어리석은 삶이 될 수밖에 없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주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복은 다름 아닌 영생, 곧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곳에서 누릴 완전한 영생을 오늘 여기에서 우리로 하여금 맛보며 누리게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비록 만물 안에 두 발을 딛고 살아가지만 이 영생을 맛보고 누리며 살아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참 그리스도인의 의무요 진정한 복이다.
물론 이 땅에서 그런 물질을 가지지 못하고, 가난하며 어렵게 살 수 있다.
그러할지라도 그런 상황적 고난을 넉넉히 수용하고 초월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주시는 완전한 복인 영생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무덤에 장사되심 그리고 부활을 믿고 그 안에서 함께 연합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최고의 복인 것이다.
이런 복음을 듣고 무엇이 진정한 복인지 결정하는 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요, 남은 자는 진정한 복인 영생을 깨닫고 그것을 누릴 수 있다.
이는 주의 말씀인 복음으로 교제와 사귐을 누리는 묵상을 통해서 가능하다.
오늘도 나에게 이런 영생의 복락을 주신 하나님께 정말 큰 소리로 외치며 높이 찬양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 같은 죄인에게 이게 웬 사랑이요 은혜인지요?
정말 죽어도 골백 번 죽어야 마땅한 자인 나를 여기까지 참고 인내하시면서 지켜보셨단 말입니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의 눈으로 보시는 은혜요, 인자한 귀로 작은 신음까지 들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란 말입니까?
어쩌면 죽어 마땅한 나를 위하여 당신의 그 존귀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주어 피흘려 죽게 하시고 나를 대신 아들 삼아 주실 수가 있나이까?
어떻게 이게 가능한지요?
내 이성적인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나이다.
하지만,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아들 삼아주신 그 은혜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깨닫게 하시고 받아들이게 하시는 신비가 있나이다.
그것이 바로 마지막 때에 주시마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영, 성령의 역사임을 믿습니다.
이로 인하여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능히 하시는 줄 믿사오니 그 믿음 변치 말게 하시고 오직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며 날마다 주님 주시는 하늘의 기쁨으로 기뻐하며 살게 하소서.
비록 육신은 피곤하나 영은 주님 주시는 기쁨으로 춤을 추오니 주님 영광 받으소서.
오늘도 주님과 함께 세레나데를 부르며 왈츠를 추기 원합니다.
주님 영광 받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