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 날을 주시고,
꼭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은 예진이랑 도서관 가는 날입니다.
책을 읽는 습관이 이 아이에게 장차 말씀을 깊이 묵상할 수 있는 좋은 습관으로 이어지게 하옵소서.
생명의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날마다 아들의 이름을 힘입어 아버지께로 나아가게 하시니
이것이 저의 지복입니다.
오늘도 아버지 품속의 평강을 누리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보라 그 날 곧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 가운데에서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그 때에
2. 내가 만국을 모아 데리고 여호사밧 골짜기에 내려가서 내 백성 곧 내 기업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거기에서 그들을 심문하리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을 나라들 가운데에 흩어 버리고 나의 땅을 나누었음이며
3. 또 제비 뽑아 내 백성을 끌어 가서 소년을 기생과 바꾸며 소녀를 술과 바꾸어 마셨음이니라
4. 두로와 시돈과 블레셋 사방아 너희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희가 내게 보복하겠느냐 만일 내게 보복하면 너희가 보복하는 것을 내가 신속히 너희 머리에 돌리리니
5. 곧 너희가 내 은과 금을 빼앗고 나의 진기한 보물을 너희 신전으로 가져갔으며
6. 또 유다 자손과 예루살렘 자손들을 헬라 족속에게 팔아서 그들의 영토에서 멀리 떠나게 하였음이니라
7. 보라 내가 그들을 너희가 팔아 이르게 한 곳에서 일으켜 나오게 하고 너희가 행한 것을 너희 머리에 돌려서
8. 너희 자녀를 유다 자손의 손에 팔리니 그들은 다시 먼 나라 스바 사람에게 팔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9. 너희는 모든 민족에게 이렇게 널리 선포할지어다 너희는 전쟁을 준비하고 용사를 격려하고 병사로 다 가까이 나아와서 올라오게 할지어다
10. 너희는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지어다 낫을 쳐서 창을 만들지어다 약한 자도 이르기를 나는 강하다 할지어다
11. 사면의 민족들아 너희는 속히 와서 모일지어다 여호와여 주의 용사들로 그리로 내려오게 하옵소서
12. 민족들은 일어나서 여호사밧 골짜기로 올라올지어다 내가 거기에 앉아서 사면의 민족들을 다 심판하리로다
13. 너희는 낫을 쓰라 곡식이 익었도다 와서 밟을지어다 포도주 틀이 가득히 차고 포도주 독이 넘치니 그들의 악이 큼이로다
(본문 주해)
1~2a절 : 하나님이 마침내 자기 백성들은 구원하시고 세계의 다른 민족들은 벌하신다.
구원이란 유다와 예루살렘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하시는 것이며(1절), 심문이란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기업을 해친 이방 민족들을 친히 국문하시는 것이다(2a절).
‘여호사밧 골짜기’는 ‘심판의 골짜기’(3:14)이다.
이는 유다 왕 여호사밧 때에 암몬과 모압과 세일이 연합하여 유다를 치러 올라오자 왕이 백성들과 더불어 금식하고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적군들을 물리쳐 주신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대하20:1~30)
그런데 이는 지역적인 장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장차 온 세계와 열방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세우신다는 하나의 모형이다.
2b~8절 : 하나님의 심문의 이유를 나타낸다.
첫째, 하나님의 기업이요,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열국 중에 흩어버리고 하나님의 땅을 나누어 버렸기 때문이다.(2b절)
둘째, 전쟁 포로를 노예 시장에 팔아 자신들의 쾌락의 도구로 이용하였다.(3, 6절)
셋째, 적군이 쳐들어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금과 은을 취하여 갈 뿐 아니라, 바벨론 같은 나라는 성전의 금과 은의 그릇까지 빼앗아 간 것이다.
이와 같은 모든 행위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인 것이다.
이방의 여러 나라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침략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범죄로 인한 것이다. 즉 이방의 나라들이 이스라엘을 치는 것은 하나님의 몽둥이와 채찍으로 사용되어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도구들인 열방이 교만하여져서 자기들이 잘나서, 자기들의 신이 능력이 있어서 이스라엘을 이긴 것이라 착각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교만을 그대로 두시지 않는 것이다.
9~11a절 : 모든 나라들에게 전쟁을 하기 위하여 모이라고 하는 것은 ‘한번 덤벼 보아라’ 하는 것이다. ‘너희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다하여 도전하여 보라’는 것이다.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고, 낫을 쳐서 창을 만들고 용사들만이 아니라 약한 자라도 스스로 강하다 하며 온 세상이 힘을 합하여 덤비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무시한 이 세상에 대하여 다 덤벼보라는 것이다.
11b~13절 : “"주님, 주님의 군대를 보내셔서, 그들을 치십시오!"
"민족들아, 출발하여라. 여호사밧 골짜기로 오너라. 내가 거기에 머물면서 사방의 민족들을 모두 심판하겠다. 거두어들일 곡식이 다 익었으니, 너희는 낫을 가지고 와서 곡식을 거두어라. 포도주 틀이 가득히 차고 포도주 독마다 술이 넘칠 때까지 포도를 밟듯이, 그들을 짓밟아라. 그들의 죄가 크기 때문이다."”(새번역)
열국이 여호와의 백성을 대적하기 위하여 일어나는 그때에, 요엘 선지자는 주의 용사들을 여호사밧의 골짜기로 내려오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주의 용사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집행하는 하늘의 천군 천사들로서 그곳에서 심판을 행하는 것이다.
그 심판은 마치 다 익은 곡식과 포도를 거두어들이듯이 낫으로 베어들이고 포도를 따서 포도주 틀에 가득 넘치게 넣고 밟는 것처럼 심판을 하는 것이다.
심판하시는 이유는 그들의 죄와 악이 컸기 때문이다.
(나의 묵상)
하나님께서 마침내 자기 백성들은 구원하시고 세계의 다른 민족들은 심판하신다.
종말의 때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구원과 심판의 그날이 있음을 기억한다.
그런데 그 구원과 심판의 기준이 무엇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히1:1~2a)
교회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나는 하나님은 어느 정도 상상이 되었는데, 예수님은 너무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어느 정도 상상이 되었다는 것은 내가 하나님을 잘 알아서가 아니라, 내 멋대로 상상했다는 뜻이다. 그 하나님은 불교의 부처와도 비슷하고, 이야기책 속의 옥황상제라고 불리는 인물과도 비슷했다. 하나님은 엉터리 모습이라도 상상을 했는데, 예수님은 좀처럼 상상이 되지 않았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복음생명 캠프를 통해 창세전 아버지와 아들의 세계, 그 사랑과 복종의 관계 속에서 하나이신 하나님과 아들을 알게 되었다.
이후 매일 말씀을 통해 주님을 알아가게 되니, 내가 상상했던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심을 알게 되었다.
신구약 성경 전체가 증거 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니 이분이 바로 구원과 심판의 기준이 되시는 분임을 똑똑히 알게 되었다.
얼마나 착한 사람인가, 얼마나 주일을 잘 지키고 봉사와 헌금을 많이 하는가도 아니다.
진실로 예수님을 믿는가 아닌가가 기준이 되는 것이다.
진실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 거는 기대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자기부인의 십자가를 알아보는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며, 그 십자가에 연합되기를 기도하는 자가 되고, 날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되니, 나는 아들의 생명을 가진 자요, 구원을 받은 자인 것이다.
그래서 주님 다시 오실 그날-구원과 심판의 그날-을 두려움없이 기다리는 자가 되었다.
여호사밧 골짜기에서 모든 민족을 불러모아 어디 한번 덤벼보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니 통쾌하기 그지없다.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내 삶의 모습이 형편없이 부실한 그것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던 그 원수 마귀들을 한데 불러모아 포도주틀에 넣어 밟듯이 밟아 주시는 것이다.
(묵상 기도)
주님,
발꿈치를 물고 늘어지던 뱀의 머리를 부숴버리시니 감사합니다.
십자가로 영원한 승리를 이루신 나의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구원과 심판의 그날을 두려움 없이 기다립니다.
주님, 어서 오시옵소서!
오늘도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살아가는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