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교회 신도들은 위트니스리의 유치한 말장난에 놀아나고 있습니다.
지방입장에 있지 않은 기독교인들은 비참한 집없는 고아들일뿐 아니라
떠도는 방랑자들이다(위트니스리 그영과몸 195쪽)
위트니스리는 자신의 교리를 합리화시키기 위하여 성경말씀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이집트의 생활을 종생활로 표현하며 바벨론의 생활을 포로생활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위트니스리가 비유로 들어 지방교회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이 대목은 바벨론에 포로되었던 유대인들의 예루살렘 귀환을 설명하는 것인데 리는 귀환자들의 수를 극소수로 주장하고 남은자의 수를 대다수로 주장하나 성경에 기록된 사실은 정반대 입니다.(느혜미야7장참조)
위트니스리의 주장대로라면 지방교회가 극소수의 귀환자들로 남은 자처럼 보이지만
성경은 지방교회가 오히려 바벨론에 남아 있는 극소수의 포로들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돌아 오기를 갈망하는 무리는 다름아닌 지방교회인것을 성경이 증거하는 것입니다.
무리가운데서 스스로 나누는 자는 자기의 소욕을 따르는자라는 잠언 말씀이 있습니다.
윗치만니는 중국에서 지방교회 입장을 주장하며 전파해서 스스로 무리 가운데서 나뉘었고
위트니스리는 미국에서 그 나뉜 잗들을 감언이설로 자신의 추종자로 포로삼아 격리시킨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웟치만니와 위트니스리의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사역이 아니라
복음을 방자하여 지방교회입장을 전파하는 지방교회 전파 확장 사역이었습니다.
그 결과물이 작금의 지방교회가 자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댓글 지방교회는 여증이나 몰몬 안식교같은 곳과 같은 여느 이단 보다도 그 중독성이 강한 집단입니다.
위트니스리의 그럴듯한 화술과 언변으로 미혹되서 세뇌당하면 그 함정과 늪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오직 이성과 양심과 상식만이 지방교회를 바로 볼 수 있습니다.
위트니스리에 의하여 마비된 이성과 양심과 상식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만이 회복시킵니다.
지방교회 신도들은 하나님께 자비와 긍휴을 구해서 그 집단으로부터 돌이켜서 위트니스리의 종생활 포로생활을 청산하기 바랍니다.
소위 지방입장은 워치만니와 위트니스리가 가르친 것이긴 하나
소위 지방교회들이 가르치는 핵심진리는 아닙니다.
기회가 되면 그분들이 주장하는 핵심진리 7항목들에 대해 하나씩 차분하게 성경을 근거로
검증하는 기회가 있었으면 합니다.
<<하나님이 오셔서 그들에게 그분이 택하신 땅으로 돌아오라고 부르셨을 때 극소수의 사람들이 반응하였다. 대다수가 그들의 포로 됨 안에 머물렀다..(동료 믿는이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위트니스리>>그 기회를 지금 주고 있지 않습니까?
궁색한 소리 그만 하시고 부르심에 답하여 포로생활을 청산하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무리가 극소수인지 다수인지만 답을 주시지요.
답을 드린들 그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겠습니까?
기본적으로는 미니멀님 같은 분들이 저같은 사람(들)을 동료 믿는이들로 보는가 아니면
상종 못할 거듭나지 않은 불신자 정도로 보는가 하는 것입니다.
만일 거듭나지 못한 불신자로 보신다면 복음의 대상이 될 것이고,
비록 성경진리 일부에 이견이 있지만 참된 거듭난 믿는이들로 보신다면
한 몸의 지체들로서 생명의 교제의 대상이 되는 것이지요.
저는 미니멀님이 숭사리나 이곳에 활동하시는 모습으로 보아 참되게 거듭나신 분으로 봅니다.
결국 워치만니가 만든 지방종파를
윗트니스 리는 기존의 목사에게 질린 일반교인들을 사냥해서
그물을 쳐놓고 그물안에서는 자유롭지만 도망을 갈수 없도록 가두어 놓고
라이프스터디만 보게하고 녹음기처럼 말해내도록 만들면서
그들을 세뇌시켜 로봇처럼 만들어서 아무것도 할수 없는
무능한 사람으로 만드는것이 목적입니다.
지방교회 사람들은 거룩한 말씀과 윗트니스 리의 저서를 봐야하기 때문에 성경볼 시간이 없다고 하더군요.
성경말씀이 윗트니스 리의 저서에 들어가 있기때문에
성경을 볼필요가 없다고 하며 오히려 편리하다고 하기도 하더군요.
위트니스리 가 누구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