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잃은 것은 돈, 얻은 것은 자부심
튜브픽쳐스 황우현 대표
2002.04.17 / 오동진, 김영진 편집위원
실제로 따져보면 그렇지도 않은데 튜브의 영화는 늘 굵직굵직한
블록버스터만 있는 것 같다. 또 따져보면 결코 그렇지 않은데 튜브의 영화는 항상 밑졌다고들 생각한다. 이건 결국 기대치의 문제다. <2009 로스트 메모리즈> 같은 경우는 개봉전 국내 영화사상 첫 천만관객 소리가 나왔었다. 하지만 230만에서 주저앉았다. 튜브 작품에 대한 기대치는 왜 그렇게 높고 또 현실은 왜 늘
거기에 못 미치는 것일까? 황우현 대표의 화려한 변명. 재기발랄한 대답들. 오동진, 김영진 편집위원
오동진 편집위원(이하 오) 2월 한 달간은 <2009 로스트 메모리즈>
때문에 정신이 없었겠다. 큰일을 끝내긴 했는데... 하지만 결과는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전국 230만이다. 제작비도 많이 초과됐다.
황우현 대표(이하 황) 난 솔직히 <2009 로스트 메모리즈> 같은 영화는 1천만은 들 줄 알았다. (웃음) 워낙 이시명 감독과 죽이 잘맞았고,
나 역시 영화에 푹 빠져 있었다. 그래서 중반 정도부터는 정말 질풍노도처럼 달려나갔다. 이런 영화가 대한민국에 있었어? 이런 영화가 어떻게 안 되겠어? 이러면서. 근데 그게 문제였던 것 같다.(웃음)
김영진 편집위원(이하 김) 저널의 평가들이 다소 부정적이어서 불편했겠다.
황 고맙게 생각하지 않는 점도 분명 있다. 여기 김영진 편집위원도 그런 평론가들 중에 한 분이지만. (웃음) 그래도 이시명 감독은 김영진
편집위원의 평이 혹평에 가깝긴 했지만 자기 영화를 가장 정확하게
분석한 글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그랬다. 그런 게 어딨냐고 무조건 좋게 써줘야지,라고 말이다. (웃음)
오 어쨌든 이제는 앞으로를 생각해야할 때인데... 올해 튜브의 라인업은 어떻게 되나.
황 올해는 <집으로...>와 <성냥팔이소녀의 재림>까지 합해 한국영화를 세 편쯤 개봉할 것 같다.
오 외화는?(외화의 경우 튜브픽쳐스의 모회사격인 튜브엔터테인먼트가 담당한다 - 편집자註)
황 외화는 지금까진 없었다. 앞으로는 <위 워 솔저스> 한 편 있다.
오 하반기에는? 앞으로 대작들이 즐비하지 않나.
황 오랫동안 준비해온 작품이 속속 개봉한다. 우선 민병천 감독의 <내츄럴 시티>나 장선우 감독의 <성냥팔이소녀의 재림>을 꼽을 수 있겠고, 백운학 감독의 <튜브>도 있다. 외화는, 없다. 못하게 하거든.
김 누가? 왜?
황 알다시피 얼마 전 CJ와 합병하면서 외화 라인업에는 변화가 많이
생겼다. CJ엔터테인먼트는 미국 드림웍스 라인업의 외화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외화 수입의 필요성이 크게 떨어졌다. 튜브엔터테인먼트가 수입을 하면 오히려 배급라인에 혼선만 생길 수 있다. 튜브엔터테인먼트는 CJ엔터테인먼트와 배급라인이 같으니까. 그리고... 솔직히
더 큰 이유는... 돈이 없어서다. (웃음)
오 하지만 그 반대 급부로 튜브의 한국영화 제작라인업은 한층 강화된 듯한 인상이다. CJ와의 합병이 여러 가지 변화를 가져온 모양이다.
황 맞다. 변화의 폭은 크다. 그건 회사의 향후 진로와도 연관된 것이고 내 입장과도 관련된 거다. 여기서 먼저 밝혀둘 것은 내가 튜브픽쳐스 대표이자 튜브엔터테인먼트 이사라는 점이다. 제작사 튜브픽쳐스
대표로서는 자유롭지만 튜브엔터테인먼트의 이사로서는 전혀 다른
입장의 얘기를 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사실 튜브엔터테인먼트 이사로서는 회사 사정에 관해 함부로 얘기하기가 어렵다. 튜브픽쳐스의
대표로서 제작라인업에 관한 얘기라면 얼마든지 말할 수 있지만.
오 여러 가지로 마음에 안들면 황대표가 튜브픽쳐스를 이끌고 CJ-튜브엔터테인먼트 라인에서 독립할 수도 있지 않을까?
황 유도 심문하지 마라. (웃음) 어쨌든 현재는 CJ엔터테인먼트가 튜브픽쳐스를 능력 있는 회사로 인정해주고 있다. 그거면 충분하다.
김 튜브의 영화들이 지난 1년간 돈은 좀 벌었는지 모르겠다. 수익이
난 건 <나쁜 남자> 정도?
황 무슨 소리! <나쁜 남자>가 꽤 벌은 건 맞다. 하지만 <2009 로스트
메모리즈>가 손해봤다는 건 틀렸다. <2009 로스트 메모리즈>는 음반판권과 해외 세일즈를 생각하면 오히려 수익이 난다. 영화가 다 잘됐다.
김 그러니까, 튜브엔터테인먼트가 투자한 만큼은 벌었다 이 말인가?
황 음... 회사가 어려워서 돈이 안 돌아서 그렇지. 지금까지 깨진 영화는 딱 3편뿐이다. <쥬바쿠> <포스트맨 블루스> 그리고 <파이란>.
오 그건 그렇다치고 프로듀서로서 흥행이 예측대로 된 셈인가?
황 못 맞췄다. 하나도. (웃음)
오 그거 못 맞추면 프로듀서로서 감이 없다는 것 아닌가? (웃음)
황 의외의 결과라는 말이 있다. <피도 눈물도 없이>의 경우만 해도 류승완 감독이 연출하고 전도연이 나오는 신선한 컨셉의 영화였다. 마케팅도 잘했고. 그랬지만 결과는 별로였다. 그쪽도 못 맞춘 거다. 사실 난 <오션스 일레븐>보다 잘될 줄 알았다. (웃음)
김 관객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는 건가.
황 시기적으로 뭔가 변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잘된 걸 보면 그렇다.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제 막무가내식 가벼운 코미디 영화는 오히려 잘 안될 거다.
오 이래저래 감독들을 보는 눈도 달라졌겠다.
황 사실 홍상수, 김기덕, 이정향 감독은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감독들, 박찬욱, 장선우, 김기덕 감독 등은 모두 그 사람들만의 특색이 있다. 영화가 얼만큼 대중성이 있는가와는 별개로 두터운 팬층이 그들의 영화를 본다고 믿는다. 그런 감독들과 일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예컨대 <수취인불명>을 튜브에서 배급하면서 돈 벌 거란 생각은 안했지만 그건
튜브 브랜드 가치와 직결된다고 믿었다.
김 곧 개봉할 <집으로...>는 어떤가?
황 일반 시사회에서의 반응은 너무 좋다. 전체적인 관객 인지도도 꾸준히 상승하고 있고. 이대로라면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김 의외의 결과?
황 그러니까 <집으로...>는 튜브의 비장의 카드다. (웃음) 제작비가 크게 들어가는 영화에만 베팅하는 게 아니라 이런 작은 상업영화로도
크게 칠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다. 솔직히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부터 이건 예술영화가 아니라 상업영화라는 확신이 있었다.
제작비가 예상보다 약간 올라가서 부담은 조금 있지만 믿음이 있다.
의외라는 것은 예상보다 훨씬 잘될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오 사실 튜브의 지금까지 행보로 볼 때 <집으로...> 제작은 좀 의외다.
튜브는 늘 덩어리가 큰 블록버스터급 영화를 지향하는 경향이 있었다. 정말 어떻게 <집으로...>에 투자하게 됐나?
황 간단하다. 이정향 감독 작품이니까. <미술관 옆 동물원>을 워낙 좋게 보기도 했고. <집으로...>는 상업영화이면서도 작가의 감성을 필요로 하는 작품이다. 그 접점에서 묘한 끌림이 느껴졌다. 감독을 만났을
때 그런 걸 해낼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들었고. 시나리오도 너무 좋았다. 무엇보다 내 개인적으로도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적잖이 작용했다.
오 아, 할머니에 대한 기억....
황 사실 이정향 감독은 <집으로...>의 시나리오를 들고 여러 군데 제작사와 접촉을 했었다. 하지만 처음 이정향 감독이 <집으로...> 시나리오를 보여줬을 때 이건 우리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끝까지 라스트는 나름대로 보여주지 않더라. 각각의 에피소드도
좋았다. 결국 결말을 보여줬는데 그 느낌 역시 좋더라. 잘될 영화다.
근데 이렇게 얘기해놓고 흥행이 안 되면 망신인데. (웃음)
김 <집으로...> 제작은 누구의 결정인가.
황 물론 모든 최종 결정은 튜브엔터테인먼트의 김승범 대표가 한다.
그런데 나나 김대표나 하루 만에 이정향 감독에게 하겠다고 전화했다. 김승범 대표는 일단 하겠다고 하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타입이다.
<집으로...>의 제작을 결정하고 난 뒤로는 제작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전체적인 조율은 이정향 감독과 내가 했다. 사실 이정향 감독은
감독이면서도 프로듀서로서의 마인드를 갖고 있는 사람이다. 사실 이런 영화는 데뷔감독이 하면 안 된다. 상업적인 요소를 완전히 배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감독은 다르다. <집으로...>는 분명 상업영화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제작 과정에서는 이정향 감독의 결정을 전적으로 믿고 따랐다.
오 이쯤에서 김승범 대표와의 관계를 묻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의형제 같은 관계인가?
황 우리의 인연은 내가 영화계에 입문했던 때부터다. 코래드라는 광고회사를 다니다가 <트레인스포팅>을 마케팅하게 되면서 우연히 영화계에 들어오게 됐다. 그게 인연이 되면서 영화 마케팅을 시작했고,
처음 일이 홍보사 R&I였다. 사업 초기에 메이저급 영화사와의 체계적인 관계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그렇게 해서 만난 분이 당시 일신창투의 투자심사수석이었던 김승범 대표였다. 그때가 97년? 그러다가
김대표가 튜브엔터테인먼트를 만든다며 같이 일하자고 하는 바람에
꼬임에 넘어가게 된 거다.(웃음)
김 자고로 사회생활하면서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니까. (웃음)
황 김대표는 내 상사이자 인생 선배다. 서로간의 신뢰가 두텁다. 나를
믿고 일을 맡겨줬고, 때로 나 때문에 낭패를 본 일도 있었지만 끝까지
신의를 지켜줬다. 둘다 서로를 영원한 파트너로 생각한다.
오 그래도 투자를 결정할 때 이견이 생기면?
황 그런 경우는 그리 많지 않지만 설사 서로 이견이 생긴다 해도 의견
조율을 포기한 적이 한번도 없다. 서로 죽이 잘맞는다고나 할까.
김 튜브의 영화 색깔은 뭔가?
황 글쎄... 어떤 장르의 영화를 만들기보다는 어떤 의미를 갖는 영화를 만들까를 고민한다 정도?
김 괜히 말만 멋있게 하려고 하지 마라. (웃음)
김 그럼에도 불구하고 튜브는 비싼 영화만 만든다는 지적도 받는다.
황 하지만 각각의 영화마다 다 의미가 있었거나, 있다고 믿는다. <내츄럴 시티>는 국내 최초의 SF영화고 <성낭팔이소녀의 재림>은 장선우식 SF영화다. <2009 로스트 메모리즈>까지도 허투루 결정한 작품은 없다. 그런 영화들을 만들면서 우리 영화산업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거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오 하긴, 앞서 말한 영화들과 <나쁜 남자>, <집으로...>, <파이란>은
너무 다르긴 하다.
황 맞다. 어떻게 블록버스터를 만든 영화사가 <집으로...>나 <나쁜 남자> <파이란> 같은 영화를 하느냐는 얘기도 많이 듣는다. 사실 난 지금 튜브를 특정한 틀에 가두고 싶지 않다. 경우에 따라서는 코미디도
할 수 있다. 여러 작품에 도전할 생각이다.
김 지난해 말 조폭 신드롬을 기억할 거다. 튜브 내부에서 그런 영화를
한 편이라도 하면서 좀 쉽게 가자는 얘기도 있었을 텐데.
황 난 코미디는 잘 못본다. 물론 당시엔 코미디 시나리오도 꽤 들어왔다. 어떤 것은 <조폭마누라>처럼 잘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하지만
나 말고 다른 사람이 하겠지,하고 내버려뒀다. 김대표도 하지 말자더라. 하지만 그 말이 <조폭마누라>가 잘되면 안 된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예를 들면 <미녀 삼총사>는 쓰레기라고 생각하지만 관객들은 그런 영화도 필요로 한다. 일종의 컨셉영화 말이다.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나나 김승범 대표가 만들 영화는 아니라고 믿었다.
김 그럼 눈길 가는 다른 장르가 따로 있나?
황 <집으로...>다. (웃음) 사실 튜브는 멜로를 원한다. 표현이 좀 우습지만 지금까지 우리 라인업에는 멜로가 없었다. 튜브 엔터테인먼트의
입장에서, 또 안정된 제작사로서 발전해나가기 위해서는 멜로가 필요하다. 그래서 영화세상의 안동규 사장이 갖고 있던 <가을로...>를 쫓았던 건데... 결과적으로는 안사장이 배신을 두 번이나 때렸다. (웃음)
오 이건 좀 다른 얘긴데..., <성냥팔이소녀의 재림>은 처음 제작비가
40억에서 70억, 이제 100억대를 넘나들고 있다. 심리적으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고 프로듀서로서 일단 초기 제작비 산출에서
판단을 잘못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상한 건 튜브의 영화들만 유달리 제작비가 초과한다는 점이다. 이건 튜브의 프로듀싱 능력의 문제
아닐까? 투자자의 입장에서 튜브는 늘 투자하기에는 지나치게 위험이 많은 상품일 수 있다.
황 아까 지나가듯 말했지만 <2009 로스트 메모리즈> 투자를 결정하고 나서는 한 달 동안 잠을 못 이뤘다. 몸집이 큰 영화는 그만큼 예산이 늘어나기 마련이고 이는 프로듀서를 더없이 긴장시키는 작업이다.
하지만 튜브가 투자하면 예산이 초과된다는건 어불성설이다. 물론 비판받을 부분도 있겠지. 하지만 그건 튜브의 잘못이 아니다. <무사>나
<화산고>도 모두 제작비를 초과했다. 그건 오히려 국내 블록버스터의
매뉴얼이 아직 잘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일 뿐이다. 사실 블록버스터는 하느냐 마느냐지 될 거냐 안될 거냐의 문제가 아니다. 하면 된다.
하지만 중간에 멈출 수는 없다. 영화는 계속 잘나가고 있는데 돈을 투여하는 게 두렵다면 블록버스터는 못한다. 처음 예산을 책정하고 그
그림대로 밀고 나가지만 예기치 않은 초과지출은 늘 존재하기 마련이다. 대신 매번 투자할 때마다 파이를 키워놓고 더 크게 벌어들이겠다는 생각을 하는 편이다. 예컨대 <성냥팔이소녀의 재림>이 그렇다. 단지 상상 외로 예산을 초과해서 그렇지. (웃음) 하지만 걱정은 안 한다.
김 하지만 제작자로서 블록버스터의 모험을 감행하면서 예산을 사수하지 못하는 것은 치욕이 될 수 있다.
황 (웃음) 맞다. 제작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제작비를 사수해야한다.
또한 투자자들에게 80억짜리를 50억이라고 속여서도 안 되지. 하지만 좋은 제작사의 요건은 제작비 한도를 지켜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예산을 산출하고 그걸 지켜나가는 노하우는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노하우가 짜여지면 제작자로서 예산을 제대로
지킬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튜브픽쳐스에는 지금 튜브엔터테인먼트에서 건너온 우수한 인력들이 많이 있다. 모두들 블록버스터 제작의
노하우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과 함께 제대로 만들고
싶은 욕심은 여전하다. 블록버스터 제작에는 그런 감각이 있는 감독이 중요하다. 이시명 감독과는 그래서 또 해보고 싶다.
오 회사 입장에서 블록버스터가 의미가 크다는 것은 알겠다. 하지만,
그런 경영방식 때문에 회사가 자금난을 겪었고 결국 CJ엔터테인먼트와의 합병을 초래한 것 아닌가. 합병은 결과적으로 잘된 건가? 대답하기 싫으면 안 해도 좋다.
황 결과적으로는 잘된 거다. 윈윈이다. 튜브는 제작중이던 영화를 잘
끝낼 수 있게 됐다. 김승범 대표는 회사가 아니라 영화를 선택한 거다. 그건 대승적인 선택이었다.
오 회사가 아니라 영화를 선택했다는 건, 정말 멋진 말이다. 결국 CJ와의 합병 이후 아무런 하자가 없다는 얘긴가?
황 그건 노 코멘트다. (웃음) 서로 너무 다른 두 조직이 만났으니 이견이 없을 수 있겠나. 하지만 빠른 시일 내에 조정이 가능하리라 믿는다.
김 국내 영화산업의 발걸음이라고 하는 게 결국 이렇게 큰 덩어리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걸까. 큰 시스템에 작은 부분들이 귀속될 수밖에 없는 운명인가 말이다. 독립제작사의 행동 반경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
황 (웃음) 튜브엔터테인먼트는 제작사 모델이 아니고 투자사 모델이었다. 대규모 자본의 힘으로 움직이는 회사였다는 얘기다. 튜브엔터테인먼트야말로 공격적인 경영으로 승부수를 띄웠지만 결국 실패했고, 더 큰 메이저로 귀속됐다. 합종연횡은 어쩔 수 없는 문제다. 이런
일은 앞으로도 언제든지,또 누구에게나 계속 일어날 것이다. 갈 길은
멀다.
오 반대로 얘기하면 그 합종연횡은 언제든지 깨질 수도 있다는 얘기겠다.
황 또 유도 심문! (웃음) 어떤 특정 메이저에 귀속되지 않고도 독자적인 노선을 걷고 있는 명필름 같은 회사는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겠다. 명필름은 자신의 투자펀드가 있을 정도니까. 이제 굉장히 용기 있는 제작을 하는 것 같더라. 그렇다면 앞으로는 완성도 있는 영화가 성공할 거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단순한 기획영화 말고. 명필름처럼 그런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영화사만이 살아남을 거다.
김 튜브는 이제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그동안 튜브는 브레이크 없는 전차처럼 질주하다가 결국 좌초한 셈이다. 그리고는 이제 블록버스터와 중급 규모의 영화를 적절하게 배치하던 기존 스타일에서
다른 단계로 옮겨가는 것 같기도 하고. 완급 조절이 필요한 듯 보인다. 하지만 그건 동시에 튜브의 경영 시스템이 불안정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황 결국 돈이 브레이크였다. (웃음) 투자 제작도 위축됐었다. 하지만
회사는 흔들려도 좋은 영화는 갖고 간다는 믿음, 그렇게 해야한다고
믿었고 그래서 버텨왔다고 자부한다. 그리고 영화를 만드는 것은 시스템보다는 그런 확신을 바탕으로 한 선택이 중요한 거라는 생각도
한다.
오 튜브의 시행착오가 한국영화산업을 발전시키는 데 있어 귀감이 되는 면도 있다.
황 그렇다. 시행착오를 통해 잃은 것은 돈이요 얻은 것은 노하우다.
그동안 쌓인 노하우라면, 블록버스터 제작 과정에서 제작사와 투자사의 갈등을 조절하는 능력을 예로 들 수 있겠다. 투자사는 관리하고 제작사는 작품의 질을 유지해주는 것이 가장 좋은 그림이다. 하지만 제작사가 작품을 제대로 커버하지 않으면 투자사가 독주한다. 대한민국
감독은 제작자를 아직 믿지 못한다. 투자사 역시 어느 순간이 지나면
감독을 직접 만나려 한다. 사실 제작자 입장에서는 어느 순간이 지나면 제작사는 투자자가 감독을 직접 만나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제작비가 상승하면서 투자사의 입김이 커지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이런
미묘한 관계를 조절해 나가는 것, 이런 경험들이 지금까지 튜브의 노하우다. 사실 <내츄럴 시티>가 끝나면 이 모든 것들을 정리해서 블록버스터 매뉴얼을 만들 거다. <2009 로스트 메모리즈>의 제작후기는
솔직히 제작일지 수준이었지만 이번에는 다를 거다. 블록버스터 만들기의 노하우를 집대성하는, 소중한 매뉴얼이 될 거다.
오 영화계에 입문했던 때의 처음 생각과 지난 몇 년간을 생각해보면
달라진 것도 많겠다. 촌지사건을 겪으면서는 모든 일이 그렇게 투명하게만 되지 않는다는 것도 느꼈겠고.
황 촌지사건이라.... (웃음) 내가 영화를 하면서 꼭 지키고 싶었던 것은 투명성이었다. 80억짜리를 60억이라고 속이지 않고, 이상한 돈 쓰지 않고. 그러면서도 현실을 인정하는 것. 난 R&I라는 회사를 만들고
운이 좋아 영화계의 중요한 위치에 쉽게 자리잡았다. 정말 운이 좋았다. (웃음)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영화계에는 잘못 밟으면 미끄러지는 기름칠이 돼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내 생각에 해결 방법은 정면 돌파, 도끼로 패야 한다는 거다. 눈치나 보는 게 아니라 정면으로 돌파해야 한다. 그 탓에 강성 이미지의 투자 제작자로 낙인찍혔지만 곳곳의 기름칠을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동시에
영화계에는 온정주의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김 온정주의라면?
황 영화계는 굉장히 가족적이다. 이 점에서는 영화저널도 자유롭지
못하다. 사실 튜브에는 내 대학교 연영과 선후배가 상당히 많다. 흔히
사단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인간관계가 이어지면서 조직의 형태를
갖춘 영화사가 많다. 저널과의 관계도 그런 연장선상에서 풀어갈 수밖에 없던 문제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단순히 스포츠지 기자에게 돈을 얼마 주고 그런 게 다가 아니다. 그런 관계가 영화계의 특성이다.
김 이번 사건으로 적잖이 고충을 겪지 않았나.
황 검찰도 웃긴다. 힘없는 우리만....(웃음)
오 솔직한 심정은?
황 솔직히 말하면 난리나지 않을까? (웃음) 한마디만 하겠다. 우리가
무슨 비리가 있나. 제일 비리가 없는 게 영화계다. 그런 영화계를 검찰이 괜히 들쑤셔놓았다. 난 스스로 청렴결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검찰에서 조사받을 때는 '내가 왜?'라는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 원인을 만든 건 구조적인 모순이다. 그렇다면 절대 없어지지 않는 문제라는 것이다....
오 국내 영화계에서 프로듀서의 위상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황 하지만 아직 나 개인의 능력은 프로듀서로서 완벽하지 않다. 대다수 프로듀서들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크레딧부터 잘못됐다. 우리는
프로듀서와 라인프로듀서를 구분하지 않는다. 프로듀서는 파이낸싱을 맡아 제작 과정을 책임지고 그 모든 과정을 관리,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한다. 근데 사실 국내에 그런 사람이 몇이나 있나.
오 R&I 때부터 지금까지 영화를 몇 편이나 했나.
황 40편? 한국영화는 10편 정도?
김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가 있다면?
황 그건 작품에 따라 다르다. 외화로는 역시 <러브레터>겠다. 한국영화는 모두 기억에 남는다. 최근 작품 가운데 꼽으라면 역시 <2009 로스트 메모리즈>고 <집으로...>나 <파이란>도 가슴에 남는 영화다.
오 자주 만나는 영화인은 없나.
황 영화인은 잘 안 만난다. 안동규 대표? 그분은 정말 자주 만난다.
평소 늘 고맙게 생각하는 분이다.
오 앞으로 한국영화가 정말 계속 잘될까?
황 <집으로..>가 잘되면 다 잘될 거다
오 아. 그건 의미 있는 이야기다. 맞다. <집으로...>가 잘되면 다 잘될
거다.
황 <생활의 발견>도 잘돼야 한다. 요즘 <생활의 발견>에 대한 관객 반응이 좋은 것 같아 다행이다.
김 마케팅을 코미디로 풀고 있는 것 같더라. 그런데 그게 오히려 많은
사람들에게는 어필할 수 있는 요인이 되긴 한다.
오 프로듀서 입장에서 시쳇말로 죽이 맞거나 혹은 너무 어려운 감독이 있나?
황 이시명 감독은 좋더라.
김 감독 욕심도 있다고 들었다?
황 실제로 해본 적도 있다. 대학 때 단편 작업을 했다. 광고회사에서는 CF도 몇 편 해봤고. 나중에 꼭 한 편 해보고 싶다.
오 행복한가?
황 이 질문, 대답을 준비해 왔다. 대답은 행복하다이다. 왜냐고? 첫째로 와이프와 딸이 내곁에 있어줘서 행복하다. 둘째로 영화를 볼 수 있어 행복하다. 세번째로 무언가 추구하고 있어 행복하다. 나머지는...
글쎄.. 일상일 뿐이다. (웃음)
오,김 홍상수라고?!
사진 이준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