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좋은 기회가 있어서 미국으로
연수도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저는 대학병원에서 계속
일을 하다가 순환기 내과 교수가 되었죠.
그 날은 정말 선생님이
많이 보고 싶었어요.
속으로 살아 계시면 언젠가 꼭
만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원하는
날도 많았구요.
그러고 보면 선생님은 늘
제 마음 한 쪽에 계셨어요.
저는 선생님을 잊은 적이 없었고
선생님을 대한다고 생각하고
환자를 진료했어요.
그리고 또 새로운 의학 논문들을
읽고 연구 자료도 수없이 검토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느새 환자들이 제일
신뢰하는 의사로 저를 꼽게 되었고
저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
'이게 다 선생님 덕분이에요'라고
말씀드렸어요.
그 사이 저는 결혼을 해서
딸을 하나 두었어요.
딸을 낳은 날에는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도 많이 났지만 선생님이 만약
보셨다면 참 기뻐하셨겠지...
그런 생각을 했죠.
선생님을 떠 올리며 딸 이름을 선생님과
같은 선희라고 지었습니다.
선생님처럼 마음 넓고 예쁜 사람이
되길 바래서 였어요.
그리고 어느새 그 딸이 다 커서
결혼할 나이가 되었죠.
딸도 저처럼 의사가 되고 싶다며
의대에 가서 인턴을 하고 있었습니다.
"엄마, 나 만나는 사람 있는데 엄마도
한 번 같이 봤으면 좋겠어"
"그래? 결혼까지 생각하는 사람이야?"
"응, 내가 지금까지 엄마한테 내 남친
소개한 적 없잖아.
이 오빠는 진짜 내 인연인 거 같아"
딸은 부끄러운 듯 쑥스러운
표정으로 말하더군요.
저는 그렇게까지 내키지는
않았습니다.
딸 얘기를 들어보니 마음은 착하고
긍정적인 사람 같은데 크게
욕심도 없고 가진 것에만 만족하며
그 날 벌어서 그 날 쓰고 사는
사람 같았거든요.
저는 제 사위는 좀 더 야망이 크고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인물이길 바랐는데
완전 정반대인 타입인 것 같아서
만나기도 전에 씁쓸했죠.
하지만 딸은 그걸 참 좋게 본 것 같았어요.
딸이 그렇게 좋아하는데 제가
보지도 않고 싫다고 할 수 없어서
저는 일단 그 청년을 만나 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사위는 고등학교 교사였고 아주
선한 인상을 하고 있었어요.
교사 사위라니 부족함 없다고들
하시겠지만 전 욕심이 많았나 봅니다.
"그래, 평생 고등학교에서 아이들만
가르칠 생각인가?
대학원에 가서 박사를 하고 유학을
갈 계획은 없고?" 라고 하자 사위는
"네, 저는 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는
아이들에게 뭐든 마음 먹으면
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제가 이런 데에는 저희 큰어머니
영향이 큽니다.
아프셔서 두 번 교직을 쉬셨지만
큰어머니가 용기를 줘서 어려운
환경에서도 공부를 해서 자기 인생을
개척한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런 분들이 큰어머니한테 인사하러
올 때면 큰어머니가 자랑스럽고
저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생각이 굉장히 바른 청년 같았습니다.
"정말 요즘 보기 드문 사람인 거 같네,
하지만 그러기에는 현실이 만만치만은
않을 텐데, 자네가 그러는 걸 부모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
라고 물었고 사위는
"부모님도 처음에는 제가 외국 유학도
다녀오고 더 좋은 직장 갖기를 바라셨지만
요즘처럼 교사되기 힘든 때에 당당히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것도
감사하다고 하셨어요.
제 생각도 많이 지지해 주셨구요."
라며 쑥스럽다는 듯 웃더군요.
"엄마, 왜 자꾸 그런 질문만 해?
꼭 오빠가 교사인 게 마음에 안드는 것처럼,
나는 오빠같은 사람이 더 많았으면 좋겠는데,
오빠가 하는 거 보면 정말 존경스럽다구
그리고 학생들 한테도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 그래, 교사가 천직이야...
타고 났다니까" 라며 딸이
옆에서 지원 공세를 펼쳤습니다.
그렇게 좋은 뜻을 가졌다니 할말은 없었죠.
제가 너무 속물처럼 느껴지기도 했구요.
남편은 큰 불만은 없었습니다.
문제는 저 였죠. 제 딸은 더 근사한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보내고
싶었던 거죠.
하지만 저런 마음씨를 가진 사람이라면
내 딸을 믿고 맡길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 사평35" 받은글입니다.
*문장이 워낙 길어서 3편으로
쪼개어 실어 올립니다. 죄송"
번거롭지만 참고 읽어주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