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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는 마음을 부처라 이름하였고,
우리들이 각자 내재하고 있다하는 이 마음이라는 자리가 바로 "공간과 같다" 하였으며, 이 공간 전체가 우리들
마음에 주어져 본래부터 내재하고 있다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읍니다.
그러므로 불교는 곧 우리들이 내재한 마음자리이며, 이 자리는 바로 공간처럼 空 자리를 포괄하여 논 하는 것이 불교공부를 논 하는 것과 같읍니다. 그렇지요?
그러한고로 마음을 공간처럼 확장하는 과정을 불교수행법이라 이름합니다.
공간이라 한다는 것은 어떠한 범주와 넓이가 무한함이라 할 수 있는데 이 무한성의 공간이 하나로 다 연결되어 포함되어 하나의 몸처럼 그 體(체)를 이루고 있다 하는 일승의 도를 의미하는 것인데 이것이 화엄경 경전의
말씀이 됩니다.
일승을 탄다 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마음은 우주공간처럼 모든것을 함축하여 하나를 행한다 라고 굳이 문자로 표현하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우리몸을 함축하는 몸의 기능온 전체가 나의 마음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하나를 행함과 같은 이치다 이 말입니다.
공간자체가 우리몸과 같은 일승의 체를 지닌 법의 이치를 발견해보자 하는 것이 마음공붜라 이 말입니다.
그런고로 일승(하나)을 탄다라고 하는 것은 성경말씀으로 이해한다면 하나의 절대주 하나님이 온 세계를 하나로서 같음을 운영하신다 하는 것과 같읍니다.
그렇다면 하나란 무엇인가? 모두가 같다라는 것을 의미하는 一如(일여) 를 하나라 의미합니다.
이 하나와 같다라는 (일여) 우리들이 장치하고 있는 내 몸처럼 우주공간이 하나의 몸으로 비유 한다면 이 하나를 가령 우리는 어떻게 볼 수 있겠읍니까?
내 몸이 우주의 하나라 비유한다면 전체가 하나인데 이 전체를 보는 성품이 달리 전체 공간 바깥에 있어야 무신
하나를 본다? 이렇게 될 터인데 , 전체가 몸인데 , 몸의 전체에 포함된 각자인데 어떻게 전체가 전체를 볼 수
있는가 이 말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공간이 어떻게 공간을 볼 수 있는가 이 말입니다.
그런고로 내가 내 몸전체를 내가 본다라는 의미와 같은것을 하나를 행한다, 일승의 도리를 편다 하는 것을
마음으로 비유하여 정의한다면 이를 본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합니다..
내 몸을 모두다 아는 자리를 본다 하는것인데 그러므로 몸이라는 身(몸 신)은 법입니다.
내 몸을 아는 자리가 도인데
남이 밥을 먹으면 내 몸이 배가 부릅니까? 남이 나의 몸을 위하여 숨을 대신 쉬어줍니까?
이를 바라면 도 가 아니고 불가능하지요
내가 스스로 밥을 먹어야 나는 배부릅니다, 이를 도라 합니다.
모든 공간이 나의 마음이라면 이 마음자리를 내가 행해야 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도는 스스로 체감하는 영역이지 결코 말로 언어로 누구의 말쓰믕로 도를 이룰 수 없다 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자리를 잘 살펴야 하므로 마음이 공간이라 공간만큼 마음을 확장하고 지평을 열때
비로서 견성을 한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되겠읍니다.
그런고로 진리라는 일승의 도는 생각으로는 볼 수가 없으며 모습으로서 진리를 보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이를 불가사의 하다 하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의 하나님께서는 비판과 비난 어떤 피조물생명성품이 이를 의문하고 비평하는 것은 절대로
허락하거나 용인하시지 않읍니다.
그것은 내 몸전체가 하나라고 비유하여 소개한다면 내몸 중 세포 하나가 내 몸전체를 비평하고 비아냥 하는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미미한 세포 하나가 온 몸전체에 대하여 영향을 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세포하나가 내 몸에 영향을 주는 것에 대하여 나쁘거나 좋게 영향을 미치면 (미미한 세포도 하나인
내 몸에 결부되거 간섭하므로) 이를 아무일 없음으로 영향을 미치는 만큼 같음으로 반연하여 영향을 미치지
않겠금 인과율되로 도로 작용의 반대를 돌려보내주시면서 아무일 없게 하는 능력을 지닌자를 하나가 행하신다
이렇게 하여 같음을 행하신다 함이니 이를 여래라 이름하고 내몸인 하나가 스스로 작용하여 같음으로 오고가면서
결고 아무런 일 없음을 (부동) 행한다 이렇게 말 할 수 있는 것이 마음작용의 원리 이름 합니다.
이로서 항상 마음자리라는 이 공간은 늘 청정하고 O 의 본질을 유지하게 빛이 운동한다 이 말입니다.
그런고로 마음이라는 것이 형체를 볼수없읍니다, 내몸이 몸을 봅디까? 못봅니다, , 공간은 늘 언제나 무한한 생명운동을 하는 공간이라 하지만 늘 아무이 없음으로 청정하게 O 을 유지한다 하는데 이 모습은 절대 못봅니다
전체가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가 하나를 어떻게 보겠읍니까, 이를 묘연하다 하고 묘공이다 합니다..
이 작용을 비유한다면
기독교의 하나님의 성경말씀을 여호아! 라 이름하심인데 의미를 문자로 직역하면 " 오 같음이여! <여호아!)
의미입니다. 이를 일여라 합니다, 하나와 같다! 생명작용은 언제나 하나가 행하신다 하는 것입니다.
이를 공부를 편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셩경말씀을 여호아 선이라 이름하고
불교의 공부인 화엄경전을 논하는 일승의 도를 부처님께서는 항상 여래라 하셨으니 여래선이라
칭 하여 이름하고 방편으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화엄경 공부는 O 을 보는 과정인데 문증으로 (문리로 증명하는) 방편의 공부입니다.
그러므로 화엄경 81 권을 다 참구하면 스스로 견성하고 성불하는 자리가 된다 이 말입니다.
이것을 주야창창 말씀하신분이 의상대사 원효대서 지눌 의 삼대 대 도사가 우리나라에서
출현하셨읍니다. 화엄종의 효시가 된다 이 말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친견하는 자리에서 여호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내 모습을 보았다거나, 내 음성을 들었다거나 하는 백성은 이미 삿된 진실을 믿어지니는 자 와 같느니라"
하나님인 나를 모습으로 생각으로 소리로서 말씀으로 보았다라고 하는 자는 삿되도다 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의미로서 화엄경은 일승의 도를 논하는 비로자나부처님의 법신의 일체만유의 작용이 마음에서
비롯한다는 사실을 말씀하신 것이 화엄경이므로 부처님을 볼 수 있다라는것, 언어와 소리 생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은 거짓된 진리다 이 말씀이십니다.
그러므로 여래작용을 이치로 깨쳐야 하는 것을 문증의 도를 친견하는 화엄경 소식이다 이렇게 이름합니다.
결국 우리들이 내재하고 있는 마음이라 하는 이름은 공간과 같다 라고하고 일체공간이 모두 내 마음에 주어져
있다. 안과 밖은 모두가 연결된것이므로 이를 법신이라 하여 비로자나부터님의 일승이 도 를 지금 공부함에 있어서 마음이라는 이 공간을 외적으로 ( 안밖으로 같음이 작용하므로) 마음계를 말씀하신다면
욕계 색계 무색계로 삼계를 비유해서 마음에 내재된 모든 일체의 일승의 도를 타는 거인데 이를 "보현보살께서 삼매에서 일어나 (삼매란 과거 현재 미래 가 하나로 응축하여 보여지는 현상) 세상을 두루 관찰하시다 편의 화엄경 제 7권 4의 세상출현품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일승은 삼승이라는 과거 현재 미래가 하나로서 응축하여 지금 나타나는 소식을 말합니다.
이 자리가 우리 마음자리라 이름하는 것이니만큼 이치라도 알아지니고 공부를 하자 이 말이 됩니다.
하지만 아무리 언어나 문자로 진리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덧붙이고 부연하고 무한한 말을 지꺼려 보았자
진리라는 범주의 털끝도 건드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체득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도리입니다.
이로서 스님들은 선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말을 떠나 전하는 직지신심 밖에는 달리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고로 성경말씀이나 화엄경 말씀이나 모두 삼매인중에 일어난 직관자의 선각자가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처님게서 말씀한 도리는 단 한 줄도 없읍니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실때 아난이나 제자들에게 이르시기를 "나는 단 한말도 한 사실이 없음을 알라" 이렇게
법을 전하셨읍니다.
실컷 당신께서 49 년간 말씀하시고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화엄경을 쓰신 분은 용수존자입니다. 마음의 중관을 혁명적으로 언어와 문자로 이룬 통각을
이루신 분이 용수존자 이 십니다, 선각자다 이 말씀입니다.
노바닥 성철스님께서는 말이라는 말을 다 해 놓고서는 열반송에서는 너무 말을 많이 해서 중생들을
속였기 때문에 나는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라고 하시고 열반하셨읍니다.
다시 온다라는 사실입니다. 지장보살의 자비심으로 오롯한 중생제도를 다시 와서 하겠다는
열반송이십니다.
저번시간에 우리 마음에 내재된 삼계에서 6 도의 욕심세계를 공부한 사실이 있읍니다.
우리생명성품은 지금 6도라는 욕심계에서 작용되고 있는데 죽어서 윤회한다 이러한 의미가 아닌
살아서도 6 갈래의 인터체인지의 길을 항상 걷고 있다 할 수 있읍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과정에서도 지옥을 경험하고 귀신같은 행위를 하고 (아귀: 굶주리며 방황하는 마음)
짐승처럼 생각을 내고 의지를 내며 , 투쟁하고 이간시키며 남과 전쟁을 즐기는 아수라 정신도 내고.
사람처럼 서로 협동하며 조용히 갈등을 분별하고자 하는 인간적인 마음도 행하고, 때로하는 하나의 천심처럼
복된 생각으로 인간관계를 넘어선 평화를 구축하는 천인 같은 마음도 낸다 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살아있으므로도 윤회를 (변화) 를 6 섯갈래의 비젼을 고정되게 가지고 장착하고
마음작용을 하고 있다. 이를 6도의 욕심세계라 하는데 욕계에서 가장 하빨의 마음작용을 담당하는
세계를 6도 욕심세계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라는중생심은 가장 막차를 탄 저급한 단계에
머물고 마음을 작용시키는데 그나마 인간으로 출현하여 성불하고 도를 튀굴 문턱에는 있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처의 길은 인간로정을 통해서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 합장-
그리고 그 윗단계가 욕계천의 6 세걔가 또 있는데, 1,사천왕세계, 2, 도리천세계 3,야마천세계.
4, 도솔천세계 5,화락천세계 6, 타화자재천 세계가 또 있다, 쉽게 말하자면 우리가 내재한
마음을 확장해서 거시적으로 본다며는 부처님께서 위 욕계천 6 개 가 또 존재하고 있다 하신 말씀을
공부할 차례라 이 말입니다.
저번시간에 사천왕세계를공부하였읍니다.
이 욕계천부터는 물질이 분화되어 음광의 빛으로 생명성품 운동을 하는 곳을 말합니다.
예전에 과학의 원소기호를 예를 들어 소개한 사실이 있읍니다.
원소기호인 수소 1 부터 원소기호 20 번 까지는 늘 원자운동이 서로 합하려는 운동을
하므로서 물질구성 단위로 의지 작용하고 원소기호 20 번이 넘어서면 다시 뭉친 물질 구조의 작용운동을
다시 분열하고자 하는 운동을 한다 라고 소개한 사실이 있읍니다.
분열의 제일 끝 원소가 무엇입니까? 우랴늄, 플라토륨 등이며 , 이 원소기호 가 현재 밝혀진것은
102 번 까지가 될 것입니다.
아직도 밝히지 못한 원소가 또 있다는 사실인데 과학계는 언제인지는 모르잠 이 모든 공간에 내재하는
원소기호를 다 밝혀내리라 봅니다만...
여지없이 108 원소기호가 밝혀질 것입니다.-합장-
이때가 된다면 통일장이 밝혀질 것이고 상대성이론이나 특수상대성이론으로 중력장에 의하여
빛이 휘어지고 공간이 휘어지는 빛 운동의 제 1 원칙을 비롯하여 ( 힘이라는 에너지는 가속을 시간을 지님)
제 2 원칙인 통일장의 빛의 운동은 언제나 변함없이 항속운동과 등속운동을 하는이치가 밝혀질것입니다.
여기서 통일장이라는 O 의 작용을 말합니다.
사람이 생각의 범주로서는 항상 180도 반경밖에 보지 못합니다.
하지밪 성인의 말씀으로 보면 항상 온존한 360 도를 다 보십니다.
성경말씀 불경말씀 유경의 말씀, 천부경의 말씀은 죄다 이러한 통일장의 말씀으로 도 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이로서 6 개 고리인 세가지 6근 6식 6경의 18 여래장을 인간의 사고방식으로 사물을 논하므로 절반밖에는 못 본다 하는것이고. 온존한 O 을 보는 자리를 부처님께서 능엄경에 말씀하시기를 36 여래장을 본다 하는것이니
36 여래장 의 삼계 는 (3) 승하게 되면 108 번뇌를 다 본다 이렇게 말씀하시는것과 같읍니다.
36 여래장의 O 작용은 3계를 삼매중에 보므로서 108 번뇌를 다 본다.
108 번뇌는 번뇌가 아니고 단지 이름이다, 라고 갈파하신 것이니 공간내에 존재하는원소의 분류를
굳이한다면 원소기호가 108 까지 도달하면 통일장을 구축하게 된다 하는 것과 같으므로
원소기호 108 번까지 과학계가 이루어 낸다 하는 것을 감히 소개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일단 우리마음에 욕계천에서 도리천을 공부할테인데 도리천은 무엇을 말함인가를
알아야 하고 우리가 내재한 마음의 어떤작용을 하면 도리천에 이르는 경지를 확보하는 가 를
공부해야 합니다.
도리천의 환경은 지구의 최정상이라는 수미산으로 상징하는 제일 높은 정상에 있는자리인데
제일 높은 수미산을 지키는 자는 제석천이라 하고 불법을 두호하는 총 사령관인데 인도에서는
인드라신을 내세워 인드라망을 구축하여 주변 여덟봉우리 정상에 각기 팔부성중을 놓아 관리하는 신입니다.
사방에 팔방을 놓아 32 천과 (사방의 여덟봉우리: 지구를 관찰하는 팔방으 최정상 공간계를 말함)이를 관할 하는 중심의 제석천 등 한 곳을 포함하여 33 천을 관할 하는 곳을 도리천이라 이름합니다,
도리천은 쓰리천을 말합니다, 인도어인데 인도에서는 숫자를 일단이를 먼저하고 십단위를 나중에
합니다. 도리는 3 을 의미하고 천은 뎅이라 십을 의미합니다 33천이지요.
그렇다면 중국의 용어인 도리천은 한자어로 忉利天(도리천) 이라고 씁니다.
하늘마음을 지니고 있는 곳으로서 중생의 이득을 근심하는 곳이 도리천입니다.
무슨 뜻이냐?
우리들이 살아가면 특정한 경우가 발생하는데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며는
같이 거래를 함인데 (상대세계이므로 교류해야 살 수 있음) 상대가 자꾸 속이고 기망하고 있는 그대로
교류하지 않고 자꾸 트릭을 쓸때가 있어 이를 발견하였지만 서로 살아가는 친분이나 인연이 있고
이치가 그냥 그와 같음으로 받아 넘길 입장도 못 될때 대부분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 몇페이지 접어주고 듣자! 이 마음을 내는 것을 도리천 심정을 낸다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소개하면 이해가 쉬우리라 생각합니다.
이 생각을 내는 사람은 마음이 천천히 가는 것이 특징입니다ㅑ.
우리나라에 젊은 스님이 책을 하나 내었는대, "마음이 머물면 모든것이 보이는 것을" 제목이
이런것으로 알고 있읍니다.
이 경지를 도리천계라 하는 것입니다.페이지를 접는다?
한 페이지를 반으로 접으면 페이지 내용의 모든 소식을 반으로 접어 지므로 책 내용은 반반으로 서로 마주하게 됩니다. 이를 접는다고 말합니다.
네가 아무리 거짓말하고 비판하고 기망하여도 내가 페이지를 접고 속아주마! 하지만 네 마음작용을
네가 생각하는 의지와 의도를 마주하고 보는 것이므로 네 마음작용을 다 본다 이것이 되는 자리를 도리천이라 합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어른되어 자식과 대화할때 우리수준으로 보아서는 몇페이지나 다 접어주고 같이대화하는
것 아니겠읍니까? 어린자식의 심리상태를 다 알지만 이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이
바로 사랑인 것입니다, 빛의 운동이라 하면 반드시 반을 행하면 나머지 반을 거슬러 다시 되돌아 옵니다.
그런고로 빛의 운동은 O 을 항상 행하는 것입니다.
이 마음작용을 하는 곳이 도리천 계라 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인드라망을 설치하는 것입니다.
중생의 의도로 행하는 모든것은 진리라는 O 의 그물에 다 걸린다 하여 예배의식에 "제망찰해" 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자식을 근심하는 부모처럼 하늘의 도리 O 의 이치를 행하지 못하는 중생계를
금심하는 빛의 세계다 이렇게 정의할 수 도 있읍니다.
이 도리천계의 마음작용은 마음이 아주 천천히 갑니다, 도리천 계의 하루는 지구의 중생지견의 생각으로는
100 년이라는 기간이 된다 하셨읍니다.
마음이 천천히 가면 다 보입니다, 아이들의 심리작용 어른이다 보는 것과 같읍니다.
하지만 같음으로 어린아이 마음상태로 키 높이를 하고 들어주는 마음작용 으로 훤하게 다 알지만
한페이지 접고 같음을 행하는 마음을 뜻합니다.
하지만 이곳도 욕계천이므로 욕망이 있는 세계의 정상이 되는데 욕계라 함은 음양이 있다 이 말과 같읍니다.
쉽게 말하자면 외적인 공간을 비유하면 지구의 대기권 안에 있어 달과 태양의 영향을 받는 곳이라
밤낮이 있는 중력장에 미미한 작용에 미치는 공간을 말합니다.
이공간의 특징은 남녀가 같이 존재하는데, 서로 자유연애를 한다고 합니다.
서로 포옹하고 안기만 해도 아기가 나오는데 이 포옹하는과정으로 일이 다 끝나는것입니다.
한평생 서로 바가지 긁고 비비대고 잔소리 하면서 부대끼며 이성관을 관철하지 않아도 됩니다.
안으면 다 되니까요, 나원참!
그리고 아기가 임신을 마치고 나오자 마자 지구의 중생입장으로 비유하면 한 여섯살 정도의
몸을 지니고 출현한다 하였읍니다.
도리천에는 마야부인이 있었읍니다.
마야부인이라 함은 석존의 생모로서 인도에 태어나서 자라고 성장하여 인도 석가국 정반왕한테 시집와서
싯달타 태자를 낳고서는 10 일 만에 돌아가셨는데 이 기간동안 마야부인이 도리천에서 월광천자와
사귀고 있었는데 내가 잠시 화장실 일좀 보고 올께요 하면서 잠시 자리를 비웠는데 그 사이에 지구에
내려와서 30 년이 넘도로 살면서 정반왕과 인연맺어 싯달타 태자를 낳은다음 다시 도리천으로
올라가셨다 하니, (팔상록에 나옵니다) 불과 도리천의 시간 약 30분에서40 분 정도 아주 길게 잡으면
그 사이에 석가국에 시집오는 과정과 아이낳는 일을 완수하고 다시 도리천으로 올라간것입니다.
이러자 월광천자가 화장심 볼일보는게 평시보다 조금 오래 걸렸네? 변비걸렸나? 이정도의 멘트가
가능한 시간에 지구의 인도 석가국에서 싯달타 내고 볼일 다보고 다시 올라온 시간이다 이 말입니다.
이러한 시간개념의 마음작용이 우리들 마음에도 다 이미 존재한다 이 말과 같읍니다.
이는 일반 상대성 원리처럼 공간이 휘어지고 중력장의 작용을 받아 시간개념이 지구와는 전혀 다른
도리천 하루가 지구중생 100 년의 시간으로 천천히 가는 곳을 도리천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게 이야기가 되는 이야긴가 하시지마는
우리마음작용이 때로는 이렇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마음이 여유가 있고 마음이 천천히 가면 웬만한 사람이 상대하여 어떤 의도나 행위작용을 하여도
접었기 때문에 그 빛의 운동을 다 보고 알아 동시에 다 파악하지만 상대가 같은 인연이라서
몇 페이지라도 접어주고 속아주는 마음챙김을 하는 일이 있다 이 말입니다.
우리가 운명적으로 남녀가 우연하게 만났다 합시다, 갑자기 전율이 오고 전기가 통하는 시선을
함께 가질때 이를 운명적인 사랑이라 이름합니다.
대부분 한눈에 반하는 이성을 만날때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육체적인 갈등의 의미는 벨로 없읍니다, 마음작용으로 한번에 이심전심이 동시에
들어오는 전율인데, 이게 O 운동입니다. O 이통하는 직감에서 이심전심의 인연이 됩니다.
이게 가능하다 이 말입니다.
예수님게서 성영으로 잉태되었는데 마리아의 마음은 이미 도리천 심정을 지닌 아주 성스러운 마음상태를
지닌분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같음을마음작용으로 탄다 이 말입니다. 가능한 일입니다.
마야부인을 히브리어나 헬라어로 하면 마리아 가 됩니다.
예수님의 어머님을 마리아
부처님의 어머님을 마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수님 탄신때는 천사가 나타나 성령으로 마리아가 잉태하고
부처님 탄신때에는 도솔천에서 흰 코끼리 (힌뿔은 O ) 가 늑골을통하여 마야부인에게 들어오고
시간개념과 공간개념이 전혀 지구현실과 다른 장소에서 마음작용만 일으켜도 잉태가 된다 하는
것을 의미함이니 이 마음작용이 우리들 마음에도 잘 통찰해보면 늘 존재하고 있다 이 말과 같읍니다.
그러므로 어른되고 마음이 청정하면 일반 생각에만 미치고 살아내는 우리들의 중생지간에서는
한 페이지라도 접고 살아내기 때문에 이 세계가 존재되고 유지된다 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남에게 속아주는 자가 어른이 되는 것입니다.
싯달타 태자가 탄신하자 마자 한 여섯살 되어진 아이로 돌변하시어 일곱걸음(칠)을 걸으시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선포하셨읍니다, 상징적이지만 이치가 그러하다는 것인데 도리천의 어머니를 만나
이 지상에 출현하신 도솔천 호명보살의 출생이력이 부처님이 되신 싯달타 태자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도솔천은 무엇인가? 부처님이 되는 분들이 대기 하는 곳입니다.
수많은 부처님은 모수 도솔천에서 나오십니다. 그러므로 도의 무리가 사는 곳이라 하여
도솔천이라 합니다.
지금도 미륵부처님은 56억7천만년 후에 부처님으로 세상에 오시기 위하여 반가좌를 틀고
기다리고 계시는 중입니다. 56억7천만년후에 출현하시는데 빛의 운동 7 입니다, 7 로 나누워 보시면 81 이 나옵니다.
9류중생 인 태란습화상비상약비상 비무상 비상비무상 9 류 생명의 등비 로 승하면
81 이 나옵니다,(9 곱하기 9) 그러므로 81이라는 의미는 빛 세계 인 700 세계 분화를 선포한 천부경이 그 주된 내용처럼 9 류중생이 온전하게 성불하는 56억7,000만년이 되어 성불할때 미륵부처님으로 출현하신다 하는 것입니다.
미륵부처님을 모신 사찰에가면 특징이 있읍니다, 어마어마하게 크십니다.
그래서 대부분 사찰 안 대충전에 있을 수가 없읍니다, 바깥에 모시지요, 거대하게 커서 그렇읍니다.
비로자나 법신의 몸을 닮아있는 거대한 일체의 우주공간만큼 큰 분을 미륵부처님이라 이름하고
미륵부처님의 헬라어나 히브리어로는 메시아라 이름하는 것입니다..
한반도 역사의 도래시점의 원조는 동이족으로 조상이신 환인께서는 도리천에서 조상의 신이 내려왔다 하여 석제환인의 환인께서 내려오셨다 하였고, 곰과 결혼하여 단군을 낳으신 분으로 기술 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고로 환인은 33 인의 하늘 신을 동원하고 한반도를 정치하신 것이 신화의 첫 소식이 됩니다.
사람 의 마음이 천천히 가면 갈수록 보이는 무엇이 있읍니다. 결국 도리천 에 기거하는 마음작용을
하면 견성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정의할 수 있는 마음작용의 최고수준을 의미하는데
이 도리천 세계는 욕계천에서 빛으로만 분화되어 음광을 뿜어내고 빛의 O 된 작용을 다 보고 아는 마음자리를
지닌자들이 기거하는 곳이다 이렇게 비유할 수 가 있고 이러한 생명운동을 하는 곳이다 라고 이해하시면 될 것입니다.
도리천 마음에 들어서면 화엄경으로 십지를 논하는 것의 첫번째 경지 환희지에 들어서는 순간이 되는것입니다
회광반조라 빛이 다시 돌아오는 것을 다 보고 아는 자리로서 욕계공간계에서 최 정상자리를 말합니다.
그런고로 중생이 서로 같음이니 중생의 삶을 걱정하는 것이 도리천이 됩니다.
야마천 세계는 무엇인가?
세계라고 이름하는 세상은 무조건 욕계천이고 시간이 아주 천천히 가지만 시간개념이 공간과의 상대성 법칙이
통하는 곳입니다.
태양계에 속하는공간은 지거천이고 (地居天) 이고 태양계를 벗어나는 곳은 시간개념이 없는 공거천(空居天)
이라 이름합니다.
이 모든 말씀은 이러한 공간계를 다 보고 다루 살피신 후 성불하신 부처님의 말씀이니 제가 지어낸것은 1 도
없읍니다.
야마천은 염라세계입니다.
빛을 당길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 말입니다.
우리 마음도 눈으로 무슨 사물을 볼때 힘주어보면 줌으로 빛을 땅겨 보는 것과 같읍니다.
눈이라 하는 것은 광학운동을 하는 빛을 모우고 비추는 장치를 한 부위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반 밖에 못 본봅니다, 그러므로 6 만 본다 하는 것입니다 12 인연법을 다 보지 못하여
연각지에 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본다 하는것은 그러므로 오고감의 O작용 자체를 온존하게 다 비춘다 하는 것이고
보고 집중하는 것은 빛을 당겨 내 눈앞에 세운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야마천 은 빛을 당겨 업경대를 설치하는 거울작용으로 중생들이 죽으면 그 업경대를
통하여 빛을 당겨 비추어 시간개념을 압축해서 인과율을 다 보고 아는 곳이 염라 라 하고
이 빛을 당겨 다 볼 수 있는 장소공간인 염라에는 염라대왕이 있읍니다.
염라대왕이라 함은 빛의 삼세운동작용을 다 본다 하여 과거 현재 미래를 수직으로 꿰 뚫은 王(왕) 이름을
붙이는 것입니다, 권력을 지니고 염라국을 지배하라는 왕의 이름이 아닙니다.
이 자리는 주로 지장보살께서 변호사로 주재하십니다. 심판하는 좌측에 배정된다 이 말입니다ㅎ
그리고 500 아라한 경지레 들어 죽음과 삶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나한이 지장보살을 두호하여
중생을 살핍니다, 그러므로 사찰에 가보면 응진전이라 있읍니다, 인과응보를 다 보고 빛을 당겨
살피는 능력자를 모신 장소를 응진전이라 이름합니다.
지장본존보살이 계시고 나한이 함게 있읍니다.
이곳은 역시 욕계천인데 이성적인 남녀가 함께 기거하는 공간이기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고로 염라대왕도 "싸모 "가 계십니다.
이곳의 이성적인 거래는 서로 미소만 지어도 아이가 생겨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지상의 중생처럼 무신 가슴이 두근거리고 달밤을 쳐바보면서리 달이 참 밟다 이러한
유치하고 복잡한 절차으 구차한 용어는 원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신 절차가 복잡하게 요단강에 돌입하기 위한 작접절차 같은 것도 원래 없읍니다.그냥 미소만 서로 주고 받으면 얼나가 튀어 나옵니다. 무신 자궁이 필요합니까? 입으로 빛을 토하면 툭 튀어나옵니다.
그러므로 눈농자만 마주하면 사랑이 되고 아이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편한 세계입니까. 요즈음 아파트 이름이 이편한세상이 있기는 합니다만
분양가가 작난아니지요.
이곳 하루는 지구로 기준하면 지구세월 15,000년 이 흘러가는 시간이 하루다 이렇게 정의하고 있읍니다.
지구가 태양둘레를 15,000년을 돌면 야마천은 하루다 이 말입니다.
공간계를 더욱 더 올라갈 수 록 마음작용이 아주 천천히 더 편하게 행합니다.
야마천은 원래 인도의 신이 있었는데 야마가 이름인데 야마가 죽어 보니 갈데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구어 놓고 죽은자를 위한 사랑을 실천하는 곳이 주 업무로 개척하고 근무하게 된 곳이 야마천입니다.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공간은 인과율을 빛을 관리 해주면 되는 것입니다.
복짓는 사람은 그만큼 돌려주고 이루게 하고
죄 짓는 사람은 그만큼 지를 받게 공평무사하게 해주는 역활을 하면 된다 이 말입니다.
이를 본업으로 집정하는 곳을 야마천 세계라 이름합니다.
우리 마음에는 양심이라는 것이 있읍니다.
옛날에 죄인을 압송하고 앞에 새운데 " 네 이름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이 한마디의 추상같은
말에 죄인은 양심에 쩔어 죄를 자백하는 것입니다.
우리스스로 죄를 인식하면 스스로 압니다, 이를 비추어 심판하는 빛 7 의 O 을 작용시켜
공간계가 항상 청정하고 아무일 없게 생명인과율을 집정하는 곳이고 스스로 이러한
마음작용을 하는 양심의 텃밭이 우리 마음에도 늘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마음에는 항상 야마천계가 함께 함축해서 작용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사설이 길었읍니다.
다음에는 화락천 타화자재천 과 색계편의 초선정 이선정 삼선정 사선정에 대하여 윤곽이나마
이해한뒤 화엄경 본편을 소개하기로 합니다, 합장 행불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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