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혁 |
옛 김포군과 양천군이 합병되어 이루어진 시이다. 고구려 때 김포는 검포현, 양천은 제차파의현이라 하였다. 검포현은 통일신라 경덕왕 때 김포로 고쳐져 장제군의 영현이 되었다.
1018년(현종 9)에 분리되어 명종(明宗) 때 감무를 두었으며, 1198년(신종 1)에 이르러 현령을 두었다. 1414년(조선 태종 14)에 양천(陽川)을 합하여 금양현이라 하였고, 나중에 다시 양천은 금천에, 김포는 부평부에 합하였다가 16년에는 다시 현으로 복귀시키고 현령을 두었다.
한편 제차파의현은 통일신라 경덕왕 때 공암으로 고쳐져 율진군의 영현이 되었으며, 1018년에 수주에 속하였다. 그 후 1310년(충선왕 2) 다시 양천으로 고치고 현령을 두었다. 1414년(태종 14) 양천현은 김포현에 합하여졌고, 나중에 금천에 합하였다가 1416년에 다시 현으로 복귀시켜 현령을 두었다. 1895년(고종 32)에 김포군이 되었으며 1914년에 양천현을 흡수하였다.
1963년 1월 1일 행정구역 개편으로 양서 ·양동 2개면이 서울에 편입되어 7개면이 되었다. 1974년 7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부천군의 오정면과 계양면이 김포군에 편입되어 9개면이 되었으나, 그후 1975년 9월 23일에 오정면이 부천시로 이속되어 8개면이 되었다.
1979년 5월 1일 김포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1995년 1월 검단면이 읍으로 승격하였고, 같은 해 3월 검단읍이 인천광역시에 편입되면서 1읍 6면이 되었다.
1998년 4월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김포군이 시로 승격되었고, 김포읍을 폐지하여 김포 1·2·3동을 두었다. 2000년 현재 행정구역은 6면 3동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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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환경 |
남동에서 북서로 길게 돌출한 김포반도는 오랜 침식작용을 받아 낮아진 준평원과 한강중상류 및 지류에서 운반된 토사가 매립되어 발달한 충적지가 합해져, 전체적으로 매우 낮고 평탄한 김포평야를 이룬다.
높이 100m 이하의 구릉성 산지는 주로 김포군 서부에 산재하고, 반면에 굴포천·계양천 등이 한강으로 흘러들어가 동부의 한강연안에는 넓고 두꺼운 충적지가 발달해 있어, 서고동저형의 지세를 이룬다. 주요 산으로는 문수산·가현산· 계양산 등이 있다.
경기지괴의 일부로서, 고생대 이전지층과 중생대 쥐라기지층이 발달해 있으며, 암석은 대체로 변성퇴적암인 결정편암이 고양군에 연속되어 나타나고 화강편마암류가 남동부에 분포하여, 반도 서안에는 중생대 대동계층이 남북으로 발달해 있다. 특히, 월곶면 문수산일대에는 남북 10㎞, 동서 4㎞정도의 무연탄층이 빈약하나마 분포되어 있다. 이 부근의 한강·임진강은 만조 때 조수의 영향을 받는 감조하천이다.
연평균기온은 11.2℃로서 인천·서울과 비슷하나, 같은 위도상에 있는 동해안의 강릉보다 1℃정도 낮다. 1월평균기온 -4℃, 8월평균기온 26℃이며, 연강수량은 1,100mm내외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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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유적 |
국가지정 문화재로는 서울의 변방인 강화를 지켜주는 포내리의 문수산성(사적 제139호)과 성동리의 범패(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가 있다.
지방문화재로는 조헌을 기리기 위하여 1648년에 건립된 감정리의 우저서원(경기도유형문화재 제10호)와 조헌선생유허추모비(경기도유형문화재 제90호), 성동리의 문수사풍담대사부도 및 비(경기도유형문화재 제91호), 고정리의 고정리지석묘(경기도기념물 제91호) 등이 있다. 그밖에 대곡리에 세조때의 공신 정이지의 사당이 있으며, 군하리에 통진향고, 북변리에 김포향교가 있다.
사찰로는 문수사·금정사· 용화사·광은사·약천사·계향사 등이 있다. 또한, 권상·장만·이원·민인백·조정익 등의 사당이 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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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문화 |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1127년(인종5) 월곶면 군하리의 통진향교와 김포읍 북변리의 김포향교가 세워졌다. 서원으로는 1648년에 조헌을 기리는 우저서원이 설립되었다.
최초의 근대교육기관으로는 1907년에 김포공립보통학교가 세워졌다. 그뒤 각지에 초등학교가 세워지기 시작하면서, 월곶·양곡·하성·대곶·검단· 계양·고촌·소양국민학교 등이 세워졌다.
또, 1936년에 6개월 수료의 김포농업실수학교가 세워져, 광복 후 김포중학교와 김포종합고등학교로 개편되었으며, 국민학교와 중고등학교의 설립이 증가하였다. 교육기관으로는 유치원 28개소, 국민학교 28개교, 중학교 9개교, 고등학교 5개교에 이르고 있다.
종교 분포를 보면, 1987년 현재 불교사찰 7개, 천주교성당 14개, 개신교교회가 86개인데, 그 중 개신교의 교세가 타종교에 비하여 크게 신장되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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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 |
민속놀이
이 지방의 민속놀이로 통진면 옹정리의 <농상패놀이>가 있다. 논김을 맬 때는 농사반을 구성하여 농기를 앞세우고, 농악대가 7채<길군악>을 치면서 신나게 놀이를 한다.
논김을 맬 때는 선소리꾼이 긴가락·자진가락·휘몰이가락 등, 주고받는 농요가 이어져서 흥을 돋운다. 이동을 할 때 여기에 따르는 인원은 기수를 비롯하여 선소리꾼·살포·상쇠· 북잡이·장구잡이 등 농악놀이꾼만도 20여명이 되며, 그때그때 필요한 대로 인원이 증감된다.
도당산 산신제는 서변마을에서 매년 음력 10월 2일 밤 10시를 기해 지낸다. 도당산은 김포읍의 주산인데, 서쪽으로 소나무가 무성하고 평평한 곳이 있어 그곳을 제단으로 삼는다.
제물로는 반드시 돼지 한마리를 바쳐야 하는 등, 제도와 절차가 엄격한 관례에 따라 행하여지며, 한번도 중단된 일이 없어 마을사람들이 자랑으로여기고 있다.
산신제를 마치면 온 마을이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축제분위기가 된다. 김포읍 북변리· 감정리, 그리고 하성면 마곡리, 월곶면 동을산리도 매년 음력 10월에 각각 산신제를 지내고 있으며, 그밖에 음력 10월 20일에 손돌목 앞에서 손돌제를 지낸다. | | |
설화민요 |
설화
이 지방의 설화에는 <여우고개이야기>와 <투금포전설>이 대표적이다. 여우고개는 김포읍 감정리에 있는 고개이다. 조선조 선조 때의 조헌이 어렸을 때 이 고개를 넘어 공부하러 다녔는데, 매일 그 고개에서 여우가 미녀로 둔갑하여 조헌을 유혹하려 하였다.
이에 조헌은 글방 선생에게 사실을 고하니, 선생은 그 미녀의 입안에 있는 구슬을 빼앗아 삼키면 장성하여 반드시 대성할 것이라고 하였다. 조헌은 선생의 말대로 구슬을 빼앗아 삼켰더니 미녀는 여우로 변하여 울며 도망갔고, 조헌은 그 뒤 과연 큰 인물이 되었다고 한다.
<투금포전설>은 고려 말엽에 지금의 양천 공암나루 부근에 살던 의좋은 형제의 이야기이다. 어느날 형제는 나루에서 금덩어리를 두개 얻어 한 개씩 나누어 가졌다. 그리고 다른 손들과 함께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데, 배가 강 중간에 이르렀을 때 아우가 그 금덩어리를 슬그머니 물 속에 던져버렸다.
이를 본 형이 깜짝 놀라 그 까닭을 물은즉, 아우는 "형님, 오늘까지 남들이 우리 형제의 우애를 매우 부러워하였는데, 그것은 우리가 비록 가난하지만 열심히 일하는 것밖에 몰랐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 금덩어리가 생겼으니 자연 게을러질 뿐 아니라 더 큰 욕심으로 나쁜 마음이 일어나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 형제의 의는 갈라지고말 것 아닙니까. 그래서 금덩어리가 싫어지고 무서워 물에 던졌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형이 이에 "네말이 옳다."하고 자기도 물속에 금덩어리를 던져버렸다. 나룻배에 탔던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고 형제의 우의에 감탄하고, 그뒤로는 이곳을 투금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민요
이 고장에 구전되는 민요는 '타령류'가 주종을 이루고 있고, '노동요'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는 서울과 근접하여 다른 지방보다 일찍 쇠퇴한 때문인 것 같다.
'타령요'중에는 <달거리창부타령>·<각설이타령>·<어랑타령>을 대표적인 것으로 들 수 있고, <가세타령>·<군밤타령>·<흥타령>등도 많이 불린다. 이 고장 특유의 노래인 <열두달소리>는 일년 열두달을 꽃에 비유하여 읊은 음영민요로 은유적 표현이 뛰어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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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교통 |
비옥한 김포평야를 중심으로 예로부터 미작 중심의 농업이 주요산업이 되어왔으며, '통진미'·'김포미'라 하여 질이 좋은 경기미를 생산하여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한강수계의 오염이 심각해졌을 뿐 아니라, 김포평야의 중앙부를 흐르는 굴포천 또한 그 상류의 부천지역이 공업화되면서 농업용수로서의 사용이 제한 받기에 이르고 있다.
전체 논 1만1500㏊가운데 수리안전답은 85%가 되어 비교적 수리시설이 잘 공급된 편이며, 대표적인 양수장은 고촌면 신곡리 굴포천 하구에 있는 것으로, 여기서 양수된 용수가 간선수로를 통해 김포평야일대 및 홍도평일대를 관개하고 있다.
총경지면적은 약 154㎢로 총면적의 45%나 차지하고, 이 중 논 116㎢, 밭 38㎢로 되어 있다. 쌀 이외의 농산물로는 감자·콩·채소류가 있고, 특용작물로서 인삼재배가 중요하다. 최근에는 화초·과수·채소 등의 근교농업이 서울과 가깝고 교통이 편리한 김포읍·계양면을 중심으로 활기를 띠고 있으며, 이와 함께 낙농업도 발달하여 낮은 구릉지와 한강변의 넓은 초지에 많은 목장이 생겨나고 있다.
1980년 현재 2천두 정도의 젖소가 50여개(10두 이상)의 목장에서 사육되고 있으며, 주로 김포읍 사우리·장릉산일대, 계양면의 계양산일대, 검단면·양촌면 등 서울·인천에 가깝고 교통이 편리한 곳에 발달되고 있다.
인삼은 김포군에서 쌀 다음으로중요한 농산물로서, 1923년 개성인삼이 개풍군을 통해 가까이 위치한 월곶면에 전파, 재배되기 시작하였고, 점차 양촌면·대곶면·하성면일대의 완만한 구릉지에서 광범위하게 생산되고 있다. 인삼밭은 김포군 전체 밭면적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생산량도 전국적으로 유명한 금산·풍기·강화에 이어 많은 편이다.
육상교통으로는 서울과 강화를 연결하는 포장된 국도가 김포군의 중앙을 통과하고 있고, 양곡~인천간과 김포~인천간의 지방로가 있다. 1975년 7월 이후 서울시내버스가 김포읍까지 여장, 운행됨에 따라 통근이 늘고 있다. 김포읍 또한 점차 수도권내 위성도시적인 색채를 띠기 시작하고 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