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밤타령
추석을 쇤지 보름이 지나고 있다. 지난 추석 혼잡한 교통 속에 고향걸음을 해 언제나 그랬듯 차례를 지내고 선산 성묘를 다녀왔다. 올해는 추석이 일찍 찾아와 감이나 대추가 덜 익은 채로 차례 상에 올랐다. 고향을 지키는 큰형님은 선산발치 밤나무를 가꾼다. 올밤은 수확은 이미 끝났고 늦밤은 이제 밤송이가 벌어지는 즈음이었다. 큰형님은 아우가 시간이 날 때 밤을 주워가라고 했다.
구월 마지막 주 토요일이었다. 가끔 교류가 있는 지인과 밤 줍는 체험활동을 떠나기로 시간을 비워두었다. 서너 살 연상인 지인은 영어를 가르치다 정년을 몇 해 앞둔 올봄에 명예퇴직을 해 자유롭게 지낸다. 전날 준비한 생선을 몇 마리 배낭에 넣어 반송성당 앞으로 갔다. 그곳은 지인과 산행을 떠날 때 접선한 장소이기도 했다. 지인은 차를 몰아 시내를 빠져나가 남해고속도로로 올랐다.
군북인터체인지를 빠져 남강을 가로지른 정암다리를 건넜다. 의령읍과 인접한 구룡산 아래 의병장 홍의장군 곽재우를 기리는 충익사를 지나 덕실로 들었다. 덕실은 상리 중리 하리 세 개 리로 구성된 골짜기다. 그 가운데 내 고향은 중리 운곡으로 폐교가 된 초등학교가 있던 마을이다. 고향집에 닿아 형님 내외에게 인사를 나누었다. 이어 지인과 같이 선산이 있는 벽화산 중턱으로 올랐다.
나중 밤 자루를 쉽게 이동하기 위해 산기슭 밑까지 차를 몰아갔다. 조부모님과 부모님 산산이 있는 양달은 올밤이 심겨져 밤 수확이 끝났다. 북사면엔 늦밤이라 시간차를 두고 밤을 수확한다. 늦밤은 이제부터 밤송이가 벌어지는 즈음이었다. 밤농사도 쉽지는 않다. 시비를 하고 밤나무 그루터기 밑에 풀은 깎아주어야 한다. 형편이 되면 산림조합에 의뢰해 항공방재로 약도 뿌려준다.
밤 수확은 사람 손으로 일일이 밤톨을 주어야 한다. 주운 밤을 선별해 산림조합으로 보내면 시세가 좋지 않으면 인건비가 나올까 말까다. 떨어진 밤은 벌레가 파먹거나 멧돼지가 뒤져먹기에 큰형님은 누구라도 산에 올라 밤을 주워가길 바랐다. 큰형님 댁에선 추석 전 올밤을 주워 얼마간 소득을 보았을 테다. 늦밤도 일손만 있다면 주워서 시장으로 보내면 약간의 돈은 마련될 것이다.
지인과 밤송이가 벌어진 밤나무 그루터기 아래로 가서 밤톨을 주워 모았다. 지인은 너른 산자락 그득 떨어진 알밤을 보더니 신기해했다. 이미 형님 내외가 가으내 주워간 알밤이지만 자고나면 계속 떨어지는지라 두 사람이 줍기엔 양이 많았다. 중간에 간식으로 가져간 곡차를 비우면서 부지런히 알밤을 주워 모았다. 밤에는 으레 벌레가 붙기 마련인데 올해는 예년보다 피해가 적은 편이다.
산에 오른 지 두 시간 남짓 주운 알밤은 비료포대 자루에 가득했다. 중간에 차린 베이스캠프에 검불이 섞인 알밤을 비워놓고 계속 더 주웠다. 평소 산행 때는 일정하게 쓰는 근육만 움직이기에 피로를 쉬 느끼지 않는다. 그런데 밤을 줍는 일은 산행과 달랐다. 허리를 굽혔다가 펴는 동작을 반복해야 했다. 나도 밤을 줍는 일이 힘들었지만 지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땀을 좀 흘렸다.
지인과 함께 선사발치 산자락 밤나무 그루터기 밑에서 반나절 동안 허리를 굽혔다가 편 노동을 했다. 비료포대에다 주워 담은 알밤을 밤나무 그늘 아래 한 곳에다 모았다. 알밤 무더기에서 검불과 벌레 먹은 밤을 가려냈다. 선별한 알밤을 가져간 쌀 포대에 나누어 담았더니 네 자루나 되었다. 양곡이 가득 담길 때 한 자루 20킬로그램이니 우리가 주은 밤은 70킬로그램은 족히 될 듯했다.
둘은 양곡포대에 가득 담은 알밤을 두 손에 움켜 들고 아까 차를 세워둔 산기슭까지 가야 했다. 중간에 여러 차례 쉬기를 반복해 까까스로 옮겼다. 큰형님 댁에 닿으니 형수님은 소박한 점심상을 차려 놓고 기다렸다. 민폐가 될까 봐 읍내로 나가 의령소바나 쇠고기국밥으로 점심을 해결하려는 지인의 뜻은 접어야 했다. 밥상엔 내가 추석 무렵 보낸 도토리로 빚은 묵이 올라 맛있게 먹었다. 14.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