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鬱陵島)
여행일정 : 9.11~13(2박3일) 여 행 지 : 울릉도 해안산책로 및 명소 투어, 독도, 죽도
같이한 산악회 : 갤러리산악회
특징 : 최단거리인 ’울진군 죽변‘에서조차도 130.3km나 떨어진 울릉도(鬱陵島)는 우리나라에서 여덟 번째로 큰 섬이다. 동서(東西)의 길이 96.3㎞에 남북 길이 34.8㎞, 면적은 72.86㎢이다. 신생대 화산작용으로 형성된 탓에 섬 전체가 하나의 화산체이므로 해안은 대부분이 절벽을 이룬다. 특히 서남과 동남 해안은 90m 높이의 절벽으로 천연의 양항(良港)의 발달이 어렵다. 울릉도(鬱陵島)는 512년(지증왕 13)에 우산국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하슬라주(지금의 강릉)의 군주이던 이사부(異斯夫)가 우산국(于山國. 지금의 울릉도)를 정벌한 것으로 나온다. 우릉도(芋陵島)·우릉성(羽陵城)·울릉도(鬱陵島)·우릉도(于陵島)·무릉도(武陵島) 등을 섞어 쓰던 고려시대까지는 공도정책(空島政策)을 펴오다가, 1694년(숙종 20)부터 울릉도에 대한 순찰을 강화했고, 1882년(고종 19)에는 ’울릉도 개척령‘이 공포되어 이민이 장려되었다. 1900년 울릉도를 ’울도군‘으로 개칭하면서 강원도에 편입시켰고, 이후 경상남도(1906)를 거쳐 경상북도(1914)로 이관, 제주도와 함께 도제(道制)로 변경(1915)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현재의 경상북도 울릉군이 되었다.
▼ 울릉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일단 묵호여객선터미널(강원 동해)까지 와야만 한다. 울릉도로 들어가는 배가 이곳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이곳 말고도 강릉과 포항, 후포(경북 울진)에서도 출발하니 여객선터미널까지의 접근성과 울릉도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 등을 감안해서 출발지를 선택하면 될 것이다. 터미널에 이르니 울릉도로 떠나는 배를 타기위해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이 모여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풍랑으로 인해 아침 배가 취소된 상황이었으니 오늘은 특히 심했을 것이다. ▼ 울릉도까지 태워다 주게 될 시스타호, 배는 바다를 매개로 하나의 문명권을 형성하는데 불가결한 존재다. 하지만 배가 안전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항해의 안전은 사람의 지혜를 뛰어넘는 거대한 힘, 즉 신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봐야하기 때문이다. 헤아릴 수 없는 깊이를 지닌 바다, 그 자체가 신비로운 존재가 아니겠는가. 그러니 동해의 뱃길 역시 그렇게 호락호락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특히 뭍에서만 살던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3시간의 뱃길도 버거울 수밖에 없다. 그저 1천 원짜리 멀미약을 마시고, 바다를 믿을 수밖에... 하지만 바다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았다. 1시간의 헛구역질,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구토는 생지옥 그 자체였다. 바다는 오전까지 계속되던 풍랑의 여파(餘波)를 아직까지도 간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 3시간 이상을 높은 파도에 시달린 후에야 겨우 울릉도(사동항, 沙洞港)에 도착했다. 울릉도는 사동항 외에도 울릉도의 문호항인 도동항(道洞港), 아래 사진)과 저동항(苧洞港) 등 2개의 여객선 항구가 더 있으며 배편에 따라 도착하는 항구가 다르니 도착지를 미리 알아두면 여행계획을 짜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참고로 ’도동(道洞)‘이란 지명은 도방청(道方廳)이란 말에서 유래되었다. 1882년(고종 19) ’울릉도개척령‘을 발포하면서 개척민에게 면세(免稅) 조치를 내리자 사람들이 울릉도로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이때 울릉도에 세운 자치지휘소가 ’도방청‘이다. 후에 동(洞) 이름을 정할 때 도방청에서 ‘도(道)’자를 따와 도동(道洞)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현재의 도동항은 각종 상업 및 관광 시설이 밀집되어 있으며, 울릉군청과 경찰서, 우체국, 읍사무소 등 주요 공공기관들이 자리한 행정의 중심지이다. 뿐만 아니라 교통과 상업, 관광, 숙박시설 등 상업의 중심지를 이루고 있다. ▼ 도동은 독도 관광을 위한 진출입 관문지역이기도 하며 중간 기착지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항상 많은 사람들로 붐빌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그래선지 포구에 작은 공원(公園)이 조성되어 있다. 배편이나 버스·택시 등의 교통수단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정자와 벤치를 만들어 놓았다. 다른 한편으로 이곳은 오징어 축제와 우산문화제 등 각종 행사가 열리는 곳이라고 한다. 그래선지 한쪽 귀퉁이에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비까지 세워져있다. ▼ 사람들은 울릉도를 ‘신비의 섬’이라고 부르는데 익숙하다. 하지만 배에서 내리면서 맞는 울릉도는 신비하기보다는 삶의 고달픔이 뼛속까지 파고드는 곳으로 느껴진다. 깎아지른 좁은 공간에는 논이라곤 한 평도 찾기 힘든 곳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깃들었을까? 그래서 눈길을 돌린 게 바다였을 것이고, 그중에서도 가장 성황을 이루었던 게 오징어잡이가 아니었을까 싶다. 소공원에 세워진 저 조형물이 이를 증명하는 셈이고 말이다. 아무튼 이곳 울릉도에서 오징어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나타내주는 상징물이지 싶다. ▼ 울릉도 하면 사람들은 ’호박엿‘과 함께 ’오징어‘를 떠올린다. 아니 호박엿보다도 오징어로 더 유명하다고 보는 게 옳겠다. 그런데도 울릉도의 밥상에는 오징어가 없었다. 횟집에나 가야 겨우 살아있는 오징어를 금값을 치르고 난 뒤에야 만날 수 있었고, 밥집의 메뉴판에서 찾아낸 ’오삼(오징어+삼겹살) 불고기‘는 재료가 없어 상을 차릴 수가 없다는 주인장의 공허한 목소리만이 들려올 따름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오징어가 잡히지 않는데 요 며칠은 파도가 높아 그마저도 잡지를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귀한 오징어를 도동항의 부두에서 만났다. 그러니 어찌 카메라에 담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울릉도에 도착하니 4시를 훌쩍 넘겨버렸다. 해가 질 때까지의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육로관광을 나선다. 미니버스를 이용해 이동하게 되는데, 그 첫 번째 방문지는‘B코스’인 ‘봉래폭포’이다. 바닷가를 따라 울릉도를 한 바퀴 둘러보게 되는 육로관광은 ‘A’와 ‘B’, 2개 코스로 나뉘는데 오늘은 도동항의 오른편인 ‘B코스’, 즉 저동항의 촛대바위과 내수전망대, 봉래폭포 등을 둘러보게 된다. 3~4시간이나 걸리는 ‘A코스’에 비해 ‘B코스’는 2시간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조금 서둘러야만 해 떨어지기 전에 숙소에 짐을 풀 수 있겠지만 말이다. ▼ 첫 번째 방문지는 봉래폭포(蓬萊瀑布)이다. 저동항에서 성인봉 방향으로 계곡을 따라 약 1.5㎞ 정도 오르면 울릉도 내륙 최고의 명승지로 꼽히는 봉래폭포의 입구에 만들어진 주차장이 나온다. 폭포로 올라가는 들머리에 ‘봉래폭포’에 대한 ‘종합안내도’가 두 개나 세워져 있으니 한번쯤 살펴보고 길을 나서는 게 좋을 것 같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했으니 제대로 보려면 폭포에 대한 기본적인 사항쯤은 알아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 매표소를 지났는데도 두어 곳의 음식점들이 눈에 띈다. 호박, 더덕, 감자, 도토리, 산나물 등 하나 같이 이곳 울릉도의 특산물로 만든 메뉴들을 내걸고 있다. ▼ 돌무더기도 눈에 띈다. 오가는 사람들이 하나 둘 쌓아 올렸으리라. 크고 작은 그네들의 소망들을 얹어서 말이다. 나 또한 조그만 돌맹이 하나 올려본다. 우리 가족들의 건강과 행복을 꾹꾹 눌러 넣었음은 물론이다. ▼ 5분쯤 걸었을까 한여름에도 서늘한 냉기가 나온다는 ‘풍혈(風穴)’이 나온다. 이곳 사람들은 자연냉장고라고도 하고 천연 에어컨이라고도 한다는데, 작년(2017)에는 KBS 2TV ‘생생정보’의 ‘봉pd의 고고고 여행’에서도 소개해 이미 울릉도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풍혈’이란 바위틈에 저장되어 있던 찬 공기가 밖으로 흘러나오는 자연 구멍을 말하는데, 이곳은 땅 밑으로 흐르는 지하수의 찬 공기가 바위틈으로 용출되어 내부 온도가 항상 섭씨 4℃를 유지한단다. 때문에 여름철 대기온도가 24℃이상 올라갈 때는 찬 공기로 느껴지고, 겨울철 대기 온도가 영하로 내려갈 때는 따뜻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주민들은 이곳에 음식이나 과일 등을 저장하여 천연냉장고로 유용하게 활용했으며 휴식처로도 널리 사랑받던 곳이란다. ▼ 일단은 안으로 들어서고 본다. 그리고 아득한 세계에서 오는 바람을 맞는다. 그러자 단순히 여행객의 땀을 식히는 것 이상의 쾌감이 전신을 감싸온다. 마치 내 속에 있는 우주의 기운이 그 바람에 의해 다시 소름으로 돌출하는 느낌이다. 마침맞게 풍혈 안에는 벤치까지 놓아두었다. ▼ 잠시 후 거대한 바위가 하나 나타난다. 울릉도에 들어서면서 첫 느낌은 ‘참 바위가 많다’였다. 해안이 온통 바위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바위를 이곳에서 또 만난 것이다. 그런 내 감정이 이입(移入)이라도 되었는지 집사람이 바위의 결을 살피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주상절리(柱狀節理, columnar joint)’ 같단다. 그녀의 추측이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울릉도·독도 국가지질공원’이라고 적힌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 걸로 보아 본질에서 크게 벗어난 것 같지는 않다. 참고로 울릉도는 약 140만 년 전부터 1만 년 전까지 5단계에 걸쳐 화산활동을 거치며 탄생한 섬이다. 마지막 화산활동은 9300~6300년 전에 일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상당히 긴 나무계단을 올라서자 이번에는 울릉도의 무공해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 오른 삼나무 숲이 나타난다. 삼나무는 원래 배(船)를 건조하는데 사용되어 왔다. 하지만 요즘은 삼림욕장으로 더 많이 활용되는 추세다. 삼나무가 사람 몸에 극히 좋다는 피톤치드(phytoncide)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무 가운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피톤치드란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나무들이 각종 병충해(病蟲害)에 저항하기 위해 배출하는 분비물(分泌物)을 말한다. 이 물질은 사람들에게도 많은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살균작용은 물론이고, 장과 심폐기능을 강화시켜주는 한편, 스트레스 해소에도 뛰어난 효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장점을 놓치지 않고 울릉군청에서도 이곳에다 삼림욕장을 조성해 놓았다. ▼ 얼마쯤 올랐을까 계곡 위로 설치된 아치(arch) 형태의 목조 전망대가 나타난다. 축대 형식으로 진입로 우측에 있던 당초의 전망대가 수해에 의해 무너지자 이를 복구하면서 기존의 협소함을 벗어나고 폭포의 전망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지금의 형태로 변경했다고 한다. 아무튼 목재 아치와 기둥, 데크가 조화된 전망대는 폭포에 대한 좋은 전망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또 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한다. ▼ 전망대에 오르면 낙차가 30여m에 이르는 3단 폭포가 나타난다. 폭포의 물은 북서쪽의 나리분지에 모인 강수(降水)가 지하로 스며들었다가 지하에서 피압수(被壓水)가 되어 지표로 용출하는 것이라고 한다. 지표로 솟은 다량의 물이 지형의 기복을 따라 흘러내림으로서 폭포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매일 3,000톤 이상이 떨어져 내리는데 이 물은 울릉도의 도동과 저동을 비롯한 남부일대의 중요한 상수원이 된단다. ▼ 좁은 협곡 사이로 하나의 물줄기가 하얗게 떨어지고 있다. 섬에서 물은 바로 생명선일터, 섬에서 보는 폭포는 산 위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천상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디에 민물이 고였다가 이처럼 아름답게 떨어지는 것일까? 불현듯 스쳐 지나가는 문장 하나. 작은 감동이 큰 감성으로 연결되었는데도 끄집어낼 수가 없다. 이미 난 노쇠화의 길로 들어섰나 보다. ▼ 두 번째로 찾은 곳은 ‘내수전 일출전망대(內水田 日出展望臺)’이다. ‘내수전(內水田)’이란 ‘김내수’라는 사람의 ‘밭’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 일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일출전망대가 만들어져 있다. 저동항에서 일주도로를 타고 가다보면 ‘내수전마을’ 삼거리가 나온다. 계속해서 왼편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내수전 고개’에 올라서게 된다. 일출전망대로 올라가는 들머리이다. 고갯마루에는 ‘내수전일출전망대 안내판’ 외에도 이정표(내수전~석포길 입구 0.4㎞/ 내수전 버스정류장 1.3㎞)가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북면 석포마을까지 이어지는 트레킹코스의 진행방향을 알리는 이정표인 모양인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바로 옆에 있는 ‘일출전망대’로 올라가는 방향표시까지 빼먹었다. 이정표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 ‘삼양주(三釀酒)’라는 이 지역 막걸리를 설명해놓은 안내판도 보인다. 삼양주란 쌀과 누룩을 이용 밑술을 빛은 다음 덧술로 두 번을 더 빚어 발효시킨 술을 말한다. 울릉도의 청정수에다 주재료인 우리 쌀과 우리 밀 누룩에 부재료로 울릉도에서 생산된 호박과 마가목 열매를 넣어 유산균을 풍부하게 발효시켰다. 맛과 향이 뛰어나며 숙취가 없는 울릉도의 최고급 명주(銘酒)로 알려진다. ▼ 잠시 후 ‘도솔암’의 입구임을 알리는 푯말이 세워져 있다. 인적이 끊기다시피 한 곳에 암자(庵子)라니, 생소하지만 울릉도 역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일 진데 암자라고 없겠는가. 마침 조망까지 트이면서 저 멀리 ‘관음도’가 눈앞으로 성큼 다가온다. ▼ 참! 멀리 있는 관음도에 신경을 쓰다가 코앞에 있는 민가를 놓칠 뻔했다. 움막은 아니어도 가파른 산 능성에 마치 바닷가 바위너설에 붙은 따개비처럼 경사진 비탈에 가옥이 붙어있다. 약초나 심었을 것으로 보이는 밭은 그보다도 훨씬 더 경사가 심하다. 이곳 내수전은 제주도 대정 사람 김내수가 화전(火田)을 일구던 곳이라 해서 붙은 이름이다. 눈앞에 보이는 저 집이 바로 그가 살던 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바다에서의 삶이 늘 그렇듯이 섬 생활 역시 그럴 것이다. ▼ 이어서 잘 생긴 소나무 한 그루가 길손을 맞는다. 옛말에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펴라’는 말이 있듯이 자리만 잘 잡았더라면 ‘이름표’ 하나쯤은 넉넉히 챙겼을 법한 나무이다. 그 앞에는 건물 한 동이 인적이 끊긴 채로 방치되어 있다. 아니 흑염소와 마가목, 울금 등으로 만든 제품의 광고용 현수막을 걸어놨으니 방치되었다고는 볼 수 없겠다. ▼ 길가의 숲은 마가목(馬價木)이 군락을 이룬다. 이곳뿐만이 아니다. 해안도로를 일주하는 도중에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다. 마가목의 열매나 줄기는 동의보감에 소개될 정도로 여러 가지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채취할 일은 아니다. 대부분은 주인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동의보감(동의보감)’은 마가목을 정공등(丁公藤)이라 하여 풍증과 어혈을 낫게 하고 늙은이와 쇠약한 것을 보하고 성기능을 높이며 허리힘, 다리맥을 세게 하고 뼈마디가 아리고 아픈 증상을 낫게 한다. 흰머리를 검게 하고 풍사(風邪)를 물리치기도 한다고 적고 있다. ▼ 해발이 기껏해야 440m, 거기다 고갯마루에서부터 시작하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오르기로 했다. 마음이 가벼운데 구태여 짐으로 무게를 더할 필요는 없다. 생수병까지 버려두고 길을 떠난다. 하지만 이는 오산이었다. 생각보다 멀고 가팔랐던 것이다. 사실 초반은 완만한 오르막길이다. 하지만 정상 가까이에서는 계단을 설치해야만 했을 정도로 가파른 오르막길이 나타난다. 길은 두 사람이 어께를 맞대면 나란히 걸을 수 있을 정도의 넓이다. ▼ 전망대로 올라가는 길은 동백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햇빛이 스며들지 못할 정도로 우거져 낮인데도 불구하고 어두컴컴할 지경이다. 그래선지 길가에는 가로등 삼아 키 작은 전등(電燈)을 설치해 놓았다. ▼ 그렇게 15분 정도를 올라가면 드디어 전망대이다. 직사각형의 전망데크를 만들고 가운데에는 앉을자리를 배치했다. 조망도와 망원경까지 설치했다. 그만큼 조망이 뛰어나다는 증거일 것이다. 난간에는 ‘여행수첩용 스탬프’를 넣어두는 함도 매달아 놓았다. 관광안내소에서 울릉도·독도 여행수첩을 발부 받은 후, 섬을 돌면서 스탬프를 찍어오면 되는데, 10개 이상을 찍어올 경우에는 울릉도 기념품을 준다니 한번쯤 시도해볼 만도 하겠다. 임도 보고 뽕도 따는 셈이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참고로 도장은 총 17개이며 독도는 인증사진을 찍어오면 된다. ▼ 위에서 말한 대로 정상에서의 조망은 그야말로 빼어나다. 넓게 뻗은 수평선과 함께 우측의 저동항, 정면에는 죽도, 좌측의 관음도와 섬목(선창포) 일대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해돋이를 조망하기에도 딱 좋다고 한다. 이름에 ‘일출’이란 단어를 붙인 이유이다. 참! 날이 맑을 경우 독도도 관측된다기에 열심히 찾아봤지만 시야에 잡히지 않았다. 얼마나 더 좋아야 가능할지 모르겠다. ▼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죽도는 경이롭다. 섬의 사방이 가파른 절벽으로 되어 있는데, 상층에 어찌 저런 평평한 마당이 생겼을까? 다양함을 만들어 내는 것은 정말 신의 영역인가 보다. 죽도의 가파른 절벽을 동해의 맑디맑은 파도가 쓰다듬고 있다. ▼ 저동항 방향의 풍경, 저동의 명물인 촛대바위는 잘 보이지 않지만 사각뿔 모양의 북저바위는 또렷하게 눈에 든다. 북저바위는 복어를 가리키는 울릉도 사투리 ‘뽁지’ 바위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이 바위섬 부근에서 복어가 많이 잡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참! 이곳 일출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저동항의 야경(夜景)도 빼놓을 수 없는 구경거리라니 참조한다. ▼ 성인봉 방향도 눈에 들어온다. 울창한 숲이 눈길을 끈다. 성인봉에는 저보다 훨씬 더한 자연 그대로의 원시림이 아직까지 남아있다고 한다. 뭍에도 '마지막 원시림‘ 등의 현란한 수식어가 따라붙는 숲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상대적 찬사 내지 헌사일 뿐 성인봉에 견주면 분명 한 수 아래란다. 실제로 성인봉 정상 인근에는 섬의 태동기인 신생대 제3기와 4기 사이에서 지금까지 인간의 손을 타지 않은 천연의 상태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숲으로는 아주 드물게 지난 1967년 천연기념물 제189호로 지정된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 에필로그(epilogue), ’울렁울렁 울렁대는 가슴안고 연락선을 타고 가면 울릉로라 뱃머리도 신이나서 트위스트 아름다운 울릉도...‘라는 노래처럼 기대와 멀미로 울렁대는 가슴안고 다녀 온 ’울릉도‘는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은 섬으로 남았다. 그만큼 즐겁고 행복한 여행이었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다시 갈 때에는 묵호에서 배를 타고 싶지는 않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묵호에서는 결코 식사를 하고 싶지 않다. 묵호에서 겪었던 불쾌한 감정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얘기했다시피 이번 여행은 풍랑으로 인해 아침 배가 출항을 취소한 탓에 오후 1시 배를 탈 수밖에 없었다. 불가피하게 들어선 여객선터미널 앞의 식당에서 우리 일행이 선택한 메뉴는 그 집에서 제일 자신 있다는 된장찌개. 하지만 찌개는 물론이고 반찬까지 엄청나게 짜서 먹는 게 부담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음식을 갖고 투정하는 건 아니다. 까짓 음식쯤이야 조금만 참으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인아줌마가 내뱉는 욕설만은 견딜 수가 없었다. 돈을 퍼주러 북한에 간다느니, 북한에 다 퍼준 탓에 쌀값이 천정부지로 올라갔다느니 하며 내뱉는 욕설이 시정잡배(市井雜輩), 아니 시정잡배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의 욕설로 우리 일행의 밥상머리를 도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난 문재인대통령과 그의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런 내 귀에도 역겨울 정도였으니 오죽 심했겠는가. 자고로 음식이란 ’만드는 사람의 정성‘이라고 본다. 고로 만드는 사람이 마음을 곱게 가져야만 제대로 된 음식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남의 트집이나 잡고 내뱉어야 할 욕설이나 고르는 사람이 만드는 음식이 어떻게 제대로 된 음식일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묵호의 음식점 모두를 싸잡아서 거부할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고 나무랄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꽤 오래 영업을 해온 듯이 보이는 그 식당이 여전히 손님들을 맞고 있고, 또 여전히 욕설을 늘어놓고 있다면 주변에서 그녀를 용인을 해주고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
출처: 가을하늘네 뜨락 원문보기 글쓴이: 가을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