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프롬’에 의하면,
“어떤 혁명가가 자신이 타도하려고 하는 대상을 타도하고 나서
그 자리를 차지하고 앉으면, 그것은 이미 혁명가가 아니라 반항아에 불과하다.”
혁명가와 반항아는 다르다.
진정한 혁명가는,
공을 이룬 후에는 그것을 차고 앉으면 안 된다.
그 예가 ‘체 게바라’이다.
반항아들은 모두 무엇인가를 타도하고 난 후,
바로 그 자리를 차고 앉아
바로 정주형태의 집안을 이루어 버린다.
혁명이 성공한 그 순간을 차고 앉는다.
혁명의 깃발이 바로 완장으로 바뀐다.
혁명은 지속적으로 혁명 될 때에만 혁명이 된다.
이 말을 노자식으로 말하면, ‘공성이불거’,
즉 공이 이루어지고 난 후에는
그것을 차고앉지 말자는 것이다.
이를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라 한다.
중심에 머물다가, 그만 파국을 맞는다.
삶은 동사적인 태도가 중요하다.
공功을 이룬 다음에 바로 다음 공功을 향해
나아 가는 동사적 태도 말이다.
“노자가 이런 방식을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사회와 이상적 인간형은 어떤 본질적인 가치에 충실하여 남성적으로 경쟁에서 승리하여 굳건해 지는 모습이 아니라, 존재와 가치를 관계 속에서 파악하는 부드럽고 여성적이며 한계 지워지지 않는 순수한 모습이다. 고정적인 지적 체계나 가치가 없으니 세계의 전체 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최진석)
옹기전에서/정희성
나는 왠지 잘 빚어진 항아리보다
좀 실수를 한 듯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아내를 따라와 옹기를 고르면서
늘 느끼는 일이지만
몸소 질그릇을 굽는다는
옹기전 주인의 모습에도
어딘가 좀 빈 데가 있어
그것이 그렇게 넉넉해 보였다
내가 골라 놓은 질그릇을 보고
아내는 곧장 화를 내지만
뒷전을 돌아보면
그가 그냥 투박하게 웃고 있다
가끔 생각해 보곤 하는데
나는 어딘가 좀 모자라는 놈인가 싶다
질그릇 하나를 고르는 데도
실수한 것보다는
실패한 것을 택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