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色斯擧矣 翔而後集 새가 사람의 안색을 보고 날아올랐다가 빙빙 돌며 살펴본 후에 내려앉는다.
言鳥見人之顔色不善 則飛去 回翔審視而後 下止 人之見幾而作 審擇所處 亦當如此 然 此上下 必有闕文矣 새가 사람의 안색이 선하지 않은 것을 본다면 날아서 도망갔다가 되돌아 날아와서 잘 살펴본 후에 내려앉아서 그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사람이 기미를 보고서 행하고 거처할 곳을 살펴서 택하는 것도 역시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 그러나 이 글의 위아래에 반드시 빠진 글이 있을 것이다.
程子曰 色斯擧矣 不至悔吝 翔而後集 審擇其處 정자가 말하길, “안색을 살펴서 이에 날아오른다하니, 후회하고 아까워하는 일에 이르지 않고, 빙빙 돌며 난 후에 내려 앉아 모이는 것은 그 거처를 잘 살펴서 고르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南軒張氏曰 色斯擧矣 炳先見於幾微也 翔而後集 從容審度而後 處之也 如是則悔吝何從生乎 남헌장씨가 말하길, “色斯擧矣는 밝게 미리 기미에 알아보는 것이고, 翔而後集은 조용하게 살피고 헤아린 후에 거기에 거처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한다면, 후회하고 안타까워함이 어디를 따라 생겨나겠는가?”라고 하였다. 胡氏曰 上不知爲何人之言 下不知爲何事而發 故以爲有闕文也 호씨가 말하길, “위로는 어떤 사람을 위한 말인지 알지 못하고, 아래로는 어떤 일 때문에 발언한 것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궐문이 있다고 여긴 것이다.”라고 하였다. |
2 | 曰 山梁雌雉 時哉時哉 子路 共之 三嗅而作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산에 난 다리에 있는 암꿩이 제 철이구나! 제 철이구나!”라고 하셨거늘, 자로가 그것을 붙잡아 요리하여 드렸는데, 공자께서 세 번 냄새를 맡더니 그냥 일어나셨다.
邢氏曰 梁 橋也 時哉 言雉之飮啄得其時 子路不達 以爲時物而共具之 孔子不食 三嗅其氣而起 晁氏曰 石經 嗅作戞 謂雉鳴也 劉聘君曰 嗅當作狊 古闃反 張兩翅也 見爾雅 愚按 如後兩說 則共字當爲拱執之義 然此必有闕文 不可强爲之說 姑記所聞 以俟知者 형씨가 말하길, “梁은 다리다. 時哉란 꿩이 물을 마시고 먹이를 쪼아 먹는 것이 알맞은 때를 만났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자로가 이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것을 제철 음식이라고 생각하여 잡아다 바쳤으니, 공자께서는 먹지 않으시고 세 번 그 냄새를 맡으시고 그냥 일어나셨다.”고 하였다. 조씨가 말하길, “석경에는 嗅자가 戞자로 되어 있는데, 꿩이 운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유빙군이 말하길, “嗅자는 마땅히 狊자로 써야 한다. 발음은 古闃反이고, 두 날개를 편다는 뜻이다. 고대의 자전에 보인다.”고 하였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만약 뒤의 두 학설대로 한다면, 共자는 마땅히 두 손으로 받들어 붙잡다의 뜻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반드시 궐문이 있을 것이니, 억지로 그것을 위해 말해서는 안 된다. 우선 내가 들은 바를 기록해놓고, 이로써 지혜로운 사람을 기다리는 바이다.
邢氏 名昺 濟陰人 형씨는 이름이 병이고, 제음 사람이다.
爾雅釋獸須屬 獸曰釁(許靳反 獸之自奮迅動作 名釁 人曰撟(紀小反 人之罷倦頻伸夭撟舒展屈折 名撟) 魚曰須(魚之鼓動兩頰 若人之欠 須導其氣息者 名須) 鳥曰狊(鳥之張兩翅 狊狊然搖動者 名狊 此皆氣倦體罷 所須若此 故題云須屬也) 짐승의 풀이의 필요한 것들에서, 짐승은 釁(발음은 허근반이고, 짐승이 스스로 날래게 동작하는 것을 흔이라고 명명하였다)이라 말하고, 사람은 撟(발음은 기소반이다. 사람이 피곤해서 자주 사지를 펼치고 굽히고 들어올리며 펴서 늘이고 굽히고 꺾는 것을 撟라고 명명하였다)라고 말하며, 물고기는 須(물고기가 양 볼을 힘차게 움직이는 것이 마치 사람이 하품하는 것처럼 그 숨을 유도하는 것을 須라고 명명하였다)라고 말하고, 새는 狊(새가 양 날개를 펼쳐서 활활 요동치는 것을 격이라고 명명하였다)이라고 말한다. 이것들 모두 기운이 피곤하고 몸이 처졌을 때 필요로 하는 것이 이와 같은 것들이기 때문에, 제목을 필요한 것들이라고 지어 부른 것이다.
慶源輔氏曰 退當見幾 進當審義 경원보씩 말하길, “물러날 때는 마땅히 기미를 보아야 하고, 나아갈 때는 마땅히 의로움을 살펴보아야 한다.”라고 하였다.
西山眞氏曰 色斯擧矣 去之速矣 衛靈公問陳而孔子行 魯受女樂而孔子去 卽此義也 翔而後集 就之遲也 伊尹俟湯三聘而後 幡然以起 太公伯夷聞文王善養老而後出 卽此義也 古人所謂三揖而進 一辭而退 雖相見會聚之間 猶謹諸此 況仕止久速之際乎 賈誼賦所謂 鳳縹縹而高逝兮 夫固自引而遠去 此卽色斯擧矣之意 又曰 鳳凰翔于千仞兮 覽德輝而下之 此卽翔而後集之意 後世如漢穆生以楚王戊不設醴而去 諸葛武侯必待先主三顧而後從之 皆有得乎此者 서산진씨가 말하길, “色斯擧矣는 떠남이 빠른 것이다. 위령공이 진법에 대하여 묻자 공자께서 길 떠나시고, 노나라가 여악대를 받아들이자 공자께서 떠나신 것은 곧 이런 의미다. 翔而後集은 나아감이 느린 것이다. 이윤은 탕왕의 三聘을 기다린 후에 흔연히 일어섰고, 강태공과 백이는 문왕이 늙은이를 잘 봉양한다는 말을 들은 후에 나선 것은 곧바로 이런 의미다. 옛사람이 말한 소위 ‘세 번 읍하고서 나아가고 한 번 사양하며 물러난다’는 것은 비록 서로 만나고 함께 모이는 사이에서라도 여전히 이런 것에 삼간다는 것이니, 하물며 벼슬을 하거나 그만두거나 오래 하거나 빨리 그만두는 것에 있어서랴! 가의의 賦에 이른바 ‘봉황이 표표히 높이 날아가는구나! 무릇 본래 저절로 이끌어 멀리 가는도다!’라는 것, 이것은 곧 色斯擧矣의 뜻이다. 또 말하길, ‘봉황이 천길 위에서 빙빙 돌며 나는데, 덕이 휘황함을 살펴보고서 그곳에 내려 앉는구나!’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곧 翔而後集의 뜻이다. 후세에 한나라 목생이 초왕 유무가 단술을 베풀지 않자 떠나버렸고, 제갈무후는 반드시 선주의 삼고초려를 기다린 후에 따라나섰으니, 모두 이것을 잘 터득한 사람들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此章文義略不順而意亦可通 色擧翔集 卽謂雉也 夫子見雉如此 曰 此山橋邊之雌雉 其見幾而擧 詳審而集 時哉時哉 蓋謂時當飛而飛 時當下而下 皆得其時也 子路不悟以爲時物取雉供之 夫子不食三嗅而起 聖人寬洪 不直拒人也 雉一禽耳 去就猶得其時如此 君子之去就 何可不得其時哉 若移山梁雌雉一句 冠於此章之首 則辭意似尤明云 신안진씨가 말하길, “이 장의 글의 의미는 다소 순조롭지 못하지만 뜻은 또한 통할 수 있다. 안색을 살펴서 날아오르고 빙빙 돌며 날다 내려앉는다는 것은 곧 꿩을 말한 것이다. 공자께서 꿩이 이러한 것을 보시고 말씀하시길, ‘이 산의 다리 옆의 암꿩이 기미를 알아보고 날아오르고 상세히 살펴보고 내려 앉으니, 때를 잘 아는 구나! 때를 잘 아는구나!’라고 하셨다. 대체로 마땅히 날아야 할 때라면 곧 날고, 마땅히 내려앉아야 할 때라면 내려앉으니, 모두 그 적당한 때를 잘 터득하였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자로는 이를 깨닫지 못하고, 그저 제철 음식이라고만 여겨서 꿩을 잡아다 공자님께 드린 것이다. 공자님은 이를 드지시 않고 세 번 냄새를 맡은 후에 일어나셨다. 성인께서는 관대하셔서 곧장 사람을 거부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저 꿩 한 마리일 뿐임에도, 그 거취에 있어서 오히려 제때를 터득함이 이와 같았다. 군자가 거취에 대하여, 어찌 그 합당한 때를 터득하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만약 山梁雌雉의 한 구절을 옮겨서 이 장의 첫머리에 씌운다면, 말의 뜻이 더욱 분명해질 것 같다고 말하는 바이다.”라고 하였다.
蔡氏曰 士之修於身行乎族里者 至鄕黨而備 立乎朝行乎天下者 自鄕黨而出 此篇所係 不亦重乎 夫子萬世之標準也 父兄宗族之間 君臣朋友之際 莫不曲盡其道 非屑屑於是也 蓋其一理渾然而泛應曲當 人見其動容周旋 無不中禮 一言語一容貌一擧動 無不盡其道者 當知其德盛禮恭 自不期而合也 告曾子一貫之說 與此篇相發明 學者可不思學孔子以自立於鄕黨哉 채씨가 말하길, “선비가 제 몸을 수양하여 가족과 마을에 행하는 것은 향당에 이르러서야 잘 갖추어지는 것이고, 조정에 서서 천하에 행하는 것은 향당에서 나오는 것이니, 이 편과 관계된 것이 또한 귀중하지 아니한가? 공자님은 만세의 표준이시니, 부형과 종족의 사이에서, 군신과 붕우의 즈음에 이르러서 그 도를 상세하고 지극하게 하지 않음이 없었던 것이지, 이를 자잘한 것으로 여기신 것이 아니었다. 대체로 그 한 가지 이치가 혼연하여 널리 대응하면서도 자잘한 것도 합당하게 함하니, 사람 중에 그 動容周旋이 禮에 들어맞지 않음이 없고, 말 한마디나 용모 하나 거동 하나라도 그 道를 다하지 않음이 없다는 것을 알아본 사람이라면, 마땅히 그 덕이 성대하고 예가 공손한 것이 스스로 기약하지 않아도 그렇게 부합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증자에게 一以貫之의 말씀을 알려준 것은 이 편과 더불어 서로가 서로를 드러내어 밝혀주고 있다. 배우는 자가 공자님을 따라 배워서 향당에서 스스로 서려고 생각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