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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 과보받는 순서
1) 무거운 업
2) 습관적인 업
3) 죽음 근접하여 지은 업
4) 이미 지은 업
무거운 업은 모든 업 중에서 우선 무르익기 때문에 무거운 업이라고 합니다. 무거운 업이 없으면 습관적인 업과 죽음 근접하여 지은 업 중에서 죽음 직전에 더 강한 업에 의지하여 무르익습니다. 이 두 업이 없으면 바로 그 생이나 전생에 지었던 업이 무작위로 무르익습니다.
무거운 업
무거운 업이 불선업이면 이것은 비난받을 만하고 아주 미숙한 것이고, 무거운 업이 선업이면 이것은 수승하고 숙련된 것입니다. 무거운 업 하나만 있을 때 이것은 큰 힘을 지니고 항상 과보가 뒤따릅니다. 무거운 업이 다음 생에 아주 불행하거나 아주 행복한 것에 상당하는 형태의 강력한 과보를 만든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무거운 업의 과보를 피할 수 없습니다. 여러 무거운 업이 있다면 불선업이나 선업 중에서 가장 무거운 업이 뒤따르는 과보를 가져오는 업으로 작용할 것이고 다른 무거운 업은 정해져 있지 않고 과보를 가져오는 업이 될 것입니다.
불선한 무거운 업
불선한 무거운 업은 다음 여섯 가지가 있습니다.
1) 자신의 어머니를 죽이는 것
2)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는 것
3) 아라한을 죽이는 것
4) 불선한 의도로 여래의 몸에 피를 내게 하는 것
5) 상가 분열을 획책하는 것
6) 완고한 사견을 지니는 것, 즉 죽음 시점에서 업의 작용을 부인하는 그릇된 견해를 지니는 것.
한 생에서 이 여섯 업 중에서 하나를 지었다면 이것은 항상 뒤따르는 과보를 가져오는 업이 될 것입니다. 그 과보는 지옥에 다시 태어나는 것이 확실합니다. 이 업은 어떤 다른 업에 의해 방해(간섭)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업을 또한 간섭받지 않는 업이라고 합니다. 첫 다섯 가지는 불선한 의도적 행위를 짓는 순간 무거운 업으로써 과보를 받습니다. 하지만 여섯 번째(완고한 사견을 지니는 것)는 죽을 때, 즉 죽음 마음이 일어나기 전 마지막 인식과정까지 사견을 지니고 있을 때에만 무거운 업으로써 과보를 받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견이 지옥으로 다시 태어나도록 이끄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자아가 영원하고 자신의 행위에 따라서 좋은 목적지 또는 나쁜 목적지에 태어난다는 견해를 지닐 수도 있습니다. 자아가 영원하다는 견해는 영원론, 즉 사견입니다. 하지만 불선업은 불행한 목적지로 인도하고 선업은 선한 목적지로 인도한다는 견해는 행위의 결과에 대한 믿음(kiriyavādī, 끼리야와디)입니다. 이것은 업의 작용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 견해를 지니고 선업을 지으면 인간 세상, 천상, 또는 범천에 재생할 수도 있습니다.
강하게 완고한 사견만 지니는 것이 지옥으로 인도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떻게든 업과 업의 결과를 부인하는 견해, 즉 단멸론과 영원론입니다.
업의 작용을 부인하는 세 가지 견해
업의 작용과 그것의 결과를 이런 식으로 부인하는 세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1) 효력이 없다는 견해(akiriya-diṭṭhi): 이것은 불선업과 선업의 작용을 부인합니다.
2) 뿌리가 없다는 견해(ahetuka-diṭṭhi): 이것은 결과의 뿌리, 원인을 부인합니다.
3) 존재하지 않는다는 견해(natthika-diṭṭhi): 이것은 어떤 원인의 결과를 부인합니다.
효력이 없다는 견해
효력이 없다는 견해는 불선한 행위와 선한 행위의 작용, 즉 불선업과 선업을 부인합니다. 붓다 당시 뿌라나 깟사빠가 이런 견해를 가르쳤습니다. 붓다께서는 동일시하는 견해가 어떻게 그런 사견을 일으키는지 설명하십니다.
빅쿠들이여, 물질, 느낌, 지각, 상카라(행), 식이 있을 때, 물질, 느낌, 지각, 상카라(행), 식에 집착하고, (물질...)식에 취착하기 때문에 효력이 없다는 그런 견해가 일어난다.
‘면도칼로 테를 두른 바퀴로 이 지구에 살아있는 생명체를 한 덩어리의 살로 만든다면, 한 무더기의 살로 만든다면, 이것으로 인하여 악이 없을 것이고 악의 과보도 없을 것이다.
누군가가 갠지즈강 남쪽을 따라가면서 죽이고 도살하고 불구로 만들고, 다른 이들로 하여금 불구로 만들게 하고, 고문하고 다른 이들로 하여금 고문하게 하게 하면 이것으로 인하여 악이 없을 것이고 악의 과보도 없을 것이다.
누군가가 갠지즈강 북쪽을 따라가면서 선물을 주고 다른 이들로 하여금 선물을 주게 하고, 보시를 하고 다른 이들로 하여금 보시하게 하면 공덕이 없을 것이고 공덕의 과보도 없을 것이다.
보시함으로 자신을 길들임으로 자제함으로 진실을 말함으로 인해 공덕이 없고 공덕의 과보도 없다.’
이 사견은 불선업과 선업의 효력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업의 효력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즉 붓다께서는 그것을 무효력의 견해(akiriyadiṭṭhi, 아끼리야 딧티)라고 하십니다.
뿌리 없음 견해
뿌리가 없다는 견해는 사건이 운명에 의해 상황에 의해 자연에 의해 결정된다고 신념을 품고 그 사건이 뿌리나 원인을 가진다는 것을 부인합니다. 붓다 당시 이것은 막칼리 고살라가 가르쳤습니다.
또한 여기 붓다께서는 동일시하는 견해가 어떻게 그런 사견을 일으키는지 설명하십니다.
빅쿠들이여, 물질, 느낌, 지각, 상카라(행), 식이 있을 때, 물질, 느낌, 지각, 상카라(행), 식에 집착하고, (물질...)식에 취착하기 때문에 효력이 없다는 그런 견해가 일어난다.
존재들에게 번뇌를 일으키는 뿌리도 없고 원인도 없다. 뿌리 없이 원인 없이 존재는 오염된다.
존재들을 청정하는 뿌리도 없고 원인도 없다. 뿌리 없이 원인 없이 존재는 청정된다.
위력이 없다. 근기가 없다. 사람다운 힘이 없다. 사람다운 인내가 없다.
모든 중생, 모든 숨쉬는 존재, 모든 생명체, 모든 존재들은 능력이 없고 위력이 없고 근기가 없다. 즉 운명, 상황, 자연에 의해 형성되고 여섯 계층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한다.
여기서 막칼리 고살라가 가르친 즐거움과 괴로움의 여섯 계층은 그가 말한 청정의 여섯 체계로 역시 원인이 없습니다.
이 사견은 사건이 뿌리와 원인을 가진다는 것을 부인합니다. 그것은 업과 같은 원인이 있다는 것을 부인합니다. 붓다께서는 이것을 원인 없는 견해라고 하십니다.
존재하지 않는 견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견해는 물질만이 진정한 존재라는 신념을 품고 행위들이 결과를 가진다는 것을 부인합니다. 그래서 또한 다시 태어남이 있다, 다른 존재계가 있다는 것을 부인하고 이런 것들을 알고 보는 붓다와 같은 스승이 있다는 것을 부인합니다. 붓다 당시 아지따 께사깜발리가 이것을 가르쳤습니다.
여기 다시 붓다께서는 동일시 견해가 어떻게 그런 사견을 일으키는지 설명하십니다.
빅쿠들이여, 물질, 느낌, 지각, 상카라(행), 식이 있을 때, 물질, 느낌, 지각, 상카라(행), 식에 집착하고, (물질...)식에 취착하기 때문에 효력이 없다는 그런 견해가 일어난다.
‘보시는 없다. 큰 희생적인 보시를 하는 것에 대한 이익이 없다. 작은 희생적인 보시를 하는 것에 대한 이익이 없다. 선업과 불선업의 과보나 결과는 없다. 이 세상은 없다. 저 세상은 없다. 어머니는 없다. 아버지는 없다. 화생하는 존재는 없다. (곧장 아는 지혜로)이 세상과 저 세상을 알아서 선언하는 올바로 지내고 올바로 수행하는 사문과 브라흐만은 없다.
이 사람은 사대요소로 구성된다. 그가 죽으면 땅 요소는 땅 본체에 들어가서 다시 결합한다. 물 요소는 물 본체에 들어가서 다시 결합한다. 불 요소는 불 본체에 들어가서 다시 결합한다. 바람 요소는 바람 본체에 들어가서 다시 결합한다. 기능은 공간으로 변형된다. 다섯 번째 들 것으로 사람들은 시체를 나른다. 공동묘지가 몸이라고 알려진 한 뼈는 희게된다. 희생은 재로 끝난다. 어리석은 지혜는 이 보시이다.
누구든 (보시가 있다. 선하고 악한 행위의 과보는 있다 등)존재한다는 교리를 유지하면 이것은 잘못이다. 쓸데 없는 이야기다. 어리석은 자와 지혜로운 자는 몸이 부서지면 소멸되고 사라지고 죽음 후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 사견을 붓다께서는 존재하지 않는 견해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단멸론이고 유물론과 같습니다. 이것은 또한 비존재 교리라고 부르고 존재교리의 반대이고 기본적으로 바른 견해입니다.
가장 무거운 해로운 업
죽을 때 그런 사견을 움켜쥐는 것은 여섯 무거운 업 중에서 가장 무거운 업이고 그 결과 지옥에서 수 겁 동안 고통을 받습니다. 업력이 여전히 작용하는 한 세계의 체계가 파괴되어도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그때 지옥에 있는 모든 존재들은 인간계나 천상에 태어나서 선정을 연마하여 범천에 태어납니다. 하지만 지옥에 있는 존재는 이 사견 중에 하나를 거머쥐고 있기 때문에 파괴되지 않는 다른 세계 체계 사이 틈에 있는 악도 중의 하나에 재생합니다.
하지만 죽기 전에 그 사견을 포기하면 무거운 불선업이 되지 않습니다. 이에 대한 예로 사리뿟따 존자의 조카인 유행 사문인 디가나카가 있습니다. 그는 단멸론이란 사견을 지녔지만 붓다와 말씀을 나눈 후에 그 사견을 버렸습니다. 이것은 ‘디가나카 경’이라고 불리는 경을 들은 후에 예류자가 될 수 있었던 하나의 이유입니다.
하지만 예류자가 되는 것은 다섯 무거운 불선한 업 중의 하나를 지었다면 불가능합니다. 무거운 불선업은 어떤 종류의 선정을 얻고 어떤 종류의 초세간을 증득하는데 넘기 어려운 장애를 가져옵니다.
이것에 대한 예로 아자따사뚜 왕이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빔비사라 왕이었고 예류자였고 붓다와 상가의 큰 후원자였습니다. 왕위를 얻기 위해서 아자따사뚜 왕은 그의 아버지를 죽이도록 했습니다. 이 업의 현재 과보로 그는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밤 그는 붓다를 친견하러 갔고 붓다께서는 그에게 ‘사문과경’이라는 큰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왕은 그의 아버지처럼 예류자가 될 올바른 조건을 가졌었지만 그의 아버지를 죽이게 했기 때문에 장애가 있었고 범부로 남아있었습니다. 붓다께서는 이것을 빅쿠들에게 설명하셨습니다.
빅쿠들이여, 이 왕은 파버렸다. 빅쿠들이여, 이 왕은 파멸했다. 빅쿠들이여, 이 왕이 (올바른 사람, 올바른 왕인)그의 아버지 목숨을 빼앗지 않았다면 바로 이 자리에서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담마(법)의 눈이 일어났을 것이다.
붓다께서 직접 설하시는 가르침을 존경스럽게 들은 업으로 왕은 여전히 큰 이익을 얻었습니다. 그는 범부가 얻을 수 있는 붓다, 담마, 상가에 대한 최상의 믿음을 얻었습니다. 그의 믿음은 아주 강력해서 그 후로 잠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붓다께서는 그가 지옥에서 지내야 할 운명이 수백 만년에서 6만년으로 줄어든 것을 보셨습니다.
무거운 선업
무거운 선업에는 죽음 순간까지 유지되는 8증득이 있습니다. 8증득은 8가지 선정입니다.
1-4) 네 가지 색계 선정
5-8) 네 가지 무색계 선정
이들은 고귀한 업입니다. 하지만 무거운 선업이 되기 위해서는 죽음 순간까지 유지되어야 합니다. 즉 마라나산나 인식과정이 반드시 선정 대상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들 무거운 선정 업은 색계 범천이나 무색계의 무색계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뒤따르는 효력있는 업 과보로만 일어나고 결코 미확정적으로 효력있는 업 과보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어느 범천에 태어나는 가는 어느 선정에 중점을 두느냐에 달렸습니다.
8선정에 들겠지만 그 중의 하나를 선호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자신의 수행에서 대체로 그 선정에 전념할 것입니다. 그 특정 범천계에 다시 태어나려는 바람으로 거기에 다시 태어나는 것에 대한 자신의 선정에 자유자재를 닦습니다. 그런 선정의 자유자재를 붓다께서는 ‘힘의 수단’이라고 하십니다.
1) 열의에 의한 노력의 상카라를 가지는 삼매를 얻으려는 힘의 수단.
2) 정진에 의한 노력의 상카라를 가지는 삼매를 얻으려는 힘의 수단.
3) 마음에 의한 노력의 상카라를 가지는 삼매를 얻으려는 힘의 수단.
4) 조사에 의한 노력의 상카라를 가지는 삼매를 얻으려는 힘의 수단.
붓다의 제자가 아니면서 8증득을 증득한 사람도 성취수단을 계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붓다의 제자와 그 경지가 같지 않습니다. 왜? 붓다의 제자만 궁극적 정신-물질을 꿰뚫었을 것이고 붓다의 제자만 그런 대상을 삼아서 통찰 명상을 수행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수행은 붓다 교법 밖에서는 없습니다. 자신의 사마타 수행이 그런 힘차고 강력한 통찰지로 지원을 받지 않는 한 그가 계발하는 성취수단은 단지 약할 뿐이고 신통력 또한 약할 뿐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선정을 전문화할 수 없고 자신이 바라는 세계에 다시 태어날 수 없습니다.
붓다 교법 밖에서 8선정을 얻은 사람들은 자신이 닦은 가장 높은 선정의 세계에만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그들의 선정이 그들의 재생연결식을 만들고 그에 따라서 다시 태어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
예컨대 우리의 붓다께서 아직 보디삿따였을 때 알라라 깔라마라라고 하는 스승에게 7선정을 배웠습니다. 나중에 보디삿따는 웃다까 라마뿟따라는 스승에게 8선정을 배웠습니다. 이 증득이 괴로움의 종식으로 이끌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우리의 보디삿따는 숲으로 가서 고행 수행을 시도했습니다. 6년 고행을 하고 나서 그것을 포기하고 다시 음식을 먹고 네란자라 강 옆 보디나무 아래 앉아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은혜에 보답하고 그들이 도와 과를 얻을 만큼 충분한 지혜를 갖춘 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그의 두 예전 스승들에게 가서 그가 깨달은 법을 가르치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둘 모두 사망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알라라 깔라마는 무색계 일곱 번째 선정인 무소유처 세상에 다시 태어났고 웃다까 라마뿟따는 무색계 여덟 번째 세상인 비상비비상처 세상에 다시 태어났습니다.
이와 같이 붓다께서 그들이 법을 이해할 수 있다고 아셨지만 그들에게 법을 가르칠 수가 없었습니다. 왜? 무색계에는 물질이 없고 그곳의 존재들은 느낌, 지각, 상카라, 식만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물질 무더기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즉 그들은 눈, 귀가 없다는 뜻입니다.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는 붓다를 볼 수 없고 법을 들을 수도 없었습니다.
깔라데위 은둔자
같은 일이 깔라데위 은둔자에게 일어났습니다. 그는 신생아 싯닷타를 조사하고 붓다가 될 것이라고 예언한 사람입니다.
깔라데위는 8선정과 세간 신통을 통달했습니다. 예컨대 그는 낮 동안 따와띵사(삼십삼천)에서 보내곤 했습니다. 거기가 인간 세상보다 더 편했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그는 붓다가 될 분이 태어났다고 들었습니다. 그가 숫도다나 왕과 마하마야 왕비에게 그들의 아들이 붓다가 되리라고 예언했을 때 그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는 이미 늙었고 보디삿따가 붓다가 되기 전에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그가 마음을 훈련하는 방법을 알았더라면 눈물을 흘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눈과 귀를 가진 존재들이 있는 색계 세상 중의 하나에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확실히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색계에서 그는 붓다를 뵐 수 있었을 것이고 붓다의 가르침을 들을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웃다까 라마뿟따처럼 무색계 가장 높은 곳, 비상비비상처에 태어났습니다. 그는 마음 훈련하는 법을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사함빠띠 범천
붓다의 제자가 된 사함빠띠 범천은 성취수단을 알았습니다. 깟사빠 붓다 아래, 사하까 빅쿠로서 8증득을 갖추고 색계 초선정을 전문적으로 닦은 불환자가 되었습니다. 죽어서 그는 초선정에서 가장 높은 세상인 대범천에 재생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붓다를 뵐 수 있는 눈이 있었고 붓다의 가르침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데와닷따
하지만 자신의 선정을 죽을 때까지 유지하지 못하면 무거운 선업이 아닙니다. 예컨대 데와닷따 존자는 우리 붓다의 처남이었고 붓다로부터 8증득과 세간 오신통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그가 붓다를 대신해서 상가를 이끌겠다는 마음을 일으키자 선정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죽을 때 선정이 무거운 업이 되지 못했습니다. 대신에 상가를 분열시킨 무거운 불선업의 과보가 무르익어서 아위찌 지옥에 다시 태어났습니다.
습관적인 업
습관적인 업은 상습적으로 자주 지속적으로 지은 불선업 또는 선업을 말합니다. 습관적인 업은 통상적이지 않은 업에 앞서 무르익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습관적인 업 중에서 가장 습관적인 불선업과 선업이 무르익습니다.
습관적인 불선업
습관적인 불선업의 예로 우리는 마하목갈라나 존자를 언급할 수 있습니다. 그는 신통제일 상수제자입니다. 한때 그는 락카나 존자와 함께 독수리 봉에 살았습니다. 한 번은 그들이 독수리 봉을 내려오다가 마하목갈라나 존자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동행자가 왜 미소를 짓는지 물었고 그는 이것을 붓다께서 계신 곳에서만 물어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붓다 앞에서 락카나 존자는 다시 물었습니다. 목갈라나 존자는 해골이 공중으로 떠다니는 것을 보았다고 설명했습니다. 독수리, 까마귀, 매가 해골을 공격해서 조각내었고 그것은 고통스러워 신음을 토했습니다. 그는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인 놀랍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미소지었던 것이었습니다. 붓다께서 빅쿠들 쪽으로 시선을 돌려 설명하셨습니다.
빅쿠들이여, 진실로 눈(천안)을 계발한 제자는 머문다. 빅쿠들이여, 진실로 (더 높은)지혜를 계발한 제자는 머문다. 그 제자는 그런 것을 말하고 그것을 알고 그것을 보고 그것을 목격할 수 있다.
빅쿠들이여, 나도 예전에 그 광경을 보았지만 말하지 않았다. 내가 말했더라면 다른 이들은 나를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나를 믿지 않았다면 그것은 오랫동안 그들에게 손해와 고통을 주었을 것이다.
빅쿠들이여, 그 존재는 바로 이 라자가하의 도살자였다. 그는 그 업의 과보로 수 년, 수백 년, 수천 년, 수십 년 동안 지옥에서 고통받았다. 그 똑같은 업의 힘으로 인해 그런 개체의 존재를 획득하고 경험한다.
여기 도축업자의 생계는 소를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그의 습관, 즉 습관적 업이었습니다. 그 업으로 그는 지옥에서 오랫동안 고통받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지옥에서 죽었을 때 죽음에 근접한 인식과정이 살점 없는 소뼈 무더기를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이와 같이 그 같은 업 때문에 또는 그 같은 대상 때문에 그는 뼈 형태의 아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다음 생에 그는 여전히 도축업자로서의 습관적인 업 때문에 고통받았습니다.
마하목갈라나 존자는 그런 존재를 더 많이 보았다고 보고했고 붓다께서는 당신도 그들을 보셨다고 확인하셨습니다. 각 경우에 있어서 습관적인 불선업 때문에 고통 받는 존재들이었습니다.
· 소 도축업자는 수십만 년 동안 지옥에서 고통받았습니다. 그는 독수리, 까마귀, 매에게 찢길 때 고통으로 신음을 토하는 고깃덩어리 형태의 아귀로 태어났습니다.
· 간통한 여성은 지옥에서 수십만 년 고통받았습니다. 그녀는 독수리, 까마귀, 매에게 찢길 때 고통으로 신음을 토하는 피부가 벗겨진 형태의 아귀로 태어났습니다.
· 깟사빠 붓다 당시 믿음이 있는 불자로부터 네 가지 필수품을 받던 나쁜 빅쿠는 몸과 말을 절제하지 않았고 그릇된 생계를 영위했고 그가 좋을 대로 즐겼습니다. 그는 지옥에서 수십만 년 동안 고통받았습니다. 그는 고통에 겨워 우는 빅쿠 형태의 아귀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가사, 발우, 허리띠, 몸이 불붙어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습관적인 선업
행복한 습관적인 예는 담미까 거사가 있습니다. 그의 평생 습관은 붓다와 상가에 보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죽을 때 습관적인 선업의 목적지 표상은 그를 데려가려는 빛나는 마차를 타고 있는 여섯 천상계의 천신들이었습니다. 생전에 뚜시따 데와(도솔천)에 태어나기를 염원했기 때문에 그는 도솔천을 선택했습니다.
죽음 근접 업
죽음 근접 업은 죽을 때 아주 생생하게 회상되는 통상적이지 않은 드문 업입니다. 통상적이지 않은 업 자체는 습관적인 업을 압도할 만큼 충분히 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죽을 때 통상적이지 않은 업을 아주 생생하게 회상하면 생생하게 회상하는 그 행위가 습관적인 업을 압도할 만큼 충분히 강한 힘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통상적이지 않은 업이 그 과보를 만들고 그에 따라서 재생합니다.
죽음 근접 불선업
이것에 대한 좋은 예로 꼬살라 왕의 왕비인 말리까 왕비가 있습니다. 그녀는 독실한 불자여서 매일 왕궁에서 오백 명의 빅쿠들에게 탁발 음식을 보시했습니다. 그것이 그녀의 습관적인 업이었습니다. 죽을 때 그녀의 마음을 통제하지 못해서 전에 지었던 통상적이지 않은 불선업을 아주 생생하게 회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옥에 재생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상적이지 않은 불선업이 그리 강하지 않아서, 아주 약했다는 뜻이고 칠일 후에 그것은 습관적인 업에 눌렸습니다. 즉 그녀는 지옥에서 벗어나서 천상에 재생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죽는 시점에 불선한 행위에 머뭇거리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붓다에 믿음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임종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선행을 기억하거나 그의 삶에서 마지막 순간에 좋은 생각을 하도록 적극 권장하는 것이 관습입니다. (습관적으로 불선업을 지은)나쁜 성격의 사람이라도 죽기 전에 선업을 회상하거나 선업을 짓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대신에 그 업에 따라서 다시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죽음 근접 선업
땀바다띠까 망나니
이에 대한 좋은 예는 왕의 사형 집행자인 땀바다띠까가 있습니다. 그는 55년간 죄수의 목을 벴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자 한칼에 목을 날리지 못하자 퇴직했습니다. 퇴직하는 날 사리뿟따 존자에게 신선한 기(ghee)와 달콤한 우유죽을 보시했습니다. 그 다음에 사리뿟따 존자는 네 단계로 차제설법(anupubbi-kathā)을 했습니다.
· 보시 가르침
· 지계 가르침
· 천상 가르침: 보시와 지계의 과보
· 감각적 쾌락의 위험, 타락, 오염과 출리의 이익
사리뿟따 존자가 땀바다띠까의 마음이 고요해지고 준비가 되고 믿음으로 가득찬 것을 볼 수 있었을 때 붓다의 가장 수승한 담마(법)를 가르쳤습니다.
1) 괴로움, 2) 괴로움의 기원, 3) 괴로움의 소멸, 4)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수행
땀바다띠까는 현명한 주의력으로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충분한 지혜와 공덕행으로 예류도에 아주 가까운 상카라에 대한 평정 지혜까지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다음 그는 사리뿟따 존자를 배웅해 드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소의 탈을 한 악마의 뿔에 찔려 죽었습니다. 죽을 때 그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우유죽을 보시한 것과 담마를 들은 두 가지 선업을 생생하게 회상했습니다. 그것이 그의 직전 업이 되었고 뚜시따 데와(도솔천)에 다시 태어났습니다.
죽을 때의 마음
그런데 이 예를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평생 많은 불선업을 짓고 행복한 재생을 위하여 죽을 때 선업을 기억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땀마다띠까는 담마(법)를 들어서 상카라에 대한 평정 지혜까지 증득했습니다. 즉 이것은 세고 강력한 빠라미가 필요합니다. 그런 경우는 아주 예외적입니다. 붓다께서 매우 매우 매우 소수의 범부만이 죽어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죽을 때 자신의 마음을 통제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진이나 쓰나미와 같은 대참사로 죽거나, 전쟁이나 사고로 죽거나, 누군가로부터 공격을 받아서 죽는다면 두려움이 필연적으로 일어날 것입니다. 큰 두려움이 일어날 때 자신의 마음을 통제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두려움은 성냄에 뿌리한 것이고 성난 마음으로 죽으면 아귀계, 동물계, 지옥 중 한 곳에 태어날 것입니다.
또한 큰 고통이 따르는 끔찍한 병에 걸려 죽는다면 자신의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의사가 자신에게 다량의 약을 투여했다면 어떻게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평화로운 상태에서 죽는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마음은 아주 빠르게 바뀌기 때문입니다. 감각 단속을 결코 하지 않았거나 올바로 명상을 하지 않았다면, 항상 감각적 쾌락만 탐닉했다면 어떻게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수가 있겠습니까?
자신의 자식이 아름답다고 자신의 남편과 아내가 아름답다고 자신의 집이나 정원이 아름답다고 꽃과 다른 것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면 탐욕과 어리석음에 뿌리한 마음입니다. 이것은 현명하지 못한 주의력에 기초한 왜곡된 지각입니다. 현명하지 못한 주의력으로 그런 대상을 습관적으로 본다면 죽을 때 갑자기 현명한 주의력으로 그런 대상을 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또한 죽음에 대해서 결코 곰곰이 생각해 보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죽음의 침상에서 죽어가는 것에 걱정할 것이고 불행해 할 것입니다. 이것은 성냄과 어리석음에 뿌리한 것입니다.
그리고 결코 만족과 인내를 수행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죽음의 침상에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인내심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이 또한 성냄과 어리석음에 뿌리한 것입니다.
누군가에 대하여 원한을 품고 죽을 수도 있고 악행을 한 것에 대해 후회하면서 죽을 수도 있고 선행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하며 죽을 수도 있습니다. 이 또한 성냄과 어리석음에 뿌리한 것입니다.
죽음 후에 무엇이 일어날지 혼란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어리석음에 뿌리한 것입니다. 그런 마음(탐욕과 어리석음에 뿌리한, 성냄과 어리석음에 뿌리한, 어리석음 하나만 있는)으로 죽으면 사악도에 태어나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붓다, 붓다의 제자, 업의 작용을 가르치는 다른 사람들이 세 가지 공덕의 토대를 수행하도록 권장하는 것입니다. 즉 사람들이 악도에 태어나는 것을 피하도록 돕기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공덕행이 저열하거나 그릇된 수행이거나 그릇된 견해에 바탕한 것이라면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지은 업
이것은 완료된 업입니다. 이것은 20가지 업 중에서 완료된 업입니다.
10가지 불선업의 길
3가지 신체적 불선업의 길
1) 살생, 2) 도둑질, 3) 그릇된 성행위
4가지 언어적 불선업의 길
1) 거짓말, 2) 중상모략, 3) 거친말, 4) 쓸데 없는 말
3가지 정신적 불선업의 길
1) 탐욕, 2) 악의를 품음, 3) 사견을 지님(업의 작용, 재생, 다른 존재의 세계 등을 부인함)
10가지 선업의 길
3가지 신체적 선업의 길
1) 살생을 하지 않음, 2) 도둑질을 하지 않음, 3) 그릇된 성행위를 하지 않음
4가지 언어적 선업의 길
1) 거짓말을 하지 않음(오직 사실만을 말함)
2) 중상모략을 하지 않음
3) 거친말을 하지 않음
4) 쓸데 없는 말을 하지 않음
3가지
1) 탐욕하지 않음
2) 모든 존재들에게 선의를 가짐
3) 바른견해를 지님(업의 작용, 재생, 다른 존재의 세계 등을 인정함)
그런 불선업이나 선업은 이번 생, 전생 또는 무한한 과거생에서 지었을 수도 있습니다. 앞의 세 가지 업이 없거나 일어나는데 실패하면 이것이 재생을 일으킵니다. 이미 지었던 불선업은 동물, 아귀, 지옥에 재생을 일으키고 이미 지었던 선업은 인간계나 천상계에 재생을 일으킵니다.
빠르게 과보로 나타난 업의 예
자신의 점심을 먹지 않고 붓다께 공양 올리고 그날 왕비가 된 경우,
사리뿟따 존자나 마하깟사빠 존자 등 아라한이 상수멸(멸진정)에서 나온 직후 공양을 올린 공덕으로 바로 선한 과보를 받은 경우,
목숨이 위태로워도 붓다께 꽃을 보시한 과보로 그날 여덟 가지 종류의 상을 받은 경우, (여덟 가지 상: 여덟 마리 코끼리, 여덟 마리 말, 여덟 명의 남자 일꾼, 여덟 명의 여자 일꾼, 여덟 가지 보석, 팔천 냥, 여덟 명의 아름다운 아내, 여덟 개의 마을)
남편과 아내가 공동으로 가지고 있는 단 하나의 옷마저 붓다께 보시한 과보로 그들은 그날 상을 받은 경우, (네 마리 코끼리, 네 마리 말, 사 천냥, 네 명의 남자 일꾼, 네 명의 여자 일꾼, 네 개의 마을)
아라한이 상수멸(멸진정)에서 나오자마자 보시한 공덕으로 그날 선한 과보를 받은 경우,
아라한인 빅쿠니를 욕보인 사람이 그 즉시 땅이 갈라지고 지옥에 떨어진 경우,
붓다께서 가시는 길을 막은 사람이 그 과보로 일 주일 뒤에 지옥에 떨어진 경우,
돼지 백정이 돼지를 잔인하게 죽인 과보로 칠 일간 돼지처럼 방을 기어다니다가 죽어서 아위찌 지옥에 태어난 경우,
그 외 업의 과보가 얼마나 빨리 나타나는가에 대한 정확한 시간은 붓다만 알 수 있습니다.
안녕하고 행복하시길
담마다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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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두 사두 사두
사두사두사두
사두 사두 사두
늘 건강하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