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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진열장 안에는 수천 년의 세월을 베고 누운 녹슨 창날들이 가지런하게 정렬되어 있다.
처음 눈길이 닿았을 때는 그저 오랜 시간 흙 속에 파묻혀 녹이 슬고 빛을 잃어버린, 더 이상은 그 무엇도 뚫을 수 없을 만큼 무뎌진 쇳조각처럼 보였다. 그러나 진열장 옆에 붙은 짧은 안내판의 숫자를 확인하는 순간, 나의 발걸음은 석상처럼 굳어버리고 말았다.
철모(鐵鉾) 104점 — 포항 흥해 옥성리 유기 무덤 출토 철제 투겁창.
유리창 가까이 다가가 창날의 궤적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열 자루 남짓까지는 차분히 셀 수 있었으나, 스무 자루를 넘어서면서부터는 숫자가 겹쳐 보이며 헷갈리기 시작했다.
한 인간의 생을 지상에서 거두어 땅속에 묻는 자리에, 어째서 백 자루가 넘는 쇠창이 필요했던 것일까. 평생 전장을 누비며 수많은 피를 흘렸던 장수였을까, 백 명이 넘는 전사를 호령하던 당대의 군장(君長)이었을까.
저 쇠창들은 단지 한 사람의 죽음을 기리기 위함이 아니라,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 이미 사라져버린 어느 이름 없는 나라를 함께 묻어주기 위한 제물이었을지도 모른다.
유리 너머로 숨결이 닿을 듯 얼굴을 바짝 밀어붙이자, 검붉은 녹층 사이로 태고의 불꽃이 번쩍이는 듯한 환영이 스쳤다. 그리고 어디선가 귓가를 울리는 둔탁하고 묵직한 쇠 두드리는 소리가 환청처럼 밀려들었다.
쾅. 쾅. 쾅.
팔거천(八莒川)의 물길이 비바람을 머금고 세차게 불어나던 어느 밤이었다. 사흘 밤낮으로 그칠 줄 모르고 내리는 빗속에서, 팔거천 언덕 아래 대장간은 밤이 깊어도 불빛이 꺼지지 않았다. 늙은 철장(鐵匠) 두리는 화덕 속에서 벌겋게 달아오른 쇳덩이를 집게로 끌어내 모루 위에 올려놓았다. 망치가 내려앉을 때마다 주위로 불티가 사방으로 흩뿌려졌고, 작고 검었던 쇳덩이는 모진 매질 속에서 조금씩 창의 형상을 갖춰갔다.
대장간 어둠 속에서 팔짱을 낀 채 그 광경을 가만히 바라보던 무로, 그는 팔거천과 금호강이 만나는 팔달촌을 다스리는 군장이었다. 그의 터전에 뿌리를 내린 사람들은 주변의 그 어느 부족보다 쇠를 다룰 줄 알았다. 날카로운 쇠도끼가 투박한 나무도끼를 대체했고, 쇠로 만든 따비는 굳은 땅을 훨씬 깊숙이 뒤집어놓았다. 쇠가 삶 속으로 들어오면서 밭은 넓어졌고 곡식은 풍성해졌다. 몰려드는 사람의 수도 늘어났지만, 안타깝게도 사람의 온기보다 더 빠르게 퍼져나간 것은 사람을 베는 무기였다.
“좋은 창이 될 것 같으냐?”
무로의 나지막한 물음에 두리는 즉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붉은 쇳덩이를 다시 화덕의 깊은 숯불 속으로 밀어 넣었다. 화덕 안에서 검은 쇠가 붉게 물들었다가 다시 노란빛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두리는 오직 눈빛과 감각만으로 읽어내며 망치를 들 순간을 계산하고 있었다. 수십 년간 쇠를 주무르고 두드려온 장인의 손길이었다. 한참 뒤에야 그가 입을 열었다.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좋은 쇠’라는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쇠에도 엄연히 강함과 무름, 좋고 나쁨의 차이가 존재하지 않더냐.”
“좋은 바탕을 가진 쇳덩이야 있겠지요. 하지만 그 쇠가 사람의 목숨을 살릴지, 빼앗을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쇠를 쥐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두리는 대장간 벽면에 기대어 놓인 물건들을 손끝으로 천천히 가리켰다. 흙을 엎는 따비와 곡식을 거두는 낫, 나무를 베는 도끼, 그리고 날이 서린 창이 가지런히 서 있었다.
“밭으로 가면 땅을 열어주는 따비가 되고, 황금빛 들판으로 가면 곡식을 거두는 낫이 되며, 산으로 들어가면 집을 지을 나무를 베는 도끼가 됩니다. 그리고…… 사람에게 다가가면 상처를 입히는 창이 되는 법이지요.”
두리가 마침내 망치를 내려놓자, 대장간 처마를 타고 떨어지는 굵은 빗방울 소리가 정적을 채웠다. 무로는 빗줄기 넘어 어둠을 응시하며 묵직한 목소리를 건넸다.
“형산강 너머에서 사로(斯盧)의 세력이 점차 우리 호흡을 조여오고 있다. 압독(押督)마저 흔들리고 영천 골벌(骨伐)으로 이어지는 길목마다 경주에서 보낸 군사들이 서성인다는 소문이다.”
두리 역시 얼마 전 금호강 건너 달구벌에 사로에서 보낸 금동관이 들어왔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해 가을 달성토성에서 대규모 대관식을 거치며, 달구벌과 사로는 겉으로는 형제이나 실상은 군신(君臣)의 관계로 재편되었다. 오랫동안 든든한 우군이 되어주었던 달구벌의 보호막이 사라져버린 지금, 팔달촌에 흐르는 공기는 비장하다 못해 차가웠다.
두리가 달아오른 쇠를 찬물에 집어넣자, 치익 하는 비명과 함께 하얀 김이 대장간을 가득 메웠다.
“이 위기를 벗어나고자 창을 만들라 하시는 것입니까?”
“창을 제때 들면, 때로는 전쟁을 사전에 막아낼 수도 있는 법이다.”
“창을 높이 들어 전쟁을 막아냈다는 이의 이야기를, 저는 아직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두리의 말에 무로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으나, 그는 화를 내지 않았다. 두리는 그의 아버지 대부터 이 마을의 쇠를 책임져온 터줏대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만들어라. 이번에 만드는 창은 한낱 사람을 죽여 피를 묻히기 위한 무기가 아니다.”
“사람을 베지 않는 창이라면, 대체 어디에 쓰시려는 것입니까?”
무로는 끝내 대답을 아꼈다. 다만 창이 모두 완성되자, 그는 창날 밑자락에 작은 홈 세 개를 새겨 넣도록 했다. 표시의 의미를 묻는 두리에게 무로는 동쪽 하늘의 비구름 넘어 흐르는 금호강을 바라보며 읊조렸다.
“이것은 약속이다. 아직 우리가 보지 못한, 그러나 곧 함께 서야 할 사람들과 맺을 맹세다.”
며칠 뒤, 팔달촌의 젊고 용맹한 전사 가람이 등에 창을 짊어진 채 동쪽을 향해 길을 떠났다. 길을 나서는 가람에게 무로는 지침을 내렸다.
“압독으로 먼저 가라. 그다음은 골벌(骨伐)로 향하고, 마지막에는 동쪽 바다 가까이에 터를 잡고 사는 근기국(勤耆國)의 비해를 찾아가라. 경주의 사로가 우리를 하나씩 집어삼키기 전에, 우리 역시 큰 힘으로 뭉쳐야 한다고 전하거라.”
가람은 창의 촉감을 느끼며 걸었다. 솔직히 그는 전쟁을 두려워 하지 않는 혈기 왕성한 청년이었다. 묵직한 쇠창을 손에 쥐고 있으면 세상 그 누구보다 강해진 듯한 기분에 빠지곤 했다. 나무창과는 비교할 수 없이 무거웠지만,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번쩍이는 창끝을 보고 있으면 온몸의 피가 뜨겁게 끓어오르는 듯했다.
금호강 물줄기를 따라 걸어 내려가는 동안, 가람은 강변에 자리 잡은 마을마다 스며있는 쇠의 흔적들을 느꼈다. 한 농부는 따비를 땅속 깊숙이 박아 넣으며 굳은 흙을 뒤엎었고, 숲속에서는 쇠도끼의 날카로운 울림에 거목들이 쓰러졌다. 들판에서는 아낙네들이 쇠낫으로 노랗게 익은 보리를 베어 담고 있었다.
자신의 등에 업힌 쇠는 사람의 목숨을 빼앗기 위해 날이 서 있는데, 눈앞의 쇠는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삶을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이 묘한 낯설음으로 다가왔다.
해가 지평선 너머로 물들 무렵, 가람은 마침내 압독에 도달했다. 군장 아달은 웅장한 궁궐에서 가람을 맞이했고, 가람은 무로에게 받은 ‘맹약의 창’을 그의 앞에 정중히 내려놓았다.
“팔달의 무로께서 보내신 창입니다.”
아달은 창을 집어 들고 날 밑에 새겨진 자국을 유심히 살폈다.
“이 세 개의 홈은 무엇을 뜻하는가?”
“팔달과 압독, 그리고 동쪽 바다의 근기국이 서로 손을 잡는다는 약속입니다. 골벌까지 동참한다면 네 세력이 됩니다. 비록 골벌은 압독에 의지하는 바가 크고 세력이 작은 촌락에 불과해 아직 천하를 논할 세력에는 미치지 못하나, 힘을 모으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길목입니다.”
그러나 끝내 아달의 입에서는 함께하겠다는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는 맹약의 창을 한동안 바라보다 다시 가람 앞으로 밀어놓았다.
“오늘은 돌아가거라. 압독의 운명을 창 한 자루만 보고 결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가람은 더 말을 보태지 않았다. 억지로 얻어낸 약속이라면 위기의 순간에 더 쉽게 깨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창을 다시 등에 메고 압독의 성문을 나섰다.
해가 서쪽 산등성이에 걸릴 무렵, 가람은 압독과 가까운 골벌로 발길을 돌렸다. 압독에서 마음을 얻지 못했다면 골벌에서라도 동쪽으로 이어지는 길을 열어야 했다. 무로가 말했듯 골벌은 큰 세력은 아니었지만 금호강과 형산강을 잇는 길목에 자리해 사람과 물자가 모이는 곳이었다. 그곳이 사로의 손에 넘어간다면 팔달과 압독, 동쪽 바다를 잇는 길마저 끊길 수 있었다.
골벌의 군장 고해는 전사라기보다는 눈치가 빠르고 셈이 밝은 상인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그의 거처에는 동쪽 바다에서 넘어온 소금과 서쪽에서 들어온 곡식, 남쪽의 알록달록한 토기들이 쌓여 있었다.
가람이 무로의 뜻을 전하자 고해는 한동안 말없이 창끝을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나는 피를 흘리는 전쟁이 싫다. 전쟁이 터지면 물자가 다니는 길이 막히기 때문이다.”
“만약 사로가 무력으로 그 길마저 독점해 버린다면 군장께서는 어찌하시겠습니까?”
“길에 무슨 주인이 따로 있겠느냐. 오가는 이가 곧 주인이지.”
가람은 압독에서와 마찬가지로 선뜻 답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물러서지 않고 골벌에 며칠 더 머물렀다. 사람과 수레가 끊임없이 오가는 길목을 바라보며, 언젠가 저 길의 주인이 달라질 수 있다는 자신의 경고가 현실이 되기를 기다렸다.
그 일은 생각보다 훨씬 빨리 찾아왔다. 며칠 지나지 않아, 경주 쪽에서 올라온 군사들이 골벌로 향하는 길목마다 단단한 목책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들은 수레마다 실린 물건을 일일이 검사하며, 철을 실은 상단(商團)에는 터무니없이 무거운 세금을 요구했다. 멀리서 그 광경을 무거운 심정으로 바라보던 고해는, 그날 밤 가람을 불러 술잔을 비우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틀렸다. 나는 왕이란 단지 땅을 지배하는 자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정작 길을 악착같이 움켜쥐는 자가, 결국 그 길 위에 놓인 모든 땅과 사람까지 차지한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그해 가을, 형산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신성한 언덕 위로 네 명의 군장이 모여들었다. 무로는 팔거천의 젖은 흙을 가져왔고, 아달은 압독 들판에서 자란 쌀을, 고해는 금호강의 맑은 물을 항아리에 담아왔다. 그리고 동쪽 바다에서 근기 군장 비해는 소금 한 줌을 뿌렸다.
무로가 그릇 위에 번쩍이는 쇳가루를 뿌리며 입을 열었다.
“우리가 가져온 흙도 다르고 물도 다르지만, 불 속에서 제련된 쇠는 어디서나 똑같은 쇠입니다.”
비해가 맹약의 창을 땅속 깊숙이 꽂아 넣으며 덧붙였다.
“육지를 따라 흘러가는 모든 강물도, 결국엔 하나의 거대한 바다에서 만나는 법이지요.”
네 부족의 군장들은 창에 손을 얹고, 어느 한곳이라도 사로의 침략을 받으면 서로 힘을 합쳐 맞서 싸울 것을 강물과 바다 앞에 맹세했다. 그날 밤 네 사람은 자신들이 역사의 거대한 물줄기를 바꾸고 있다는 뜨거운 신념에 차 있었다.
첫 전투에서 연맹군의 기세는 드높았다. 형산강 나루를 건너려던 사로의 정예 군사들은 연맹군이 철통같이 구축한 쇠창의 벽에 가로막혀 궤멸당했다. 날카로운 쇠창은 상대의 나무 방패를 사정없이 뚫어버렸고, 비명과 함께 말과 사람이 핏빛 강물 속으로 쓰러졌다. 전투가 끝난 후 가람은 자신이 베어 넘긴 적의 수를 세어보았다. 무려 열일곱. 승리의 흥분에 도취된 가람에게, 전쟁터를 돌며 부러진 무기들을 살피던 두리가 물었다.
“몇의 목숨을 빼앗았느냐?”
“열일곱 명입니다! 우리가 사로의 군대를 꺾었습니다!”
두리는 피가 눌러붙은 가람의 창날을 씁쓸하게 바라보다가, 진흙 속에 처박혀 있던 부러진 쇠따비 하나를 조심스럽게 주물렀다.
“나는 본래 이런 농기구를 만들어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자 쇠 다루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싸워 이기지 못하면 농사지을 밭마저 빼앗기고 맙니다!”
“결국 사람을 죽여야만 밭을 지킬 수 있는 세상이라면…… 쇠보다 사람이 먼저 망가져버린 것이겠지.”
첫 패배를 겪은 사로는 두 번 다시 군대를 보내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라해’라는 수완 좋은 사신을 연맹의 간극 사이로 침투시켰다. 라해는 고해에게 독점적인 교역권을 보장하겠노라 속삭였고, 압독의 실세들에게는 경주 귀족들과의 화려한 혼인 관계를 약속했다. 뛰어난 대장장이들에게는 질 좋은 원철(原鐵)을 선물하며 마음을 흔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네 부족 사이에 흉흉한 소문이 번지기 시작했다. ‘팔달의 무로가 철을 독점해 연맹의 왕으로 군림하려 한다’, ‘압독의 아달이 이미 경주와 비밀 맹약을 맺었다’, ‘비해가 바다의 부를 바탕으로 모두를 지배하려 한다’는 식이었다.
처음에는 코웃음을 치던 사람들도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게 되자, 점차 의심의 눈초리로 서로를 흘겨보기 시작했다. 회의장에서는 고성이 난무했고, 아달과 고해, 비해 사이에 걷잡을 수 없는 균열이 생겼다.
분노한 가람이 사신 라해를 찾아가 창을 겨누었다.
“싸우려거든 정정당당하게 창을 들고 전장에서 맞서라!”
라해는 가람의 날 선 창 끝을 여유롭게 바라보며 웃었다.
“왜 이리 미련하게 창을 든단 말이냐. 쇠는 거센 불에 달구면 단단히 붙지만, 사람은 자그마한 의심에 달구면 너무나 쉽게 갈라지는 법이거늘. 지금 그대들이 그러하지 않느냐?”
라해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연맹의 틈이 벌어지는 동안 사로의 압박은 오히려 더욱 노골적으로 변해갔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칼끝이 향한 곳은 압독이었다. 달구벌은 이미 사로와 우호 관계를 맺고 있었지만, 금호강 동쪽 길목을 장악한 압독은 사로가 북쪽과 서쪽으로 세력을 넓히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문턱이었다. 압독이 버티고 있는 한 사로의 군사와 상단은 금호강을 따라 마음대로 오갈 수 없었다.
처음에는 곡식과 철을 공물로 보내라는 요구였다. 아달은 전쟁을 피하기 위해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그러나 사로의 요구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얼마 뒤에는 압독의 길을 사로 군사들이 자유롭게 통과할 수 있도록 하라는 전갈이 날아왔다. 그다음에는 압독의 젊은 장정들을 전쟁에 동원하겠다고 했다. 급기야 아달의 집안에서 사람을 골라 경주로 보내라는 요구까지 이어졌다. 이름은 동맹이었지만, 사실상 복속하라는 명령이나 다름없었다.
그제야 아달은 오래전 가람이 자신에게 던졌던 말을 떠올렸다.
‘경주는 처음엔 쇠 한 자루를 요구할 것이나, 마지막에는 그 쇠를 만드는 사람과 우리가 딛고 선 땅 전체를 빼앗아 갈 것입니다.’
결정적인 사건은 그해 초겨울에 일어났다.
사로의 군사 수십 명이 허락도 받지 않은 채 압독의 경계를 넘어와 금호강 나루에 깃발을 세웠다. 이를 막아선 압독의 병사들과 몸싸움이 벌어졌고, 젊은 전사 하나가 사로 군사의 창에 찔려 그 자리에서 숨졌다.
다음 날 사로에서 사신이 도착했다. 사과는 없었다. 오히려 나루터를 비우고 사로군의 주둔을 받아들이라는 최후통첩을 내놓았다.
아달은 그날 밤 군장들을 불러 모았다.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던 그는 가람이 남겨두고 간 맹약의 창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나는 고개를 숙이면 파도를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파도는 물러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높아지고 있었구나.”
그는 창을 움켜쥐었다.
“오늘 길을 내주면 내일은 들판을 내놓아야 할 것이고, 그다음에는 우리 아이들까지 내놓아야 할 것이다. 더 물러설 곳이 없다.”
결국 압독은 사로의 나루터 주둔 요구를 거부하고 군사를 일으켰다. 사로의 턱밑에서 직접 압박을 받아온 압독으로서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봉화가 산등성이를 타고 올랐다. 아달은 약속대로 팔달과 골벌, 동쪽 바다의 비해에게 급히 구원병을 요청했다.
그러나 이미 의심으로 얼룩진 연맹의 약속은 예전의 약속이 아니었다.
골벌에서는 사로와 싸우면 교역로가 끊길 것이라는 상인들의 반발이 일어났다. 고해는 군사를 움직이려 했지만 내부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길을 열지 못했다. 팔달 역시 라해가 뿌려놓은 의심의 씨앗이 자라 친경주 세력과 연맹파가 서로 창을 겨누는 지경에 이르렀다. 무로는 압독을 돕고 싶었지만 제 마을의 내분부터 수습해야 했다.
오직 비해만이 약속을 지켰다. 비해는 근기의 전사들을 모아 형산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러나 동쪽 바다에서 압독까지 가는 길은 너무 멀었다.
비해가 구원병을 이끌고 압독 가까이 다다랐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멀리 밤하늘이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압독의 성채가 불타고 있었다.
가람은 아달의 곁에서 마지막까지 피투성이가 되어 싸웠다. 아달은 옆구리에 깊은 창상(創傷)을 입고 쓰러지면서 가람에게 ‘맹약의 창’을 밀어주었다. 창날 아래 세 개의 홈은 부러진 맹세처럼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동쪽으로 가라, 가람아…… 강을 따라 바다가 나올 때까지 달리는 거다.”
“군장님도 함께 가셔야 합니다! 비해 님의 구원군이 오고 있습니다!”
“이미 늦었다. 살아남은 우리 사람들을 데리고 어서 떠나거라…….”
가람은 울부짖으며 살아남은 사람들을 끌고 동쪽으로 향했다. 무리를 이룬 이들은 전사들만이 아니었다. 아이를 등에 업은 어미, 절룩거리는 노인, 솥을 짊어진 아낙, 그리고 대장간의 쇠망치를 품에 안은 대장장이들이 있었다.
고향 터전은 잿더미가 되어 버려졌을지만, 그들이 피땀 흘려 쌓아온 기술과 삶의 의지까지 버릴 수는 없었다. 뒤를 돌아볼 때마다 압독의 밤하늘은 오랫동안 검붉은 화염으로 물들어 있었다.
험난한 산을 넘고 강을 따라 마침내 푸른 동해 바다에 다다랐을 때, 피난민들은 넋을 잃고 발걸음을 멈추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끝없는 물의 장관이었다.
“강이 어찌 이토록 넓을 수 있단 말인가…… 세상의 끝에 다다른 것 같구나.”
가람의 나지막한 탄식에, 비해의 영토에서 마중 나온 한 상인 여자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이것은 강이 아니라 바다라는 곳입니다. 여기가 세상의 끝처럼 보이시나요? 이곳은 물길이 시작되는 세상의 시작점입니다.”
그날 이후, 전쟁의 참화를 피해 몰려든 수많은 각 소국(小國)의 유랑민들이 근기국 옥성리 벌판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압독에서 온 농부들은 황무지를 개간해 논밭을 일구었고, 팔달에서 온 철장들은 대장간을 세워 화덕에 불을 지폈다. 영천 골벌의 상인들은 사방으로 통하는 길을 뚫었고, 바다 사람들은 배를 띄워 멀리까지 물산을 날랐다.
아이들이 태어나 울음소리가 퍼져나갔고, 마을이 커지는 만큼 언덕 위에는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한 거대한 무덤들도 하나둘 늘어갔다. 세월이 흐르며 고향을 잃은 난민들은 그곳에서 다시 삶을 틔워냈다. 자라나는 아이들은 팔거천이나 압독의 들판을 알지 못했지만, 그들의 피 속에는 팔달의 뛰어난 쇠 다루는 기술과 압독의 농사 지혜, 골벌의 상술이 깊게 녹아들어 있었다. 나라와 고향의 이름은 지워졌으되, 가진 기술과 기억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세월의 흐름 앞에 무로도, 고해도, 비해도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늙은 철장 두리 역시 어느 추운 겨울날 대장간 화덕 옆에서 망치를 품에 안은 채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어느덧 백발이 성성해진 가람은 죽음을 앞두고 맹약의 창을 어린 손자에게 물려주었다. 창날의 세 홈을 만지작거리는 아이에게 가람은 낮게 읊조렸다.
“이 창은 아주 오래전,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아남고자 몸부림쳤던 거룩한 흔적이란다. 너는 부디 이 창으로 그 누구의 목숨도 해치지 말거라.”
또다시 수십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옛 군장들의 이름은 완전히 잊혀졌다. 영웅들의 서사는 전설로 승화되었다. 그러나 옥성리의 무덤군은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어느 해, 옥성리를 다스리던 늙은 근기국 군장이 세상을 떠나자 사람들은 그의 장례를 치르며 수많은 쇠창을 무덤 속에 매장하기 시작했다.
열 자루, 쉰 자루, 백 자루……. 묘실을 가득 채우는 엄청난 무기들을 보며 젊은 대장장이가 노제관에게 물었다.
“남쪽에서 신라의 세력이 압박해오고 있는데, 어째서 이 귀한 쇠창들을 죽은 자의 무덤 속에 묻어버리는 것입니까?”
“이 창들은 우리 부족이 가졌던 힘과 역사를 저승까지 증명하기 위함이다.”
“창은 살아있는 전사의 손에 쥐여 있어야 가치가 있는 것 아닙니까? 싸우지도 않고 이대로 저들에게 굴복하려는 것입니까?”
그 질문에 새로이 족장에 오른 젊은 리더는 씁쓸한 눈빛으로 경주 쪽 하늘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무력으로 싸운다 한들 저 거대한 흐름을 이길 수 있겠느냐. 사람을 모두 죽여 무용(無用)한 이름 하나를 지키는 것과, 이름은 버릴지언정 사람들의 목숨을 살려 미래를 도모하는 것 중 어느 것이 진정 부족을 지키는 길이겠느냐.”
결국 근기의 지도자들은 신라로의 귀속을 선택했다. 장례의 마지막 날, 101번째, 102번째, 103번째 창이 무덤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늙은 제관이 어디선가 발견한, 검붉은 녹 아래 희미한 세 개의 홈이 새겨진 아주 낡은 쇠창 하나를 올려놓았다.
“이것은 104번째 창입니다. 어디서 온 무기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주 오래전 서쪽 강가에서 흘러왔다는 전설만 전해집니다.”
새 군장은 오래된 쇠창을 가만히 바라보다 조용히 명했다.
“그렇다면 이 옛 시대의 흔적도 이제 땅속에 편히 묻어주어라.”
104번째 창이 무덤 바닥에 놓이고 거대한 덮개돌이 덮였다.
흙이 덮이고 풀이 자라났으며, 왕조가 바뀌고 수천 년의 전쟁과 평화가 교차하는 동안 사람들은 옥성리의 옛 무덤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진열장 앞에 선 나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104자루의 창 중 어느 것이 그 ‘맹약의 창’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무로나 아달, 두리와 가람이라는 인물조차 내가 고대 유물 앞에서 벼려낸 환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딛고 섰던 팔거천과 금호강, 형산강은 지금도 멈추지 않고 포항 앞바다로 흘러들고 있다. 옥성리 땅속에서는 실제로 백 자루가 넘는 철모가 쏟아져 나왔다.
역사는 승리한 자의 이름만을 정사(正史)에 기록하지만, 땅은 패배하여 밀려난 자들의 삶의 흔적조차 버리지 않고 품어안는다.
신라라는 거대한 고대국가가 성립하는 과정에서, 사로의 칼날 앞에 스러져간 수많은 이름 없는 소국과 사람들의 피눈물은 기억되지 못했다. 누군가는 끝까지 저항하다 죽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기술과 씨앗을 품에 안고 이곳 포항의 바다로 도망쳐와 “여기가 우리의 새로운 시작”이라 외쳤을 것이다.
철(鐵)이란 참으로 묘한 물질이다. 농부는 그것으로 땅을 갈아 생명을 틔우고, 장인은 집과 배를 만들어 문명을 일구지만, 마음이 비틀린 인간은 같은 쇠로 칼을 벼려 서로를 찌른다. 따비와 낫, 도끼와 창은 본래 화덕 속에서 태어난 한 피붙이였으나, 그것을 쥐는 인간의 욕망에 따라 삶과 죽음의 도구로 갈라졌던 것이다.
전시관을 벗어나자, 포항의 저녁 노을이 영일만 바다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멀리 도시 위로 철골 구조물들과 거대한 공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1900여 년 전 옥성리 사람들이 바라보았을 바로 그 바닷가 곁에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대 문명을 지탱하는 포항제철소의 거대한 고로(高爐)가 웅장하게 서 있다.
고대 옥성리의 대장간 불꽃과 현대 제철소의 고로 사이에 아무 연결고리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땅이 가진 묘한 운명과 인연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1900년 전 쇠를 찾아 사람들이 모여들고 길이 열렸던 이 땅에서, 수천 년의 세월을 건너뛴 오늘날 다시 거대한 쇳물이 녹아내리며 나라의 뼈대를 세우고 있는 것이다.
옥성리의 화덕과 포항제철의 고로는 수천 년의 시간을 사이에 두고 끊임없이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달아오른 쇠로 너희는 무엇을 만들 것인가. 사람을 해치는 무기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모두를 먹여 살릴 이(利)로운 도구를 만들 것인가.”
쇠는 스스로의 운명을 선택하지 않는다. 언제나 선택하는 것은 그것을 쥐는 사람의 마음이다.
멀리서 묵직한 울림이 환청처럼 들려온다. 팔거천 대장간의 담금질 소리였을까, 옥성리 제관들의 망치질 소리였을까, 아니면 지금 이 순간에도 제철소 내부에서 거세게 요동치는 쇳물의 숨소리였을까.
쇠는 식으면 다시 불에 달구면 되고, 부서지면 녹여 다른 형상으로 다시 태어나면 된다. 인간의 역사 역시 이와 같아서, 한 나라가 무너진 자리에 새로운 삶의 터전이 들어서고, 패배한 이들이 흘린 땀방울이 수천 년 뒤 거대한 도시의 뿌리가 된다.
유리 진열장 속 104번째 창이 왜 그 오랜 세월을 견디어 오늘날 우리 앞에 나타났는지 비로소 알 것 같다. 그 창은 단순한 승리나 패배의 징표가 아니었다. 시련 속에서도 쇠를 붙잡고 살아남았던 보통 사람들의 뜨거운 흔적이자, 철과 함께 다시 일어선 이 도시가 간직한 가장 깊고 오래된 기억이었던 것이다.
동쪽 하늘이 더욱 깊은 붉은빛으로 물들어갔다. 1900년 전의 어느 철장도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화덕의 불씨를 살폈을 것이다. 그 불씨는 오늘 포항의 고로가 되어 뜨겁게 두 세대를 이어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