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현5년 거란황제 순사만문쌍룡문배사시날발전패고 天显五年契丹皇帝巡赐万文双龙纹背四时捺钵钱牌考 천찬통보 거란태조사오천문동전패상석겸담사시날발天赞通宝契丹太祖赐伍千文铜钱牌赏析兼谈四时捺钵
출처: 시나위 컬렉션 소스 : 동북아역사문물연구원
문: 契国长老
그림 1 청동질
폭 80mm 높이 157mm 두께 7.7mm 무게 510g
그림 2 청동질
폭80mm 높이157mm 두께8mm 무게525g
그림 3 청동질
폭 78mm 높이 155mm 두께 7.8mm 무게 500g
그림 4 청동질
폭 81mm 높이 157mm 두께 8.1mm 무게 540g
2017년 11월 저자가 쓴 '천찬통보 거란태조사오천문동전패상석겸담사시날발'이란 글에서 뒷면에 각각 '춘발', '하발', '추발', '동발'이 새겨진 4개의 동전패 세트를 처음 공개했습니다.
이 동전 세트는 '요사'의 '사시날발'에 대한 기록이 사실임을 증명합니다.이른바 '사시날발'은 요나라 황제의 사계행궁입니다.
요나라 황제의 순행 외에도 황제는 보통 이곳에서 두 가지 일을 주관합니다.
하나는 남북 관리들과 군국 대사를 상의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유공 대신에게 상을 주는 것입니다.'사시날발(四時捺钵)'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동전패는 이렇게 생겨났습니다.
얼마 전 저자는 샘터에서 '춘발', '하발', '추발' 및 '동발'이 새겨진 4개의 뒷면 동전 패 세트를 보았고 자세한 내용은 (그림 1), (그림 2), (그림 3), (그림 4)을 참조하십시오.
처음 만났을 때 저도 모르게 깜짝 놀랐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비슷한 돈패가 있다니요.
돈문장을 보니 요 태조가 만든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샘의 동료와 함께 감상하기 위해 샘의 친구의 동의를 얻어 이 글을 특별히 써서 공개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필자가 이전에 소개한 엽전패(약칭 저채)와 겉모습은 비슷하지만 앞부분의 글의 주요 내용은 크게 다릅니다.이 세트의 앞면에는 첫 번째 주년인 '천현5년'이, 그 세트는 '천찬통보'가, 이 세트의 앞면에는 가운데에 '황제순사만문'이, 그 세트는 '태조사오천문'이 주어져 있습니다.
요컨대, 이 지폐 세트의 독특한 점은 '천현5년'이라는 기년이 새겨져 있다는 것인데, 이는 요나라 지폐에서 처음 보는 것으로, 이 지폐 세트의 대를 끊을 수 있는 확실한 시간적 근거를 제공합니다.
《요사-태조본기》에 따르면, 천찬 4년(925) 12월 26일, 요 태조 야율 아보기솔황후 속률평, 황태자 야율배, 대원수 요골 등이 발해를 친정하였습니다.
토벌하러 가는 길에 천찬 5년(926) 2월 5일, 천하를 대사하고 원천현(元天顯)으로 고쳤습니다.천현 원년(926) 가을 7월 27일, 태조는 발해를 정복하고 돌아오던 중 부여성(지금의 길림농안 경내)에서 병사했습니다.
다음날(28일) 황후는 속률적으로 조정에 임하여 칭호를 내리고 군사를 임시로 결정했습니다.이듬해(927) 겨울 11월 15일, 황후 속률평은 인황 야율배 등 군신들의 요청에 따라 태조의 둘째 아들 야율덕광을 황제로 즉위시키는 데 동의했습니다. 태종을 위해서입니다.
회사가 있으면 직원을 바꾸세요, 허용되지 않습니다.천현 13년(938년) 11월 23일, 개원하여 회동합니다.
위에서 천현년호는 태조 아보기, 황후 속률평, 태종 야율덕광의 세 가지 주요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태종이 천현 2년(927)에 황제가 되었다면 천현 5년(930)에 태종이 황위에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것으로 이 지폐 세트는 요 태종 야율덕광에 의해 만들어졌고 천현 5년에 만들어졌다고 단정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화폐 표지에 있는 '황제 순사만문'의 '황제'는 당연히 요 태종 야율덕광입니다.
순사만문(巡赐萬文)의 뜻은 태종 황제가 사시날발(四時捺钵)을 순행할 때 유공대신에게 동전 1만문, 즉 천현통보(天顯通寶) 소평(小平) 동전 1만개를 하사했다는 뜻입니다.
이 정도 액수는 현재로서는 천문학적인 액수입니다.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문제를 볼 수 있는데, 요 태종 때 그 국력이 그 부황 재위 때보다 강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