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대한 수필 9
사람의 길
류인혜
장편소설 《상도(商道)》의 한 부분을 다시 읽었다. 처음 읽을 때는 뒷이야기가 궁금하여 행간이 주는 의미를 생각하며 꼼꼼히 정독하지 못했다. 다시 찬찬히 읽을 것이라 미루어 두었던 것이다.
어느 곳에선가 같은 저자는 다른 장편소설을 쓰기 전에 준비 자료로 100여권의 책을 읽었다는 기사를 읽고 난 후 그의 소설가적인 치밀함에 감탄을 했다. 그래서 그가 쓴 소설에는 믿음이 간다. 소설의 기저를 이루는 작가 정신이 뼈라고 한다면 미리 준비한 막대한 자료들은 소설의 살이 되어 준다. 독자는 그렇게 쓴 한편의 소설을 통해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기에 책을 읽는데 드는 비용과 수고를 아끼지 않게 되는 것이다.
《상도》에서 되풀이해서 읽고자 했던 부분은 소설의 정점인 주인공 임상옥과 김정희에 관한 이야기다. 거상 임상옥은 어느 날 자신의 평생의 친구이자 동업자인 박종일을 김정희가 머물고 있는 과천의 봉은사로 보낸다. 임상옥이 인편에 보낸 <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 이라는 글이다. 평생 하늘 아래 제일의 부자, 천하제일의 상인이 되고자 했던 임상옥이 비로소 깨달은 경지를 열 자의 문장으로 압축시킨 것이다. 김정희는 그 문장을 쓴 경위를 소상히 물은 후에 “채마밭에서 채소를 가꾸는 한갓 늙은이가 마침내 채마밭에서 금불상 하나를 캐내었구나! 탄성을 질렀다. 임상옥의 호는 ‘가포(稼圃)’이니 채마밭에서 채소를 가꾸는 늙은이인 것이다.
그 부분을 저자는 이렇게 풀었다. 글을 쓴 임상옥이나 그의 정신을 단숨에 꿰뚫어 본 김정희나 이미 보통 사람의 경지를 뛰어넘은 현인들인데 임상옥은 상(商)을 통해서 김정희는 서(書)를 통해서 이루었다. 불가에서는 깨달음의 경지를 남에게 내보임으로 해서 그 타인의 경지까지 알아보는 방법이 있는데 이를 ‘거량’이라고 부른다. 가끔 내 생각을 꼭 알아야 되는 사람이 정확하게 알아챌 수 있을까, 염려했던 적이 많다. 누구든지 상대의 입장에서만 그 사람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개인적인 관점이 조금이라도 섞이게 되는 것이다.
달마상을 잘 그렸던 김정희는 승려인 친구 백파(白坡)를 위해서 달마상을 그려주었으며, 연경에 가서 귀한 책을 몇 해에 걸쳐 구해온 제자 이상적이 제주도까지 찾아오자 그 유명한 <세한도>를 그려주었다. 이상적이 스승을 위해서 정성을 다하는 마음을 베풀 수 있도록 많은 비용을 가만히 감당해준 임상옥이다. 김정희는 임상옥을 위한 선물도 마땅히 생각을 했을 것이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은 대상에 따라 베풀어주는 내용이 달라진다. 그러나 받은 사람이 기뻐할 선물을 생각하는 시간은 오래 걸린다.
심부름을 온 박종일을 열흘이나 붙잡아 두었다가 들려 보낸 것이 “채마밭에서 채소를 심는 노인에게 천축(天竺)에 사는 늙은 노인이 늙은 과일 하나를 보내오니 맛있게 드셔 달라”는 말과 함께 친전이라고 쓴 봉투 하나이다. 그 봉투 속에 든 늙은 과일은 과연 무엇이었던가.
임상옥과 박종일의 긴장된 시선과 함께 펼쳐지는 두루마리에서는 ‘상업지도(商業之道)’, ‘가포시상(稼圃是賞)’, ‘노과(老果)’ 이렇게 차례로 글이 나타난다. 그리고 멀리 낮은 산자락이 솟아 있는 배경으로 펼쳐진 전원에는 채소밭이 있는데 노인 하나가 채소를 가꾸고 있고 채소밭 옆으로는 강물이 흘러가고 있는 풍경화가 그려져 있었다. 화제(畵題)인 상업지도에 대한 부언 설명을 적은 문장을 천천히 음미하고 난 임상옥은 ‘오직 하나일 뿐, 둘 이상은 있을 수 없다(只可有一 不可無二)’ 라고 감복을 한다.
김정희는 발문 끝에 ‘老果老人書(노과노인서)’라고 적고 낙관을 찍었다. 김정희가 임상옥에게 보낸 선물, 늙은 과일은 바로 김정희 자신이다. 죽음을 앞둔 두 노인이 생애 마지막으로 서로의 우정을 확인하여 나눈 최후의 선문답이다. 저자는 김정희의 그림에 대해서 피를 쥐어짜는 듯한 삽필의 필법도 사라져버리고 거친 몽당붓의 기교도 완전히 사라져버리고, 글자의 ‘피와 살’도 완전히 사라지고 근육도 사라져버린 단순한 선과 몇 개의 점으로 이루어졌다고 표현한다.
머리끝이 쭈뼛이 솟고 가슴이 울렁거렸다. 소설의 허구성이 실제의 사건처럼 생생하게 다가 왔다. 그 상황에 몰두하니 내가 임상옥의 경지에 이른 것과 같고 김정희의 달관에 도달한 느낌이 들었다. 평생을 자기가 목표한 것을 향하여 최선을 다해서 달려온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흡사 미물인 달팽이가 자신의 몸을 먹이로 내어 주고 빈 껍질로 남듯이 지니고 있는 모든 정신을 쏟아 이루어낸 경지가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빈 몸이 되는 것이다. 앙상히 드러난 뼈에 살가죽만이 남았지만 눈빛은 형형하게 살아 상대의 골수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안목으로 자족하게 되는 두 사람의 우정이 부럽다 못해 무섭기까지 하다.
소설의 줄거리를 떠나서 그 부분을 다시 읽어야겠다고 미루어 두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옛사람의 문장이나 글에 대한 숨은 이야기는 소설 속에 필요해서 인용한 것이지만 긴 인생의 길을 걸어와서 결국 남게 되는 정신의 뼈에 대한 부러움 또는 집착이다.
사람은 자기의 길을 스스로 개척해나간다. 오래 걸어온 길에 대한 애착은 사람마다 절실해서 혹시 그 길이 잘못되었다 해도 쉽게 돌아서지 못한다.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었는데 다른 여분의 옷이 없다면 계속 입고 있어야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내 갈 길을 밝히 볼 수 있어 만약 잘못되었다면 이제라도 돌아서서 올바른 길을 찾아 떠날 용기를 가졌는가, 자문해 본다.(2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