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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은오는 마희가 준비해 준 찬합을 들고 집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그의 차가 집 앞에 섰다.
“집에서 기다리라니까.. 덥지? 얼른 타.”
“네.”
은오가 조수석에 타자 차를 출발시켰다.
“어디로 가요?”
“좋은 곳..”
은오가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한 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왜요?”
우진이 손을 들어 은오의 얼굴을 반대편으로 살짝 밀었다.
“운전 중이야. 사람 설레게 자꾸 쳐다보거나 웃지 마. 알았지?”
“네..”
“어허~! 집중해야해..”
“네..”
은오가 창밖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안나는 그늘이 만들어진 그네에 앉아 있었다.
“안 더워?”
재원이 얼음이 동동 띄워진 아이스티를 긴 유리잔에 들고 나왔다.
“곧 오신댔지?”
“응.”
재원이 그녀 옆에 서자 안나가 그의 손에 들린 아이스티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재원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의 손과 얼굴을 바라보았다.
“뭐?”
“그거 나 주려고 갖고 나온 거 아니야?”
“아닌데? 나 마시려고 갖고 나온 건데?”
“씨~.”
안나가 입술을 삐죽이며 손을 내리자 그가 피식 웃었다.
“마셔.”
안나가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렇지? 나 마시라고 갖고 나온 거지?”
안나가 아이스티 잔을 받아 들고 한 모금 마시고 얼음을 한 개 입에 물었다. 오물거리며 얼음을 먹고 있는 안나가 곧 얼음을 씹어 먹자 그가 인상을 찡그렸다.
“이 다 썩어.. 왜 안 녹여먹어?”
“왜 녹여먹어? 얼음은 씹어 먹어야지. 난 사탕도 씹어 먹는데? 그걸 언제 녹여 먹냐?”
“정말.. 하아..”
“뭐!”
재원은 고개를 저으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맛있다.. 그런데 이렇게 차가운 거 마셔도 돼?”
“응. 다 나았어. 그리고 부모님한테는 말하지 않았으면 해.”
“왜?”
“그냥. 다 나았는데 뭐하러 신경쓰시게 해.”
“오~. 철들었나?”
“철은.. 네가 안 들었지..”
“이 자식이.. 칭찬해 주면 너도 날 칭찬해 줘야 하는 거 아니야?”
“칭찬해 줄~게 있어야 칭찬을 하지.. 이건 뭐.. 애도 아니고.. 후우~. 졸지에 동생이 둘이 되게 생겼네..”
“뭐? 나야말로.. 아가를 두 명 키우게 생겼다..”
“내가.. 내가 왜 아가야?”
“하는 짓이 꼭 애 같으니까 그렇지.”
“내 놔. 신경 써 준거 고마워서 타 왔더니만.. 왜 잘 해줘도 좋은 소릴 못 듣냐고.. 안 내놔?”
“싫어. 내가 다 마실거야.”
안나가 잔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려 아이스티를 벌컥벌컥 마시자 재원이 손을 뻗어
유리잔을 잡았다. 끝까지 쪽 마신 안나는 잔을 가져간 재원을 바라보며 “헤~. 메롱~.” 이라며
웃으며 혀를 쏙 내밀었다. 재원은 마른 침을 삼키며 안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가을 향기를
담고 있는 바람이 그들 사이를 지나갔다.
“뭐야.. 왜 그렇게 보는데? 뭐 묻었어?”
안나가 손을 들어 입가를 만지자 재원이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으려고 손을 조금 움직이려
는데 차가 문 앞에 서는 소리가 들렸다. 안나가 미소를 지으며 그네에서 일어나 대문을 향해
달려가 문을 열었다.
“오셨어요?”
“그래. 잘 있었어?”
“네. 엄마랑 아가는요?”
뒷좌석에서 내린 엄마에게서 아가를 안은 아버지가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으셨다.
“엄마 좀.. 부탁한다.”
“네.”
아버지는 엄마가 잘 내리시는지 살펴보다가 집으로 걸음을 옮기셨다. 안나가 엄마를 부축해서 집으로 들어갔다.
“재원아.. 잘 있었어? 안나가 잘 안 먹였나? 얼굴이 상했어..”
“아니에요. 누나가 잘 해 줘서 편하게 지냈어요.”
“그랬어? 덥다. 들어가자.”
“네. 건강하신거죠?”
“응. 신경써 줘서 고마웠어.”
“아니에요.”
그들은 집으로 들어갔다.
그림 속 풍경 같은 모습에 은오의 눈이 커졌다.
“마음에 들어?”
“네. 그림 같아요.”
“그렇지?”
그들은 앞으로 시원한 강물이 흐르고 커다란 나무 하나가 있고 주위는 온통 잔디로 되어 있었다. 커다란 나무 아래에 벤치가 있었다. 그들은 나무 벤치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여긴 어떻게..”
은오가 물어보려다 입을 다물자 그가 웃음을 참으며 태연한 척 대답했다.
“알면서 뭘 물어?”
“그러니까요..”
은오가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
“뒤쪽으로 가면 펜션있거든. 그 건물 꼭대기에는 유리로 천정이 되어 있어서 밤에는 수많은 별들이 나에게 쏟아지는 것 같아. 비가와도 좋고, 눈이 오면 더 좋고..”
우진의 설명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은오의 입술은 질투로 점점 앞으로 나오고 있었다. 괜스레 운동화로 바닥의 돌을 툭 툭 건드리고 있었다. 그가 그녀 옆으로 와서 조용히 말했다.
“나중에 여기에서 살면 어때?”
“네?”
그가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나중에.. 여기에 예쁜 집 짓고 살자.”
“선생님..”
“친구 녀석들이랑 같이 왔을 때는 집 짓고 살고 싶은 마음은 없었는데.. 너랑 오니까 살고 싶네..”
“치.. 그 말을 누가 믿을 줄 알고..”
“안 믿어?”
“네.. 안 믿어요. 그 분이랑 오셨던거죠?”
“아닌데?”
“뭐.. 그 분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으니까 괜찮아요.”
은오는 애써 괜찮은 척 바람에 날리는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고개를 숙였다.
“은오야..”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계속 그렇게 질투도 해 주고, 서운해 해 주라. 나중에 다른 남자 좋다고 가버리면 안 돼.”
“치.. 선생님은 연애하실 거 다 하시고. 제가 밑지는 것 같아요. 저는 선생님이 다 처음인데..”
“나도 처음이야..”
은오가 피식 웃었다.
“정말이야. 처음이야.”
“알았어요. 친구분들이랑 오셨다고 믿어드릴게요.”
우진이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이 벤치에 앉았다. 시원한 바람에 나뭇잎에서 기분 좋은 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우진이 벤치에 누워 은오의 허벅지에 머리를 대고 누웠다. 은오는 숨을 들이마시며 손을 어떻게 하지 못하고 공중에서 작은 만세를 하듯 하고 있었다. 우진은 편한 자세를 잡고 팔짱을 끼우고 눈을 감았다.
“아~. 좋다..”
우진이 한 쪽 눈만 뜨고 은오를 올려다보았다.
“뭐해?”
“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요..”
우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는 손을 들어 은오의 손을 기도하듯 모아 잡아 가져와 손에 입을 맞추었다. 은오가 불규칙하게 숨을 쉬며 얼굴에 홍조가 올랐다.
“사랑스러워서 큰일이다..”
“선생님..”
“은오야. 2학기에는 아마 더 정신도 없을 테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을 거야. 지금처럼 자주 이런 시간을 갖지 못할지도 몰라. 그래도 힘내자.”
“네.”
“그럼.. 힘내라고 부적 줄까?”
“부적이요?”
그가 그녀의 손을 놓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일어나 앉아 주먹 쥔 손을 그녀의 눈 앞에서 펼치자 그의 손에서 목걸이가 주르륵 내려와 멈추었다.
“목걸이네요..?”
노란색 리본 모양의 팬던트안에는 큐빅이 박혀 있는 심플하지만 귀엽고 여성스러운 스타일의
목걸이었다. 그가 몸을 일으켜 벤치에서 일어나 그녀 뒤로 가서 섰다. 그리고 목걸이를 풀어
은오의 목에 걸어주었다. 은오가 손으로 노란색 리본 팬던트를 들어 바라보았다.
“마음에 들어?”
은오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정말.. 정말 마음에 들어요. 고맙습니다.”
우진이 손으로 벤치 등받이 부분을 잡고 몸을 숙여 은오의 이마에 입맞춤을 했다. 은오가 고
개를 숙여 손을 들어 이마를 만졌다.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니 그의 얼굴에 홍조가 오른 채로
고개를 약간 돌리고 헛기침을 하고 있었다.
“왜요? 부끄러운 건 전데.. 왜 선생님이 부끄러워하세요..?”
“흠.. 안나가 읽는 만화책에 이런 장면이 있어서.. 읽을때는 엄청 닭살스럽더니만.. 실제로 하니까 의외로 엄청.. 쑥스럽네..”
은오가 그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설마.. 처음이세요?”
“이 녀석이.. 선생을 놀려?”
은오가 벤치에서 일어나 천천히 그를 향해 다가가자 우진이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세요?”
“그만 놀려.. 또 감당못할 일 만들지 말고..”
하지만 은오는 배시시 웃으며 점점 그에게 다가갔고, 그도 그녀가 다가오는 만큼 뒤로 갔다가 앞으로 와서 은오를 품에 안았다. 은오가 숨을 멈추었다.
“경고.. 했어. 분명히..”
은오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은오야..”
“네..”
“사랑해..”
그가 고개를 천천히 숙이며 은오를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2학기는 정말 조용하고 긴장감이 넘치는 교실에서의 생활이 이어졌다. 추석명절이었지만 다들
학교나 학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 안나는 밤이고 낮이고 울어대는 아가를 바라보
며 한 숨을 내쉬었다.
“재나야.. 언니가 아주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거든? 잠 좀 재워주라..”
안나의 품에 안긴 재나가 울음을 멈추고 고사리 같은 손가락으로 그녀의 얼굴을 만졌다.
“조그만 게 울음소리가 어찌나 우렁찬지..”
안나가 재나의 손바닥에 입술을 대고 바람을 불자 재나가 깔깔거리고 웃었다. 재나는 아버지가 안나의 ‘나’ 자와 재원의 ‘재’ 자를 따서 지으셨다. 두 사람의 이름에서 아이의 이름을 짓고 싶다고 하셔서 결정된 이름이었다.
“재나야.. 내가 누구게~. 언니. 언니라고 해봐.. 응?”
재원이 그녀를 보며 콧웃음을 터트렸다.
“바보냐? 겨우 한 달 지났어. 이제야 뭔가 보이겠구만..”
안나는 재원을 흘겨보고는 다시 웃으며 재나를 보았다. 재원이 다가와 조심스럽게 재나를 데리고 갔다.
“재나야.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들은 예쁘고 좋은 것만 봐야해.”
“뭐야. 내가 못생겼다는 뜻이야?”
재원은 그녀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게.. 그렇지. 싸가지 어디 가겠어.. 엄마. 저 도서관에 가요.”
“그래. 조심해서 다녀와.”
“네.”
안나가 가방을 메고 신발을 신고 집을 나왔다.
마희는 식구들과 만들어 놓은 송편을 예쁜 상자에 담았다.
“누구주려고? 지난번에 왔던 반장?”
“응.”
“그거 말고 이거 담아. 이게 더 예쁘네.”
“이쁘긴.. 그건 엄마가 만든 거잖아.”
“어차피 입에 들어가면 똑같은 맛이 나는 송편이거든?”
“어때 보여요?”
“누구.. 반장? 뭐.. 키도 크고, 잘생기고, 공부도 잘 한다면서.. 생각은 바른 것 같더라. 우리 보고 당황하지도 않고 제대로 인사도 할 줄 알고 말이야. 엄마는 마음에 들어.”
“그래?”
“너는?”
“난 싫어. 만나지 마.”
아빠가 단호한 표정으로 나오셨다.
“아빠의견은 안 물어봤거든요?”
“뭐?”
“아빠는 누굴 데려와도 똑같이 말씀하실 거잖아요.”
“그야..”
아빠가 멀쑥한 듯 표정을 지으셨다.
“그럼 전 잠깐 나갔다 올게요.”
상자를 들고 마희는 집을 나섰다.
우진은 동수가 보고 싶었다. 동수가 앉던 자리를 바라보다가 젓가락으로 밥을 조금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동수는.. 잘 있다니?”
누나가 그에게 물어보았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전화해보면 알 것 아닙니까.”
“우리한테 사실대로 말하겠니? 너한테나 말하겠지. 어떻게 지낸대?”
동수는 그 곳에서 경영학공부만 하고 있다고 다른 가족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족들 몰래 우진이 보내주는 돈으로 음악공부도 함께 하고 있었다. 잠자는 시간도 쪼개어서 아는 형과 함께 음반작업도 종종 하는 모양이었다.
“저도 고3 담임을 맡아서 바빠서 요즘은 메일 확인도 못했습니다. 잘 있겠죠.”
“네 반 학생들은 어떻니?”
어머니의 물음에 우진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고3은 다 똑같죠. 뭐.” 라고 대답했다.
“특별한 아이가 있던데?”
나물을 집으려고 젓가락을 가져가던 우진이 멈칫했다. 그리고는 다시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나물을 집어 입에 넣었다. 나물을 씹어 삼키고 대답했다.
“특별히 공부를 잘 하는 녀석도 있고, 특별히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는 녀석도 있죠.”
“이 녀석이 어디서 나랑 말장난 하자는 거야?”
우진이 젓가락을 내려놓고 물을 마셨다.
“말장난은 어머니가 먼저 시작하셨죠. 어머님답지 않게 왜 빙빙 돌려 말씀하십니까?”
어머니가 한 쪽 입꼬리를 올리며 그를 바라보셨다.
“이름도 알고, 사는 곳도 알고, 그 아이 부모님이 뭐하시는 지도 알아. 학교에서 평이 어떻지도 알고. 그래도 공부는 잘 하는 아이 같더라만.. 집안은 형편없더구나.”
우진은 오른 손을 꽉 쥐었다.
“한실장님이 움직이셨네요. 그래.. 언제부터 조사를 시작하셨습니까?”
“그게 궁금하니? 나 같으면 앞으로 어떻게 할지가 더 궁금할 것 같은데.”
“너.. 학생 만나니?”
누나가 그에게 물었다.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여보.”
매형이 누나의 팔을 잡았다.
“어쩜.. 두 분이 정말 똑같으신지.. 그래서 앞으로 뭘 어쩌실 겁니까?”
“학교 그만 둬. 그리고 회사 경영에 참여해.”
“회사는 누나랑 매형이 잘 운영하고 계시죠. 저는 학교가 좋습니다.”
“그 아이는 지난 번 여자보다 잃을 게 더 많지.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그 아이가 이 사회에서 뭘 할 수 있겠니?”
“어머니!”
“큰 소리 칠 것 없어. 그 아이 정리하고 학교 그만두고 호텔일 해. 그러면 되는 거야.”
우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라리 호적에서 판다고 하십시오. 이 집과 무관하게 살라고 하시면 그렇게 살겠습니다. 박변호사님 만나서 유언장 고치라고 하십시오. 언제 제가 이 집 재산 갖고 싶다 한 적 있습니까?”
그가 고개만 까닥거리며 인사를 하고 집을 나왔다. 운전대를 잡은 손이 떨렸다. 화가 나서 떨
리기도 했지만 정말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일에 대한 두려움에 떨렸다. 그는 차를 몰아 은오
에게 갔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은오는 집 앞에 그의 차가 있는 걸 보고는 반가워 깡총거리며 달려갔다.
“선생님.”
문을 열고 그가 나와 은오를 품에 안았다. 은오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의 품에 안겨 물어보았다.
“선생님.. 무슨 일 있으셨어요?”
우진은 조용히 손을 들어 은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표정을 바꾸고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보고 싶어서..”
우진의 말에 은오의 얼굴이 붉어졌다. 우진이 살짝 인상을 썼다가 다시 미소를 지으며 붉어진 은오의 볼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저도.. 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명절이라서 댁에 가셨을 것 같아서 전화 안 드렸어요.”
“하지.. 참지 말고 언제든 전화해. 알았지?”
“네.”
“저녁 먹었어?”
“맛있는 거 사주시려구요?”
“먹고 싶은 거 있어?”
“생각이 별로 없어요.”
“타. 저녁 먹으러 가자.”
“선생님도 안 드셨어요?”
“응. 인사만 드리고 왔어. 빨리 보고 싶어서.”
은오는 다시 붉어진 얼굴로 그의 차에 올랐다.
“조금 멀리 가도 돼?”
“네.”
“뭘 믿고..”
“선생님은 믿어요.”
우진이 피식 웃으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
마희는 하성과 이모 찻집에 앉아 마희가 가져온 송편과 녹차를 먹고 있었다.
“맛있어. 네가 만든 거야?”
“응. 엄마랑 같이 만들었어.”
“어머님도 솜씨가 좋으시구나.”
“뭐 집안 내력이지.”
하성이 미소를 지었다.
“공부 잘 돼?”
“응. 뭐 그럭저럭. 얼마 안 남았으니까 앞으로 정신없겠지.”
“난 대학 안 갈 생각이었어.”
“그래?”
“응. 휘트니스자격증 따서 센터 차릴 거거든. 그런데 아빠가 하도 원하셔서 요리학과에 가게 될 것 같아.”
“둘 다 하면 멋지겠다.”
“그렇게 말해주니까.. 기뻐..”
마희가 턱을 괴고 하성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도서관에서도 공부가 잘 안 되어 일찍 집으로 돌아온 안나는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식탁에 앉았다. 엄마가 재나를 낳은 후로는 집안 일을 해 주시는 분이 식사도 만들어 주셨다. 그녀는 불고기에 들어간 커다란 피망을 젓가락으로 젖히고 불고기를 집어 입에 넣었다. 밥 한 숟가락 먹고는 다시 불고기를 집어 입에 넣고 열심히 씹었다.
“뭐하는 거야?”
재원이 인상을 찡그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뭐가?”
그녀는 입에 아직 남아 있는 불고기를 씹다가 대답하자 재원이 고개를 돌리며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에이~, 진짜..”
안나가 입을 다물고 열심히 씹어 삼킨 후에 재원에게 다시 물었다.
“뭐가~.”
“예전부터 물어보고 싶었던 건데.. 피망 왜 안 먹어?”
“그걸 왜 먹어?”
그녀의 대답에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재원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뭐?”
“아니.. 고기가 있는데 왜 맛없는 피망을 먹어야 하냐고.. 고기가 이렇게 많이 있는데..”
“싫어해?”
“별로.. 오이는 좋은데 이건 맛이 좀..”
“하여간.. 애도 아니고 편식하기는..”
재원이 쯧.. 혀를 차고는 숟가락을 들어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 안나가 그를 흘기듯 바라보다가 얼른 젓가락을 들어 피망 아래 숨어 있는 불고기를 집으려고 하자 재원이 얼른 피망을 집어 자신의 입에 넣었다. 안나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자 피망을 다 씹어 삼킨 재원이 다른 반찬을 집으며 조그맣게 말했다.
“젓가락으로 음식을 헤집는 건 예의가 아니야.”
“치..”
안나는 조심스럽게 식사를 다시 시작했다. 불고기를 입에 넣고 행복해하는 안나를 보며 재원이 피식 웃었다. 식사를 마친 안나는 엄마와 교대해서 재나에게 우유를 먹이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마. 저녁 드세요.”
“천천히 먹지.”
“재나야.. 언니가 먹여줄게.”
안나는 재나를 품에 안고 젖병을 입에 물렸다. 재나가 손을 들어 젖병을 쥐고 있는 안나의 손가락을 잡자 안나가 미소를 지었다.
식탁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재원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가 액정 화면을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2층으로 올라가면서 전화를 받았다.
“응.. 잠깐만..”
계단을 올라가던 재원이 멈추고 핸드폰을 손바닥으로 막고 부모님께 말했다.
“잠깐.. 집 앞에 나갔다가 올게요.”
“그래..”
재원이 전화기를 다시 귀에 대고 “잠깐 기다려..” 라고 말하며 현관을 나섰다.
“뭐야..”
안나는 고개를 돌리고 품에 안겨있는 재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재원이 대문을 열고 나가자 채영이 서 있었다.
“여길 왜 왔어?”
“왜 헤어지자고 한 거야?”
“한 참 전에 끝난 얘기 하려고 온 거야?”
“너만 끝났지.. 난 안 끝났어.”
채영이 그를 원망하듯 바라보았다. 재원이 고개를 숙이며 한 숨을 내쉬었다.
“미안해. 여름 방학되기 전에도 말 했잖아. 시간을 달라고 했던 건 너였어. 얼마나 더 시간을 줘야해? 지난 번에도 말 했듯이.. 미안하지만 그만 헤어지자.”
“다른 여자가 생긴 거야? 그래? 바람.. 피워?”
“시작부터 언제든 헤어지자고 하면 쿨하게 헤어지기로 하고 사귄 거 아니었나?”
재원이 차가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안나야.. 나가서 재원이 뭐하나 봐봐.. 나간 지 한 참 된 것 같은데..”
엄마가 안나에게 말씀하셨다.
“알아서 들어오겠죠. 얘도 아니고..”
엄마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자 안나가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네..”
슬리퍼를 신고 마당을 가로질러 대문을 열려고 손잡이를 잡았는데 뭔가 짝! 소리가 났다. 흠
칫 놀란 안나가 문을 열고 눈앞에 있는 재원과 채영을 바라보았다. 재원이 눈을 커다랗게 뜨
고 안나를 바라보았다.
“뭐야..?”
채영이 고개를 돌려 안나를 바라보았다.
“언니!”
안나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채영을 바라보았다.
“누구세요..?”
“몇 번 인사 드렸었는데.. 기억 안 나세요?”
“뭐.. 그런데 지금 왜 재원이를 때린 거에요?”
“재원이가..”
“하지 마!”
채영이 말하려고 하자 재원이 막았다. 채영이 눈살을 찌푸리며 재원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콧방귀를 꼈다.
“허.. 뭐야.. 저 언니야? 그래?”
“아니야. 네가 쓸데없는 소리하는 게 싫어서 그런 거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너 얼굴에 다 표시나~.”
안나는 도대체 무슨 소린지 몰라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재원이 한 대 때렸으면 됐어요. 가세요. 재원이 저녁 먹다가 나왔어요. 들어가자.”
안나가 내려와 재원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재원이 안나와 함께 마당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재원을 그네에 앉혔다. 그리고 그의 붉어진 볼을 바라보았다. 재원이 피식 웃었다. 그제야 아
직도 손을 잡고 있다는 생각에 안나가 손을 놓으려고 했다. 하지만 재원이 손에 힘을 주었다.
“놔..”
“잠깐만..”
“왜 맞고 다녀? 나한테만 센척하지?”
“여름방학 전에 헤어지자고 했는데.. 시간을 달라고 해서.. 지난주에 다시 말 했거든. 정말 미안하지만 헤어지자고..”
“헤어지자고 하면 때려도 되는 건가? 그래서 나는 연애가 싫어..”
재원이 고개를 돌리며 피식 웃었다.
“손 힘 엄청 센가봐. 빨갛게 부어올랐어. 들어가서 얼음찜질해..”
재원이 천천히 시선을 들어 안나를 바라보았다.
“왜 헤어졌는지.. 안 궁금해?”
“싫어서 헤어진 거 아니야?”
재원이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싫어서 헤어졌어.”
“맞고 다니지 마..”
“걱정 돼?”
“웃기시네.. 걱정은 무슨.. 나중에 재나한테 꼭 말해줄 거야. 커서 너 같은 남자 만나지 말라고..”
“뭐?”
“바람둥이..”
안나가 재원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뺐다. 그리고 등 뒤로 돌려 손을 문지르자 재원이 침을 힘겹게 삼켰다.
“아직도.. 싫어?”
“그게 아니야. 설명.. 제대로 못해서 미안해.. 들어가자.”
“응. 먼저 들어가.”
“응.”
안나가 몸을 돌려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재원이 떨리는 숨을 내쉬었다.
바다가 보이는 음식점에 앉아 창밖으로 넘실거리는 바다를 보았다.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아요.”
“나도..”
은오가 고개를 돌려 우진을 바라보았다.
“선생님..”
“응?”
“무슨 일.. 있으셨죠?”
“아니.”
“거짓말.. 이상하신데요?”
그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길게 내뱉었다.
“은오야.”
“네.”
“내가 만약에.. 만약에 말이다.”
은오는 순간 긴장을 하고 두 손을 꽉 쥐었다.
“집에서 쫓겨나면.. 네가 싫어할까?”
“네?”
“돈도 별로 없는 가난한 선생님이라면.. 떠날래?”
우진을 바라보던 은오가 눈을 감고 길게 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구었다.
“왜 그래?”
다시 고개를 든 은오가 눈가의 눈물을 손가락으로 닦았다.
“선생님이 헤어지자고 말씀하시는 줄 알았어요.”
“뭐?”
“만약에.. 만약에 그러셨잖아요.. 그 얘기 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하하하... 내가 정말 너 때문에..”
“전 상관없어요. 선생님 댁이 부자이신 건 선생님 사시는 집 보고 알았고, 타고 다니시는 차 보고 알았어요. 왜 쫓겨나실 것 같으신데요?”
“내가 말을 안 듣는다고..”
은오가 미소를 지었다.
“대학교 들어가서도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 받을 거예요. 대기업 들어가서도 열심히 저축할 거구요. 작지만 선생님께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우진이 손을 들어 은오의 손을 잡았다.
“집에서 쫓겨난다고 했지, 거지가 된다고는 안 했어. 집도 내가 벌어 산 거고, 차도 마찬가지야. 모아둔 돈도 좀 있어. 너한테 도움 안 받아도 된다는 뜻이야. 그냥.. 내 옆에 있어달라고..”
“그럴게요. 무슨 일이 생겨도 선생님 옆에 있을게요.”
“고마워.”
두 사람은 밥을 먹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따뜻한 차 안에 있고, 배도 부르니 은오는 졸음이 왔다. 집 앞에서 우진이 은오를 깨웠다.
“다 왔어. 집에 들어가서 편하게 자.”
“네? 벌써 다 도착했어요?”
“응.”
“죄송해요. 운전하시는데..”
“미안해. 피곤한 줄 알았으면 가까운데서 먹을걸..”
“아니에요. 내일 학교에서 봬요.”
“그래. 내일 보자.”
은오가 내리려고 하자 우진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고개를 돌린 은오가 그를 바라보았다.
“왜요?”
“그냥.. 헤어지기 싫어서..”
“정말.. 오늘 선생님 이상하세요.”
은오가 웃으며 몸을 돌려 자신의 손목을 잡고 있던 그의 손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그의 볼을 감쌌다. 그리고 그의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 했다.
“무슨 일이 생겨도 선생님 옆에 있을 거에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우진은 이를 세게 물고 손을 뻗어 은오의 뒷목을 부드럽게 잡아 당겼다. 그리고 은오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맞추었다.
첫댓글 재미있게 잘보고갑니다. 일상의소소한 행복들을 돌아보게 됩니다. 글 감사합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셔서 감사해용.. ^^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