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들의 변
- 문하 정영인 수필
젊은이들이 말하는 ‘꼰대’들의 특징의 순위가 변했다. 1위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조언이나 충고를 하는 것,
2위는 요즘 젊은 애들이라는 말을 자주 하는 것, 3위는 옛날에 비해 나아졌다는 말을 종종 하다는 것이라고
한다. 꼰대라고 하면 생각나는 이미지는 권위적, 고집이 세고, 참견하기를 좋아한다는 것. 꼰대 성향의 가늠
요소는 첫째 말투, 둘째 가치관, 셋째 오지랖이라 한다.
정작 꼰대인 노인들은 꼰대라는 말을 듣기도 싫지만 선생님, 어르신의 호칭도 떨떠름하지만 노인으로 불리
기도 싫다는 것이다. 사실 노인에 대한 마땅한 호칭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어느 지자체에서는 노인을 ‘선배
시민’이라고 조례로 공포했지만 그것도 그렇다. 그러면 노인이 아니면 후배 시민으로 불러야 하나?
‘청장년(靑壯年)’이라고 부르자거나 ‘~씨’ 자를 붙이자거나, 혹은 ‘시니어(senior)’로 바꾸자고 했더니 한글
단체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는 것이다. 영어권에서는 미스터(Mr)하면 되는가본대 수직적 호칭에 유난히
민감한 우리는 어중간한 처지에서 맴돌고 있다.
고령사회에서 65세 이상은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다. 부담이 돼버린 노인으로, 생산기능 인구에서 탈락한
부양의 대상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마치 계륵(鷄肋)처럼 말이다.
이 땅의 근대화 주역으로 고단한 삶을 살았던 주역들이 뒷방 노인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령 인구가 내년에 1000만명을 넘어선다. 국민 5명중 1명이 노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나라도
그들을 뒷방 노인으로 취급하기에는 경제적·정치적인 숙제인 셈이다.
일본에서는 60대를 실년(實年) 그 위는 고년(高年), 중국은 60대를 장년(壯年) 70대를 존년(尊年)이라
부른다. 영미권에서는 젊은(young)과 노인(old) 합성어인 ‘욜드(yold)라는 단어도 등장했다고 한다.
어르신, 신중년, 골든에이지, 시니어, 선생님 등등으로 불리우건만 다들 마땅치 않은가 보다.
차 뒤에 ‘어르신 운전중’을 붙이거나 ….
고대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노년에 맞서는 최고의 무기는 학문을 익히고 미덕을 실천하는 것’이라 했다.
이미 2000년 전에 ‘노인이 됐다고 은퇴할 생각을 말고 늘 새것을 배워 세상과 지혜를 나누라’고 했다.
어느 신부님은 “절대로 재산을 자식에게 넘겨주지 마라”라고 강조한다.
갈수록 노인 인구다 증가하니 노인 혜택에 대한 반감도 늘어나고 연금충, 틀딱층 같은 혐오표현도 늘어만
간다. 이젠 “노인의 호칭 갈등은 단순한 문화적 차원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라의 미래를 위해
경제·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를 암시한다”고 정순둘 이화 여대 교수는 말하고 있다.
경로우대증을 갖고 전철을 탄다. 경로석에 자리가 없으면 나는 젊은이들 자리 앞에 서는 것이 아니라
경로석 자라 앞에 선다. 구걸과 눈치 보기 싫어서 이다. 그렇다고 늙는 것을 어찌하랴!
이런 에피소드도 있다. 경로석에 여학생이 앉아 있었다. 한 노인이
“학생, 여기는 경로석이야.”
“할아버지, 저는 돈 내고 탔는데요.”
“여기는 돈 안 내고 타는 자리야.”
하기야 경로석에 공짜로 타는 노인층이 많아서 적자라고 야단이다.
국제노년학회가 정한 초고령 사회 3대 목표 첫째는 아주 늙은 나이까지 돌아다니기, 둘째는 최후까지
사회와 섞여 지내기, 셋째는 살던 곳에서 끝까지 살다가 삶을 마감하기 등이다.
그리고 보면 서울대 어느 교수가 말한 노년에 주의할 것이 ‘3관(三關)’이라 했다. 관절(關節), 관계(關係),
그리고 관심사(關心事)라고 했으니 말이다. 세월이 꼰대를 만든다. 늙은이를 꼰대, 연금충, 틀딱충이라
부르는 그대들도 시간이 지나면 꼰대가 반드시 된다.
지난번에 집사람과 지하철을 탔다. 자리가 없어서 경로석 앞에 서 있었다. 마침 앞에 앉은 노인이 일어나
길래 짐을 그 자리 놓고 집사람을 불렀다. 그런데 남자 노인 한 분이 무작정 궁둥이를 들이민다. 나에겐
금다쓰다 아무 말도 없다. 나이는 얼추 내 또래다. 어찌 보면 노인 공경은 배려지 권리가 아니다. 우리는
배려가 잦으면 권리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노인이 젊은이 보고 자리 내노라고 호통 치는 것처럼 말이다.
오늘도 나는 경로우대증을 가지고 친구들을 대공원 가는 지하철을 타고서 친구들을 만나로 간다.
전철 안 승객의 반쯤이 대공원에 가는 경로우대증 어르신들이다. 지금은 경로우대증 때문에 적자라고
아우성이다. 그러나 노인들이 집에만 있으면 병원비가 더 많이 나갈 것이다. 그러면 국가적인 손실도
많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젊은이들도 어느 날엔가 경로우대증을 발급 받을 것이다.
첫댓글 젊은 아이들이 뵈기싫어하는 노인을 보고 꼰대 라고 하지만
자신들도 곧 꼰대가 될 것입니다.
그런 말 투는 없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