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에서 ‘주가는 거래량의 그림자’라는 말이 있다. 거래량이 주가에 선행한다는 의미로, 주택시장에서도 같은 뜻으로 쓰인다. 전문가들은 지난 8월의 주택 거래량이 ‘바닥’이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통상 거래량이 바닥을 치고 나면 집값도 반등한다. 주택거래가 살아날 조짐을 보이면서 연말까지 바닥다지기를 끝내고 내년 초부터는 집값이 회복할 것이라는 진단이 부동산·금융계에서 나오고 있다. 연초 부정적 전망 일색이던 연구기관들의 주택시장 전망 보고서도 최근 들어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거래량과 가격, 그리고 주택 공급량 등의 지표가 시장 회복을 알리는 신호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값이 곧바로 반등하기는 어렵다는 비관론도 만만찮다. 집값의 추가 하락 가능성은 작지만 반등 모멘텀을 찾기도 힘들다는 것이다. 전문가 10인의 인터뷰와 국내ㆍ외 연구기관의 분석보고서를 통해 주택시장을 진단했다.
연말까지 바닥 다진 후 회복주택시장이 연말까지 바닥다지기 국면을 거친 후 내년 이후에 오름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주요 근거는 수급이다. HMC투자증권 김동준 애널리스트는 “2008년 이후 건설사들이 아파트 분양을 줄였기 때문에 내년부터 새 아파트 입주 물량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며 “특히 주택수요가 많은 서울의 경우 신규 공급 감소로 내년에는 집값이 오름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근 1년 동안 용인ㆍ고양시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집값 약세가 두드러졌던 주요 이유 중 하나가 일시 공급 과잉이다. 분양가상한제를 피해 2007년~2008년초에 일시 분양됐던 아파트들의 입주시기가 올해 집중된 것이다.
분양시장 침체가 지속되면서 건설사들은 지난해부터 분양 물량을 크게 줄였다. 아파트의 경우 분양에서 입주까지 2년 정도 걸리기 때문에 내년 이후 분양 물량이 크게 줄어드는 것이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올해 전국에서 29만9000여가구의 아파트가 입주하나 내년엔 18만8000여가구, 2012년엔 10만9000여가구로 급감한다.
최근의 조정국면이 기간과 폭에서 충분했다는 것도 반등을 예상하는 요인이다. 동부증권 김희준 애널리스트는 “올 하반기 전셋값이 오르면서 수도권의 소형 아파트를 사려는 수요가 늘고 있다”며 “이는 주택시장이 충분한 조정을 거쳐 실수요자들이 매수에 나서기 시작했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인터뷰한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지금은 확실히 바닥을 다지는 시기"라는 데 의견을 모은다. 내외주건 김신조 사장은 "공급부족에서 비롯된 전세난과 바닥권이라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주택시장이 연내 저점을 확인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내년엔 회복" 긍정적 보고서 러시내년 이후에는 주택매수심리가 살아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국민은행 박합수 부동산팀장은 “주택시장을 움직이는 주요 변수가 수요자의 심리"라며 "전셋값 상승, 입주물량 부족, 주택시장이 충분히 조정을 거쳤다는 인식 등이 실수요자들의 심리를 움직이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주택시장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이 대부분이었는데 최근 들어 긍정적 전망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신한금융투자, HMC투자증권,동부증권, 삼성경제연구소, 크레디스위스, JP모건 등 국내·외 증권사와 연구기관이 국내 주택시장이 상승 모멘텀을 찾고 있는 중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최근 내놨다. 신한금융투자 이선일 애널리스트는 “수도권 주택시장을 누르고 있던 입주물량 부담이 3분기를 정점으로 줄어들었다”며 “주택시장이 4분기부터는 완만하게 회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크레딧스위스(CS)는 보고서에서 주택가격이 2∼3년 내에 반등할 것으로 예상했다. CS는 그 근거로 매매와 전셋값 간의 차이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는데다 주택가격 하락과 소득 증가로 주택 구입 여력이 커지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JP모건은 정부의 경기 진작 노력으로 국내 부동산 시장이 곧 저점을 통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삼성경제연구소도 최근 보고서를 통해 국내 주택시장이 대세하락 국면에 접어들 가능성은 작다고 분석했다. 연구원은 주요 근거 중 하나로 선진국보다 낮은 국내의 주택 자가보유비율을 들었다. 우리나라는 주택 자가보유비율이 55.6%로 미국 66.9%, 영국 73.5%, EU국가 평균 72%보다 낮으며 이 때문에 국내의 주택수요기반은 탄탄하다는 것이다.
서울 강남권 재건축이 주택시장 회복을 이끌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대치동 은마아파트ㆍ개포동 개포주공ㆍ잠실동 잠실주공5단지 등 강남재건축의 빅3라고 불리는 대규모 단지가 올 하반기 들어 재건축 추진을 위한 잰걸음을 하고 있다. 분양대행사인 더감의 이기성 사장은 ”빅3 단지의 재건축 추진이 가시화할 경우 대규모 이주 수요 등으로 강남권 주택시장이 들썩거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회복의 걸림돌은집값이 추가로 급락하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본격적인 회복국면에 접어들기는 어렵다는 부정적 전망도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내고 “인구감소,가계부채 누적, 금리 인상 가능성, 주택보유 수익률 하락 등이 집값 하락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가계신용 잔액이 지난 6월 말 754조 9000억원까지 늘어난 가운데 전국 2인 이상 가구의 이자비용은 소득의 2.2%를 차지해 2003년 통계청 조사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연구원은 설명했다.
금융연구원 장민 연구위원은 “장기적으로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인구 고령화 등으로 전반적인 주택 수요가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수도권에 두드러지고 있는 미분양 적체와 입주지연 사태가 주택시장 회복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손은경 수석연구원은 “1~2인 가구 증가 등으로 소형 주택을 찾는 수요가 늘고 있는데 올해 수도권의 신규입주 물량의 70%가량은 전용면적 85㎡ 이상의 중대형이어서 수급이 엇갈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3~5년 후애는 주택시장이 안정세를 보일 것으로 보고 있다. 가장 큰 요인은 2013년부터 순차적으로 시작되는 보금자리주택 입주다. 시티프라이빗뱅크 김일수 팀장은 “보금자리주택은 1991년도 노태우정부 시절의 ‘수도권 5개 신도시 등 주택 200만가구 공급’ 이상으로 집값을 안정시키는 기능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분당ㆍ일산 등의 수도권 1기 신도시 입주가 시작된 1991년부터 5~6년간 서울ㆍ수도권 아파트값은 안정세를 보였다.
주택에 대한 투자 매력이 줄어든 것도 근거 중 하나다. 잠원동 강철수 공인중개사는 “2000년대 초중반에는 공급 부족에다 인플레이션까지 거쳐 집값이 크게 올랐다”며 “하지만 최근 들어 공급부족 문제가 해결됐고 소득 대비 집값도 크게 올라있어 물가상승률 이상의 상승세를 기대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소형 주택은 유망 상품전문가들은 주택으로 쉽게 돈을 벌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아예 수익을 내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고 조언한다. 이제는 상품별·지역별로 차별화 장세가 펼쳐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때문에 미래가치가 커질 주택을 선별하는 게 투자 포인트라는 것이다.
국민은행 박합수 부동산 팀장은 서울 강남권 재건축 대상 아파트와 서울ㆍ수도권의 리모델링 대상 단지를 주목하라고 권했다. 재건축의 경우 최근 시세가 최근 1년동안의 고점보다 많게는 20% 가량 떨어졌기 때문에 가격 장점이 부각된다는 이유다. 리모델링의 경우 다음달께 활성화방안이 나올 예정이기 때문에 바람을 탈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신한은행 김상훈 부동산전략 팀장은 "안정적인 임대수익이 기대되는 역세권 소형 오피스텔이 가장 유망하다"고 추천했다. 1~2인 가구가 늘어나는 데다 보유 대신 임차를 선호하는 20~30대 젊은이들이 증가하고 있어 소형주택 수요가 꾸준할 것이란 이유에서다.
시티프라이빗뱅크 김일수 팀장은 “베이비부머 세대의 본격적인 은퇴로 인해 안정적인 수익이 기대되는 상가 등의 수익성부동산에 대한 관심이 늘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피해야 할 상품으로 2기 신도시 등 수도권 외곽 아파트를 꼽았다. 분당 등 1기 신도시보다 입지 여건이 좋은 곳에 주변 시세보다 싼 가격으로 보금자리주택이 공급되기 때문에 외곽의 아파트는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란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