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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4일 묵상 본문 : 시편 44편 9절 - 26절 - 복음에 연합되어 고난 중에서도 소망을 품고 세상의 핍박에서 영적 승리를 누리며 살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새로운 한 주간을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에 주께로 나아갑니다.
어제는 평소와 다른 분주한 일정을 보내면서 처리해야 할 일도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주어진 일들 가운데 선한 일을 분별하게 하시고 주의 뜻을 따라 행하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죄와 부정함으로 더러워진 마음과 영혼을 오늘도 주님 앞에 내어 드립니다.
주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새 영과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게 하옵소서.
주와 교제하는 기쁨으로 주의 일에 동참하고 사랑으로 섬기는 자 되길 소망합니다.
마음을 주관하여 주시고 주 안에서 생명의 열매를 맺는 삶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하늘의 양식으로 먹고 누려야 다른 이들에게도 양식을 나누는 삶이 될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주 안에서의 풍성함을 누리며 넘치는 주의 사랑으로 행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날마다 은혜와 진리로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9 그러나 이제는 주께서 우리를 버려 욕을 당하게 하시고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10 주께서 우리를 대적들에게서 돌아서게 하시니 우리를 미워하는 자가 자기를 위하여 탈취하였나이다
11 주께서 우리를 잡아먹힐 양처럼 그들에게 넘겨 주시고 여러 민족 중에 우리를 흩으셨나이다
12 주께서 주의 백성을 헐값으로 파심이여 그들을 판 값으로 이익을 얻지 못하셨나이다
13 주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웃에게 욕을 당하게 하시니 그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조소하고 조롱하나이다
14 주께서 우리를 뭇 백성 중에 이야기거리가 되게 하시며 민족 중에서 머리 흔듦을 당하게 하셨나이다
15 나의 능욕이 종일 내 앞에 있으며 수치가 내 얼굴을 덮었으니
16 나를 비방하고 욕하는 소리 때문이요 나의 원수와 나의 복수자 때문이니이다
17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임하였으나 우리가 주를 잊지 아니하며 주의 언약을 어기지 아니하였나이다
18 우리의 마음은 위축되지 아니하고 우리 걸음도 주의 길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나
19 주께서 우리를 승냥이의 처소에 밀어 넣으시고 우리를 사망의 그늘로 덮으셨나이다
20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잊어버렸거나 우리 손을 이방 신에게 향하여 폈더면
21 하나님이 이를 알아내지 아니하셨으리이까 무릇 주는 마음의 비밀을 아시나이다
22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23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시고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마소서
24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가리시고 우리의 고난과 압제를 잊으시나이까
25 우리 영혼은 진토 속에 파묻히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
26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소서
본문 해설
시편 44편은 히스기야 시대의 고라 자손이 앗수르의 2차 침입 때 기록한 시편으로 본다.
앗수르의 1차 침입 때 히스기야와 그의 신하들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고 2차 침입 때 히스기야를 비롯하여 온 백성이 믿음으로 난관을 이겨내었기 때문이다.
시인은 1절부터 8절까지 주의 은혜로 번성했던 과거를 회상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기초로 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노래한다.
그리고 9절부터 16절은 유다가 국가적 위기 상태에 있음을 토로하면서 현재의 상황이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주어지는 심판으로 여기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17절부터 26절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고백하며 주의 인자하심을 통해 구원해 주시를 간구하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9절에서 시인은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버려 욕을 당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함께 싸워주지 않고 계심을 호소하면서 하나님께서 백성들이 대적들에게서 돌아서게 하셨다고 탄식한다.
그리고 자신들을 미워하는 자들이 자기들을 위해 탈취하고 하나님은 백성들을 잡아먹힐 양처럼 그들에게 넘겨주셨으며 여러 민족 중에 흩어 버리셨다고 토로한다.
앗수르 산헤립의 1차 침공 때 그들은 성안의 물건을 탈취하고 성전 기물과 기둥에 입혀진 금까지 모두 벗겨감으로써 철저한 수탈의 모습을 보여주었다.(왕하18:13~16)
이러한 대적들의 착취는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헐값으로 팔아 버리신 것과 같고 또한 그에 대한 이익을 얻지 못하셨다고 묘사하면서 하나님 백성이 수치당한 모습을 제시한다.
또한 백성들이 이방 나라에게 욕을 당하게 하시고 그들이 조소하며 조롱하고 있음을 말한다.
그리고 백성들이 이방의 백성들에게 이야기 거리가 되게 하시고 민족 중에 머리 흔듦을(아주 심한 조롱의 관용적 표현) 당하게 하셨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백성들의 능욕과 수치가 그들의 앞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원수들로부터 백성들이 비방당하고 욕하는 소리를 들음으로써 수치가 극에 달했음을 토로한다.
이러한 시인의 고백은 당시 앗수르의 산헤립이 유다 백성들을 향해 온갖 비방과 모욕을 퍼부은 사건을 의미하며 당시 히스기야 왕이 수치와 치욕을 당했던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그러나 시인은 이러한 수치와 치욕의 사건이 임했지만 백성들이 하나님을 잊지 않았으며(우상을 섬기지 않음) 주의 언약을 어기지 않았음을(당면한 시련이 범죄로 인한 것이 아님) 고백한다.
그래서 백성들의 마음은 위축되지 않았으며 걸음도 주의 길을 떠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승냥이의 처소에 밀어 넣으시고 우리를 사망의 그늘로 덮으셨다고 말한다.
만일 백성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잊어버리고 이방의 우상에게 손을 폈다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의 비밀을 아심을 제시하면서 자신들의 결백을 주장한다.
이와 같이 백성들이 결백하지만 종일 주를 위해 죽음을 당하게 되었고 도살할 양과 같이 여겨졌음을 제시하면서 이 상황에 대한 하나님의 간섭을 간구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깨시기를 구하며 주무시지 마시고 일어나서 백성을 버리지 말라고 호소한다.
또한 왜 주의 얼굴을 가리시고 백성의 고난과 압제를 잊은 것처럼 하시냐고 탄식하며 백성들의 영혼이 진토 속에 파묻히고 몸이 땅에 붙어버렸음을(낮아진 모습을 의미)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제 일어나 백성들을 도우시고 주의 인자하심으로 백성을 구원해 주시기를 간청한다.
나의 묵상
시인은 유다민족이 앗수르의 산헤립에 의해 멸망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잊지 않고 이방의 우상을 섬기지 않았으며 앗수르의 침략에 대해 하나님께 범죄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토로한다.
비록 앗수르의 침략이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이루어진 일이기는 하지만 그 고난과 핍박이 죄로 인한 것이 아니기에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 베푸심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사실 앗수르의 1차 침입 때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애굽과 반앗수르 세력에 연합하여 앗수르의 침략에서 이겨내려고 했지만 그 시도는 결국 실패하게 되었다.
이에 1차 침입의 실수를 회개하고 다시 2차 침입 때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시인은 히스기야를 비롯한 신하와 백성들이 앗수르의 2차 침공 때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하여 기도하면서 앗수르의 침략에 맞선 모습을 제시하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마도 2차 침공 당시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승리를 얻고자 했던 백성들과 히스기야를 보며 시인은 이러한 백성들을 돕지 않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의구심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과정을 통해 성도는 하나님께 복을 받는 자들 이지만 동시에 고난도 함께 받는 자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신다.
그래서 땅에서 누리는 복보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누리는 복에 중요성을 두도록 가르쳐 주셨으며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가 승리의 조건이 됨을 보여주셨던 것이다.
예수님도 제자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는데 자신들에게 무슨 상급이 주어지는지를 묻자 다음과 같이 대답해 주셨다.
28 베드로가 여짜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31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막10:28~31)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 복을 받는 자들이지만 땅에서는 박해도 겸하여 받는 자가 되며 궁극적으로는 영생을 받고 누리는 자가 되는 것임을 가르쳐 주신다.
바울도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도 하지만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함을 제시한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8:17)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러한 하나님의 진리를 모두 담고 있는 생명의 진리가 된다.
그래서 복음은 죽음을 의미하지만 생명을 말하고 고난을 담고 있지만 영광을 얻게 만든다.
땅의 기준으로 판단 될 수 없고 오직 하늘의 기준에 의해서 판단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복음 없이 행하는 모든 일은 헛된 일이 되며 복음을 통해 사는 자가 될 때 세상의 모든 헛된 것과 같은 것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의 손길로 변하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성도가 의를 위해 고난 받으면 그것이 주를 섬기는 일이며 다른 이들을 생명으로 이끄는 힘이 된다는 사실을 제시한다.
14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16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벧전3:14~16)
결국 성도가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사는 것을 의미하며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복음에 연합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복음에 연합되는 것은 십자가의 죽으심과 장사됨, 부활과 현현에 연합되는 것으로 죄에 대한 인식과 자기부인,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회복과 이웃과 은혜를 나누는 모습으로 이어진다.
본문의 시인도 이 과정을 거치고 있음을 보여주며 히스기야 왕이 앗수르 산헤립에게서 승리하는 과정을 통해 복음의 역사가 드러나게 만드셨음을 보여준다.
이 복음의 능력이 얼마나 인생의 중심과 가치를 변화시키는지 깨닫게 되며 복음을 바르게 알고 살아가는 인생이 얼마나 복된 인생인지 고백하게 하신다.
어제 예배 때 한 젊은 부부가 함께 예배하게 되었다.
그 부부는 코로나 이후 교회에 나갈 수 있었지만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교회가 복음은 말하지 않고 말도 안 되는 것을 말하는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집 앞에 보이는 우리 신현교회에 오랜만에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설교를 통해 복음을 강조하며 이야기했던 내용이 기억이 있어서 오후 묵상하는 시간에 왔는데 오늘은 묵상 나눔이 좀 일찍 끝났기에 잠시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이다.
이분들의 고백처럼 오늘날 교회가 복음은 멀리하고 사람의 교훈과 윤리 도덕, 그리고 종교적 행위에 대한 강조만이 선포되는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성도가 온전하게 되고 세상을 이기는 능력을 얻는 것은 복음을 통해 나타나는 열매이다.
여전히 나의 삶에서 이 열매가 온전히 드러나는 것이 부족함을 느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열매가 맺힐 수 있도록 그리스도께 붙어 있도록 독려하시며 이끌어 주신다.
이 열매가 나의 삶, 그리고 지체들의 삶, 그리고 새롭게 만나게 될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모습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오늘도 인생의 승리는 오직 복음에 연합된 삶의 모습에서 얻는 것임을 가르쳐 주십니다.
성도가 고난을 극복하고 이기는 것도 복음의 능력이며 영광 가운데 거하는 것도 복음의 능력을 통해 얻는 열매임을 다시 한 번 고백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연합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하나님 앞에서 죄와 허물로 살아가는 인생이 저의 모습이며 또한 많은 이들의 모습임을 고백합니다.
주의 긍휼을 베풀어 주시고 참 생명의 능력으로 사는 인생이 되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시인이 고난과 핍박의 상황에서 간구한 것은 하나님의 의로움이며 공의였고 또한 소망의 궁극적인 내용도 하나님과 함께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소망과 바람처럼 하나님은 앗수르의 군대를 물리치셨고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승리의 중심은 복음의 내용을 드러내는 것이며 고난과 죽음을 통해 부활과 생명의 은혜를 나누는 것으로 열매 맺습니다.
이 복음의 능력을 날마다 경험케 도와주시고 복음을 통해 생명을 누리는 자로 살게 하옵소서.
그리고 이 복음의 은혜를 다른 이들에게도 전해 주며 생명의 역사에 동참하게 하옵소서.
한 주간도 믿음 가운데 승리케 해 주시기를 소망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