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이 떠돌아다니는 곳에서
1989년부터 벨기에 브뤼셀의 유럽연합 선교부에서 선교사로 일을 하면서 틈을 내어 필리핀을 방문하였습니다.
그 첫 방문은 1922년 5월이었습니다.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 도착해 니노이 아키노 Ninoy Aquino 공항 바깥으로 나오는 순간에 '훅'하고 밀려오는 뜨겁고도 습한 열기에 나도 모르게 나지막한 신음을 내었습니다. 필리핀과의 첫 만남이 그렇게 약간은 충격적이면서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날 밤 공항 바깥으로 나오면서 만난 어린 소녀의 맑고 커다란 눈망울과 뿌연 달빛 아래 빛나던 야자나무 잎사귀들은 정말 잊지 못할 기억이기도 합니다.
하룻밤을 자고 난 다음 날 마닐라 중심가인 마카티 Makati로 나가니 거짓말을 조금도 보태지 않고 말해 길거리에 까만 매연 덩어리들이 가득 했는데 바로 눈앞에 까만색의 매연 가루 덩어리가 둥둥 떠다니며 온 거리를 유영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길거리가 깨끗한 브뤼셀과는 전혀 다른 딴 세상이었습니다. 눈앞에 둥둥 떠밀려 다니는 검정색 가루를 손으로 잡을 수 있을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어쩌면 이리도 매연이 심각할까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마닐라 도심 한가운데를 가르며 흐르는 파식 Pasig 강의 물은 시커멓다 못해 새까만 석탄을 풀어둔 것같이 혼탁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에서 가장 오염된 3대 강에 속한다고 하니 그 혼탁함은 끝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파식강 그 너머로, 마카티의 높은 빌딩 숲 사이로 떠도는 죄의 혼탁함과 사악함은 그에 비할 수도 없을 만치 날카롭고도 더러울 것입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비록 맑은 물이 흐르는 민도로 Mindoro 섬의 한적한 마을 위로도, 그곳 바나나 나무숲 사이로도 더러운 탐욕과 음란은 끝없이 흐를 것입니다.
저는 런던이나 파리의 거리도, 로마도 그리고 북유럽의 맑은 숲속도 자주 걷습니다. 그리고 독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검은 숲속에서 살고 있기도 하고 이따금 대구의 동성로나 도쿄의 많은 거리도 지나곤 합니다.
그리고 제 눈으로 봅니다. 마닐라의 거리 위를 떠도는 검은 매연 조각들처럼, 파식강 위에 부유하는 더러운 오물처럼 온 세상 구석구석 도심지 대로의 불빛 사이사이로 스며들거나 이젠 아예 대놓고 뻔뻔하게 사악하고 더러운 얼굴을 들이미는 저 무서운 음란과 탐욕과 타락한 쾌락의 스산한 죽음을.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에베소서 4:1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