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을 한판 샀다. 알이 제법 굵다.
적당한 냄비를 찾아 물을 절반쯤 채우고 계란을 하나씩 퐁당, 퐁당 담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세-엣....
갯수를 헤아리면서, 물에 풍덩 담기지 않게 조심스럽게 계란을 물속으로 집어 넣는다.
계란은 유려하게 물속을 헤엄쳐 바닥까지 잘도 내려간다. 깨지지도 않고.
그러고 보니 참 미련하게 계란을 물에 담그는 듯하다.
그냥 빈 냄비에 계란을 차곡차곡 넣은 후 물을 부으면 손쉬울 것을....
그런데....이 밤중에 계란은 왜 삶지?
그냥....
갑자기 삶은 계란이 먹고 싶어진 것도 아닌데,
이번에 산 계란은 알 자체가 통통하고 계란 껍질에 윤기가 도는듯 하다.
그래서 식욕이 동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쨋든 한 스무개쯤 물 속에 집어 넣은듯 하다.
한 판의 계란 중 몇개가 남지 않았으니...
가스 불을 약하게 켰다.
왠지 삶기면서 깨지면 안될 것 같아서다.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자 냄비의 물이 끓기 시작한다.
가스 불을 더 약하게 낮췄다.
'깨지는 것이 있으면 안되는데....'
문득 오늘처럼 계란을 삶으면서 들이는 정성에 생각이 미치자
부활절을 앞두고 계란을 삶던 것이 생각난다.
이젠 숫제 부활절이 다가와도 계란 한판 삶는 것도 귀찮아하지만,
예전에는 흰 계란을 구해다가 커다란 솥을 걸어놓고
계란을 삶아내지 않았던가.
그때는 또 깨진 계란을 얼마나 안타까워했던가.
부지불식간에 오늘은 그때처럼 계란을 삶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피식 웃어버린다.
정성을 들여서인가. 다행히 다 삶긴 계란 중 깨진 것은 하나 밖에 없었다.
"성공이다!"
뜨거운 물을 부어버리고 찬 물을 콸콸 틀어 놓은 후
나는 깨어진 계란을 집어들고 한번에 껍질을 벗겨 내렸다.
그러고선 소금을 찍어 계란을 한 입 베물었다.
뜨거웠다. 아주 많이....
차가운 물에 씻어내려 뽀송송한 계란 흰자위 부위는 차가웠지만,
노릇노릇하게 삶긴 계란 노른자 부위에선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다.
금방 삶아낸 계란 아니던가.
금방....
토리노 동계올림픽 중계를 보다가 무슨 연유에서인지
무단히 계란을 삶더니
뜨거운 계란 맛에 입천장이 수난을 당한 날이다.
나는 이렇게 가끔씩 생각없이,
더러는 무모하게,
또 더러는 호들갑스럽게....
멍청한 짓을 한다.
내 마음의 쉼표처럼.
첫댓글 따끈한 계란 맛있었겠네요 .나~~둥 먹고 싶어지네 여 ㅎㅎㅎㅎ
오늘 나도 멍청한 짓을 하고 멍청하게 있을려구요. 가스레인지 앞에서 기름이 튀어도 그 앞에 서있는 순간이 좋을때도 있지요. 두부전을 굽고 땡초가 들어간 버섯전을 구워서 잘 팔릴때 그 훈훈함 말입니다. 그래도 매일 세끼나 해 먹어야 하나 합니더
내 마음의 쉼표처럼.............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