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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기운 때문인지 잠이 들어버렸던 우진이 천천히 눈을 떴다.
“석찬아.. 물 좀..”
그가 몸을 일으키자 머리가 아파왔다. 두통에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인 채 왼 손만 뻗자 물병이 손에 잡혔다.
“고맙다.. 차대기 시켜. 물마시고 일어 날거야.. 왜 대답이 없어..”
우진은 물별뚜껑을 열면서 대답이 없는 석찬을 보려고 고개를 들었다. 은오가 무표정한 얼굴
로 침대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움찔 놀란 우진이 은오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펴보았다. 석찬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그가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
렸다.
“다른 뜻은 없어요. 쓰러지셨다기에.. 생각보다 괜찮으신 것 같네요. 그럼.. 차대기 시키시라고 나가면서 말씀드릴게요.
조심해서 가세요.”
은오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렸다.
“너는.. 건강..하니?”
그의 목소리에 은오는 한 걸음도 떼지 못했다. 그녀는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지 못하고 양 손을 모은 채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럼 아플 줄 아셨어요?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요. 선생님은.. 좀 마르셨네요. 피곤해 보이세요.”
“미안..했다.”
은오의 눈에서 눈물이 툭.. 떨어졌다. 손을 들어 눈물을 닦았다.
“저도요. 저도.. 죄송했어요. 앞으로는 편하게 봐요. 선생님과.. 제자로.. 그럼..”
은오가 걸음을 옮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석찬에 벽에 기대 있다가 바로 서서 은오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빨리..”
“차.. 대기시키시래요.”
은오가 석찬을 바라보지 못하고 눈물에 잠긴 목소리로 그에게 말하고는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최대한 비틀거리지 않으려고 이를 세게 물었다. 석찬은 은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문을 열
고 안으로 들어갔다. 우진이 혀로 입안을 쓸며 소파에 앉아 손을 들어 그에게 오라고 까딱 했
다. 석찬이 고개를 조금 숙이고는 걸음을 옮겼다. 자리에서 일어난 우진이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자.. 때리세요.”
석찬이 자신의 얼굴을 내밀고 눈을 질끈 감았다.
“틀려..”
“네?”
석찬이 눈을 뜨자 우진이 소파에서 일어나 발을 들어 석찬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아! 아파요, 형~.”
“형? 형? 이 자식이..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해 놓고 어디서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려고 형이라고 불러?”
“아, 사장님~.”
석찬이 엉덩이를 손으로 문지르며 우진을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뭘 뇌물로 주고 데려왔냐?”
“오늘 있는 와인들 중에 제일 비싼 와인이요.”
“센스하고는.. 쯧.. 데리고 온 게 용하다..”
“어? 최고급 와인을 거절할지 어떻게 알았어요?”
우진이 코트를 집으려고 하자 석찬이 얼른 들어 그가 입을 수 있게 펼쳤다. 우진이 피식 웃었다. 코트를 입고 밖으로 나갔다.
“그 녀석들은 그 와인이 최고급인지도 모를거야. 술하고는 거리가 멀거든.”
“아..”
“요즘 여자들 같지 않지?”
우진이 웃으며 석찬을 바라보았다. 석찬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우진에게 말했다.
“한 사람만.. 사장님 그 분만 괜찮은 것 같은데요? 한 사람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주정하는 걸 봤고, 나머지 하나는 쌈닭 같은데..”
우진이 씨익 웃었다.
“안나? 착해서 그래. 보호본능 일으키게 생겨서는 얼마나 씩씩한지.. 매력 있어, 그 녀석.”
“매력은.. 머리카락만 길었지. 생긴 거나 행동하는 거나 꼭 덜 큰 남자애같은 그런 여자가 무슨 매력. 트럭으로 갖다 줘도 싫네.”
우진이 석찬을 물끄러미 바라보자 석찬이 눈을 깜박이며 “왜 그래요?” 라고 물었다. 우진이 한 숨을 내쉬며 석찬의 어깨를 두 번 두드렸다.
“넌.. 안 되겠다.”
“그게 무슨 말이야?”
“넌 연애를 가볍게 하잖아. 그 녀석들은 엄청 진지하게 하게든.”
“무슨.. 싫다니까? 형.. 내가 하는 말은 귀담아 안 듣지? 싫다고, 그런 여자.”
우진이 웃다가 한 숨을 내쉬었다. 그의 눈가에 눈물이 맺히자 석찬이 인상을 찡그렸다.
“아.. 뭐야~. 웃던지 울던지.. 이랬다저랬다 하지 말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고..”
“시끄러워, 인마..”
우진이 석찬의 머리를 앞으로 밀어 숙이자 석찬이 소리쳤다.
“혀엉~!”
방에 돌아오자 안나가 말없이 은오를 안아주었다.
“잘 했어..”
“응.. 안 들키고.. 잘 보고 왔어..”
“어때? 죽을 것 같아?”
은오가 포옹을 풀며 피식 웃었다.
“피곤해 보이고, 마르셨더라.. 얼굴은.. 그대로 인 것 같고..”
은오의 얼굴이 붉어지자 안나가 눈을 흘기며 은오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두 사람이 키득거리며 웃고 있는데 마희가 침대에서 부스스 일어났다.
“아.... 나, 물 좀 주라..”
안나가 냉장고로 향했다.
“알았다..”
마희가 기지개를 켜다가 눈을 번쩍 떴다.
“나 꿈에 선생님 나왔다?”
은오가 마희를 바라보며 미소 짓고는 테라스로 나갔다.
“웃어?”
마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은오를 바라보다가 물병을 건네는 안나에게 물었다.
“선생님 얘기만 나와도 울더니.. 왜 웃어?”
“물이나 마셔.”
“이상하다.. 분명히 엘리베이터에서 딱 마주치는 꿈을 꿨는데..”
“꿈 아니거든? 술에 취해서 선생님~ 안녕하세요~.. 진짜 안 취했으면 한 대 때려줬을 거야.”
“정말? 정말 선생님 만났어? 그런데.. 왜 아무렇지 않아?”
“아무렇지 않겠냐? 너 잠든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아 씨.. 나도 다음부터는 논알콜 칵테일 마실거야.”
“다시 술 마신다고 하면 내가 가만히 안 둘 거야. 키는 좀 커? 은오랑 둘이 너 데리고 오느라 허리 뽀사지는 줄 알았어.”
“미안..”
애교 섞인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마희를 보며 안나가 미소 지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테라스에 나가 있는 은오에게 다가가 양 쪽 옆에서 안았다.
“은오야~.”
마희가 콧소리를 냈다.
“징그러워.. 어디서 애교야..”
은오가 웃으며 말했다.
“야~. 괜찮아?”
“응. 괜찮아야지. 감정이 복잡해. 우연히 만나게 되면 막 화가 날줄 알았는데.. 서운하고, 화나
고, 이해가 안 되고.. 그런데 보고 싶기도 하고, 그립기도 했었나봐. 다시 만나니까 화가 나야
하는데 화 보다는 긴장이 되고, 설레기도 하고.. 걱정도 되고.. 이상해.”
은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해해. 그럴 거야. 나도 그럴 텐데?”
“누구.. 개똥이?”
“그래, 개똥이..”
안나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못 말린다.. 다들.. 10년 동안 징그럽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부럽다..”
마희와 은오가 안나를 바라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우진이 차 시트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고 있었다.
“말씀만 하시면 그 분에 대해 조사해 볼 수 있습니다. 호텔체크인 할 때 기록이 있으니까요.”
“하지 마..”
“네? 하지만.. 조금 전 형 상태를 보면 그 동안 그렇게 보고 싶었던 걸 어떻게 참았어요?
명령만 내려요. 그럼 제가 다 알아서 할게요.”
“그만.. 그만 하자. 얼굴 봤으니까.. 됐어.”
석찬이 룸미러에 미친 우진을 살폈다. 말로만 괜찮다, 그만하다 그러지 지금 우진 얼굴은 말이 아니게 힘들어 보였다.
“네. 알겠습니다. 참.. 동수 우리 빌라로 이사했는데 언제 만나러 오실 거예요?”
“귀찮아. 그 녀석 일은 그 녀석이 알아서 하겠지.”
“알겠습니다.”
조용해지자 우진이 눈을 스르륵 떠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생각에 잠겼다.
체크아웃을 하려고 세 사람이 계산대 앞에 서 있었다.
“이미 계산 되셨습니다.”
“네?”
“이미.. 계산 되셨습니다.”
안나와 마희가 은오를 바라보았다. 은오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마희가 고개를 돌려 직원을 바라보며 방긋 웃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그리고 몸을 돌려 두 사람에게 속삭였다.
“일단 차에 타자.”
“응.” “그래.”
세 사람은 주차장으로 향했다. 차에 오르자 마희가 룸미러로 뒷좌석에 앉은 은오를 바라보았다.
“선생님이 하신 것 같지?”
“글세.. 아마도.. 그렇겠지?”
“아닐지도 모르지. 그.. 비서가 그랬을 수도 있지.”
은오의 말에 안나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래.. 그랬을 수도 있겠다..”
“비서? 누구?”
마희가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안나가 인상을 약간 찡그리며 대답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있어. 꼭.. 제비처럼 생긴..”
“제비? 그럼 내 타입인데? 나 좀 깨우지~.”
“전혀 네 타입 아니야.”
“그래?”
“그래. 가자.”
“응.”
마희가 차를 출발시키자 은오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생각에 잠겼다.
안나가 집 앞에서 내리면서 마희와 은오를 바라보았다.
“크리스마스 함께 보내서 즐거웠어. 우리 또 그렇게 하자.”
“그래. 대신 다음엔 다른 데서 하자.”
“오케이~.”
“마희는 이사하면 불러.”
“응.”
“조심해서 가.”
“그래.”
안나는 손을 들어 인사를 하고 멀어져가는 차를 바라보다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마희가 운전하면서 고개를 살작 옆으로 돌려 바라보며 은오에게 물었다.
“집으로 갈래?”
“꽃집으로 갈게. 그냥 가는 길에 내려줘.”
“기지배.. 꽃집까지 데려다 줄게.”
“피곤하잖아.”
“괜찮아~.”
마희가 차를 유턴해서 꽃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들어온 안나가 겉옷을 벗고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냉장고 문을 닫고
핸드폰을 들었다.
“여보세요.”
<엄마야.>
“엄마..”
안나가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았다.
<우리 딸 메리 크리스마스..>
“네. 엄마도요.”
<어디야? 아직 호텔이야?>
안나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가 놓으며 대답했다.
“아.. 네. 조금 늦게 출발할 것 같아요.”
<그래?>
“네.. 왜요?”
<그냥. 저녁이나 같이 먹을까 했지. 재나가 자꾸 전화해 보라고 해서.. 어쩔 수 없지, 뭐. 집에는 언제 올래?>
“방학 시작해서 다음 주는 출근해서요. 다음 주 지나서 갈게요.”
<알았어. 그럼 전화 해.>
“네.”
전화를 끊은 안나는 한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냉장고 문을 다시 열었다.
“먹을 게.. 없네..”
물을 꺼내 마시고는 코트를 입고 지갑을 들고 운동화를 신었다. 밖으로 나가던 안나는 차 클
랙슨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차 문을 열고 재원이 내렸다. 그녀는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숙
였다가 표정을 고치고 그를 바라보았다.
“언제.. 왔어?”
그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저녁 같이 먹고 싶으시다고.. 부모님도 그러시고, 재나고 자꾸 조르고.. 집에 있으면 태우고
오라고 보내셨는데.. 방금 전화하셨었지. 아직 호텔이라고. 지금 막 돌아가려고 하던 참이었
지.”
안나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재원이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렇게 싫으면 사실대로 말해. 사람 귀찮게 하지 말고..”
“미안해.”
“아직 집에 안 와서 못 만난거야. 그렇게 기억하고 있어. 간다.”
그가 차에 올랐다. 안나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가 차에 시동을 걸더니 출발해서 가버렸다.
“진짜.. 왜 이렇게 일이 꼬이냐..”
그녀는 터덜터덜 수퍼로 걸음을 옮겼다.
꽃집에서 내린 은오는 마희와 인사를 하고 꽃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꽃들을 살펴보았다.
“잘들 있었니?”
그녀가 미소 지으며 꽃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의자에 앉았다. 입구에 놓인 나무를 바라보다
손을 들어 얼굴을 감쌌다. 혼자 있게 되니 그녀는 눈물이 다시 왈칵 쏟아졌다. 그녀는 조그맣
게 소리 내어 눈물을 흘렸다.
집에 도착한 마희가 대문에서 초인종을 눌렀다.
“우리 딸?”
아빠 목소리가 들렸다.
“네, 아빠..”
“기다려~.”
아빠 목소리에 미소를 짓고 있던 마희는 뒤에서 들려오는 남자 목소리에 표정이 싸늘해졌다.
“마희야..”
마른 침을 삼키며 마희가 뒤를 돌아보았다. 며칠 전에 헤어진 남자친구였다.
“성환씨..”
며칠 사이로 수척해진 그가 천천히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
“이유를 듣고 싶어. 말해 줘. 왜 헤어지자고 한 거야?”
“지금은.. 미안해요. 난 성환씨가 생각하는 것처럼 예쁘지 않아요.”
“예뻐. 내 눈에는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내가 90kg였어도 그렇게 생각해 줬을까요? 우리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통통한 아가씨들을 성환씨는 비웃었어요. 그 아가씨들보다 내가 훨씬 더 뚱뚱했었다고요.”
그가 충격을 받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미안해요. 내 마음이 식었어요. 정말.. 정말 미안해요.”
마침 아빠가 문을 여셨다. 웃으며 나오시던 아빠가 그를 험상궂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너는 누구냐?”
“아니에요. 그럼.. 조심해서 가세요.”
마희가 그에게 인사를 하고 아빠 팔짱을 끼우고 대문 안으로 들어왔다.
“혹시 널 괴롭히는 녀석이냐? 그렇다면 내가..”
아빠가 몸을 돌려고 하셨다. 마희가 미소 지으며 아빠 팔을 잡았다.
“나중에요. 나중에 더 힘들어지면 그 때 부탁드릴게요.”
“그래?”
“네. 엄마는 뭐하세요?”
두 사람이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마희가 슬쩍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짐정리를 마친 동수가 핸드폰을 들었다.
<여보세요.>
“삼촌. 이러기야? 왜 전화도 없어?”
<귀찮아.>
“진짜.. 하나밖에 없는 외삼촌이 너무 무심한데.”
<집 구했다면서?>
“석찬이네 빌라로 어제 이사 왔어. 언제 올래요?”
<그게 석찬이 빌라냐? 석준이 빌라지.>
“형제끼리 뭐.. 그게 중요한가? 석찬이가 여기에서 살기도 하고.. 아~. 다른 말 돌리지 말고 언제 올 건데요.”
<뭐가 필요해서 초대하는 거야?>
“그냥.. 내 말 좀 들어주지. 오늘 올래요? 오늘 좋다~.”
<바빠. 피곤하고.. 시간 나면 한 번 가마. 필요한 건 석찬이한테 말해.>
“필요한 건 삼촌이라고, 선물이 아니라.”
<선물을 들고 있는 나겠지.>
“삼촌~.”
<하여간 너나 석찬이나.. 징그러운 놈들. 피곤해. 곧 갈 테니까 그만 징징거려.>
“알았어. 쉬어요.”
<그래.>
우진이 전화를 끊었다. 소파에 누워 팔을 이마 위에 올려놓았다. 코트만 벗어 놓고 옷도 갈아
입지 않은 채로 누워 있었다. 자꾸 엘리베이터 안에서 보았던 은오의 모습과 침대에서 무표정
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던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말랐다고? 마르긴 네가 말랐지.. 밥은 먹고 다니는 거냐?”
그가 눈을 감자 눈물이 새어나와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 내렸다.
석찬이 동수가 있는 현관벨을 눌렀다. 문이 열리자 동수가 나왔다.
“어쩐 일이냐?”
“어쩐 일이긴.. 퇴근하시는 길에 이사 잘 했나 보러 왔다..”
“꼬맹이들은?”
“부모님이랑..”
“그럼 거기로 가야지, 왜 여기로 와?”
“아이들은 피곤해.. 그래서 내가 결혼에 관심이 없는 지도 모르겠다.. 내일 가 보려고..”
“꼬맹이들.. 이제 유치원 다니나?”
“응. 윤슬이는 여리지만 윤지가 씩씩하니까 잘 지내나보더라.”
“다음에 한 번 보러 가야겠다. 나도 나중에 딸 쌍둥이 낳고 싶다.”
동수 집으로 들어간 석찬이 고개를 저으며 동수에게서 시선을 돌려 방을 둘러보았다.
“정리가 대충 됐구나.”
“응. 삼촌은 바쁘냐? 오라고 했더니 피곤하다는 소리만 계속 한다. 필요한 건 너한테 말하라고..”
“오늘 좀.. 피곤한 일이 있었거든.”
“피곤한 일? 무슨 일?”
석찬이 그의 어깨에 주먹을 날렸다.
“말 할까보냐?”
“삼촌이랑 있더니 너도 폭력적이 된 거냐?”
“하하하.. 그런가?”
석찬이 웃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을 동수에게 말했다.
“야.. 너는 어떤 여자스타일이 좋으냐? 세 명의 여자가 있어요~. 한 명은 좀 화려하지만 예쁘
고, 키도 크고. 하지만 술주정을 좀 하는 것 같아. 다른 한 명은 여성스럽게 생긴 얼굴에 지적
으로 보이고, 키도 적당히 크고. 마지막 한 명은 키도 작고, 쪼그만 여자가 눈 만 이만해서는
덜 큰 남자애처럼 생겨서는 싸움닭처럼 턱을 들고 말하는 여자..”
“그런 여자들을 어디에서 만난 모양이구나.”
“어. 어떻게 알았냐?”
“마지막 여자를 생각보다 자세하게 설명하기도 했지만 네 좋지 않은 감정까지 묻어 있어서 말이야.”
“맞아. 만났지.. 잠깐이긴 했지만.. 너 같으면 1, 2, 3 번이라고 할 때 몇 번 여자를 고를래?”
“글세.. 난 마음이 예쁜 여자.”
“뭐?”
“외모가 뭐 그렇게 중요하냐? 노래도 있어. 좀 오래되긴 했지만.. 얼굴이 예쁘다고 여자냐?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엑! 언제적 노래냐?‘
“난 옛날 노래도 좋더라~.”
석찬이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저었다. 동수가 웃음을 터트렸다.
“이사 축하한다.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필요한 게 뭐가 있겠냐? 참.. 너 사람 좀 알아봐 줄 수 있어?”
“누굴 알아 봐 줘?”
석찬이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동수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석찬이 6층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운 집에 불을 켜고 냉장고로 향했다.
병커피를 꺼내 뚜껑을 열어 싱크대에 아무렇게나 던지고 한 모금 마시고 소파에 앉아 넥타이
를 느슨하게 풀었다. 그리고 호텔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후우.. 우진 형.. 어떻게 하냐..”
그러다 문득 쌈닭같은 여자가 떠올랐다.
“기분 나쁜 게.. 어디에서 본 것 같은데..”
그가 인상을 찡그리며 다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안나가 저녁으로 사온 김밥을 먹고 은오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나야.”
<아.. 잘 도착 했나 궁금해서 전화 한 거야?>
“아니? 계속 울고 있나 걱정돼서 전화 한 거야.”
<하여간 귀신..>
“혼자 너무 울지 마라.”
<응. 옛날 생각이 너무 나서..>
“나도.. 나도 옛날 생각이 나더라. 힘들면 우리 집으로 와.”
<알았어. 전화해 줘서 고맙다.>
“뭘~. 그럼.. 얼른 자라.”
<응. 너도 잘자.>
전화를 끊은 안나는 생각했다. 분명히 오늘 밤에는 그녀들 누구 하나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을 거라고..
****
새해가 밝았다.
안나는 오랜만에 집에 가서 저녁식사를 했다.
“자주 와서 먹으면 좋잖아..”
“네.”
“언니. 오늘 자고 가?”
재나의 말에 안나는 조금 당황하며 말했다.
“응?”
“자고 가~. 나랑 같이 자고 가라, 응?”
“야.. 너는 10살이나 돼서 아직도 나랑 자고 싶어?”
“응. 자주 안 오니까 보고 싶단 말이야..”
“미안해..”
“자고 갈 거지?”
안나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재나를 바라보았다.
“그만 해.”
재원이 재나에게 조용히 말했다. 재나가 서운한 표정으로 재원을 바라보았다.
“오빠는 안 서운해?”
“바쁘니까 안 된다고 하는 거겠지. 자꾸 말하면 거절하기 힘들잖아. 불편하게..”
안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위해주는 척 하기는.. 저렇게 말 하면 내가 더 거절 못한다는 거 알면서..’
“언니.. 바빠?”
“아니야. 자고 갈게.”
“정말?”
“응.”
“그럼 같이 자는 거야.”
“그래. 저.. 오늘 자고 가도 돼요?”
안나가 엄마를 바라보며 물었다. 엄마는 서운한 표정을 지으며서 대답하셨다.
“너는.. 남 집이야? 섭섭하게..”
“저녁 먹고 제 방 청소 할게요.”
“안 해도 돼. 엄마가 매일 하시는 걸?”
재나를 바라보던 안나가 고개를 돌려 다시 엄마를 바라보았다.
“뭐하러 그러세요.”
“그냥..”
안나는 다시 목에 뭔가가 걸릴 것 같았다. 물컵을 들어 마시고 조용히 내려놓다가 재원과 눈이 마주쳤다.
‘뭘 보나?’
“보면 안 되나?”
안나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노려보았다.
“또 시작이야? 너희는 만나기만 하면 고양이랑 강아지처럼 싸우니?”
“엄마. 누가 고양이고, 누가 강아지에요?”
재나의 물음에 재원도 궁금한 듯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엄마를 바라보았다.
“음.. 다른 건 모르겠고.. 안나가 고양이과는 아니지?”
“쿡..”
재원이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 안나가 재원을 흘겨보다가 엄마를 원망하듯 바라보았다.
“엄마는~.”
“나는? 엄마 나는 고양이과야? 강아지과야?”
“다행히도 재나는 고양이과야.”
재원이 재나의 얼굴을 살짝 쓰다듬으며 말했다.
“좋은 거야?”
“그럼~.”
재원이 그렇게 말하고는 안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안나는 혀로 입 안을 쓸며 그를 노려보았다.
그날 저녁 마희와 전화통화를 했다.
<하하하.. 그래? 그래서 혼내줬어?>
“재나도 있고, 다 큰 녀석을 때릴 수가 있냐? 참느라 혼났다..”
<오늘 자고 가는 거야?>
“응. 재나도 바라고, 부모님도 바라시는 것 같고..”
<재원이도?>
“그건 아닌 것 같아.”
<하하하.. 너희들은 사이가 아직도 그렇게 안 좋아?>
“자꾸 건드리잖아. 가만히 있는 사람을..”
<정말 어머님 말씀대로 고양이랑 강아지인가보다. 원래 그 녀석들도 신호가 달라서 싸운대잖
아..>
“몰라.. 참. 은오랑 통화해 봤어?”
<아니.. 힘들겠지? 언제 같이 갈래?>
“그래. 그러자.”
<선생님 보니까 고등학교 때가 자꾸 생각이 나고.. 그러면 결국엔 동수.. 가 생각나.>
“개똥이?”
<훗.. 그래. 개똥이.. 뭐하나?>
동수가 집안에 마련한 음악실에서 커다란 헤드폰을 귀에 꽂고 음악작업을 하다가 갑자기 재치기를 했다.
“에취!”
그가 코를 훌쩍이고는 이어폰을 벗어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왔다. 냉장고 문을 열
고 무얼 마실까 고민하고 있는데 현관벨이 울렸다. 인터폰을 바라본 동수가 밝게 웃으며 현관
문을 열었다.
“삼촌~.”
“애기냐? 뭘 그렇게 반가워 해.”
“반갑지~. 삼촌은 안 반가워?”
“반갑다..”
우진이 한 숨과 함께 대답하자 동수가 퉁퉁 부은 얼굴로 우진을 바라보았다.
“삼촌은..”
우진이 구두를 벗고 안으로 들어와 손에 들고 있는 쇼핑백을 주방에 내려놓았다. 동수가 달려가 쇼핑백 안을 확인했다.
“오~. 내가 좋아하는 초밥.”
“저녁 안 먹었지?”
“배고프던 참이었는데.. 잘 먹을게. 삼촌은?”
“생각 없다.”
테라스로 나간 우진이 밖을 바라보았다.
“야~. 여기 좋구나.”
“응. 정원도 꽤 마음에 들고, 조용하고.. 5층에도 곧 누가 이사 온다고 하더라고.”
“그래?”
동수가 우진의 그늘진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피곤한 일 있었다면서?”
“석찬이가 그러냐?”
“거기까지만 말해주던데? 무슨 일 있었어?”
동수가 초밥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물었다.
“씹고 말해. 다 튄다.”
“흠~. 맛있어.”
우진이 동수를 안쓰러운 듯 바라보았다.
“녀석.. 제대로 먹고 있긴 한 거야? 더 마른 것 같다.”
“내가? 삼촌이 말랐구만.. 일만 한다면서? 여자도 안 만나고, 소개도 안 받고.. 선보라고 한 번만 더 말하면 아예 바람처럼 사라져 버린다고 할머니한테 말했다면서?”
“아무리 음악이랑 회사경영 참여 둘 다 한다고 해도 너도 20대가 끝이야. 30이 되자마자 네가 정말 하고 싶은 음악은 손을 떼야 하고 목에 족쇄가 채워지는 거지. 하고 싶지 않은 일 하고, 만나고 싶지 않은 여자 만나고.. 마음에도 없는 여자랑 결혼도 하고..”
“아~~. 삼촌.. 초밥 맛 떨어지게.. 그만 해~.”
동수가 머리를 쥐어뜯자 우진이 피식 웃었다.
“석찬이한테 마희 찾아달라고 했냐?”
동수가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찾지 마라.”
“삼촌도 찾으면 되잖아. 10년 전.. 누군지 말 안 해줘서 모르고 있지만.. 정말.. 누구였어? 학생이었다는 말도 있던데. 나도 아는 여자야?”
“뭐하러 찾아. 나는 찾지 않을 거다.”
“그러면 할머니가 삼촌이 그 여자를 포기했다고 생각하실것 같아? 안찾으면 뭐하냐고.. 다른 여자는 쳐다도 안 보고.. 결혼은 생각도 없으면서.,”
“한 번.. 봤어. 우연히..”
“봤어? 뭐래? 10년 만에 만났는데..”
“무슨.. 내가.. 미안했다고만 했어.”
“물어보지 그랬어? 지금 어디 사냐고, 뭐하며 사냐고.. 남자는 있냐고.”
“자격이 있냐?”
우진이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몸을 돌려 동수를 바라보았다.
“나는.. 자격이 없다. 그 분들이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다시 그 녀석을 만나면 상처는 그 녀석이 받으니까.. 그렇게 만들지 않을 거야. 너도 마희한테 상처 주지 마라. 그냥.. 편하게 살아.”
“나는 일도 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음악도 할 거야. 두 가지 토끼를 잡느라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무슨 힘으로 버텼는지 삼촌은 알면서.. 알면서 어떻게 나보고 만나지 말라고 해?”
“그들이 안 된다고 하면? 도망갈래? 마희랑.. 도망갈 수 있어?”
“있어. 난 어디에서도 직장생활을 하든, 음악을 하든.. 돈 벌 수 있어.”
“그래? 그런데 어쩌냐? 마희는 너 보자마자 죽이려고 들텐데?”
우진이 놀리듯 말하자 동수가 소리쳤다.
“삼촌~!”
우진이 소리내어 웃었다.
은오는 꽃집 문을 닫고 차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운전대에 이마를 대고 한 숨을 내쉬었다.
“하아... 괜찮아.. 한 번 본 것 뿐이야. 다시는 볼 일 없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정신차려야
지..”
은오가 몸을 일으키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 모습을 누군가 사진 찍고 있는 줄도 모르고 은오가 차를 출발시켰다.
안나는 재나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잠잘 때 입는 헐렁한 티셔츠와 수면바지를 입고 그 위에 패딩점퍼를 두르고 맨 발에 앞이 막히고 뒤는 없는 슬리퍼만 신고 마당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네에 앉았다. 소리나지 않게 그네를 앞뒤로 조금씩 움직이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은오랑 선생님이랑 다시 만났단 말이지..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아니면 좋지 않다
고 해야하나.. 은오는 분명히 아직도 선생님을 못 잊고 계시고.. 그 때 선생님도 은오가 싫어
서 그렇게 헤어지신 게 아닌데.. 지금이라면.. 두 사람이 행복할 수 있을까?’
“후우~~.”
고개를 숙인 안나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구름기둥처럼 만들어졌다가 사라졌다.
“땅 꺼지겠다.”
재원이 그녀 앞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안나는 인상을 찡그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안 자고 왜 나왔냐?”
“너야 말로 안 자고 달밤에 뭐하냐? 양말도 안 신고.. 고민 있냐?”
“이 자식이.. 누나라고 언제 부를래?”
“누나가 누나 같아지면 부른다고 했잖아. 지금 어딜 봐서 누나라고 부를 수 있겠냐?”
“하여간.. 싸가지..”
“새삼스럽게.”
“아~. 이것도 이젠 안 먹히나?”
재원이 피식 웃었다.
“뭐야? 무슨 고민이 있어서 달밤에 나와서 부모님 걱정시키냐고.”
“어? 부모님이 너한테 나가보라고 하신 거야?”
“그럼. 내가 어떻게 알고 나왔겠냐?”
“하긴.. 미안하다. 그냥.. 생각이 좀..”
“네 일이야?”
“친구 일이야.”
“마희누나? 아니면 은오누나?”
“알 거 없잖아.”
“네 일도 아닌 일에 추운 겨울밤에 땅이 꺼져라 한 숨을 쉬어도 일은 해결이 안 돼. 알지? 춥다. 들어가자.”
“그래.”
안나가 그네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기는데 슬리퍼가 앞으로 훅 날아갔다.
“어!”
“하여간.. 가지가지 한다..”
안나가 깡충깡충 뛰어 슬리퍼가 날아간 곳으로 가고 있는데 재원이 먼저 움직여 허리를 굽혀 슬리퍼를 잡아 그녀에게 신겨주려다가 생각을 바꾸고 툭 그녀 앞에 던져주었다.
“싸가지.. 좋게 주면 어디가 덧나냐?”
“나한테 뭘 바라나?”
“하여간 싸가지..”
안나가 뒤집어진 슬리퍼를 발가락으로 돌려 신으며 그를 노려보았다.
“시집이나 가시지? 앞의 똥차가 가야 뒤에 있는 스포츠카가 가지. 안 그래?”
안나가 주먹을 쥐고 그에게 휘둘렀다. 재원이 몸을 뒤로 젖혀 그녀의 주먹을 피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글세 키가 작으면 주먹보다는 발을 쓰라니까?”
“이 자식이..”
안나가 발을 들자 그가 몸을 피하며 웃었다.
“그렇다고 뻔히 보이게 하지 말고.. 하여간.. 아직도 멀었다니까.. 아, 얼른 들어가자고!”
재원이 그녀의 손목을 놓고 앞서 걸었다. 안나가 눈을 가늘게 뜨고 조용히 달려가 점프해서 그의 등을 어깨로 툭 치고 멈추지 않고 달렸다.
“아! 잡히면 죽는다..”
재원이 이를 악물며 빠르게 걷기 시작하자 안나는 더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현관문에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하여간 짧아서는..”
“쳇!”
“여성스럽지도 않고..”
“너야 말로 죽는다..”
“죽긴 뭘 죽어..”
재원이 안나가 들어갈 수 있게 문을 열어주었다.
“딸기코 됐네. 얼른 들어가.”
안나가 집 안으로 들어갔다. 재원이 뒤따라와 들어와서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계단을 오르려는 안나를 조용히 불렀다.
“잠깐 기다려.”
“왜 또!”
안나는 큰 소리로 말하지도 못하고 작은 소리로 성질내듯 말했다. 재원이 다가와 머그컵 하나를 건네었다.
“뭔데?”
“마시고 자. 감기 걸려.”
안나가 컵을 받아들자 재원이 먼저 계단을 올라갔다. 컵의 따뜻한 온기가 손을 타고 들어왔다.
“병 주고 약주나?”
안나는 입술을 내밀고 투덜거리며 계단을 올라가 방안으로 들어갔다. 소파에 앉아 재원이 건네준 차를 마셨다.
“음.. 맛있다. 이게 뭔가?”
안나는 다시 한 모금 마셨다.
재원은 창가에 서서 차를 마셨다. 그의 창문에서 마당에 놓인 그네가 보였다. 주인이 없는 그네가 바람에 조금 흔들렸다.
“후우...”
그는 숨을 길게 내쉬고는 몸을 돌려 책상의자에 앉으며 차를 한 모금 더 마시며 몸을 가볍게 떨었다.
“으.. 추워.. 고민은 방에서 해도 되는구만.. 꼭 저기 앉아서.. 궁상..”
얼마 후 안나와 마희가 은오를 찾아갔다. 셋이 함께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괜찮아?”
“안 괜찮아 보여?”
“조금..”
“노력 중이야. 선생님 만나고 나서는 지나가는 사람이 선생님! 이라고 부르기만 해도 손에 있는 걸 놓치고 그랬었어. 지금은 좀 괜찮아. 괜찮아야지.”
“연락하시거나, 찾아오시거나.. 하시진 않았어?”
은오가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내가 알아볼까?”
“아니야. 그러고 싶지 않아. 봤으니까.. 조금 살 것 같아. 사실은 걱정했거든. 아프시진 않을까..”
“으이구~. 바보야. 누가 누굴 걱정하냐?”
은오가 배시시 웃었다.
“그런가?”
“못 살아..”
안나가 답답하다는 듯 은오를 바라보았고, 마희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눈물을 조금 훔쳤다.
“이사는..”
“명절 지나고 하려고.”
“짐 싸려면 정신없겠네.”
“겨우 2년 나가 있는 거 뭘 챙기냐고.. 싸우면서 짐 챙기고 있는 중이야.”
은오와 안나가 웃었다.
“명절에 우리 집으로 와.”
안나가 은오에게 말했다.
“명절 때마다.. 폐 끼치는 것 같아서..”
“그 이야기 해 봐라. 엄청 서운해하실거야.”
“알았어.”
“명절날 만나야지?”
마희가 묻자 은오와 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손님이 들어오시자 은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오세요. 찾으시는 꽃이 있으세요?”
은오에게서 보이지 않은 장소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그가 검은 모자를 푹 눌러 쓴 채 손가락으로 버튼을 눌러 카메라에 찍힌 은오의 사진을 확인하고 있었다.
첫댓글 잘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너무재밌어요~~^^
감사해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ㅎㅎ..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