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가에서
김왕노
강가에 오니 비로소 내 죄의 그림자가 강물에 어린다
그간 내 죄로 얼마나 울던 가슴 아픈 꽃이며
얼마나 슬픔으로 몸부림치던 양 같은 사람들이었던가
풍화작용으로도 모래가 되지 않고 악몽이 되는 죄의 기둥
내가 남긴 족적은 누군가 지울 수 없는 얼룩이 되었다
강가에 오니 비로소 나로 인해 파란만장 위로 떠가는 무수한
풀잎 같은 이름이 보인다
여기 뿌리 내려 억겁 고목처럼 푸르러야 할 것이
나로 인해 황급히 떠나나 다시 돌려세울 수 없는 어깨
강가에 오니 비로소 풀뿌리같이 새하얗게 씻어야 할
내 죄목이 낱낱이 보이고
블랙홀 같은 강 속으로 투신이 마땅한 내 참회의 길이 보인다
나로 인해 멀리서 숨어 물짐승같이 우는 세월이여
무변 광대한 우주에서 마음껏 말 달려야 하지만
내게 사로잡힌 맥없고 가난한 이름들이여
내 말이 쾅쾅 대못으로 가슴에 박혀 판자 같이 떠내려가는 이름이여
내 강물에 휩쓸려 몇 방울 물로 돌아가고 몇 줌 흙이 되든지
천년 울음 우는 이무기가 되었다가 드디어 승천하는 용이 되어
내 죄를 갚으려고 뼈와 혼이 뒤틀리는 용울음 울어도 될까
먹장구름처럼 몰려오는 대재앙을 물리치고 목숨을 다하는 해룡이라도 좋은 데
강가에 오니 청동거울인 수면에 어리는 삐뚤어진 내가 비로소 보인다
도저히 나라고 할 수 없는
손가락질할 수밖에 없는 나일 수 없는 내가 환히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