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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칸 리비에라 크루즈 여행
크루즈 하면 누구나 항상 떠올리는 그림이 하나 있다. 어마어마하게 큰 배에 사람들을 잔뜩 싣고 망망대해를 무대 삼아 유유자적 떠도는 모습이다. 어떤 사람은 갑판 위 수영장에서 접는 의자를 펴놓고 드러누워 일광욕을 즐기고 있고 또 어떤 중년 부부는 선미에 정답게 기대서서 멀어져 가는 대양을 바라보며 지나간 인생을 반추하는 모습, 이런 게 모두 크루즈의 모습이다. 젊어서는 일하느라 시간도 없고 경제적으로도 용기가 안 나서 자주 하지를 못 했던 크루즈 여행을 연말에 산악회 친구들과 함께 멕시코 연안을 갔다 오기로 작정했다. 모두 20여 명이 같이 가자니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에 벌써 생각만 해도 신바람이 절로 난다. 6박 7일간 예정으로 멕시칸 리비에라 해안을 돌기로 했다. 멕시코 서부 해안은 하도 경치가 아름다워 마치 유럽의 프렌치 리비에라를 닮았다고 해서 멕시칸 리비에라라고 부른다고 했다. 해안 도시들도 잠깐 들려서 관광도 하고 크루즈 여행으로는 소문난 명 코스라고 한다. 우리는 몇 달 전에 예약을 해놓고 어린 아이처럼 오늘을 기다려 왔다. 선실 위치도 중요하다고 해서 아내는 예약하면서 일찌감치 발코니 레벨에 방을 잡아 놓았다. 배는 카니발 미라클이라고 대단히 큰 배 측에 속하는 초대형 유람선이다. 배의 길이가 1,000피트 (330미터)나 되고 층수가 12층이라니 얼마나 큰지 상상이 간다. 나도 이제 은퇴해서 휴식도 좀 취하고 즐겨보자는 요량으로 이번 여행에 대한 기대가 보통 큰 게 아니다. 옷가지 몇 개, 세면도구 등 손가방에 넣을 것 챙겨 넣고 롱비치 항으로 나갔다. 멀리서부터 어느 배가 우리를 싣고 갈 유람선인지는 금방 알겠다. 그 정도로 배의 크기가 특출나게 커 보였다. 빼곡히 박혀있는 배들 가운데 마치 병아리들을 품고 앉아있는 어미 닭처럼 대뜸 눈에 들어온다. 주위에 작은 배들은 모두 유람선에 속한 호송선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규모만 봐도 배멀미 같은 건 있지도 않을 것 같다. 나는 배 타는 경험을 어렸을 때부터 해봐서 잘 안다. 배에서 멀미가 나기 시작하면 중간에 내릴 수도 없고 그야말로 생지옥이나 다름없는 그 고통을 꼼짝없이 감내해야 한다. 그동안 먹었던 것 다 토해내고 그것도 모자라 배를 움켜잡고 뒤틀길 몇 시간 하고 나면 나중에는 기운이 다 빠져 똑바로 서 있지를 못한다. 저 정도 큰 배를 움직일 만한 파도는 세상에 있지도 않으리라! 벌써 자신감부터 생긴다. 제아무리 큰 사라호 태풍이 와서 산더미 같은 파도로 밀어붙인다 해도 저 정도 크기의 배라면 끄떡도 안 할 거야! 누가 힘이 더 센지 태풍이라도 한번 와서 부딪쳐 봤으면 좋겠다.
출항은 저녁 4시 반이지만 출발 당일에는 1시부터 승객들에게 배를 열어 놓는다고 언제든지 편한 시간에 와서 승선하라는 안내에 따라 우리는 어차피 가는 날이니까 일찌감치 가서 배에서 시간을 보내자고 친구들과 약속을 해놓고 1시에 승선했다. 방파제가 둘러쳐 있는 선착장 안이라 그런지 파도도 없고 청명한 날씨에 가끔은 머리 위를 끼룩끼룩 울면서 지나가는 바다 갈매기 떼가 한결 기분을 돋구어 준다. 배 안도 밖에서 보는 것만큼이나 넓고 커서 아무리 돌아다녀도 끝이 없어 보인다. 하기야 3,000명이나 타는 배라니까 그도 그럴만하다.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처럼 올라갔다 내려왔다 구석구석을 돌면서 구경하고 눈에 익혔다. 유람선은 움직이는 도시이다. 그만큼 배 안에 모든 시설이 다 있다는 말이다. 체육관, 스파, 미장원, 극장, 가게, 도서관, 수영장, 식당 등 우리가 일상생활에 필요한 곳은 다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내 관심을 끄는 것은 식당이다. 어차피 놀러 나온 건데 먹는 거라도 실컷 먹으면서 돌아다녀야지! 식당에는 온갖 음식이 다 뷔페식으로 나열되어 있는데 운항 중 어느 시간이건 편리할 데로 올라가서 먹으면 된다. 24시간 문을 열어놓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설렁탕이나 된장찌개는 없어도 상관없다. 맛있는 양식이 다 무료다. 먹을 것 마실 것 아낌없이 다 내놓고 있어서 누구든지 먹고 싶은 대로 실컷 먹으면서 즐기면 된다. 이러고도 이윤이 남을까 속으로 피식 웃음이 나온다. 먹는 것만 실컷 먹어도 배값의 반은 뺄 것 같다.
갑자기 부웅하고 뱃고동이 울린다. 배가 움직인다. 출항 시간이 됐기 때문이다. 선체를 슬그머니 뒤로 뺀다. 자유로울 만큼 빼더니 선수를 남쪽으로 돌린다. 그리고 서서히 전진한다. 저 멀리 롱비치 항에 전깃불이 명멸한다. 선착장을 빠져나온 배는 이제 본격적으로 항해를 시작했다. 승객들이 각자 선실이 있겠건만 방에 들어가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어 보인다. 모두 밖에 나와 초저녁 바다 경치를 감상하느라 여념이 없다. 크루즈 여행이 처음은 아니라 그 분위기는 알고 있었지만 이번처럼 파도가 없이 잔잔한 바다는 처음 경험한다. 마치 호수 위를 떠내려가는 조각 배처럼 요동없이 미끄러져 나간다. 중간중간에 나타나는 무인도가 그림 속의 섬같다. 바다는 낭만도 있지만, 대양에 우두커니 서서 사방을 둘러보면 우선 쓸쓸함이 먼저 찾아온다. 검푸른 바닷물이 천 길인지 만 길인지 밑이 안 보이는데 파도에 뒤덮여 내려다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온갖 상상을 다 하게 한다. 저 물이 바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그 물이야. 83일 동안 고기 한 마리도 못 낚고 허둥대다가 84일째 되던 날 갑자기 대어 한 마리가 잡혔는데 하도 커서 갑판 위로 끌어 올리지도 못하고 그냥 끌고 항구로 귀항하다가 모두 상어 밥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항구에 도착할 즈음엔 가시만 앙상하고 남은 거라곤 대가리뿐이었다는 이야기를 탄생시킨 바로 그 근방 바다다.
밤낮을 순항하여 닿은 첫 번째 도시가 카보 산 루카스이다. 바하 캘리포니아 반도 끝에 있는 도시이다. 일견에 미국의 어느 바닷가 도시나 흡사했다. 곳곳에 펠리컨 바닷새가 먹이를 찾아 날아들고 LA의 어디 마리나 델 레이나 샌타모니카 비치가 아닌가 할 정도로 분위기가 미국적이다. 하지만 바다는 더 푸르러 보이고 산야는 더 맑아 보인다. 모두 내려서 자유롭게 관광하고 오후 4시까지 배로 돌아오라고 안내한다. 멕시코에선 언어가 우리와 달라 언어 소통이 어려우리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영어를 하는 사람이 많았다. 택시 운전사도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미국 도시들에 비해 약간 낙후된 인상이 있긴 하지만, 사람들은 무척 순해 보이고 인정이 많아 금방 정이 간다. 배에서 내린 우리 일행은 가까이 있는 카보 산 루카스는 물론이고 그 주변에 있는 산호세, 하시엔다 비치 등을 관광했다. 시내에 뭐 특별히 관광명소가 있지도 않은 터라 이국적 문화와 분위기를 경험하기엔 그 정도라도 충분했다. 두 번째이자 마지막 기항지는 푸에르토 발라르타라고 태평양에서 콜테즈 만으로 들어가는 바닷길 길목에서 보면 카보 산 루카스 맞은 편에 있는 도시이다. 여기서도 택시를 대절해서 섬의 곳곳을 모두 관광했다. 산에 무성한 열대 숲도 인상적이고 과히 오염되지 않은 자연 경치가 우리 모두에게 잊지 못할 인상을 심어줬다.
배에서 놀 때는 화끈하게 놀았다. 배의 구조가 위에서 내려다보면 가운데는 뻥 뚫려있다. 맨 아래층(2층)에는 바닥이 깔렸다. 층층이 덱에서 내려다보면 2층까지 다 보인다. 바닥에 연주자들이 나와서 우리나라 같으면 관광 메들리를 연주한다. 사람들이 모여들고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여기저기에 한두 사람씩 나와서 댄스를 시작하는데 댄스곡이 골고루 섞여 나오기 때문에 여간 흥이 나질 않는다. 댄스에는 우리도 전혀 무뢰한은 아니다. 주말이면 모두 모여 서로 가르치고 배우고 한 덕택에 대부분이 기본 스텝은 다 알고 있는 터였다. 빠르고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자이브 곡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움직인다. 미국 사람들은 문화가 그래서 그런지 아이나 어른이나 참 자유롭다. 자기가 추고 싶으면 언제든지 나와서 자연스럽게 춤을 춘다. 보기도 좋다. 동양 문화는 아무래도 주위를 살피고 의식하게 된다. 그런데도 우리 팀은 벌써 여럿이 나가서 추는 게 보인다. 깊어가는 밤도 잊고 춤추고 노래하는 선내 분위기는 겨울인데도 여름같은 남부 멕시코의 정열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오고 가면서 항상 수평선 저 끝에는 아득히 육지가 보였다. 배가 육지와 일정 거리를 두고 항해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제는 크루즈가 어떤 것인지 감이 잡힌다. 지중해 연안 그 유명한 크루즈들도 모두 이런 식일 거야! 가까운 친구들과 해상에서 보낸 일주일이 너무 짧고 즐거웠다는 생각을 하면서 배는 북상하여 귀로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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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 시잔만 보아도 작가님 너무 멋진 분이십니다. 글 감사히 읽어보겠습니다. 출근해서 사무실에서 볼까 합니다 ^^
에구 감사해요. 늘 글로만 사진에서만 뵙지만 한걸음에 달려가서 뵙고픈 분이세요. 항상 까페를 위해서 어려운 문학을 위하여
초지일관 노력하시면서도 Up-and-Down 순간을 버거워하시는 모습도 봅니다. 님의 어려움이 있기에 우리의 문학공간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요. 끝까지 파잇! 파잇!
저는 꿈으로만 그리던 크루즈 여행을 하셨네요 사진으로만 봐도 멋지고 설레입니다
멋진 여행기 선생님 덕분에 감상했습니다 ^^
사진에 안 찍혀서 그렇지 유람선에서만 산다는 유람선 바이러스(학명으로는 Noro virus)에 걸려서 갔다와서는 한 이틀 죽을 x 말x 혼도 났어요. 우리 구릅에서 두 커플이 이 배감기로 고생을 했는 것을 보면 드믄 일도 아닌 모양입니다. 혹시나 나중에라도 하시게 되거든 참고하십시요. ㅎ ㅎ ㅎ
타이타닉 생각나요
크루즈 보면...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