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무르익어 가면 농부의 몸과 마음은 엄청 바빠집니다. 농사일이란 때를 놓치면 헛일이 되는 때문입니다. 화개정 텃밭일도 몸을 빨리 놀려야 합니다. 토요일 잔치 세군데 있었는데 축의금을 전부 대리로 보내고 대파모종과 가지, 고추 모종을 심었습니다,
대구 역에서 칠성시장 가는 골목길에 있는 번개시장에서 산 오이고추 입니다. 번개시장은 나에게는 추억이 깊은 곳입니다. 기차통학시절 지천 신동 연화 왜관의 수 많은 어머니 아버지들이 아들 딸들의 학비와 용돈을 마련하려고 무거운 채소 보따리를 이고 지고 새벽 첫 열차를 타고와서는 칠성시장 가는 골목길의 철로 옆 담벼락을 끼고 잠시잠깐 동안 장을 세우던 임시 시장입니다. 그 시장이 이제는 번개시장이라는 고유명칭을 달고 칠성시장 곁에서 버젓하게 상설시장이 되었습니다.
고추 모종을 심은 모습입니다. 열매채소 임으로 퇴비를 듬북 넣었습니다. 무슨 일이든 기초를 튼튼하게 해야 열매가 실하게 달립니다. 오이고추는 오이처럼 시원하며 식감이 아삭아삭하고 달콤한게 아주 감칠 맛이 있습니다. 한 포기에 무려 1백개 이상 달리는데 오늘 스물다섯 포기를 심었습니다. 농사가 잘되면 이웃들에게 나눠줄 것입니다. 뒤로 보이는 녹색그물망 울타리는 멧돼지나 고라니 같은 짐승들이 나의 왕국인 화개정에 침입하지 못하도록 제가 친 울타리 입니다. 울타리는 나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방패막이 입니다. 울타리가 너무 두껍고 무거우면 장막이나 벽이 됩니다. 아예 그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높은 콘크리트로 담을 쌓거나 그것도 모자라 그 위에다 뾰족뾰족한 가시철망을 올리거나 깨어진 사금파리를 박아 손과 발이 베이도록 만든 사람도 있습니다. 나의 왕국은 그런 울타리로 된 왕국이 아닙니다. 누구나 오고 싶을 때 오고, 쉬고 싶을 때 쉬고, 놀고 싶을 때 놀다 가면 되는 편안한 왕국 입니다. 나는 이백을 매우 좋아 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그가 남긴 시를 좋아 합니다. 아니 그런 시를 쓸수 있는 이백의 자유로운 영혼을 좋아 합니다. 이백의 문장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은 "아취욕면 경차거(我醉欲眠卿且去)"라는 싯귀 입니다. "내가 취하여 잠이 오니 너는 그만 집에 가거라!"고 그렇게 편하게 말할 수 있는 벗을 두는 일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
벽이 너무 두텁거나 까칠하면 이웃과 소통이 단절되고 멀어 집니다. 철의 장막, 죽의 장막이라 불리던 곳도 이제는 울타리가 걷히고 있는데 우리의 반쪽인 북한은 콘크리트 벽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글을 쓰다보니 떠올라서 적어 넣어 봅니다.
가지는 다섯 포기 심었습니다. 이정도만 해도 혼자서는 다 먹지 못할 정도로 가지가 많이 달립니다. 자주색 열매 채소가 몸에 좋다고 소문이 나서 가지는 요즈음 가장 인기 있는 건강식품입니다. 우리가 어릴 때는 몸에 사마귀가 나면 가지를 잘라서 한입을 먹고 그 나머지로 사마귀 난 곳을 문지르고 난 후 수채구멍에다 버리면 가지가 썩을 때 쯤이면 사마귀가 떨어져 나간다고 하여 아이들이 가지를 생으로 많이 먹곤 했습니다.가지는 생으로 먹어야 참 맛을 알수가 있습니다.
삼월 하순 경에 심은 호박 씨앗이 발아된 모습입니다. 호박 씨앗은 뾰족한 부분이 뿌리이고 둥근 부분이 떡잎 부분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씨앗의 둥근 부분을 뿌리로 알고 호박씨앗을 심을 때 거꾸로 심는 경우가 허다 합니다. 호박씨을 거꾸로 심으면 호박이 쉽게 발아가 되질 않습니다. 물구나무를 서서 살아 나려고 안간 힘을 쓰는 호박을 한번 생각해보시면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말 못하는 식물이지만 하늘로 뻗은 뿌리를 다시 땅속으로 휘어지게 하려는 고통이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 또한 그렇습니다. 출발을 거꾸로 하지 않도록 정말 시작이 반이라는 격언을 귀담아 듣고 묻고 또 묻고 아는 길까지도 물어서 출발을 해야겠습니다. 화개정에 놀러 온 제 벗들이 심은 옆의 구덩이는 아직 호박싹이 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다시 놀러와서 빈 구덩이를 보면 허전한 마음이 들 것 같아 한 구덩이에 한 포기씩 이식을 해두었습니다.
상추 씨앗입니다. 상추 씨는 아주 작습니다. 입김에도 훅 날아 갈 정도로 작습니다. 그 작은 씨앗이 자라면 사진 속의 상추처럼 풍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위대한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작은 나무 젓가락 같은 것으로 골을 타서 씨앗을 뿌려야 하는데 호미로 심었기에 제대로 싹이 날지 모르겠습니다.
쑥 라면을 끓이려고 냄비에다 쑥을 넣어 데치고 있습니다. 쑥은 기르지 않아도 지천으로 자랍니다. 비온 뒤에는 죽순보다 더 쑥쑥 자랍니다. 쑥의 이름이 쑥이 된 것은 쑥쑥 자란다고 쑥이란 이름이 붙어졌을 것입니다. 옛날에 계집애들 이름에 숙이라는 이름이 많았는데 쑥 처럼 돌보지 않아도 잘자라라는 의미로 "숙이" 라는 이름을 지어 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의 쑥은 보릿고개를 넘게 해준 귀한 식물이었습니다. 봄이 깊어가면 배고픔도 깊어져서 끼니를 늘이려고 지천으로 자라나는 쑥을 뜯어다가 쌀 몇톨을 넣고 쑥죽을 쑤어 먹었다고 합니다. 쑥을 먹고 나면 변까지도 쑥 쑥 빠지니 변비도 없어지고 천하에 이보다 더 좋은 음식은 없을 것입니다만 사람들은 흔해 빠졌다고 쑥을 귀하게 대접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집에서는 봄철에 쑥을 뜯어서 쑥떡을 많이 만들어 비닐 랩에 싸서 냉동실에 넣어두고 1년 내내 먹습니다. 여름에 꽁꽁 언 쑥떡을 꺼내어서 잘라 먹으면 맛이 기가 막힙니다. 채르노빌 원자로 폭발 사고 이후에 죽음의 땅이 된 그 곳에 가장 먼저 생명을 틔운 식물이 쑥이라고 합니다. 쑥은 엄청난 생명력을 지닌 식물입니다. 쑥을 많이 먹으면 오장육부가 무탈해져서 아주 건강해지니 쑥을 많이 드시기 바랍니다. 흔하고 천할 수록 우리 몸에 좋은 귀한 식물입니다.
일을 끝내고 난 해거름의 매실 밭 전경입니다. 하루 중 이때가 가장 아늑하고 평안한 시간입니다. 서양에서는 이 시각을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 한답니다. 오늘은 정말 엄청 일을 많이 했습니다. 몸을 수고롭게 하면 잡념이 사라집니다. 잠도 잘 옵니다. 노동은 인간만이 누리는 유일한 특권이라고 합니다.
화개정에 불을 밝힌 모습입니다. 지금 시각이 저녁 7시 반 조금 지나 있습니다. 작업복을 벗고 손 발을 씻고 새 옷으로 갈아 입었습니다. 허리는 좀 뻐근 하지만 기분은 화개정 붓글씨 처럼 날아 갈 듯 합니다. "자연으로 돌아가라!" 우리 모두가 잘 아는 유명한 말입니다. 내가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말하면 그저 그런 말이 되고 마는데 루소가 말했기 때문에 유명해 진 말입니다. 말은 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서 그 무게가 달라지기도 하는가 봅니다. 주말 농부 일 뿐이지만 나도 루소처럼 깊은 사유와 사색을 즐길 줄 아는 농부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