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니즘을 태운 영혼 / 이병훈 에세이집 / 선우미디어 刊
먼 북쪽 산의 눈 소식이 안부인 양 날아든다.
눈보라 치는 산에서 서로의 체온에 의지하며 뒹굴었던 산 벗들이 밀물처럼 다가와 건조한 실갗에 온기를 불어 넣는다. 아스라한 기억 저편, 동네어귀에서 볼품없는 썰매를 지치며 놀았던 어린 시절 친구도 보고싶다.
글쓰기를 시작한 지가 꽤 오래 되었지만 책 내기가 이처럼 주저됨은 평소, 부지런하지 못함과 괜한 품을 팔아 책 공해에 일조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 때문이다. 오랜 세월 산을 오르며 해외원정등반도 하면서 굳어진 나의 삶의 철학은 ‘자연의 순수를 지키는 것’에 있고 이에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늘 옷깃을 여미었다. 이런 이유로 짬만 나면 산으로, 산으로 내달렸다. 그런데 산악 활동도 그렇게 행복한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론 함께 하지 못한 많은 인연의 고리에 묶여 안타까운 적도 많았다. 이럴 때마다 거절과 결핍의 상처를 치유하며 혼자의 충만함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이 산이기도 :했다. 많은 되짚음을 통해 ‘글쓰기’란 '등산'과 그 여정이 일치한다는 견해를 얻게 되었다. 그래서 산악운동의 신념과 문학 칭작은 정신적 가치의 절정을 찾아가는 신선한 작업의 치열함을 정제시켜내는 행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의 발자국에 담긴 그 어느 활동도 본연의 순수함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를 찾고자 하는 바람이 자못 부끄러워지는 것에 일성도 지르지 못하고 외면해야 하는 이 세상과 시절이 사실 아프다. 재주가 부족해 ‘책 읽기’에서 '쓰기’란 고개를 어렵게 넘어가고 있지만 어제와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므로 더없이 행복하고 고맙기도 하다. 그래서 무소의 뿔처럼 가고자 한다. 문득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이라는 윤동주가 그리워진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고 또 변하지 않으면 발전을 도모할 수가 없을 것이다. 나는 나름으로 더 미래지향적으로 진취적인 발전을 위하여 끊임없이 공부하고 생각하며 새로움을 추구하며 살 것이다.
끝으로 책을 낼 수 있게 성심껏 도와주시고 성원해 주신 문단의 선후배님들께 진심으로 고개 숙여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꾸준히 글공부와 인생 공부에 매진하려 한다.
― 이병훈, 책머리글 <책을 내면서> 중에서
저자 이병훈은 산을 좋아했다. 스스로 '산쟁이'라 했다. 인자요산(仁者樂山)이란 말은 어진 자는 의리에 밝고, 산과 같이 중후하여 변하지 않으므로 산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오늘날 산악인들은 어진 사람이 되기 위해서 산에 오르는 것이 아니고 산을 오르다보니 산이 좋아진 것이다. 산이 거기 있기 때문에 산에 오른다고 한 말은 정답이다.
이병훈은 평범한 산행인이 아니고 세계 명산을 두루 등반하고 히말라야까지 가서 위험한 고비도 많이 넘긴 베테랑 등반가다. 그의 작품도 자연히 산에 대한 소재가 많고, 알피니스트의 정신으로 쓴 그의 글은 표현이나 주제가 곧고 활기차다.
처음에는 산에 대한 칼럼을 쓰다가 수필문학세 입문하게 되었고, 그와 연관이 있는 수필과 시의 낭송문학을 개척하여, 그 기반을 닦아놓기도 했다. 지금은 시와 수필을 쓰며 문학 전반에 관한 공부와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이병훈의 글은 세속의 굳어진 윤리 도의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스럽게 쓴다. 따라서 세상사를 표현하는 데 있어 에둘러 그늘에 숨거나 수식어로 그것을 미화하려고 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보이고, 느껴지는 대로 쓴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며 발걸음을 멈추거나 주저하지 않는다. 앞으로 곧장 나가면서 급변하는 현실을 더 빠르게 재촉하는 편이다.
따라서 도문일치(道文ᅳ致)보다 예문일치(藝文ᅳ致)의 문학관에 가깝고 포스트 모더니즘적 주제와 표현법을 즐겨 쓴다.
― 견일영(수필가, 소설가), 해설 <일파니스트(Alpinist)의 예문일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