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오늘의 경제발전을 이루게 된 것은 박정희라는 리더가 있었고 현장에서 기업을 이끌었던 경제인들의 노고가 있었기 때문이며 특히 이병철과 정주영이 견인차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5.16혁명 공약에는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해결한다."는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혁명을 직접 디자인한 서른다섯의 김종필(이하 JP) 중정부장의 머리는 복잡했습니다.
혁명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은 평균 176달러였습니다. 자유도 좋고 민주주의도 좋지만 우선 먹고 사는 문제가 시급하였습니다. JP는 2300년 전에 맹자(孟子)가 말했던 무항산(無恒産) 무항심(無恒心)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항산(恒産)은 일정한 재산을 뜻하고 항심(恒心)은 너그러운 마음을 뜻하는 글자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먹고 살만 해야 마음에 여유가 생기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마음에 여유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저런 고민을 하고 있는데 한국일보 장기영 사장이 찾아왔습니다.
장기영 사장은 "경제를 살리려면 경제의 경(經)자라도 아는 기업인들을 십분 활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그런 사람들을 부정축재자로 몰아서 가두어놓으니 기업이 일을 못하고 있습니다. 빨리 기업인들을 풀어서 일을 하도록 해야합니다."라고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JP는 기업인들이 모두 혁명위원회에 잡혀가 있는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JP는 장기영 사장의 말을 옳게 여기고 즉시 박정희 최고회의 부의장을 찾아가서 기업인들을 풀어주어야 우리가 요망하는 경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설득하였습니다.
이에 박정희 부의장은 "나도 그점을 못마땅 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잘되었구만 그렇게 하지," 라고 승인을 해주었습니다.
그 시기에 일본에 출장중인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이 기업인들을 잡아들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귀국을 망서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마침 모국의 군사혁명을 지지하기 위해 서울에 와 있는 재일거류민단의 권 일(權 逸) 단장을 통해 신분을 보장할테니 아무 걱정말고 귀국하라는 통보를 했는데 6월 26일 비가 퍼붓는 밤에 김포공항에 이병철 회장이 도착하였습니다.
중정의 이병희 서울 지부장이 마중을 나가 이병철 회장을 서울 메트로 호텔로 모시고 왔습니다.
JP는 "잘 오셨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우리나라 경제인들 중에 리더십을 발휘해 주실분은 이회장님 밖에 없습니다. 경제인 협회 같은 것을 만들어서 회장을 맡아주십시오."라는 부탁을 하였습니다.
이병철 회장은 적극 협조하겠다는 약속을 했고 이튿날 JP는 이병철 회장을 박정희 부의장에게 인사를 시켰습니다. 그자리에서 박정희 부의장은 "이회장님께서 선두에 서서 기업인들을 이끌어주십시오. 행정적인 뒷받침은 헉명정부에서 다 해드리겠습니다."라고 이병철 회장을 안심시키면서 그에게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구금되어 있던 기업인들은 6월 29일에 모두 풀려나고 8월 16일 "한국 경제인연합회"[지금의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출범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출범한 한국경제인연합회 초대 회장으로 이병철 삼성회장이 맡게 되었으며 1962년 ~ 1966년의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선도해 나갔습니다.
이병철 회장은 왕성한 책임감으로 일본 재계를 수 십 번을 오가며 어려운 문제를 대부분 해결한 해결사이기도 하였습니다.
당시는 미국 기술보다 일본 기술을 배우기가 쉬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리 공업기술 수준이 대부분 일제시대에 하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67년 어느날 박정희 대통령은 JP에게 "임자! 이병철 회장에게 이제는 중화학공업을 할 수 있는지 한번 알아봐"라고 운을 띄웠습니다.
그 며칠 후 JP는 이병철 회장과 함께 청와대로 들어가 박정희 대통령과 마주앉아 중화학 공업에 관한 의견을 나누었으며 이병철 회장은 우선 전자산업 부터 해봐야겠다고 하여 만들어진 것이 지금의 삼성전자입니다. 그것이 세계적인 반도체 산업이 탄생한 모체가 된 것입니다.
한편 정주영 회장은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어 포니 자동차 생산에 성공하여 오늘의 현대자동차 회사를 탄생시켰으며 전차와 장갑차 같은 무기를 생산하는 군수산업을 일으켜 현대중공업이라는 세계 굴지의 기업을 만들어내는 괴력을 보였습니다.
이병철 회장은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는 스타일이고 정주영 회장은 실패를 하더라도 일단 일을 저질러 놓고 보는 저돌적인 스타일이어서 두 사람의 성격은 달랐지만 일을 추진할 때는 무서운 뜩심을 발휘한다는 데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1인당 국민소득은 금년 10월 현재 3만 4천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부(富)는 지휘봉을 잡은 박정희 대통령과 꾀를 제공했던 책사 JP, 그리고 견인차 역할을 담당했던 이병철과 정주영이라는 걸출한 기업인들의 희생적인 수고의 덕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