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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다카하시신지님의실천!팔정도! 원문보기 글쓴이: 오로지팔정도
저 세상과 이 세상
현상계 이 세상은 선과 악, 조화와 부조화의
모든 현상이 동거하고 있는 사회이다.
그것은 우리들의 의식이, 인생항로의 수행장을 건너가는
육체주(肉體舟)의 오관육근이라고 하는 번뇌가 만들어 낸 산물이다.
번뇌가 육체주(肉體舟)을 지배해 버리면, 표면의식이 10%, 잠재의식이 90%가 되어,
여러 가지 사상(事象)에 대해, 자기보존이 되어 판단이 둔해지고 만다.
판단이 둔해지기 때문에 자기발견을 위해 수행이 가능하다고 하는 것으로도 된다.
저 세상, 실재계는, 천상계, 지옥계로 크게 나뉘어,
선악이 확실히 구분되어 있다.
왜냐하면 관성의 법칙과 마찬가지로,
이 현상계에서의 인생항로의 일생이 의식에 기록되어,
이 세상을 떠날 때의 상태로 저 세상으로 돌아가,
얼마 동안은 현세의 의식을 계속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행위와 상념이, 자신의 마음에 반한 의식 속은
신불의 빛이 없기 때문에 어둡고,
자신의 마음에 충실하게 생활하여 정법을 실천하고,
사람들을 자비와 사랑에 의해 구원해온
인간의 의식은 빛으로 충만해있다.
인간이 이 현상계에서 생활을 해 온 일체의 선악에 대해서는,
자기자신이 재판하고, 지옥 극락도 자신이 정하여,
죄의 보상도 또한 자기자신이 해야 하는 것이 저 세상의 법칙인 것이다.
깨달아도 깨닫지 못해도, 자신의 마음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것에는 어떤 사람도 간섭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자기자신을 안이하게 하는 것도 엄격하게 하는 것도
스스로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세계인 것이다.
(주; 상념의 세계로서 생각하는 것이, 생각하는 순간 이루어지는 세계이므로,)
그럼 그 세계에는 어떤 구분이 있는지,
다음과 같이 상세히 설명해 보자.
1. 여래계 (如來界-상단계 빛의 대지도령)
이 세계는, 마음의 조화도에 의해, 신불과 표리일체,
이 현상계와 실재계의 지배자의 세계로서
“광명의 세계”
라고 한다.
석가. 예수. 모세. 즉 아가샤계 그룹이라고 일컬어지는
상단계 빛의 대지도령의 세계로,
불교적으로는 금강계. 여래계라고도 불리어지고 있다.
상단계 빛의 대지도령들은,
우주즉아의 마음을 갖고, 모든 것에 구애 받지 않는,
만상(萬象) 대조화를 근본으로 한 사회를 만들어,
이 세상과 저 세상의 지배를 하고 있다.
그 환경에는, 식물. 광물. 동물의 존재가 있고,
또한 상춘(常春=항상 봄)과 같은 온화함과 아름다운 조화의 세계로,
만국(萬國) 인민공존(人民共存)의 사회생활이 영위되고 있다.
2. 보살계 (菩薩界-상단계 빛의 지도령)
여래계에 이어,
불교에서 보살계로 일컬어지고 있는 빛의 나라가 존재하고 있다.
상단계 빛의 지도령의 세계로서,
여래계와 거의 같은 사회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마치 이 현상계로 말하면,
중앙도시와 그 근교와 같은 느낌을 받는다.
대자연의 아름다움은 이 현상계와는 비교할 수 없다.
이 세계의 빛의 지도영의 가슴에는, 약 6mm 정도의,
꼭 단추나 뱃지와 흡사한 것과 같은 것이 3개 붙어있고,
이 기능은, 통신에서 말의 SELECTOR등 일체의 감지작용을 한다.
집적회로와 비슷한 기계이다.
이 현상계에 존재하는 일체의 문명도 존재하고 있지만
그 문명의 높이는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향기 높고 차원이 다른 세계이다.
다른 천체와의 외교관적인 일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고,
지도령들은 현상계와 실재계의 지도와 함께,
자기자신도 또한 생활 속에서 수행을 하고 있다.
3. 신계 (神界-빛의 천사)
보살계보다 1단계 낮은 영역(靈域)의 세계가,
빛의 천사가 살고 있는 신계이다.
이 세계에는, 철학자, 학자, 과학자와 같이,
지(智)로 깨달아 실재계로 돌아간 천사들이 생활을 하고 있다.
전문적인 연구자가 많고, 이 현상계에서 육체주(肉體舟))을 타고 수행하고 있는 사람들의,
연구노력에 협력하고 있는 빛의 천사들로서,
DOCTOR라고 불리어지고 있는 천사들이 대단히 많은 곳이다.
또, 이 세계보다 한층 더 낮은 단계에 있는 영계(靈界)나 유계(幽界)의 지도자들도 많다.
저 세상은 어디까지나 의식의 조화도에 의해
세계가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저단계의 세계에서 상단계의 세계로 가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며,
저단계부터는, 상단계의 세계는 빛이 강하기 때문에 보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이 현상계의 사람들이, 8백만의 신들을 기원하는 것과 비슷해,
저단계의 주민들은, 상단계 빛의 대지도령이나 상단계 빛의 지도령을 보면,
역시 신이다라고 부처님이다라고 하여 합장하거나 성호를 긋거나 하고 있다.
만약 저단계에서 상단계의 세계로 갈 수 있는 경우라도,
반드시 상단계 빛의 천사나 지도령이 함께 있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곳이다.
이처럼 의식의 조화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이 사실에 의해서도 우리들은 알 수 있다.
때문에 우리들은, 저 세상의 구조에 대해서 충분히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불교에서도, 크리스트교에서도 항상 교시하고 있는 세계이며,
우리들이 올바른 인간으로서의 생활을 보내고 있으면,
누구에게라도 확인할 수 있는 세계이다.
4. 영계 (靈界)
신계보다 한 단계 내려온 세계가, 영계이다.
예능 관계나 스포츠 관계, 또 사상적인 소집단에 있었던 주민들이
대단히 많은 세계이다.
동양, 서양, 어느 민족도 상관없이, 인류는 모두 형제라고 하는
하나의 세계로 진전되어 있는 곳이며,
유계보다 정묘화 되어 영역이 높다.
유계와 마찬가지로, 신사. 불각. 교회도 있지만,
형태를 만든 것은 아무것도 섬기지 않는 반성의 장이며, 수행의 장이다.
분신(分身)이나 본체(本體)라고 하는,
혼의 형제들과도 항상 연락을 취하거나 하여,
공동생활을 하고 있는 주민도 많이 있다.
생명의 형제들에는, 같은 나라 사람끼리라고 하는 것은 적다.
그리고 의식이 완전히 통하고 있기 때문에,
생각하고 있는 것 등은 금방 알 수 있다.
따라서 그 점도 육체적인 양친이나 형제등과 차이가 있어 진보적이다.
또 생명의 분신이나 본체가 현상계에 나와있는 경우는 수호령도 한다.
이 세계에서 보면, 지상계는 유리로 둘러싸여 그대로 간파되기 때문에,
번뇌에 지배되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도 잘 알 수 있으므로,
분신이나 본체의 인생항로의 변화에,
유계, 영계의 사람들이 함께 고통스러운 수행을 하는 경우도 있다.
신리(神理)를 깨닫고 있는 사람들의 수호라면 안심하고 있을 수 있지만,
마음이 없는 본체나 분신이 육체수행하고 있을 때는,
교대해 주고 싶어진다고, 그들은 말하고 있다.
육체수행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부조화한 마음이 있을 때는,
저 세상의 본체나 분신은, 수행의 장소에서 신불의 빛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상계의 수행자의 옆에서는 검은 상념에 뒤덮여,
육체자에게 가르치는 것이 불가능하여 슬퍼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우리들 인간은,
혼자서 수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항상 혼의 형제나 친구들이 협력해 주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영계에는, 유계에서 진화해 온 생명도 많으며
저 세상에서는 영계인과 유계인의 수가 가장 많다.
육체적인 양친이나 형제는,
이러한 생명의 친구나 친한 자들이 상담하여 시청과 같은 곳에 신청한 결과의 현상으로,
약속한 사이인 것이다.
이것을 연생(緣生)이라고 한다.
우리들은, 이와 같이 저 세상의 생명에게,
항상 컨트롤 되고 있음을 알아야만 한다.
5. 유계 (幽界)
유계는, 일반적으로 천상계의 입구로서 상하의 단계가,
영의 조화도에 의해 만들어 낸 세계이다.
이 현상계와 마찬가지로,
자기자신이 희망한 사람들의 집단에 의해서 각국이 존재하고 있고,
현세와 다른 점은, 전쟁이 없는 조화된 사회조직으로 되어있고,
경제는 BARTER(물물교환)제를 취하고 있다.
또 각자가 자기자신에게 만족하는 것을 잘 깨닫고 있다.
표면의식이 90%로 되어있고 잠재의식이 10%이지만,
아직 인간사회의 냄새가 난다.
한동안, 육체적인 선조나 양친, 형제들과 생활을 하는 생명이 많지만,
그것도 같은 정도로 조화된 의식을 가진 사람들끼리의 집단이기 때문에,
우리들에게는 만나는 것도 힘들다.
유계도 상단계로 감에 따라,
타국인과 같은 장소에서 생활하도록 되어 있지만,
역시 이 현상계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 조화도가 높은 세계이다.
일하고 있는 사람들도 대부분 근면하고,
마음의 수행에 전념하고 있어,
보다 높은 차원의 세계에 진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신계나 영계의 지도자들이,
여러 가지 교육을 하여 그 사람들의 마음의 연마, 생활과의 조화에 협력하고 있다.
이 세계로부터도, 육체수행의 목적으로 현상계에 태어나는 자가 많다.
그것은 이 현상계가, 각 세계를 통해 가장 힘든 수행장이기 때문에,
의식을 그 이상(以上)으로 닦아, 자신들의 세계의 영역을 높이려고,
유계 인들이 육체수행을 신청하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하는가 하면,
저 세상은, 여러 가지 현상을 금방 자신이 알고 말기 때문에 좀처럼 수행을 할 수 없고
깨닫는 것도 빠르고 고통이 적다,라고 하는 이유에 의해서다.
또 시간도 다르기 때문에 수행에 대해서의 진화는,
이 현상계의 수행결과와 많이 달라진다.
현세의 1년은 실재계의 수행에서는 70년∼100년에 해당한다.
따라서 저 세상의 수행효과보다 현재에 있어서 깨닫는 것이
보다 빠른 길인 것이다.
6. 지옥계
지옥계는, 인생항로에 있어서 수행결과의,
부조화한 상념에 비례한 세계로서 존재하고 있다.
이 현상계에 있어서, 올바른 사람들을 미워하거나, 질투하거나,
항상 마음의 안식이 없는 사람들이,
이 세상을 떠나기까지 그 의식을 계속 갖고 있으면,
그 지옥에서, 깨달을 때까지 수행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색정이 강하고, 항상 육체적인 욕망이 강한 사람들에게는,
그 욕망을 충족시킬 수 없는, 좋아하는 사람과의 생활도 마법에 빼앗기는,
항상 정신이 불안정한 생활의 연속이 이 세계이다.
연옥지옥(燃獄地獄)의 환경은, 고통이나 슬픔의 세계이며,
항상 마음 속에 투쟁과 파괴가 소용돌이치는 사람들의 세계로 안식은 없다.
타인을 질투하는 사람, 화내는 사람, 위선자, 에고이스트,
미친 사상가 등도 또한 거기에 빠진다.
금전욕이 강한 사람이랑, 이 세상에 미련이나 집착을 갖는 사람,
자기자신에 만족하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아귀계에 빠진다.
동물적 본성을 통째로 들어내는 사람들은 동물계에,
또 방화범은 화염지옥에,
스탈린이나 히틀러와 같이 무간지옥에 있는 생명도 있다.
무간지옥(無間地獄)은,
현세에 있어서 많은 인민을 희생하여 아욕을 이룬 사람들이 가는 세계이다.
많은 사람들의, 원한의 상념이 풀리기까지
그곳에서 무한으로 고통 받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이다.
지위, 명예, 경제력, 학력 등은 일체 저 세상에서는 모두 통용되지 않는다.
다만 통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의 조화도와, 매일의 올바른 행위와 노력의 집적이다.
이 현상계에서 물질경제의 노예가 되어,
항상 자기보존이나 자아아욕에 철저한 사람들의 마음은
그 아귀계(餓鬼界)에 마음이 통하여,
육체를 가지면서 지옥의 생활을 하고 있다.
영달만을 바라는 자, 투쟁으로 날이 새고 있는 자,
부조화한 교의(敎義)를 모든 사람들에게 설파하는 지도자,
조직의 세포로 바뀌어 있는 자 등,
마음에 평화가 없는 사람들도,
지옥의 아수라(阿修羅)로 통하고 있어서,
살면서 아수라 지옥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들과 반대로, 만족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안식이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육체를 떠날 때에 근심이 없는 생활을 하도록
자주 반성해야만 하는 것이다.
올바른 법이 사람들의 마음에 침투되어 갈 때,
“마(魔)”는 스스로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부조화로운 마음을 가진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 반격을 한다.
혼의 수정에의 저항이다.
지금까지 부자연스런 것을 믿고 있었으나
정법에 귀의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동요를 주는 것이다.
때문에 정법을 깨달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육체의 지배자인 자신의 의식,
그 중심의 마음의 왕국을 확실히 잡아 ,
부조화한 것이 들어오지 않도록 자신감을 갖는 것.
절대로 헤매는 것 없이,
가장 인간다운 자신의 마음에 속박이 없는 안식의 생활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신불의 빛에 의해 뒤덮여지기 때문에,
마(魔)는 접근할 수 없게 되고, 포기하고 떠난다.
자신의 마음의 왕국의 지배자는 자기자신이며,
부조화한 것의 침입은 절대로 막지 않으면 안 된다.
또 신앙을 하고 있어도 마음에 안식이 없는 사람들은,
자주 반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신불을 신앙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여,
타인에게 입에 발린 말이나 단순한 행동만으로 조화를 꾀하려고 하여도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타인의 언동에 현혹되지 않는 마음을 갖는 것이 필요하며,
분노나 증오를 표면으로 나타내지 않으니까 깨닫고 있다고 하는 생각은,
정법이 아니다.
자신의 마음 속으로부터 분노, 증오, 질투, 비난, 음란한 정욕의 상념은,
이것을 내던지는 것이다.
부조화한 상념을 모아두고 있으면, 반드시 언젠가 폭발한다.
아만(我慢)은, 마음의 창고에 보존하는 것이 아니고,
부조화한 문제에 구애됨을 갖지 않는 것, 이 정법이다.
참는 것을 마음속에 축적하고 있으면, 마왕에게 지배되어,
자신을 잃고 마음의 왕국을 유린당한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부조화를 일으켜, 병의 원인으로도 된다.
지옥계의 각 단계를 지배하고 있는 마왕은,
이 현상계의 부조화한 사람들의
어두운 상념에 뒤덮인 마음의 세계를 지배하고,
그럴싸한 이론을 말하여 그 사람들의 마음을 현혹시켜 안식을 주지 않는다.
마왕에 의식을 지배되어 있을 때는, 불면증이 된다.
그 시간은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이 조화되어 있을 때는,
그들은 인간의 마음을 지배할 수 없다.
정법을 깨닫고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의 영도(靈道)가 열리면,
그 사람의 생각을 귓가에 주의시켜 주거나,
신리(神理)를 가르쳐 주는 수호령이나 지도령의 말은 사랑과 자비로 충만해 있지만,
지옥계의 마왕들의 말은, 자만감이고 이기적이며, 위압적이고,
결코 사람에게 안식을 주지 않는다.
스스로 자신이 신이라든가, 여래다, 보살이다, 부동명왕이다 라며 뽐내며,
말하는 것이 항상 다르다.
부자연스런 것을 진짜인 양 말하고, 사람의 마음을 기만하고 희롱한다.
마왕에게 육체를 지배당하고 있는 사람들은,
마침내 피로하여 병에 걸리거나, 정신적으로도 착란상태가 되어
폐인과 같은 인생을 보내게 된다.
무서울 따름이다.
설사 영능자라고 칭해도, 그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서는,
그것은 선(善)으로도, 악(惡)으로도 지배당하는 것이다.
마왕이나 동물영들은, 비록 예언이나 병을 고쳐도,
그것은 일시적 현상이며, 우리들은 절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자주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판단하여 가까이 가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그들의 진리는 모순으로 가득 차있고, 자기주장이 강하고,
공격의 본성밖에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마왕은 또한 절대로 풀 수 없는 어려운 문제를 말하며,
조직을 어지럽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벌을 받는다든가, 업이 나와 사라져 간다든가,
협박처럼 보이는 것을 신불의 명령처럼 말한다.
금전적으로 오염되고, 보시를 강요하거나,
질투, 증오, 비난, 분노의 덩어리로 희로애락의 차이가 심하다.
그것은 자신의 욕망이 충만 되었을 때는 기쁨,
불만일 때는 타인을 매도하고, 화내고 항상 자기중심이다.
또 기도하는 것에 의해 인간의 욕망은 충족되고,
가난한 이는 부자가 되고, 병은 고쳐지고,
희망은 이루어진다고, 그들은 약속을 한다.
이와 같은 것은 절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신불은, 만상만물을 인류에게 맡기고 있는 것으로,
아무리 기도해도 욕심이 많은 인간의 부탁 따위는
절대로 들어주지 않는다.
올바른 마음과 노력 없이 신불의 가호는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또 동물영에 지배되어 있는 사람들은,
그럴듯하게 치장하여 말하지만,
자신의 마음 속은 항상 부조화로 욕망의 덩어리이다.
가령 경을 공양하는 것이 신앙이라고 말하지만,
경문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은 잊고 있다.
진리인 양 설파해도 마음은 없고, 그들의 생활에는 일관성이 없다.
항상 가까운 육체선조를 모시거나,
좋은 계명을 주어 공양하는 것에 의해, 불행이 없어진다는 것을 주장한다.
가난, 병, 사고에 대해서는,
신심이 부족하다든가, 신불의 숭배하라든가 핑게를 대며 자신의 교의를 억지로 밀어붙인다.
가난도, 병도, 사고도,
실은 자기자신의 상념과 행위에 의해 현상화 된 것이며,
다른 사람의 소행은 아닌 것이다.
우리들은, 이것을 잘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의 신리다움에 현혹되지 말고,
그들의 상념행위를 잘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그들의 대부분은, 수많은 이성(異性)과 교제를 갖고,
정욕의 포로가 되는 특징을 나타낸다.
신의 이름, 여래, 보살, 제천선신(諸天善神)의 이름을 말하며,
사람들의 마음에 신뢰감을 주려고 한다.
주의해야 할 것이다.
진정한 여래, 보살, 제천선신은,
인간의 마음의 본질, 올바른 행위에 대해 가르치고,
과거세의 말을 자유자재로 말하고,
전생윤회를 구체적으로 설파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평안과 조화를 준다.
결코 자만감이나 자기주장을 하지 않고, 겸허하며,
신리에 모순이 없고, 마음과 행위에도 모순이 없다.
자비와 사랑으로 충만해 사람들의 마음을 인도하는 것이다.
동물령이 보여주는 영시현상은,
보살, 여래, 제천선신으로 변화하여 보여주는 경우가 많고,
그들은 화내는 마음, 정욕의 마음을 갖고 있고, 금품을 강요하고,
자비도 사랑도 말뿐으로, 음(陰)으로는 아욕의 화신이다.
또 마음이 없는 조직은, 항상 조화가 없고,
형식, 예절, 계율만 엄격하고 지위나 명예를 고집한다.
형태로 만든 것을 숭배하는 대상으로서 기도하는 것이 신앙이라고 역설(力說)하고,
이익주의, 타력본원으로 이끌어,
지도자의 지위를 반석으로 하려고 자기보존이 강한 성격을 갖는다.
배타적이기도 하다.
동물령은, 우리들의 마음의 눈으로 꿰뚫어 보면 자주 본성을 드러내게 되지만,
정법을 깨닫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협조적인 것처럼 보이게 하던가, 배신행위를 한다.
이러한 집단에는 같은 류의 생명이 모여, 유(類)는 유(類)를 부르는 법칙에 따라,
자신의 본성을 잊어버린 사람들의 집단으로 바뀌어 있다.
이곳에는, 마음의 평안이 있는 사람들은 적고,
마음이 올바른 인간은 의문을 갖고 물러난다.
같은 동물령 중에서도,
이나리대명신이나 용왕들 제천선신의 지도를 받고 있는 동물령은,
수하로서 활동하고 있어서,
인간에 대해 결코 나쁜 행위는 하지 않는다.
그러한 영도 있다.
신앙을 하면 할수록 불행이 일어나고,
마음에 평안을 얻을 수 없는 신자들은,
자기자신의 본성을 보고 잘 반성해서,
하루라도 빨리 동물령에게 침범되어 있는 형식신앙의 늪에서 발을 빼어,
깨달음에의 길로 내달아야 할 것이다.
선계, 텐쿠계(天狗界)로 통하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본위이다.
인적 드문 산중에서의 육체고행 속에서 자기자신의 고독한 깨달음을 열지만,
이에는 자비도 사랑도 없다.
과거세에 있어서도 같은 것을 하고 있다.
전생(轉生)은 육체고행의 업을 갖고 있다.
그 생활은 독선적, 자기본위로, 마음은 좁고,
그 생애의 끝은 가련한 것이 많다.
동물영에 지배되어 있는 자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 동물영들이 현상계의 분신이나 본체의 영도를 먼저 열어버리고 마니까,
그때문에 같은 생명의 업을 만들어내고 마는 것이다.
신리를 깨닫고 있지 않기 때문에, 부조화한 영을 불러들이고 만 것이다.
육체적 고행을 하고 있는 생명도,
그 때문에 영적 현상을 일으키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그것으로 고통 받는 중생의 마음을 구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육근의 청정은 말뿐이며, 마음의 조화는 생기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육체고행의 목적이, 육근청정이 되는 행법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점에,
큰 잘못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
육체고행의 고통이 마음의 부재를 만들고,
그 틈으로 부조화한 영은 몰래 잠입해 온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안, 이, 비, 설, 신, 의(意)의 객관적인 현상에 현혹되지 않는,
그 마음의 올바른 자세에 따라서는,
육근을 반대로 깨달음으로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그 표시로서, 마음과 행위의 조화가 이루어져 있는 사람들의 육근은,
청정한 것이다.
육체고행으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여 이 현상계를 떠나도,
도달하게 되는 곳은 선계(仙界), 텐구계이며,
또한 같은 고행을 반복할 뿐으로,
이 사람들은, 결코 빛의 천사가 살고 있는 세계로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인생항로의 배에 희롱 당하여,
끝내 자비와 사랑의 마음을 갖는 것 없이,
중생에게도 그것을 주는 것 없이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기 때문이다.
1800년경 그 이전에는, 선계나 텐구계의 주민들이,
육체수행의 실력시험을 위해 이 현상계에 모습을 나타내어
인간을 데려가는 사람이 많았었다.
그러나 그 인간들을 되돌려 보낼 수 없었기에
큰 소동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그 사건 때문에, 실재계의 지배자인 상단계 빛의 지도령이랑, 대지도령들에 의해,
그 힘이 봉인된 적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단속 때문에, 최근은 그런 장난도 없고, 현상도 일으키고 있지 않은 것이다.
이와 같이 육체고행의 업을 수정하기 위해 태어난 신불의 자식도,
이 현상계에서 현혹되는 것이 많고,
정법을 깨닫지 못하고,
끝내 동물영에 빙의되어,
스스로 불행을 만들어 일생을 보내고 마는 사람이 많다.
올바르게 정법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지도령이랑 수호령이 붙어있어,
본인을 깨닫게 하기 위해 잠자고 있을 때에 그 의식을 닦거나, 현상을 보이거나,
예고하거나 하는 경우가 있다.
또 일어나고 있을 때에 의식이 희미해져,
나는 심장병이 아닐까 하고 고민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 현상은, 빛의 천사가 신리를 가르치는 사명을 위한
실재계로부터의 육체적 현상이다.
사람들의 반성하는 시간인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경험자는, 정법의 실생활을 하는 것에 의해,
병은 잊혀진 것처럼 낫고 만다.
반대로 동물영에 지배되어 있는 사람들을 영시(靈視)해 보면,
자주 여래나 보살, 제천선신의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은 있는데,
꿰뚫어지면 그 정체를 나타내고 만다.
여우가 빙의하고 있는 사람들은,
하얀 빛으로 보이거나 잿빛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고,
용이나 뱀 등은, 대부분 그 동물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거나 변화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동물령의 대부분은, 부조화한 마음의 지주(持主)의 의식에 빙의되어 있다.
우리들 영도가 열려있는 사람에게,
동물령이랑 지옥령, 마왕에게 지배되어 있는 사람들이 접근해 오면,
이쪽의 의식에 전해져 오는 파동이 무겁게 되어
영역이 다르게 오는 것을 알 수 있다.
악령이 빙의하고 있는 장소가,
육체적으로도 나쁜 곳인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영시는, 100% 적중하고 있다.
영역이 다르다고 하는 것은,
가령 깨끗한 웅덩이에 먹물을 흘린 듯한 현상이거나,
맑은 하늘에 뇌운(雷雲)이 자욱하게 끼어 조금 어둡게 되어
비라도 내릴 것 같은 낌새를 느낀다고 하는 것으로,
깊은 산과 같은 상쾌한 장소에서
뜨뜻미지근한 공기의 소음이 심한 도회에 온 듯한 느낌이 드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현상, 감각은, 우리들 영도자에게 실제로 일어나는 것이다.
영역이 나쁜, 어두운 상념의 주인에게는, 수호. 지도영들이 붙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그 육체를 지배하고 있는 의식이 악령의 세계로 통하고 말아서,
마음의 왕국을 그들에게 지배당하고 있기 때문에 가까이 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사실은 그렇지만, 현상계에서의 수행목적이기도 한 것이다.
깨달음은 사람 스스로의 일이다.
무자비하게 보이지만 ,
이것이 신불의 자식으로서의 우리들에게 주어진,
엄격함인 것이다.
올바른 마음으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반대로 그들은 들어갈 수 없다.
신불의 빛으로 뒤덮여,
수호. 지도령에 의해 지켜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람들은 마음에 응어리가 없고, 항상 평안의 생활을 보낼 수 있다.
정법을 깨닫지 못하고, 영적 능력만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자기자신을 잃지 말고, 신리에 적합한 올바른 마음으로
바르게 생활을 할 것을 권유한다.
스스로 불가사의하다고 생각하는 영능력자는,
마치 신불의 사자처럼 믿어버려서, 자만심에 빠져버린다.
또 예언이 적중하거나, 병을 고치거나 하면,
자기자신을 과신하여, 신자를 미끼로 하려고 계략을 세우거나 하게 된다.
그리고 교조다, 메시아다,라고 자기를 자칭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타력본원을 강요하고 마는 사람이 많다.
일반사람들은, 불가사의한 현상에 대해 무지하며 약하다.
그 때문에, 한번 믿으면, 맹신자. 광신자가 되고 마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마침내 타력으로 구원을 바라도록 되어간다.
마음이 순수한 동안은 기적도 일어난다.
하지만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할수록 평온을 잃어가고,
마음을 악령에게 팔아버리는 결과가 되어,
자신을 진흙탕 속에 빠트려 가게 된다.
불행의 원인은 그렇게 하여, 한 사람 한 사람이 만들어 가는 것이지만,
교조, 간부라고 칭하는 무리들은,
사람의 내면의 마음의 바른 자세를 볼 수 없기 때문에,
가난이나 병 등의 재해가 일어나면,
신앙부족, 근행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안이하게 판단을 내려 신자를 호되게 꾸짖는다.
신자는 또 신불의 벌이 무섭다고 하여, 점점 더 자신을 잃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교조를 한층 더 모시고, 신격화하여 스타를 만들어 가게 된다.
지도자들은, 겸허함을 잃어가고, 교조는 자신이 신(神)인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켜,
더욱더 잘못을 범하여, 많은 신자가 희생이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대신전이나 대불전의 유례를 만들어 참배하게 한다.
그런 돈이 있다면,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구하는 것과,
진정한 복지 등에 사용하는 것이 선결되어야 할 것이다.
신불의 몸 속에 살고 있는 인류가,
무슨 목적으로 막대한 돈을 써
건축물 따위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지구가 대신전이다.
진정한 신불은, 결코 그와 같은 명령을 인간에게 내리는 것이 아니다.
만약 건물이 있다면, 정법 유포의 장소라던가,
오락소, 양로원등과 같은 사회복지의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만이,
진정한 신의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인도의 시대에 있어서 정사(精舍)는, 신자를 희생한 것이 아니었다.
빈비사라, 가란다, 프타라마, 스닷타 이외의 많은 재벌이 기부한 것이며,
베르베나, 제타베나등 많은 정사는,
신리를 설파하는 장소이며, 또 수행자의 숙사였다.
형태를 만든 우상을 모셨던 곳은 하나도 없었다.
설법은, 대부분 교외나 시내 또는 마을의 광장에서 행해졌고
예수 그리스도나, 고타마싯타르타도 같은 방법으로 행하였으며
교단 자체가 자주적으로 만든 정사 따위는 없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만 한다.
하지만 현대의 잘못된 지도자도,
언제까지나 광신자나 맹신자로부터 달콤한 즙을 빨고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
악의 씨앗은 한때의 독화(毒花)를 꽃 피워도,
반드시 악의 열매에 의해 없어지기 때문이다.
최고 지도자들은 반병인(半病人)이 되어,
살아가면서 이 현상계에서 범한 죄를 보상할 때까지
지옥계에 머물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할 것이며,
신자는, 그 종교단체의 지도자 무리의 건강상태를 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만약 그 교조가, 자신의 병이 신자의 업을 받았다고 한다면,
실재계의 빛의 천사를 비롯하여, 신불도 반병인(半病人) 일 것이다.
왜냐하면 현상계의 인류의 부조화의 상념이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신불에게 그런 것은 없다.
태양의 빛에 거울을 대면, 반사하는 것처럼
자기자신의 마음이 올바른 행위를 하고 있을 때는,
신불의 빛으로 뒤덮이기 때문에,
타인의 나쁜 상념을 받는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런 교조나 지도자가 있다고 하면, 자기반성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을 부정한다면,
그 사람은 뇌세포는 물론 의식까지 부조화한 세계의 영에게 벌레 먹힌 것이며,
정신병원에 입원해 의사의 지시에 따르는 것이 현명하다고 말할 수 있다.
독선의 교의를 버리고, 정법에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
불교에서 말하는 이나리대명신이나 용신은,
저 세상에 생존해 있는 동물령의 지배자이다.
제천선신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일원이며,
많은 빛의 천사들이 이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이것도 수행중의 큰 일로서, 상단계 빛의 지도영(보살)이 되기 위해서는,
동물령을 지도, 신리로 인도하는 사명을 달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보다 조화된 차원이 높은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이다.
동물령은, 만물의 영장인 인류와 달라서, 좀처럼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지배자의 눈을 피해,
현상계의 부조화한 사람들의 의식에 빙의하고 싶어한다.
천사는 그것을 막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은 인간에 대한 동경도 있고,
또 육체를 가져 버리면, 좀처럼 마음의 눈을 가지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인간의 부조화한 마음의 어두운 상념에 빙의하여
인간의 마음을 현혹시켜, 빙의령으로 된다고 하는 것이다.
부동명왕은, 실재계의 질서를 바르게 하는 역할과,
현상계에서 육체를 갖고 있는 올바른 마음의 사람들을
마(魔)로부터 지키는 사명을 갖는, 제천선신의 한 사람이다.
부르는 이름은 불교의 그것이다.
안식과 평화로운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의 협력자이며,
마음이 더럽혀져 있는 사람들의 협력자는 아니다.
올바른 상념과 행위도, 부조화한 상념과 행위도,
육체를 지배하고 있는 의식의 의지에 의해 결정하는 것으로,
모두 자기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들의 의식의 세계는,
그 선악의 행위에 의해 엄격한 마음의 조화도의 단계가 있고,
저 세상의 세계로 연락되어 있다.
그 때문에, 올바른 마음의 지혜로부터
용솟음치는 신리의 모종을 사람들의 마음에 심어 가는 도중에는,
부조화한 사람들의 마음에 둥지를 틀고 있는 악령들의 영향을 받아
방해를 받는 것도 많다.
그러한 사마(邪魔)를 제거하는 것이 부동명왕이라는 것이다.
우리들은 자기자신의 마음의 왕국을 확실히 지켜,
맹신과 광신을 버리고, 중도의 마음을 갖고,
반성과 올바른 명상의 안에서 신의 빛을 받아,
일체의 마(魔)에게 지배되지 않도록,
정법에 귀의한 올바른 생활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후 기]
작년에 출판된 “신리편”에 이어 “마음과 과학편”을
또 세상에 보낼 수 있어서 나는 기쁨을 감출 수 없다.
이러한 일은 한 사람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여하튼 공해, 오키나와, 미지마 사건 등,
현대 일본의 왜곡을 그대로 현상화 한 듯한,
1970년은 끝나고 새로운 1971년은 시작되었다.
모든 상(相)은 부조화한 유동(流動)의 그대로이다.
나는 “신리편”에서, 그것들의 부조화가 무엇에 뿌리를 두고 있는 지와 관련하여
팔정도에 의한 조화에의 길을 말하였다.
그리고 이 “마음과 과학편” 에서는, 과학의 진리도 또한,
신리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쓰고,
마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찾아봤다.
인간,
이 윤회전생의
“연생(緣生)의 배”
에서 신리에 맞는
“마음”
을 잃은 지 오래다.
사람들은 전세계의 문제에 눈을 두어, 지금이야말로
“마음”
의 부활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수랑 고타마가 설파한, 본연의, 인간이 취해야 할 상념행위로
돌아가야만 할 것이다.
겨우 7,80년의 인생에 있어서,
그 본래의 혼의 수행을 잊고,
자기보존. 자아아욕으로 내달아 그것으로 만족하는 마음으로는,
너무나도 어리석다고 해야할 것이다.
종교의 환경에 있는 자는 물론, 일반의 중생도,
하룻밤 심사숙고하여, 사람이 살아야 할 진정한 길을 반성하고,
이 지상에 진정한 인간의 행복을 찾아내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잠재의식의 보고에는,
과거세에 있어서 체험해온 위대한 지혜가 매장되어 있는 것이다.
오관의 번뇌를 버리고, 신불의 자식으로서의 목적을 상기하여,
그 지혜를 사용해야만 할 때이다.
물질문명에 마음을 빼앗겨, 민족이 상극하고, 계급투쟁에 몰두해,
경제번영에만 살아가는 방향의 키를 잡는다고 하는 것은,
인류의 멸망을 재촉하게 되고, 진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류는 과학하는 마음에 의해, 마침내는, 수많은 다른 지구에,
다른 별에, 그 생존을 오래 지속시켜가는 방법의 가능성이 벌써 보이고 있다.
그러한 시대에 있어서, 일류일파(一流一派)의 흥망성쇠를 닮은,
작은 신불의 몸의 일부에 불과한 이 지구상에서,
암흑과 같은 투쟁을 반복하여도 괜찮은 것일까?
혼(魂), 생명의, 영원한 유전(流轉)과 비교하면,
우리들의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순식간의 점멸 되는 불꽃놀이와 같은 것이다.
신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의 바른 자세에
그 열쇠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우리들은, 서로 용서하고, 서로 격려하고, 서로 협조하고, 서로 감사하여,
시간이 짧기 때문에 소중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 인생을,
의미 있게 보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신불은, 그 인류가 진실로 조화되었을 때,
끝없는 은혜를 주실 것이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타인을 미워하지 말고, 비난하지 말고,
질투하지 말고, 상처 입히지 말고
결실 많은 마음의 풍요로움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그대로 진정한 인간의 삶의 방식이며,
종교 본래의 상념행위,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러한 신리에의 있는 그대로를
“신리편”
에 있어서
“의문에의 탐구”
로부터 본 편의
“인생론”
까지 누누이 실증을 하면서 서술해왔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 방법론은 올바른 마음을 갖고 올바르게 살아가는,
그 이외의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본편에 있어서는, 실증의 의미도 있어서, 과학적 방정식을 사용했지만,
이것은 이해할 수 없는 경향도 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그것들은, 문장에 의한 신리의 증명이기 때문에,
대단히 흥미 깊은 것이지만, 오히려 분석하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인간의,
본래는
올바른 “마음”과, 조화에의 “가능성”을 믿는다.
독자가, “신리편” “마음과 과학편”의 어느곳부터 들어가서,
그 삶의 방식에 시사(示唆)를 주었다고 해도,
그 마음의 자각(自覺)만으로,
나의 목적은 이룩하였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나 자신, 혼이 타는 배인 육체주를 타고 수행의 도중이다.
다만 원하는 것은,
신불의 뜻에 적합한 지상의 낙원의 도래이다.
이 책이, 많은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 힘을 더해,
인류의 그러한 목적의 일단이 될 수 있다고 하면
그것만으로도 기대이상 이라고 말할 수 있다.
1971년 3월
타카하시 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