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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한국역사바로알기 당나라 세운 선비족, 조선의 후예로 자처...
인생길 추천 5 조회 1,033 17.04.17 20:14 댓글 9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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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7.04.18 01:27

    첫댓글 이제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와야지요. 유목.농경의 이분법은 옛날 사람은 바보로 전제한 괴기한 설이죠. 이 작은 나라에도 농민도 있고 어민도 있고 심마니도 있는데요. 이쪽에는 큰 경작지가 2군데가 있는데 만주와 중원이죠. 기후가 더 올라가면 만주가 최고의 경작지가 될거라 예상합니다. 빨리 통일하고 만주도 수복해야되겠죠.

  • 17.04.18 01:53

    필히 한쪽은 경작지에 기대어 유목과 농경을 하는데. 노동구조는 유목은 직접하고 농경은 농노를 쓰지요. 이건 광범하게 나타나는 구조입니다. 어느 시점에서 최대 경작지인 중원을 차지한 알타이제족중 하나가 중국이 되는 것이지요. 한족은 중국과 상관없는 경작지 농노인거죠. 지금은 주인이 없는 틈에 농노가 중국을 참칭하고 잇네요.

  • 17.04.18 02:07

    @대원일 관리구조는 대부분 총독부보다는 분정을 두엇고 후기일수록 직접경영하게 됫고요. 여러면에서 농경생산성이 상대적으로 좋아져서 이겟죠. 기술발달 기후변화등의 요인으로..0년기준으로 그러한듯하구요. 우리의 경우 이후에도 분정만 고집한것이구요. 장악력은 떨어지지만 안정적이니까요. 중원을 잃어도 망하진 않죠. 쨋든 중국역사는 알타이제족의 내부경쟁사라는 시각을 말씀드려바요.

  • 17.04.18 02:12

    @대원일 참고로 svo 어순의 언어는 농노어라고 개인적으로 확신합니다

  • 17.04.18 13:49

    모용은의 비석문 관련되는 이야기..... 좀 정확치 못한 내용이라 제가 부연해 봅니다.

    우선 저 사람은 '모용은' 이 아닙니다. '두로영은' 이죠. 본문에서 말하는 '모용은 비석문' 이라는 건 '두로공 신도비문' 을 말합니다. 이 인물의 성은 두로, 이름은 영은인데, 그 조상이 본래 모용씨였으며 전연 모용황의 후손이라는 것일 뿐입니다.

    본문은 이 비문에 '조선' 이 나오는 것은 (이 비문의 주인공을 넘어) 선비족 전체의 뿌리가 조선이라는 의미가 된다.... 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건 너무 심한 주장인데요? ^^ 일단 본문을 보죠.

  • 17.04.18 15:29

    일반적인 비문의 경우, 그 첫머리에 그 사람과 가문의 내력이 나옵니다. 이 부분에서 종족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지요. 그럼 비문의 첫 부분부터 봅시다.

    "君諱永恩, 字某, 昌黎徒何人. 本姓慕容, 燕文明帝皝之後也. (공의 이름은 영은이고, 자는 모이며, 창려 도하 사람이고, 본성은 모용으로서 연나라 문명제 황(모용황)의 후손이다.)"

    => 첫 문구는 늘상 그러하듯 비문 주인공의 출신에 대한 부분이죠.

    "朝鮮微子之封, 孤竹伯夷之國, 漢有四城, 秦爲一侯. (조선은 기자(微는 箕의 오기)가 봉해진 곳이고, 고죽은 백이의 나라이며, 한나라 때에는 사성(한사군?)이 있었으며, 진나라 때엔 한 명의 제후(고조선 이야기인 듯. 고조선이 왕을

  • 17.04.18 16:02

    칭하기 이전에는 후에 불과했다는 게 중국 역사책의 전통적 인식이었음))가 있었다.)

    其先保姓受氏, 初在柳城之功, 開國承家, 始靜遼陽之亂. 自天市星妖連津兵覆, 尙書府君改姓豆盧, 筮仕於魏. (대충 그 선조들이 어떤 식으로 발전해 나갔는지 요약)

    ....(중략).....

    朝鮮建國, 孤竹爲君, 地稱高柳, 山名密雲. 遼陽趙裂, 武遂秦分.
    (조선이 세워지고, 고죽을 임금으로 삼았는데, 땅을 '고류'라 부르고, 산 이름은 '밀운'이었다. 요양은 조나라가 갈랐고, 무수는 진나라가 쪼갰다.)

    대충 여기까지만 보죠. 보시다시피 고조선에 대한 언급이 있기는 하나, 비문 주인장인 두로영은의 본가인 '모용씨'가 조선에서 나왔다거나, 모용씨가 조선의

  • 17.04.18 16:07

    후예라는 인식이 보이는 건 아닙니다. 작게는 두로영은, 크게는 모용씨가 점유하고 거주했던 요동-요서 일대의 옛 역사를 담당하게 쓰는 느낌에 가깝습니다. 이 내용에 다른 맥락을 더 추가한 뒤에 이 비문에 모용씨의 조선후예인식이 있다고 주장한다면 몰라도, 朝鮮建國, 孤竹爲君 이라는 달랑 한 구절만으로 당연히 모용씨가 조선의 후예로 스스로를 인식한 것이라 단정하는 건 근거가 충분한 주장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하다못해 고구려 유민의 비문에는 '조선인', '삼한인' 등과 같은 표현이 나와 고구려인들의 조선 후예의식을 짐작할 여지라도 있지만, 이 비문에는 그 정도의 여지도 잘 안 보인다는 겁니다.

  • 17.04.18 18:01

    @좋은사랑 상기의 조선과 하기의 조선은 구분할 필요가 있겟네용. 더구나 둘다 시공간적 전체로 볼수는 없어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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