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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문예ノ창작자작글 스크랩 어버이날
메이 필드 추천 0 조회 57 11.05.08 11:4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오월의 밀밭이 바람을 타고   햇살을 받으며  녹색 물결을  일으키고 있었다.

마치 약간 큰 물보라처럼  밀려가고  잠시 후 또 바람이 그렇케 만들었다.

 

그것은 내가 6살 되던해의  오월의 봄날이 었다.

파랑새는 아직 오지 않았지만  제비는 이미와 있었다.

 

그  보리밭 금빛위를  접시처럼 날아다니는 저 새들이 한없이 부러운 나이였다.

나도 저렇게 날수만 있다면  금새날아서 어디론가 마음것 여행을 할것인데.

 

그리고는 어머니를 따라서  이제막 오르기 시작하는 마늘 쫑을 따러 터밭에 가 있었다.

이 따끔 쌕쌕기가  굉음을내며  머리위를 지나가는 전형적인 봄이었다.

 

"어머니 왜 마늘쫑을 따는거예요 " 내가 물었다 .

이때 어머니  말씀은 "음 이건 말이야 이것을 뽑아야  이곳에 힘을?는 대신 마늘이 굵어 진단다.

그리고는 난 어머니와 마늘쫑을 함께 뽑고 있었다.

물론 어머니 열개 뽑을때 난두개를 할까 말까였다.

그런데 어머니뽑는 마늘쫑은 길게 길게 하이얀 색이 더보이는 길다란 쫑을 뽑고 있었다.

난 그냥  잡아당기면  마늘쫑이 마늘 닢  입구에서 뚝 끊어져  오는게아닌가 .

어떻게 어머니는 그렇게도 마늘쫑을 신기할만큼 길게길게  뽑는지 신기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어머니와 내가  마지막 마늘쫑 뽑는 행사였다.

 

그리고는 집에왔서 꽁보리밥  점심을 먹을려는데  문둥이가 따라와서 어머니한테 밥을 동냥 하란다.

난 그때 처음 그 괴물처럼 무시무시한 인간을 처음보았다.

코는 푹 주저 앉았는지  아예없는지 귀는 한쪽이 없구 손가락은  반뿐이 없었다.

 

모두 밭에  일을가고  없어서 멀리서 어머니와  내가 집에  들어가는것을  망을 보고 있었던게 분명하다.

어머니는  찬밥 밖에 없다고 하니까   그자식은 자루에서  광목 자루 주르막에서 뭔가 길다란것을 잡아꺼내더니

어머니를 향하여 휘두른다.

그것은 뱀이었다. 이제서야  알것이지만  여자들과 뱀은 상극이라고 말할까. 하여튼 그자식은 그걸 악용하려 했던게 분명하다.

 

놀란 것은 어머니보다  내가 더 였다 . 난 나도 모르게 어머니 광목  치마속으로  숨어버렸다.

마치  독수리날자  병아리가 어미 날개 밑으로 몽땅 숨어버리듯 난그렇게 눈앞의 위험을 피했다.

어머니는 그럼 어떻하냐고  하니까. 막무 가네로 먹을것을 내놓 란다.

어머니는 광에서 보리쌀 두사발을 바가지에 담아서  그문둥이 자식에게 주니까  등뒤에있는 광목 자루에 주르 르 륵 붙구서  "퇴"

하고나간다. 난속으로 '나뿐새끼 문둥이 주제에 고맙다는 말대신에 그렇게 거만을 떨고가냐 ." "개울  건너다 물에나 빠져라 "

 

휴 !  어머니 치마에서 내가 나왔을때 그자식은 가고 없었다.

당시만 해도 그러니까 63년쯤되었을까  시골 산간 벽지에는 그야말로 500년전 모습이나 다름없는 생활이었고 복지나 문명의 혜택은 전무한 상태였고, 난 신발두없이 맨발루 사는게 더편해서 그냥 맨발루 방이구 마루고 마당이구 막돌아 다녔다.

제일 신나는 날은 비가오는 날이었다. 맨 발루  땅에 흐르는 빗물을 밟는 맛이야 말로 정말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또한 지금은 복지시설이 잘되어 있어지만 그때는 병들면 바로 죽음과 연결되던 시대였다.

 

우리집서 읍내까지 걸어서 3시간 걸리니 말하면 뭣하겠는가 .동리에 한문이나좀 했다는  돌파리 한의사가 탕제약이나  지어주던 그런 시절에  하물며 그문둥이 자식은 의료 혜택이나 받을리 만무하고  그렇게 혐오스런 놈으로 동리에서 구걸을 하며 명까지 살다가 죽는것이었다. 그게 당시의 우리 정부의 현실이고 우리 민초의 삶이었다.

 

내가 왜 그런식으로 표현 하느냐 하면  아무리 무식하고 죽을 병이 들었더라도 내6섯살 눈에 보이는 그자식의 행동은 지탄받아 마땅하다.  어디서 뱀을 갖고 어머니 눈을 향하여 휘두른단 말인가.  나뿐자식 !  좀더 낮추고 예를 갖추면 우리어머니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한번은 이웃에있는  사람들이 우리집에 와서 농사일을 해주고  가는데 물론 품삯도 드렸지만  어두운 부억에서 어머니는 늦게 무었인가 가마솟에서  불을 짚이고 계셨다.

 

나중에 안일이지만  찐빵을 한가마솟 쪄서 일마치고 가는 이들에게 한보따리식 쌓주는거였다.

집에있는 아이들 갖다먹이라고   나의 어머니는 그런 분이셨다.

 

지금 은 그때나 다름없는 오월이고 어제 내 아들이 카네이션을 사들고 와서 "아버지 어머니 고맙습니다 '. 하는데 난 눈시울이 그득했다.

내  어 머니 만큼  아 버지 만큼 아들사랑을 다못한것이  부끄러웠다.

 

 

그리고는 다음해 마늘쫑이 올라 오는날  늘푸른 오월을  뒤로하고 

바람에  출렁이는 밀보리밭을   뒤로한채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셨다

지금에야  안일이지만  급성맹장이  터진것이다  배아프시다고 하시면서 3일만에  돌다리건너서 돌아오지않는 먼길을 가셨다.

일곱살 나와 다섯살 내남동생  세살내 여동생 그리고 형두명을 남겨두고 어머니는 그렇게 가셨다.

어머니와의  만남은 7년이 전부였지만 

지금오십의 중반에 와있는 중년  남자  이녁 마음에는 향상 현실처럼 따라 다닌다.

 

어머니 ! 오늘이 그 어버이날 입니다.

들리 세요 .아들이 그리워하는 목소리를 ..

지금 계시면  어머니 업구서 동리한바퀴 돌것을 ...

고맙습니다 어머니  ! 

그래도 죽지않고 살아서 이렇게 어머니 하셨던것처럼  정직하고 반듯한 사람으로

자식낳고 키우며 어머니 뒤를 따르고 있으니 어머니도  하늘에서  내려다 보시기에 뿌듯 하실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어 머 니 !  아 버 지  ! 

이녁두 언젠가는 이길을 떠나서 어머니 계신곳에 가야 하지만 아직은 못다한 일 남아서 좀더해놓고 뵐 것입니다.

그때  뵈올때 까지  안녕히 계셔요.

불효자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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