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번시간까지 6도세계인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천인 세계와
욕계천인 (하늘) 사천왕천, 도리천(33천) 야마천(염라천), 도솔천, 화락천, 타화자재천 에
대하여 대강 소개 해 보고 우리는 공부를 하였읍니다.
이러한 세게가 외부에서도 있지만 우리 내면에 마음이라는 깜냥안에 다 내재해 있다는 사실도
알아보았읍니다.
그러므로 실재적이다 라고 확언할 수 있는 외부의 세계 전체를 우리의 마음안에 다 장착하고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마음깜냥에 대하여 더 확장해야 볼 수 있는 색계 와 무색계 의 공간계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겠읍니다.
오늘의 소개는 색계 와 무색계입니다.
욕계와 색계사이에는 그 경계가 분명 다른 것이 있읍니다.
그것은 욕계천 까지는 음양이 있고, 남성에게는 싸모! 가 있고 여성에게는 夫君(부군) 이 있다는 것이고
색계에 돌입하게되면 싸모도 없으며, 부군도 없는 세계인데 욕심을 떠난 양태를 지니므로
음욕이 사라집니다.
성 행위 자체가 구질 구질 해 지게 느낀다 이 말입니다.
사람들 세계에 수행하는 자 들중에는 스스로 음욕이 저하되고 수행이 점점 가중하다보면 스스로 고자가 됩니다.
이는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현실 속세간의 문제로 본다면 대단히 안타까운 실제의 사건에 직면한다 는 것을 말합니다.
부인이 있어도, 서로 인연으로 맺어진 과정에 충실하며 현실적인 인생상호간을 존중할 뿐이고 신뢰를 다지는
것은 현재세속문화가 같음을 행하지만 음욕은 이미 없어 진 상태가 되면 색계에 들어선 경지가 된다 이 말입니다.
.
이 정도가 되면 이미 남성 여성의 존재식별이 하나로 한몸이 되는 까달과 같은데 그러하지만 서로의 신뢰와 애정은 더 깊게 발전할 것입니다, 함께있어도 떨어져 있어도 한몸이다, 대부분 이러한 현상 정상인들도 경험하지않읍니까? . <실제로 한몸인 것처럼> 中道 의 세계에 돌입한 상태가 바로 색계 가 되는 것입니다.
이는 경험으로 스스로 느낄 수가 있는데, 이성간의 구애나 데이트는 받아주고 수용하고 그 과정을 유지한다 하여도
단지 방편일 뿐입니다. 방편을 쓰는 목적은 인연이 잘되기를 발원하는 마음입니다.
일단 서로 같음으로 제도를 행하고자 하는 보시 의 대상자로 인연화 해야하는 마땅함일 뿐이므로
아무것도 바라지도 않는 퍼포먼스일뿐입니다..
이는 현실세계에서는 예술적인 경지로 자유의지의 수준으로 가치를 유지하는 정신상태를 말함과 같읍니다.
예전의 실화가 하나있읍니다.
출가하여 수행해서 깨친바 있는 스님이 있었는데 갑자기 홀연하게 사라졌읍니다.
당시 이를 이상하게 여긴 전강조사가 이 스님을 찾느라고 방방곡곡을 누볐는데
어느 한 중소도시에서 방을 하나 얻어 살면서 고물상과 엿장수를 하고 있는것을 발견하고 말았는데
벌써 결혼하고 아이도 하나 낳은 사실을 발견합니다.
이에 전강조사가 이에 대하여 깨친자가 중생이나 사부대중을 제도할 생각을 안 하고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읍니다.
이에 깨친스님이 하신말씀이.
도반인 그대가 알 듯이 수행을 마친후 전쟁연의 인연이 드러나 나타난 것을 보니.
그 인연을 먼저 수습하고 정리하는 것이 우선인지라 이렇게 되었다 하시면서
연유에 대한 답을 하였읍니다.
분명히 자식까지 낳고 아내까지 속세지간을 행하지만 음욕이 없어진 상태로 색계에 진입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인연으로 인하여 맺어서 그 업장을 소멸하는 것을 우선해야 하는
때의 당위성을 먼저 실천하는 의미를 말합니다.
원효대사께서도 색계에 돌입하여 빛의 세계 경지에 머물렀으나 중생제도를 위하여 무열왕의 딸과
혼인하여 불사를 목적하기 위하여 신라국 각지에 행하여 불교를 진흥시키고자
억지로 쥐어짜면서 ? 색시를 맞이하여 자식은 만들 수 있었으나 이미 음욕을 떠난 색계에 돌입한 스님이 원효대사였던 것입니다.
왕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면 왕의 사위가 되는 것이니, 불사를 진행하고자 하는 목적이 주어진다면
아내로 맞아들여 인연을 만들고 함께 중생제도를 행 하는 것으로 최 우선의 중생제도를 목적했던 것입니다.
이를 파게승이라 환속했다고 단언 할 수 없는 것과 같읍니다.
마태복음 19장 12 절
"어머니 배에서 나올 때부터 고자로 태어난 사람이 있고, 다른 사람에 의하여 고자가 된 사람도 있고
하늘나라를 위하여 스스로 고자가 된 사람도 있다. 이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음 받으라"
그러므로 출가자가 되어 수행을 하고자 할때에는 이미 음욕을 떠나거나 음욕을 멀리해야한다는 각오를
지니지 않으면 절대 깨달을 수 가 없으며 견성도 하지 못하며 견성을 하는 과정의 아라한 경지에도
절대 들 수가 없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욕계전 수위에서는 절대 견성을 못하고 불법을 깨치지기 어렵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늙으막에 공부하는 것이 제 일 좋은 기회입니다.
힘이 있어야 무신 시도라도 하고 남녀지정을 느끼지요, 그러므로 염불공부만 하라 이 말입니다 ㅎ
이세계의 진리는 죽을때 잘 죽어야 합니다.
죽는 다고 다 죽는게 아니다 이 말씀입니다.
메란지경으로 죽어서야 되겠읍니까? 무시 무시한 업보가 입을 벌리고 저승사자처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승사자를 방맬이로 처 부스던지 최소한 피해야 하지 않겠읍니까?
똥이 무서워 피합니까? 더러버서 피하지 ... 공부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누구던지간에 어느 적정의 색계에 머무는 마음깜냥을 지닌자임을 스스로 볼 수가 있는데 . 지금 제가 매일 매일 긴 장문의
글을 소개하고 있음인데 , 혹 하고 이 글의 내용의 여부와 관계없이 색계에 돌입하는 경험이 많은 자 들은
이미 음욕을 멀리 할 수 밖에 없는 경지에 드는 그 선상에 있기도 하겠구나 하고 단박에 같음으로 알 수 가 있을 것입니다.
글이라함은 문증입니다, 둥근이치를 증명할 수 있는 여부가 된다 이렇게 이해하실 수도 있는것입니다.
하지만 색계에 돌입하지 못한자는 설사 같이 데이트 하는 상대가 음욕을 멀리 하여 이욕세계에 머문다 하여도
색계에든 자의 행위를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합니다. 이 경계가 뚜렷하다 이렇게 색계의 공거천을 일단 소개 해 봅니다.
그러므로 목사님 들께서도 결혼하고 목자 행위를 하지만 이미 음욕이 떠나 영적으로 감화 되신 분은
부인과 동거하지만 절대 성행위를 하지 않거나 금욕을 서로 이해하는 부부로 거듭 거듭 발전 하게 됩니다.
이게 안되며는 그분은 O 을 본 분이절대 아닙니다. 그냥 믿기만 하고 성경말씀의 겉만 보시는 분입니다.
색계에 돌입한 자들의 대부분은 철학자가 많읍니다.
소크라테스 는 부인이 있어도 색계에 돌입한 분이시고
쇼펜하우어 및 여러 철학자들은 항상 독신생활을 유지하였다는 사실은 이를 증명하고 있읍니다.
어떻게 해서 그러한가?
색계의 돌입경계는 쉬운말로 한다면 "곰곰히 생각하는 습관" 이 계속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어떤 대상을 주목하고 곰곰하게 생각할때 마음은 고요해지고 그 지점을 집중하므로서
다른 일체의 잡념을 사라지는 경험을 계속 거듭 거듭하게 될 것입니다.
이로서
색계는 초선정 이선정 삼선정 사선정이라는 4 가지 공거천의 의미로 갈라져 소개할 수 있는데
여기서 禪定(선정: 한 묶음으로 보이는 곳에 머무는 상태) 은 이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중에 무엇인가 확실하게 생각하고자 진지한 마음에 돌입하게 되면 마음이 고요하고 집중하는
자세를 지니게 됩니다. 주변이 떠들고, 혼잡하며 이것 저것 문제를 한꺼번에 산만함으로 수용하여 무엇인가
골똘이 생각할 수 는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고요한 상태를 선정에 든다라는 의미로 이해하면 됩니다,
결국 우리들 마음에 이러한 경지도 내재되어있으며 길게 선정을 유지하지 못하지만 우리들도 스스로
이러한 고요함을 유지하고 유지할 수 있는 범주를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고로 색계처에 들지 못하면 절대 깨치지도 못하고 깨달음도 주어질 수 가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출가자들이 제일 어려운 것이 바로 음욕입니다. 굶어죽는 출가자는 없지만 음욕을 끊지 못하여
환속하고 파계되엊는 수행자는 부지기 수 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항상 선정에 드시는 것을 계속 하셨읍니다. 갈고 딱아 색계에 들어가는
고속도로를 놓는 것과 같읍니다.
무조건 돈오하고 깨쳐도 수행하고 딲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와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음욕이다라고 하는 것이고 음욕을 떠나면 이미 색계에 돌입하는 자격이 주어진다 이렇게 소개 할 수 가 있는 것입니다.
음욕이 그대로 주어지면 이미 색계극장에 입장할 수 있는 티켓은 살 수 가 없다 이렇게 됩니다.
색계를 늘 경함하는 자가 만약에 전생연에 대하여 간혹 보게되는 수도 있는데 그 인연줄이 있다 합시다.
이를 방편으로 인연점을 해결하고자 하고 업장을 수습하고자 접근하게 될때 어떤이는 이를 오해하기도합니다.
아! 저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구나? 내가 잘나고 마음에 드는가 보구나, 내게무슨이득이 있어 접근하는
모양이구나 한다거나, 이성간으로 그러한 계기를 만들어 낼때는 저 사람이 나를 너무 연모하는구나 하는
정도로 이해를 하기 때문에 서로 교감의 장애를 느낄때도 있는 것입니다.
사실을 빛 갚으로 온 채무자 심정임을 전혀 모른다 이 말입니다.
물론 뒤 바꾸어 생각하면 그것이 정직한 것이고 결론은 서로 좋게 해결하는 것은 인과율로서 바르게
해결되는 과정을 밟는 것은 매 한가지이지만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절대 이성간이나 동성간이나 색계에 들어선자가 교류를 원하는 대상에게는 진정한 서로의 인연을
정리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제도를 목적하는 것이지 절대 흠모의 대상으로 전부를 해결할 바가 아니고
또한 실제로 흠모하고자 하여도 그 넘이 작동이 안된다 이 말입니다. 사실입니다.
욕계에 살아가는 우리들은 분명 이 사실을 빨리 이해해야 합니다.
욕계에 머무는 마음깜냥으로는 절대 깨치지도 못하고 깨달을 수가 없다는 사실 하나하고
욕심세계는 이미 바라고자 하는 마음과 이루고자 하는 마음을 떠날 수 없기 때문에
색계의 이욕아라한의 바라거나 이루고자 의존하고자 하는 마음이 절대 일어나지않는
색계의 심정을 절대 이해하지 못하면서 각자 세계에 들어가 있다 할 수 있읍니다.
이러한 색계에 돌입할 수 있는 가능한 생명성품은 오로지 인간으로 태어났을때만 가능합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가난한 중생은 동물입니다.
동물은 본능만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육식하는짐승 벌레 곤충들은 남의 고기를 먹어야 합니다. 그래야 삽니다
또한 고기를 저장할 방법도 없읍니다, 죽은 살을 보관할 어떤 방법도 없읍니다.
공기가 산화 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배고프면 들에 나가서 다른 고기를 잡아 먹어야 하고 뜯어 먹어야 살 수 있읍니다.
그런고로 항상 가난하고 두렵고 걱정하고 근심하면서 살아내는 짐승이 동물이며 특히 육식동물입니다.
그러다가 스스로 자기 자신도 늘 다른짐승을 먹다가 인과율에 의하여 다른 짐승이나 벌레 한테 먹이로 제공해야 합니다.
이것이 연속으로 반복하며 악순환하는 양태를 축생이라 이름하는 것입니다.
사람도 사실은 동물중에 짐승에 속합니다.
남의 살을 뜯거나 잘라서 만든 음식을 앞에 놓고 연인과 다정하게 사랑을 논하고
앞으로의 희망과 찬란한 태양을 이야기 하곤 한다는 사실입니다.
단 인간은 절대로 누구에게 먹이로 제공되지는 않읍니다.
옛날에는 식인종이 있었으나 현대문명세계예서 인간은 다른 짐승이나 벌레에게
몸을 먹히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죽어 썩게 되면 벌레가 생겨 그 고기를 먹지만은 이미 죽어서 몸을 벗은 이상
자연으로 돌아가는 현상이지 먹히는 현상은 아니다 이 말입니다.
밀림의 왕자 사자도 늙어지면 다른 작은짐승이나 약한 짐승에게도 먹히게 된다는
사실을 보게되면 얼마나 가난한 짐승입니까?
식사한끼 할때마다 온 총력을 기우려 남의 고기를 먹어야 살수있다는 개념! 사실 잔인한 이야기 입니다.
그러므로 이와같이 인간으로 다시 인간 생명성품이 태어날 수 있는 확률은 "맹구우목"(盲龜遇目)이라
광막한 바다에 눈먼 큰 거북이가 바다속에서 지내다가 숨을 시려고 바다 표면에 나올때 ( 거북이는 페를 가졌으므로
위로 올라와 호흡을 해야함) 널판지가 하나 바다에 떠 있는데 그 복판에 구멍이 뚫려 있는 상태에서
거대하고 광할 한 바다에 떠다니는 데, 이 눈먼 거북이가 우연하게 바다위로 올라올때 그 널파지를 만나기가 어렵고 또한 설사 널판지를 만났다 하더라도 널판지 구멍에
거북이 목이 관통하여 걸치고 바다 수면위로 목을 드러내고 나와 떠 있을 수 있는 인연을 만나는 것도 어려운 것 처럼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기는 상당하게 어렵다 하는
것입니다. 이는 부처님의 말씀이며 제자이신 용수존자께서도 말씀하신 부분입니다.
결국 무엇이다.?
사람으로 태어났다가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기는 하늘의 별을 따는 것 보다 더 어렵다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부지런히 지금이나에 들어서는 열심히 경전을 암송하고 공부해야 합니다.
남의 살점을 썰어서 먹으면서 스스로 인간들의 정서를 유발시키며 서로를 사랑하는 이러한 광경으로서
남의 살을 먹으면 남의 살이 되어지는 짐승의 본능은 인간들에게 있기 때문에 남의 고기가 되어져야 하는
운명선상의 욕심세계의 윤회를 피하기는 어렵다는 것이고, 입달린 짐승의 먹이감으로 제공되어져야 할
인과율을 항상 지니고 있다 이렇게 말 할 수 있읍니다. 인간의대부분은 다시 윤회할때는 축생으로 떨어질
확률이 아주 높다라는 부처님의 말씀이 있음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단 한마디도 제 소견을 글로 소개한 사실이 없음을 미리 밝힙니다.
경각심을 주기 위하여 이렇게 소개를 해 봅니다만 사실입니다.
인간이 인간으로 거듭 반복 해서 온다는 것은 그만큼 선하게 살고 복을 짓는 행위를 하지 않으면
어렵다 이렇게 말 할 수 있읍니다.
그렇다면 색계에 들어서기 전 에 욕계 6 욕천에 있는 하늘 의 천인들은 어떠한가를 이해해야 합니다.
이 천인 역시 무궁한 복을 지어 천인으로 났으나 이들에게도 공포심과 성욕과 (욕계천은 이성간의 남녀가
함께 주어짐) 식욕이 있읍니다.
무슨 의미인가?
좋은 일을 많이 해서 욕계천에 돌입했는데 거기를 가보니 좋은 일을 하고 천인으로 태어난 자 들이 무수하게
많은 것을 알고 자기로서는 깜냥이 안되는 비교우위론상태에 빠져 사천왕처럼 덩치가 공간만큼 근 대상자를
만나거나 더 우월한 천인을 만나게 되면 공포심을 느낀다 이 말입니다.
그리고 천인의 세계에서 (욕계천) 는 아리따운 여성이 굉장이 많은데 이들의 대부분은 아수라세계에
있던 여성을 천인들이 데려와서 사는 행태이므로 천인과 아수라간에는 늘 전쟁을 합니다.
그러므로 천인세계에서도 전쟁을 겪으면 팔이 잘라나가는 고통 몸이 상처를 입고 쓰러지는 고통을
입읍니다, 하지만 일단 정리가 되면 다시 회복되는 것이지만 그 사이에 고통도 무시할 수 없는 고통이다
하는 것이고. 그리고 일단 복을 다 누리고 소진되면 다시 윤회를 해야 하는 형편에 놓이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다시 인간세계에 화하여 태어나게 됨인데.
천인이 인간세계에 다시 들어오면, 무엇하나 잘 되는 것이 없으며, 너무 착하고 순하여서 항상 남한테 당하기만
하고 아주 어렵게 살아가야 하는 특징이 있게 됩니다.
여러분 주위에서 항상 꾀가 없이 당하고, 생긴것은 멀쩡한데 늘 억울하게 힘들어야 하고 곡해를 받고 멸시를
받거나 무시당하는 사람들이 있나 없나 살펴볼 일입니다.
이분은 대부분 천인에서 복을 다 까먹고 다시 인간세계에 하강한 사람들입니다.
인과율의 이치가 그러하므로 마당에 나가 신을 신고 밖에나가서 확인 할 필요 가 없는 이치입니다.
확연합니다.
전생에 남들에게 잡아먹히는 것을 거듭하고도 초식동물로 남의 고기를 먹지도 못하면서 살아내다가
인간으로 윤회된 자는 아주 잘 삽니다. 타인보다 더 출중하고 무시당하지 않으면 부유하게 살 수 있다
이 말입니다.
업경대로 본다면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치가 다 들어있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초식동물중에 대부분은 인간나이에 버금가는 목숨을 부지하는 수가 많읍니다.
욕게천의 식사의 종류를 한번 살펴보면
단식(段食: 고기나 음식물을 조각내어 입으로 먹는 식사)
촉식(觸食: 서로 접촉하면서 감미로운 느낌을 섭취하는 식사)
사식(思食: 생각하면서 섭취하는 식자)
식식(識食: 알므로서 취하는 만족감의 식사)
욕계천은 이 4 가지가 단계별 종류대로 다 가능한 하늘세계 입니다.
여기에서도 항상 잘 수행해야 한다는 사실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수행을 잘 하게 되면 이성끼리 서로 웃어도, 눈만 마주해도 아이가 임신하고
아이를 낳을때는 무신 자궁이 필요합니까, 입으로 빛만 토하면 아이가 절로 나와서
돌아당기고 태어나자 마자 부모님 계신 앞마당에 비짜루 들고 청소하는 효도를 행한다
이 말입니다. 이것도 욕계천의 높은 수준에 들어서면 그렇다 이 말입니다.
지금 이글을 읽고 있는분들께서 내 이야기를 읽으면 "얼마나 황당할까" 하는 그러한 광경이
훤하게 떠오릅니다, ㅎ " 하지만 사실입니다" 우앨수가 없읍니다. 그 연유를 추후 아래에
글로 소개하겠읍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더 나아가 색계에서는 촉식 시식 식식 의 의미만 더 발전하는 단계로 진입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를 대부분 빛으로 해결한다 하여 색계라 이름한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색계에는 공거천인데 빛으로 주어진 몸을 지닙니다.
쉽게 말하자면 몸은 있으면서 정신도 있는 세계를 말합니다.
초선정
이선정
삼선정
사선정이 있는데
초선정은 수다원과를 득한 경지를 말합니다.
수다원과는 무엇인가? 앞으로 인간으로 태어남이 7 번은 반복해서 태어나지만
그 이후에는 견성하여 성인의 흐름에 들어가는 경지를 말합니다.
빛 7 의 원리인 O 견을 하고 연기법을 이해한 수준을 말하고 고집멸도를 이해한 경지를 말합니다.
이선정, 삼선정은 그 수순의 경지에 대하여 일왕일래 라 한번만 더 태어나면 다시는 오지 않는
늘 항시 그 자리에 머물러 같음을 보고 행하는 자리입니다.
이를 사다남과를 증득했다 하는 것이고
사전정은 최고의 경지인데 아나함과를 증득하고 바로 연이어 아라한과를 증득하여 견성하는
자리를 말합니다.
밤깊은 마포종점 갈곳없는 밤 전차는 되어서야 되겠읍니까?
갈곳 없으면 제일 가난한 심정으로 살아야 하는 축생 아귀 지옥 아수라 등만 됩니다.
초선정에는 범천세계인데 이 초선정세계에 머무는 왕을 범천왕이라 이름합니다.
대범천 , 범보천, 범중천이 거주하는데
대범천은 범천왕으로 왕이고 범보편은 보편적이 인과응보를 보는 이 들이고, 범중천은 대중들처럼 무리로
이루는 민중을 의미합니다.
사선정의 아나함을 지나 아라한 경지를 지니게 되는 경지인데 호흡이끊어지고 피부 모공으로 호흡이 시작되는
경지를 말함인데 부처님께서 사선정에 들어서자 마라 초선정 공계에 거주하는 대범천왕이 환한 빛으로
서 몸을 지니고 석존앞에 나타나서 그냥 열반하지 말고 중생들을 위하여 법을 설해달라고 예를 드는
모습이 경전에 나옵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가능한가?
실제로 가능합니다. 사선정에 들어서면 일체가 너무 고요해서 진동의 없어지는 상태인데
이럴때는 호흡을 자연하게 쉬게 되는데 이와 동시에 피부 모공으로 호흡을 하는 촉식을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위대한 선각자들과 큰 스님들께서 간혹 그러한 분이 계십니다.그리고 사식과 식식으로만 해결한다 이 말입니다.
부처님께서 6 년 고행시 깨 한숟갈과 쌀 한 수저로 생명을 유지하셨읍니다, 이와 같읍니다.
없는 말을 보태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금타스님의 제자 청화스님은 이러한 촉식을 하므로서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고 있음을 목격하는 수행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를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법정스님 이나 성철스님, 그리고 근대사의 위대한 선사인 경허스님 등은 모두 촉식이 가능했던 분으로서
열반락을 계속 유지하시는 분들이다 이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타 이름을 입으로 내지도 않으시고 진리의 한마디를 내가 허공에 다시 내 놓으면 혼란만 가능하다시며
은둔지락으로 촉식을 행하시는 큰 스님은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을 수행하는자는 다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색계의 경지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러한 연유는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하여
이해 할 만한 구체적인 제시를 할 줄 알아야 이해를 하던지 참고하던지 하지 않겠읍니까?
이를 소개하기로 합니다.
색계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읍니다.
우리들도 어떠한 계기가 된다거나 몰록 깨치는 과정이 간혹 들어올때 색계를 본다 이 말입니다.
실제의 예를 들어보기로 합니다.
막대자석을 하나 준비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관찰을 하기로 합니다.
한쪽은 양의 자기장이 흐르고 다른 반대쪽은 음의 자기장이 흐릅니다.
이것이 자석의 원리이고 자기장이 전기장을 만나면 전기가 흐르고 운동하게 됩니다.
그런데 막대자석을 그대로 온전하게 놔두고 중간지점을 관찰하면
자기장이 흐르지 않읍니다.
자석의 어느기운도 지니지 않고 자석력도 없는 듯이 고요하게 있읍니다.
이를 중도라 이름합니다.
중도는 음양의 양면을 쥐고있지만 음양을 드러내지도 운동을 음양의 어떤 면으로
작용을 행하지 않는것처럼하면서도 음양운동을 통괄하여 관리합니다.
절대로 두 양면이 중간을 벗어나는 예가 없읍니다.
이를 마음이라 이름하고 이 자리에서 나오는 것은 단지 하나만 행하므로
무한한 사랑의 자비심을 드러내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이 중도는 음이나 양이건 간에 어느하나가 이쪽으로 가자하면 이쪽으로 가 주고
저쪽으로 가 달라고 의지를 작용시키면 저쪽으로 갑니다.
미리 이렇게 가라 저렇게 가라 하지를 않는다 이 말입니다.
시비에 걸리지 않는 자유자재한 중도의 마음깜냥을 유지한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됩니다.
<마음자리를 관찰한 경험이 없으시다면 이렇게 관찰해도 무방합니다>
이게 무엇인가?
이를 본래면목이 무엇인가? 내가 무엇인가? 나는 긍극적으로 무엇인가를 논하는
화두일념의 본 그자리를 말합니다.
이 자리는 고요합니다, 아무일 없이 적적합니다.
이 마음자리의 고요함이 음과 양의 양면으로 왔다 갔다 하면
파동이 일어나고 빛 의 온전함이 진동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보리수나무아래에서 성불하실때 온 천하 세계가 전부 진동했읍니다.
이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양태는 아주 흔하게 막대자석하나만으로 발견되고 있다 이 말입니다
치우침이 없는 팔정도의 정견자리를 발견하는 순간입니다.
한번 시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자리를 O 이라 하고 空 이라 하며 無 라고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지구권의 세계나 내가 외출을 하려고 나아가는 길목의 어떠한 장소에도
항상 기거하는 나의 공간 사무실에서도 처처에 이러한 고요함이 늘 가득하다 이 말입니다.
이를 발견하는 순간 새계에 들어선다 이렇게 이해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이 마음깜냥의 中 이 온 우주를 다 창조한다 이 말입니다.
일체유심조라는 것은 바로 이 자리를 보는 자리를 말하고 견성하는 자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원효대사의 화쟁론이 펼쳐지고 화엄경전의 소이를 다 해의하시고 금강삼매를
편찬하시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 이 세계의 진실인 중도가는 양극이 아니라 한극으로 존재하며 양극의 의지작용에
반영하는 수순으로 빛이 운동한다 하는 것을 말합니다.
결국은 음과양이 하나로 합쳐있으므로 하나로 존재하는 양태의 본질을 발견할때
성인의 말씀이 몰록 이해하게된다 이 말입니다.
나는 음양이 하나인 여자 남자 한몸으로 행세하고 돌아다니고 있다라는 사실을 몸소 보게될때
용수존자의 증관학이 달성되고 화엄경을 집대성하여 집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하는 것이고. 색계의 진입을 말합니다. 이 세상모든 물질계도 전부 암수가 하나라는 소이점을
둘러메고 반쪽만 나와서 존재질을 하고 있다 이 말입니다.
이를 보면 이렇게 사는 분이황당한 것인가? 내가 황당한것인가 헷갈리다가
정도로 깨어나면 다시 원 상태로 되돌아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말과 같읍니다.
이를 중용이라 하고 중도라 하며 사랑함을 의미합니다.
음양이 합해서 하나가 되어지는 본래면목을 마음으로 감아쥐는 현상을 새계에 돌입했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상대세계가 이미 희석되어지는 과정의 진입을 말합니다.
수다원과의 초선정에 들어가면 이미 이러한 O 견을 하므로 잘못을 저지를 수 가 없으며 선악에 떨어질래야
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를 신원지에 든다. 성인의 말씀을 확실하게 믿게 되었다 하는 것입니다.
본인이 의미심장하게 경험측으로 달성한 가치를 명증하면서 소개하므로 믿으셔도 좋읍니다.
이러한 의미를 보신분이 세계최초로 부처님 이시고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이런것을 알자고 머리깎고 식구처자 다 내비리고 산속에 가서 도 딲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경전의 말씀의 본질에 대하여 우리는 무엇을 비유할 수 있을까? 없읍니다.
음양의 이원론에 빠져지고 실제의 물질세계를 구축한 이 양태를 벗어나기를 어려운 것입니다.
하니만 색계에 들어서는 순간 하나를 보는 현상입니다.
12 나사에 걸려 계속 굴러가보았자 본전사상이다 하는 것입니다.
삼계의 공부에서 이것을 이해해야 하는 것을 목적하는 것입니다.
이 우주공간에 이러한 中 은 가득하게 펼쳐지고 있으며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가 없는 광명력으로
중도를 행하시며 천하를 창조하고 멸실하는 변화과정에서도 질량불련의 법칙으로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행한다 이 말이 됩니다.
그러므로 본래면목의 주인공은 무엇인가? 中 입니다.
항상 우리들 마음속에 굳건하게 내재하고 있읍니다, 이 中 은 끓는 물에서도 자유롭고
아주깊고 맑은물이 광대하게 놓여있어도 이 마음깜냥은 다 들이마시고도 남는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그대는 여자되고 싶으면 여자를 만들어주고 남자되고 싶으면 남자를 만들어 주마
하지만 연각의 이치를 행해야 하는 계산을 때려야 함을 동시에 돌려주는 역할 을 하는 것입니다.
지 스스로 그짓만 하다가 뺑뺑이 돌고 또 오고 가고 한다 이 말입니다.
온 공간처가 암수한몸으로 운행되는 빛을 목격한 예수게서 부처께서 이를 계속 지상에 설하시고 어리석음에 깨어나라 하신 것이 사자후가 된다 이 말씀과 같읍니다..
부처님을 예배하는 예경에 삼계대도사 사생자부 시아본사 .... 항상 간직해야할 수행자의 도리가 됩니다.
이렇게 하여 사선정에 들어가신 부처님께서는 그럼에도 수행을 풀고 다시 깨어나면 다시 현실로 돌아가는 것을
목격하시고 아직도 멀었구나 라는 탄식을 하시게 됩니다.
아무리 멀쩡하게 선정을 계속 한다 하여도 자리를 털고 오짐매려워 오짐누러 일어서면 금방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이 말입니다.
현실로 돌아오면 다시 생노병사가 기다리고 있기때문에 이를 해결하지 못한 것임을 깨닥고 탄식하셨다
이 말입니다.
이렇게 되어 그동안 설산수행 6 년의 과업은 전생에 대한 업장을 소멸하는 과정임을 깨닫고
다시 보리수 나무아레서 목숨을 건 수행의 시간으로 돌아갑니다.
무엇을 의미함이신가
생노병사가 있는 형상의 물질세계와 생노병사를 초월한 빛의 세계사이에 중도가 이를 쥐고
양면을 운영하는 주인공이 있음을 알아챈 것입니다.
당신께서는 이 중도를 봐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중도를 확실하게 잡고 타화자재천에 있는 마왕 파순을 항복하는 과정과 3,7 이 21 일 동안(빛이 삼승을 타고 7을 행하는
기간의 온전한 O 의 범주영역)
12 인연법을 이리지저리 굴리시고 4 선정에서 오롯이깨어있는 무색계에 들입하시어
성불을 하게 되신 것입니다.
생노병사와 생노병사를 초월하는 것이 내 마음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알고 무색계에서
성불하시고 대 열반을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음시간에 무색계의 공무변처천 식무변처천, 무소유처천, 비비상처천 등 4 단계의
무색계 를 계속해서 소개하겠읍니다 - 합장- 행불하십시요.
<이러한 삼계의 의미가 마음깜냥에 다 주어져 있음을 대략이나마 이해하고 있어야 화엄경의
4 편 세계성취품의 1 , 두루관찰하다의 윤곽이나마 몰록 이해하고 마음깜냥이 확장되어서 경험하지 못한
감흥이 새록 새록 들어오는 문증을 느낄 수 있고 십지의 초지 환희지에 돌입한다 라고 할 수
있는 경전 말씀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다 할 수 있읍니다.
이렇게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노니 뭐하겠읍니까,죽기밖에 더 하겠읍니까 이전에, 살아생전에 성인의 경전 한 줄이라도 인연으로 삼아 주신다면
함 없는 좋은 법락을 경험하고 복이 스승하게 되라는 것을 의심치 않읍니다,또한 여러분의 복이 저의 복이라는 사실도 인정하기 그것이 저의 복락과 같기 때문에 이렇게 경전공부를 바라고자 함으로서 회양하는 바입니다>
저는 그냥 철만 조금 났을 뿐 입니다, 혜량하시면 감사하겟읍니다.
못먹는 씨거운 쑥도 어떤때에는 약이 된다고 , 휘항한 말로 여긴다 하더라도 약으로 될 수도 있읍니다. -합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