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기 왕' 김일의 레슬링이 열리는 날이면 장충체육관 인근이 북새통을 이뤘다.
1967년 헤비급 세계참피언에 등극할 때,
1975년 안토니오 이노키와 세기의 대결을 펼칠 때는 약수동까지 미어터졌다.
80년대에는 농구 스타들의 슛대결을 보려는 팬들로 하루종일 북적거렸다.
김기수가 한국 최초의 복싱 세계챔피언으로 등극한 곳도 장충체육관이다.
90년대 초까지는 규모를 표현할 때 '장충체육관의 몇 배'라는 식으로 했다.
스포츠뿐만 아니라 문화예술 행사도 자주 열렸다.
1989년과 1992년에는 MBC 대학가요제가 개최됐다.
잠실실내체육관이 생기기 전까지 최대 규모의 공연과 행사들이 열렷다.
세 명의 '체육관 대통령'이 선출된 장소이기도 하다.
원래는 1955년부터 육군체육관으로 쓰던 곳이었다.
그러다 서울시가 관리를 맡아 추운 겨울이나 야간에도 경기를 할 수 있도록 지붕을 씌웠다.
디자인 설계는 건축가 김정수가하고, 당시 기술로는 실현하기 어려웠던 직경 80m 철골
트러스둠 설계는 미국에서 귀국한 최종완이 맡았다.
공사는 삼부토건이 하고, 감리만 미국 회사가 맡았다.
그렇게 해서 순수 우리 기술자과 자본으로 만든 최초의 돔 실내체육고나이 1963년 2월 탄생했다.
한 때 필리핀이 지어줬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이는 낭설이다.
아마 당시 경제기획원과 미국 대사관 건물 신축 때 필리핀 엔지니어들이 참여한 게 와전되지 않았나 싶다.
체육고나 공사비는 서울시 예산과 국고로 충당했다.
이름도 이미 장충체육관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영화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07년 동대문 야구장이 헐릴 때는 철거 위기에 몰렸다.
낡은 시설 탓에 수익이 나지 않아 의류 '떙처리 시장'으로 전략하기도 했다.
그런 장충체육관이 서울시의 리모델링으로 새 단장을 마치고 오는 17일 다시 개관한다.
전체면적은 기존 8299m2에서 1만1429m2로 늘었고 건물은 지하 1층, 자상 2층에서 지하 2층, 지상3층으로 커졌다.
좌석수는 고급화 전략에 따라 4658석에서 4507석으로 줄었다.
첨단 시설로 거듭난 만큼 예약 문의도 많은 모양이다.
당장 여자배구 GS칼텍스가 이달부터 장충체육관을 홈코트로 쓴다.
개장식에는 이곳을 프로레슬링의 서잊로 만든 김일 선수의 유가족과 왕년의 스포츠 스타들을 초청한다고 한다.
한국 현대사와 함께 영육의 세월을 온몸으로 견뎌온 50여년, 1955년 육군체육관으로부터 치자면 역사가 60년에 이른다.
자랑스런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고두현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