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요한복음 14:5~12
13장은 유월절 전에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갈 것을 아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난후 당신과 제자들에게 일어날 일들을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라고 가르치시고 유다가 예수님을 팔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는 새 계명을 주시고, 베드로가 세 번 예수님을 부인 할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이어서 14:1~4절에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아버지께로 가니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영접하여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할 것이니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나를 믿으라고 당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시기 전 일어날 일들에 대하여 자세히 가르쳐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도마의 마음에 의심이 있음으로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예수님이 가시는 길을 알 수 있습니까? 라고 되묻습니다. 이 의심의 끝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다들 기뻐했을 때 끝까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이처럼 의심의 끝은 하나님이 나를 도움으로 내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게 되고, 그로인하여 지금까지 이룩한 것은 자신의 노력과 희생이었다고 믿어지고 확신하게 만듭니다. 그 결과 예수가 필요하지 않고 주의 일에 헌신, 봉사는 나의 성공을 가로막는 악으로 보게 됩니다. 모든 주님의 일의 시작은 교회 봉사로부터 출발합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봉사와 헌신을 요구하면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로 받아들이게 되죠.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에서 자신을 스스로 뽑아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아무 탈이 없이 잘 지내요. 더 좋아지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더욱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인정합니다. 그 얼마의 시간 즉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시간까지는 그냥 놔두십니다. 그동안 돈도 잘 벌고, 삶의 지위도 올라가고, 성공의 성공을 더 할 수도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생활을 한다고 해서 그 즉시 위기에 처한다 하지 않으십니다. 그런 사람도 있지만, 대게는 그의 길을 그저 지켜보시며 기다리실 때가 더 많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선택의 방법입니다.
그러나 그 시간 안에 돌이키지 못하면 하나님의 채찍이 임하여 이룩해 놓은 모든 부귀영화, 건강, 자녀 한 순간에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매일 매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삶을 출발해서 언제나 끝은 하나님을 경배함으로 마무리 되어야 합니다. 저는 오늘부터 3주에 걸쳐 예수님을 항상 당기되 특별히 어느 때 더욱 당겨야 하는지에 대하여 전할 예정입니다.
<찬송가 491장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내 뜻과 정성 모아서 날마다 기도합니다. 내주여 내 맘 붙드사 그곳에 있게 하소서 그곳은 빛과 사랑이 언제나 넘치옵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항상 당길 수 있을까? 예수님이 내 맘 붙으실 수 있도록 내어드리는 거예요. 이것을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계3:20]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찬양으로 열어드리고, 기도로 열어드리고, 예배함으로 열어드리고, 주의 일의 헌신과 봉사로 날마다 열어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당기다”는 끌어 가까이 오게 하다. 줄을 팽팽하게 하다. 정한 시일을 앞으로 끌다. 어떤 방향으로 잡아끌다. 마음이 무엇에 끌리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순수 한글 단어입니다. 예수님을 언제나 내게 당겨오는 자는 예수님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게 될 것이고,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모든 것이 내 삶속에 이루어지도록 보살펴주시고, 이끌어주시며, 쉴만한 물가에 쉼의 기쁨을 만끽하게 해주시고, 푸른 초장에서 마음껏 꿈과 희망을 펼쳐나갈 수 있도록 해주시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의 은혜를 누리게 해 주십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는 아브라함을 통해서 약속되어진 그 언약이 예수님을 통해 내게 그대로 실천되어지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를 뽑으라면, 모든 삶의 이유에서 예수님을 내게 당겨오는 자이고, 모든 삶의 여정에 예수님을 내게 당겨오는 자이며, 모든 좋은 일과 나쁜 일 속에 예수님을 당겨오는 자입니다. 언제나 예수님을 당겨오는 자는 하나님께서 만군의 여호와로 함께해주시는 축복 안에서 살게 해 주십니다. 성경에 약속된 은혜는 이런 것이 있습니다.
본문 12절이 예수님을 당기는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은혜라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소원하는 바이기도 할 것입니다. 다시 12절을 읽겠습니다. 요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또한 하나님은 언제나 나의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 되어주십니다. 이 축복의 약속에 대하여 이렇게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또한 신명기 33:26~29절에 ①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고 ② 영원하신 하나님이 네 처소(집)가 되시니 ③ 그의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에 있도다 = 내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할 수 있게 힘을 공급해 주신다는 뜻 ④ 내 땅에서 안전히 거하며 = 내 삶의 터전에 하늘이 이슬을 내림으로 기르심의 축복을 주신다는 뜻 ⑤ 여호와의 구원을 얻은 백성이 되어 친히 만군의 여호와가 나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모든 축복은 예수님을 항상 당겨오는 사람들만 이 은혜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들은 언제 예수님을 온 힘을 다하여 당겨야 할까요? 그 첫 번째는 도마의 말에서 찾았습니다.
첫 번째가 의심이 들 때, 의심의 안게 속에서도 여전히 내 손을 예수님께 뻗어 예수님을 내게 당겨야 합니다.
의심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의사가 있었습니다. 의사가 약을 처방해서 그 약을 먹을 때 의심이 생기면 몸은 이렇게 반응한다고 합니다. 의심을 하면 몸은 자연적으로 거부반응을 한다. 뇌에서 이미 통제를 하기에 몸은 약성을 거부하고 독성으로 인식하게 된다. 약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이미 의심으로 방어태세를 갖춘 상태에서는 아무리 좋은 명약도 듣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은 어찌할 방법이 없다. 명의라는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의사가 한 말입니다. 이처럼 의심은 정말 무서운 병중에 가장 으뜸인 것 같습니다. 현대 과학의 산물인 약 조차 몸에서 쓸모없게 만들기 때문이죠. 그런데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의심이 신앙에 들어오면 그 어떤 말씀을 전하고 가르쳐도 뇌는 이미 거부하도록 통제하기에 엄청 무서운 것입니다.
이런 의심이 엄청 무서운 것임을 아신 예수님은 이 의심에 대해 이렇게 대하시고,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마14:31]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베드로책망>
[마21:21]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무화과나무가 말라 죽었을 때 제자들이 물어 대답하신 말씀>
[마28:17]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예수님께서 죽으시기 전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11제자. 그런데 그들 가운데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심>
[눅24:38]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11제자가 모여 부활의 예수님의 대하여 이야기 할 때 그 가운데 임하셔서 말씀하셨는데 부활의 예수님을 영으로 생각했을 때 그들을 꾸짖으신 말씀>
이런 제자들을 가르치시는 말씀을 보면 의심은 육체의 질병을 치료되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하나님의 은혜도 가로막고, 부활의 예수님을 눈으로 보고 그의 음성을 귀로 들음에도 불구하고 부정하게 만드는 아주 무서운 마음의 질병입니다.
이 질병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를 때, 구약성경에 나오는 것처럼 주의 영을 내게 부어주심으로 치료됩니다. 그 방법은 베드로가 물위를 걷다가 물속에 빠져들어 갈 때 “크게 소리 질러 주여 나를 구원 하소서” 라고 했던 것처럼 주님을 부르는 데서 시작합니다. 이것은 의심이 가득한 내 마음의 문을 예수님께 열어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제 우리들을 더욱 실패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의심에서 우리는 온전히 벗어나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 것이 가능하다고 가르쳐 주신 말씀이 요한복음 14장 전체의 말씀입니다.
왜 우리가 의심이 들 때 예수님을 당겨야 하는 것일까요? 저와 여러분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함과, 멀어지지 않기 위함과, 예수님께서 하셨던 일들을 우리가 하기 위해서이고, 그것보다 더 큰 일들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과 최종 목적지인 천국에 들어가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실패한 모습, 상처 입은 초라한 모습, 곪고 썩어 냄새나는 모습이 내 눈에 보일 때, 마음의 가장 많이 들어오는 것이 의심입니다. 이 의심의 냄새가 가득한 채로 우리는 예수님을 당기는 기도의 입을 당당하게 열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주님께서 첫째로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둘째로 주님의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셋째 실패로 인한 상처나 의심으로 곪은 우리의 육과 영혼에 손을 대시고, 넷째로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면서 우리의 육적, 영적인 병을 치료해 주십니다. 이런 축복은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만군의 여호와로” 함께하여 주심의 생활이 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로인하요 우리들은 삶의 터전이 기름지고, 육적인 생활을 위해 뿌리는 씨앗마다 싹을 틔우고,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수확할 수 있게 해주십니다. 또한 영적인 생활인 기도로 뿌리는 씨앗마다 응답의 싹을 틔우고 트고,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구한 것에 어떤 것은 100배, 어떤 것은 60배, 어떤 것은 30배로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긍휼의 은혜를 맛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여 예수님을 당기는 생활을 살아가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의심이라는 안개가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눈과 귀를 가릴 때가 있습니다. 그 의심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힘은 언제나 우리에게 이미 공급해 주셨습니다. 그 힘은 바로 성령이십니다. 우리 주향기교회 성도님들은 특히 성령의 인도하심의 따라 “주님~~ 하고 입을 열어 찾음으로” 예수님을 내게 끓어오는 힘이 언제나 발휘되길 바랍니다.
서론에 예수님을 당기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의 몇까지를 전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내 삶의 펼쳐지게 하는 유일한 힘은 예수님을 내게 항상 당기는 것입니다. 혹 욥이 느꼈던 실패 악몽 앞에서도 욥처럼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성도님들의 신앙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12절에 말씀하신 것처럼 주향기교회 성도들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 받으시기 위해서 항상 열매가 있게 해주실 것이고,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셔서 먹이시고, 입히시고, 기르심으로 우리 주님보다 더 큰 일을 행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꼭 기억하세요. 의심의 안개 너머에는 하나님의 빛과 사랑의 축복이 넘치도록 가져가라고 우리에게 손 내밀고 기다리고 계심을 느끼는 믿음의 마음과, 보는 믿음의 눈이 열리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다가 도마가 가지고 있었던 의심에 마음이 찾아오면, “그 즉시” 예수님을 당기는 우리들의 믿음이 되어 하나님의 빛과 사랑이 넘치는 삶으로 전환되어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