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혁 |
이조 태종 13년 천현감 설치하고, 철원군 관인면을 연천군으로 편입시켰다. 부령 제111호(1913.12.29 공포)로 마전, 적성의 2개면과 삭영군 대부분과 양주군 영근면을 연천군에 편입하고, 군정법령 제22호(1945.11.3 공포)로 적성면, 남면 전부와 백학면, 전곡면 일부를 파주군에 편입시켰다.
법률 제350호(1954.10.1 공포)로 복지구 임시행정조치법"에 의하여 동년 11월 17일자로 행정권 수복(8면)하고, 법률 제1178호(1962.11.21 공포)로 파주군 적성면의 늘목리를 전곡면에, 삼화리를 미산면에, 강원도 철원군 신서면이 연천군에 각각 편입시켰다. 군조례 제111호(1965.4.30 공포)로 백학면 원당 출장소를 설치 대통령령 제9409호(1973.4.7 공포)로 연천면을 읍으로 승격시켰다. 대통령령 제11027호(1983.1.10 공포)로 관인면 일원을 포천군에, 포천군 청산면 초성리, 대전리, 장탄리, 궁평리, 백의리를 연천군에 편입시켰다.
군조례 제1001호(1982.5.29 공포)로 연천군 연천읍 차탄2리를 차탄2, 4로 군남면삼거리를 삼거1, 2로 옥계리를 옥계1, 3리로 남계리를 남계1, 2리로 각각 분리했고, 군조례 제1019호(1982.9.20 공포)로 연천군 중면 횡산리를 행정리로 수복시켰다. 대통령령 제11772호(1985.10.1 공포)로 연천군 전곡면을 읍으로 승격(2읍 7면)시켰으며, 대통령령 제12007호(1986.12.23 공포)로 연천군 미산면 석장리를 백학면에 편입, 대통령령 제12557호(1988.12.22 공포)로 포천군 관인면 부곡리를 연천읍에 편입하고, 군조례 제206호(1989.3.30 공포)로 연천군 백학면 원당 출장소를 장남면으로 승격(2읍 8면)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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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환경 |
동부에는 광주산맥의 지맥이 뻗어 고대산·지장봉·보개산·향로봉 등의 산지가 분포하고 서북부도 마식령산맥의 지맥이 뻗어 비교적 높은 산지를 이루고 있으며, 그 사이를 추가령지구대가 남북으로 통과한다. 낮은 골짜기를 따라 흘러내린 용암류가 용암대지를 이루어 군의 북동부는 철원용암대지의 남단을 이룬다.
한탄강은 이 용암대지를 깊게 파서 협곡을 이루고 현무암의 단애가 곳곳에 발달한다. 임진강이 지구대를 남류하며 그 지류인 한탄강와 남부에서 합쳐 서남류한다. 임진강과 한탄강유역의 비옥한 저지와 넓고 평탄한 용암대지는 좋은 경작지를 이룬다.
내륙에 위치하기 때문에 대륙성기후이며 연평균기온 10℃, 1월평균기온 -0.7℃, 8월평균기온 25℃이고, 연강수량은 1.320mm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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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유적 |
서기전 50~10만년경의 돌망치·주먹도끼를 비롯한 구석기유물이 발굴된 전곡읍 전곡리선사유적지(사적 제268호)가 있다.
청동기시대 유물로는 연천통현리지석묘(경기도문화재자료 제52호)와 전곡읍 양원리지석묘가 있다. 고구려 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청사면 대전리성지, 후삼국시대의 보개산성, 고려시대의 옥녀봉성지와 군남면 삼거리성지·옥계리성지, 연천읍 차탄리성지, 임진왜란 때 축성되었던 청산면 초성리성지가 있다. 신라와 고려시대의 유적으로 장남면 고랑포리에 신라경순왕릉(사적 제244호), 미산면 아미리의 숭의전지(사적 제223호)·잠두봉시암벽 등이 있다.
능묘로는 청산면 궁평리에 조선시대 인조의 왕자인 낙석군묘, 미산면 백석리의 정벌장군묘(경기도기념물 제51호), 백학면 두일리의 박진장군묘(경기도기념물 제110호) 등이 있다.
불교유적으로는 신서면 내산리 보개산 기슭에 삼국시대에 건립된 심원사가 있었으나 건물은 6.25 동란중에 소실되고 부도와 석물, 심원사 석대암에 지장영상 등이 남아 있다. 그리고 연천읍 고문리에 오봉사지부도 (경기도유형문화재 제131호), 왕징면 기곡리사지에 석불좌상이 잔존한다.
유교유적으로는 연천읍 읍내리의 연천향교 외에 동막리에 임장서원지, 장남면 고랑포리에 임강서원지, 미산면 아미리에 미수서원지 등이 있으며, 왕징면 강서리 군영장에는 조선시대 숙종이 허목에게 하사한 은거당이 있고, 미산면 마전리 노동에 이색의 영정을 모신 목은영당이 있다. 중면의 우화정, 연천읍 차탄리 태봉봉수와 군남면 왕림리 봉화봉봉수 등이 6·25동란중에 파괴되고 소실되었다. 군남면 왕림리의 충혼탑, 신서면 대광리전투기념비, 청산면 초성리의 38도선돌파기념비 등의 6·25동란전적기념물이 있다. 연천읍 차탄리 연천역 구내의 연천역급수탑은 1914년 경원선 개통시에 건립된 것으로 탑신의 많은 탄흔은 6·25동란이 치열하였음을 대변해주고 있다.
유서깊은 나무로는 수령 500년이 된 숭의전 느티나무, 수령 300년 이상 되는 군남면 남계리 물푸레나무, 전곡읍 천파리 은행나무·느티나무, 연천군청내 향나무 등이 있다. | | |
교육문화 |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 1398년(태고7) 지금의 연천읍 읍내리에 연천향교가 설립되었고 이어서 중면에 삭녕향교, 미산면에 마전향교가 설립되었다.
1419년(세종1)에는 연천향교에 30명, 삭녕향교와 마전향교에 각 50명 정도의 유생이 수학하고 있었다. 조선 중기 이후 서원이 건립되어 지방교육을 담당하였는데 효종 때 지금의 장남면 고랑포리에 임강서원, 1690년(숙종16) 미산면 아미리에 미수서원, 1700년 연천읍내에 임장서원이 세워져 서원철폐령이 내려질 때까지 많은 유생을 교육시켰다.
근대교육기관으로 1911년 연천향교자리에 연천보통학교와 1919년 장남면 고랑포리에 고랑포보통학교가 설립되었는데, 현재 이들 학교는 연천국민학교와 고랑포국민학교로 개명되어 차탄리와 원당리에 위치하여 있다. 1920년대에 연천실업보습학교가 설립되었고, 1956년 연천중학교가, 1958년 연천실업고등학교가, 1974년 인문계고등학교인 전곡고등학교가 개교되었다. 1988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유치원 20개소, 국민학교 24개교, 중학교 6개교, 고등학교 2개교가 있다.
문화시설로는 1986년에 개원한 연천문화원이 있고, 군립도서관의 건립도 계획하고 있다. 이곳은 647년(진덕여왕1)에 건립된 심원사와 오봉사를 중심으로 불교가 성하던 곳이었으나 이들 고찰이 소실된 6·25동란 이후 치체되었다.
개신교는 1920년대 남감리교파가 전파된 이후 교세가 더욱 확장되었다. 천주교는 1958년 전곡공소가 설치되어 1979년 서울대교구 소속의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종교시설은 1988년 현재 불교사찰 6개, 천주교성당 1개, 개신교교회 63개 등이 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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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 |
민속놀이 이 고장의 민속놀이로는 미산면 아미리에서 전승되는 울어리놀이와 백학면과 미사면 등지에서 행해지던 호미씻이놀이가 있다.
울어리놀이는 이 지역이 고려 때 마전군에 속하여 있을 무렵부터 전승되어왔다고 하나 문헌상의 기록은 없고, 다만 이 놀이에 등장하는 배역의 호칭이 영좌·부사로 불린 점으로 보아 그 연원이 깊음을 짐작할 따름이다. 울어리놀이는 오동요를 부르면서 진행되는데, 그 과정은 풋나무베기·남녀행차·마당놀이로 구분된다. 오곡이 풍성한 추수 전 산마을주민들은 산에 모여 농요를 흥겹게 부르면서 겨울에 쓸 땔감을 벤다 그러다 석양이 질무렵이면 잡목으로 남녀를 만들어 마을의 연장자를 영좌로 삼아 여기에 태우고 마을로 돌아온다.
남녀의 행렬이 길놀이를 벌이며 마을에 도착하면 부농을 골라 그 집 마당에서 풍년을 구가하며 농악과 소리에 맞추어 한바탕 마당놀이를 벌인다. 그러면 주인은 음식을 마련하는데, 주민들은 이를 먹고 즐기면서 서로의 화합을 돈독히 한다.
호미씻이는 마을청년을 중심으로 농번기에 어려운 일을 협동으로 한 데서 유래된 것으로 농삿일이 거의 끝나는 7월에 길일을 택해서 행한다. 이날이 되면 마을에서는 농기를 한데 모아놓고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이번 농사의 노고를 서로 위로하며 한바탕 놀이를 벌이게 된다. | | |
설화민요 |
설화
이 군에는 지리적 조건상 산·고개·바위·하천에 연관된 지명전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한탕가에 있는 '삼형제바위'에 얽힌 전설은 홀어머니와 아들 삼형제에 대한 이야기이다.
백학면 백령리와 두일리 경계의 산봉우리에 있는 '꽃바위'는 두일리의 부녀자들을 바람나게 하는 바위라고 하는데 꽃바위 봉우리 능선에는 원의 부인 분묘 10구가 즐비하게 남아 있어 오늘날 <열묘각시꽃봉전설>을 전해주고 있다.
그밖에 태고적에는 선녀가 놀았으며, 고려 때는 어느 장사가 하룻밤 사이에 성을 쌓았다는 <옥녀봉전설>이 있고, 민족항일기에 온천수가 나와 다른 지역 사람들이 몰려들자 이것을 싫어하여 도인에게 부탁해서 오천수를 나오지 못하게 하였다는 옥녀봉 뒤편의 '온수동'에 얽힌 전설은 손님 오는 것을 막았다가 패가한 <장자못전설>과 비슷하다.
또한 삼신할멈이 살았다는 '군자산'은 고구려 때 '고옥달현웅섬산'이라고 불리다가 뒤에 '당산'이라 불렸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곳이기도 한 신성한 이 산은 고을의 액운을 막아주었고 알맞은 비를 내리게 해주었다고 전한다. 연천의 역사는 이 산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 청사면의 '선봉바위'와 연관된 <장자못전설>, 강릉김씨 시조 김양남이 나라를 걱정하였던 곳이라고 전하는 <국사봉전설>등 많은 전설이 있다.
민요
연천군에 구비전승되는 민요는 노동요·의식요·타령요·가 있는데, 노동요가 가장 많고 그 중에 <모내기소리>와 <논매기소리>가 중심이 되고 있으나 <밭갈이 노래>와 <울어리>(나무베는 노래)는 특색 있는 노래이다.
또, 집을 짓기 위하여 터를 닦고 땅을 다지며 부르는 "당겼나 당겼지"하는 후렴의 <가래질소리>와 "에이어라 지경이요"하는 <지경소리>가 있다. 그밖에 어린이들이 놀이하면서 부르는 동요가 많고 "…오메더라 오메더라/뒷동산에 고목나무/싹이트면 오시려나…"하는 사모의 노래도 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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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교통 |
경지면적은 157.69㎢로 경지율이 22%에 달하며, 논과 밭의 비율은 1.8:1로 논이 많다. 주요농산물은 쌀·보리로서 주곡생산이 중심이고 그밖에 잡곡·고추·담배 등이 생산되며, 근래에는 용암대지를 개척하여 사과·배·복숭아 등의 과수재배와 인삼재배가 활발하다.
지하자원의 매장량이 많아서 과거에 석탄·남정석·홍주석·강옥 등의 희귀한 광물들이 산출되었으나 근래에는 고령토·규석·사금·석회석·홍주석 등이 산출된다. 그 중 규석의 광구수와 산출량이 가장 많으며, 석회석·고령토가 그 다음으로 많다. 또한 현무암이 흔한 관계로 한탄강과 인접한 연천읍의 고문리, 전곡읍 신답리·은대리일대에서는 돌절구와 맷돌을 생산하고 있다.
1984년 연천댐이 청산면 궁평리와 전곡읍 신답리 사이에 건설되었다.
오늘날 정기적으로 장이 서고 있는 곳은 2개소로서 2일과 7일에 서는 연천장과 4일과 9일에 서는 전곡장이 있다. 그리고 전곡읍에는 6·25동란 후 인구가 집중하기 시작하여 점차 상업이 발달하면서 전포가 증가하여 자연적으로 상설시장이 형성되었다. 이 정기적으로 열리는 장이나 상설시장에서는 이 고장의 농민들을 상대로 일상생활에 필요한 일용잡화·직물류·의류·해산물류·곡류 등의 매매가 이루어지며, 계절에 따라서는 산채와 채소류, 기타 식용으로 쓰이는 여러가지 식생활품이 거래되고 있다. 정기적인 장날에는 의정부쪽에서 오는 상인이 많은데, 행상이라 하더라도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여 내왕하기 때문에 옛날처럼 등짐이나 자전거 등으로 운반하는 예는 드물다. 또한 전곡읍 읍내리에는 군내의 유일한 우시장이 4일과 9일에 서는데, 농우의 교체와 육우의 매매가 이루어지나 그 수량은 많지 않다.
경원선이 군 중앙부를 통하여 서울에서 신탄리까지 운행되고 초성·전곡·연천·신망리·대광리·신탄리 등의 역이 설치되어 있다. 경원선과 나란히 경원가도가 서울과 직결되며 전곡읍·연천읍·신탄리에서 지방도·군도가 통하면서 곳곳까지 통하는 버스노선이 발달하여 교통이 편리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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