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他人)이란 ‘남’이란 뜻의 한자어다. 그럼 타인의 반대말은 뭘까? 사전을 찾아봤더니 의외로 ‘자신’이라고 돼 있었다. 내가 의외라 느낀 까닭은 타인의 반대말을 지인, 구체적으로는 연인일 거라 짐작한 때문이다.
사전적 풀이와 다르게 최소한 대중가요에서의 타인의 반대말은 ‘연인’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노랫말이 제대로 해석되지 않는다.
연인이 어느 날 내 곁을 떠나간다. 그 순간부터 연인은 모르는 낯선 사람이다. 골목길에서 맞닥뜨려도 모른 체 지나가야 한다. ‘낯선 사람’이니까.
약속은 그렇게 했어도 얼마나 가슴 아플까. 시간을 소급해서 타인이 되기 직전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려보자. 대중가요에서는 이 마지막 순간을 대개 아침이나 새벽녘으로 설정한다. 함께 하룻밤을 지낸 뒤 이별하려는 순간인 것이다.
이런 내용을 노래한 서양 노래로 다이아나로스의 ‘Touch me in the morning’ 이 있다. 이 노래의 앞부분을 본다.‘Touch me in the morning. Then just walk away. We don't have tomorrow. But we had yesterday.’
우리에겐 이제 미래도 없고 함께 보낸 과거만 있을 뿐이니 오직 이 순간 껴안아주는 일밖에 할 일이 뭐가 있냐며 애원한다.
수많은 서양 가수들이 부른 명곡‘For the good times' 또한 같은 상황이다. 연인들이 창밖으로 흘러내리는 빗물소리를 들으며 타인이 되어야 하는 어느 아침이 배경이다.
이런 이별 노래로서 우리나라에는 영턱스의 ‘타인’이 있다. 노랫말이 다소 길다.
“한 번만 안아 주세요 마지막 밤이잖아요
이렇게 헝클어놓은 내 맘을 달래주세요
한 번만 안아 주세요 마지막 부탁이에요
이렇게 그대 그냥 가버리시면 다신 볼 수 없잖아요
촛불은 켜지 말아요 이대로 그냥 있어요
그대의 슬픈 눈빛은 볼 수가 없으니까요
아무 말 하지 말아요 상처가 될 테니까요
혹시나 그대 음성 떨리신다면 보내드릴 수 없으니
새벽이 오려나 봐요 커튼을 열지 말아요
눈부신 빛이 싫어요 두려워질 테니까요
미안해하지 말아요 행복한 사랑 하세요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거예요 나 하나 잊는다는 건
한 번만 안아 주세요 또 다른 아침이에요
이렇게 헝클어놓은 내 맘을 달래주세요
미안해하지 말아요 행복한 사랑하세요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거에요 나 하나 잊는다는 건”
<작사 이승호>
노랫말 중 ‘헝클어놓은 내 맘을 달래주세요’란 부분이 압권이다. ‘헝클어놓다’는 ‘헝클어뜨리다’에서 파생된 말인데 사전에서 ‘사람이 실이나 줄을 한데 마구 뒤얽어 풀기 어렵게 덩이를 만들어 놓다’라고 풀이했다.
‘헝클어놓은 내 맘’이란 표현은 이별을 앞두고 암담한 심경을 사물화한 것이다. 추상적 관념의 구체적 사물화이다. 흐트러진, 마지막 잠자리의 이불들 모양이 연상되는 건 왜일까?
노랫말의 내용이 의외로 착하다. ‘미안해하지 말아요 행복한 사랑 하세요’라고 이제부터는 다른 사람과 행복하게 지내기를 기원까지 하는 것이다. 격렬한 청춘들의 사랑 이별치고는 아주 온순하며 그렇기에 얘기 듣는 국외자들(대중들)을 가슴 아픈 감동의 장으로 이끈다.
이 노래는 독특한 데가 있다.
첫째, 이 노래는 화자를 남성가수가 맡음으로써 여성이 남성으로부터 버림받고 헤어진다는 일반적인 이별 방식을 벗어났다. 의도적인 역할 바꿈인데 이는 ‘일상적이고 익숙한 사물이나 관념을 낯설게 하여 전혀 새롭게 느끼도록 하는’ 낯설게 하기 방법에 속한다.
둘째, 이 노래는 화자가 마지막으로 껴안아 달라고 하소연하는 중에 나머지 다른 멤버들이 작은 목소리로 독특한 반주를 넣는다는 사실이다. 귀 기울여야 들리는 ‘잣치기 잣치기 잣차포’라든가 ‘오하치치 원, 오하치치 투’가 그것이다. 노래의 박자를 잃지 않고자 넣는 이 반주는, 예전에 동네 개구쟁이들이 골목에서 뛰놀 때 즐겨 입에 담던 내용들이다. 콧노래를 닮아서 허밍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맛이 있다.
여성이 버림받는 내용이 분명함에도 남성 가수가 그 여성인 듯 애절하게 노래 부른다든가, 반주로 넣는 구절들이 동네 개구쟁이들이 즐겨 입에 담던 내용들이라든가, 하는 것들만 봐도 영턱스의 ‘타인’은 장난기가 넘쳐났다. 하긴 영턱스라는 명칭부터 장난심한 개구쟁이란 뜻이다.
영어사전에서 ‘영턱스(young turks)’는 개구쟁이들을 뜻한다. 그런데 ‘turk'의 원뜻은 ‘터키’다. 서양사에서 동양권에 속하는 터키 사람들의 잦은 침입은 얼마나 귀찮고 성가신 일이었을까. 그런 귀찮고 성가시다는 의미가‘개구쟁이’란 뜻으로까지 발전했다.
영턱스의 ‘타인’은 독특한 대중가요다. 연인이 타인으로 바뀌는 비극을 개구쟁이들처럼 노래 부름으로써 독특한 애상미를 맛보게 했다.
첫댓글 '他人'이란 단어가 들어간 노래들을 떠올려 봅니다.
모르는 他人처럼...
어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너무도 많은 他人을 만들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