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들은 예로부터 중국 땅덩어리가 가장 가치있는 것이고 중국 문화야말로 세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중국 민족이 가장 우수하다고 여겨왔는데 2차대전이 발발하면서 이 대단한 자긍심을 일본이 잔인하게 짓밟아버렸기 때문.
중국인들이 한국인들보다 일본을 더 싫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싫고 미운 정도가 아니라 증오심이 뼛속 깊이 배어있다 해야할 것이다.
그러다보니 중국에서는 2차대전 당시 일본이 중국 현지에서 자행한 필설로 거론하지 못할 온갖 침략범죄 연구도 활발하다.
이번에는 중국 학계가 일본 731부대에 관한 새로운 사실을 공개했다.
2차대전 당시 일본이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에서 비밀리에 운영한 731부대가 사실상 세균전을 목적으로 세워졌으며, 무고한 3000여 명의 인명을 잔인하게 살상 실험한 결과 10종에 달하는 세균폭탄을 생산했다는 것.

731부대를 창설하던 무렵의 이시이 시로
하얼빈 사회과학원 ’731문제 국제연구센터’ 연구팀에 따르면 731부대는 전쟁 중이던 1937년부터 1942년까지 무려 1700여 발의 세균탄을 생산했다고 한다.
종류로는 토양 오염용 세균폭탄과 세균안개 폭탄, 인체 살상을 목적으로 만든 세균 감염탄인 쇄편(碎片)폭탄, 우물 등 대량 음용수에 투하하는 수질 오염폭탄을 포함한 총 10종의 세균폭탄은 페스트균과 탄저균이 주로 투입됐다는 것.
2차대전 당시 일제는 ‘방역급수(防疫給水)’라는 이름을 내걸고 1932년부터 1945년까지 세균폭탄을 만들려고 생체 해부 실험과 냉동 실험 등 인류사에 길이 남을 잔인한 생체실험을 자행했다.
731부대는 부대를 창설한 부대장인 이시이 시로(いしいしろう)의 이름을 따서 이시이 부대로 불리기도 했다.
이시이 부대는 전쟁 포로로, 혹은 영문도 모른 채 끌려온 민간인들을 마루타(통나무)라고 부르며 1940년부터 해마다 약 600여 명에 달하는 인명을 살상했는데 이들은 대다수가 중국인, 한국인, 몽골인이었고 간혹 러시아인도 있었다.
전쟁 패색이 짙어지자 일본 육군성은 1945년 8월 731부대의 본부동을 제외한 주요 증거 건물을 모두 완파했다.

2차대전 막바지에 일본군이 파괴하고 도주해 폐허가 된 731부대 전경
그럼에도 전후 일본은 731부대에 대해 군사예방 의학 및 의료기술 발전을 목적으로 설립했다고 발뺌해왔다.
미국은 일본의 세균전 및 생체 실험의 전범 증거를 쥐고 있으면서도 731부대 관련 전범들에 대해 그들이 연구한 실험자료를 넘겨받는 조건으로 단 한 명도 기소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야 비로소 연구를 통한 논리적 증거자료가 드러남으로써 일본은 731부대의 가공할 인명 살상에 대해 더이상 거짓해명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731부대 세균탄 진실 공개에 맞추어 그간 별로 알려지지 않은 731부대 사진을 해외사이트에서 찾아 올려 봅니다.

세균안개 폭탄 실험

731부대가 파괴되기 전 모습

실험 후 폐기된 마루타들. 모든 피실험자들은 살아있는 상태로 죽어갔다.

잡혀온 엄마를 따라온 아이들도 잔인한 실험 대상이 되었다.

포로의 몸에 폭탄을 심어 터트리는 실험을 하기 전 모습이라는 캡션이 달려있다.

생체 세균실험 결과 공개장의 참관자들

우물 등 대량 식음수 투하를 목적으로 만든 세균탄

731부대는 세균탄을 실제 전투에서 사용해 많은 인명을 살상했다는 캡션이 달려있다.

731부대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첨단장비들을 사용했다.

직접 실험 중인 이시이 시로

동상실험
모든 실험은 마취 없이 진행됐다.

세균실험 희생자

동상실험 희생자
이시이 부대장은 영웅심리가 강했던지
생체실험에 자신이 직접 등장한 모습을 여럿 남겼다.
현재까지 공개된 실험 사진에는 이시이가 대부분 등장한다.
더 잔인한 사진도 많지만 독자분들의 정신건강상 이만 올리기로 하고…
어쨌건 간에 인류 전쟁사를 통털어 가장 잔인한 전범 이시이 시로는 전후 일본에서 영웅 대접을 받으며
부귀영화와 명예를 누리다가 67세에 사망했다.
마찬가지로 731부대에서 식민지 국민 학살을 자행했던 다른 일본인들도 잘 먹고 잘 살았다고 한다.
단 한 명.
731부대의 잔학상을 증언한 인물이 있었다.
당시 부대원 시즈오카 요시오 씨가 주인공이다.


[731부대 생체 실험 종류 ]
착혈실험: 대형 원심분리기에 사람을 집어넣고 고속으로 회전시켜 인체의 모든 구멍에서 피가 분출되는 과정을 관찰. 매독실험: 여자포로의 질내에 매독균을 주입해 병의 진행을 관찰. 대체수혈실험: 윤동주 시인의 생명을 앗아간 실험이다. 인체의 피를 빼내고 동물의 피를 주입하는 실험. 주로 말이나 원숭이의 혈액을 이용했다. 동상실험: 동상 치료법을 알아내기 위해 실험대상자를 영하 40도의 날씨에 장시간 외부에 묶어두거나, 얼음물에 사람을 반복적으로 투입하거나, 팔다리를 담그게 해서 진행과정을 살펴본 실험. 경우에 따라 칼로 자르거나 망치로 두드려 보았다는 기록이 있으며 화로불에 동상 걸린 팔다리를 집어넣어 동상의 진행상태에 따라 얼마만큼 고통스러워 하는지도 관찰했다고 한다. 총기 성능실험: 수명의 사람을 일렬종대로 세워놓고 맨 앞 사람의 가슴에 총을 바짝 대고 방아쇠를 당겨 관통력을 측정했다. 신무기 성능시험: 밀폐된 방안에 사람을 둥그렇게 둘러 앉혀서 결박한 다음 한가운데 수류탄이나 소폭탄을 터뜨려 피해 정도를 살피는 등 신무기가 개발되면 전부 성능을 알아보기 위해 인체 실험했다. 진공실험(압력실험): 압력실에 사람을 넣고 공기를 서서히 빼면서 사람의 눈알과 내장이 어느 정도의 압력에서 튀어나오는지를 실험. 독가스 실험: 밀폐된 공간에 사람을 가두고 청산가스를 주입해 죽어가는 과정을 관찰. 내열실험: 폐전차 속에 사람을 가두어고 화염방사기를 쏘아 어느 정도 화력에 얼마 만큼 인체가 견디는지를 관찰 실험. 세균실험: 731부대가 총력을 기울였던 실험. 인공낙태실험: 임산부의 자궁에 구더기 등 벌레 및 이물질을 넣어 낙태 유도 실험. 화상실험: 화약을 얼굴이나 몸에 심고 불을 붙여 얼마나 타들어가는지 보는 실험. 그외 인종간 교잡배실험 등 상상을 초월한 20여 가지의 실험을 자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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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실험 뒤, 뜨거운 물에 손을 담궈 근육과 뼈의 부착상태를 실험하는 끔찍함
중국 영화 ‘ 흑태양 731(黑太陽 731) 방영
항일운동가 고환적출 731부대
중일전쟁 직전인 1937년 6월, 현 홋카이도(北海道)대학 전신인 홋카이도제국대학 교수가 만주에서 살아있는 중국인으로부터 고환을 적출해 염색체 관찰 실험을 했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고 일본 언론들이 14일 보도했다.
오구마 교수가 1939년 후생성에서 한 강연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이 강연에서 시신이나 병자로부터 적출한 고환은 염색체 관찰에 적합하지 않고 젊고 건강한 살아 있는 남성의 고환이 필요하다면서 “항일 운동을 하고 있는 비적(匪賊)을 재료로 삼으면 어떨까”라고 말했다. 이후 만주에 있던 일본군(관동군)에게 협조를 구해 “아주 좋은 재료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고 했다. 실험 대상은 일본군에 체포된 중국인 항일운동가로, 그는 살아있는 이 남성의 고환을 적출해 얻은 시료로 염색체를 명확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일본 마루타 부대가 했던 패륜실험




세균 실험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 일본 군의관과 731 부대 관계자들


마취 없이, 산 채로 피부가 벗겨짐
731부대 생체 실험 중, 인체의 가죽 표본을 벗겨서 ‘ 인체 가죽 표본 수천 벌 ’ 을

731 부대 제 2 부대장이었던, 故 기타노 마사지(北野政次) 소장
한국전쟁 때, 인공혈액을 팔아 막대한 부를 챙겼었다.

세균에 감염돼, 끔찍하게 손상된 얼굴


1945년 5월, 쿠마모토에 추락한 B29에 타고 있던 미국 병사 8명이 차례차례로 구 큐슈 제국대(현 큐슈대) 의학부에 옮겨져 이윽고 사망했다. 연합국군 총사령부(GHQ)가 「유례 없는 야만스러움」이라고 표현한 「큐슈대 생체 해부 사건」.
「수술하는 장소를 빌려 주었으면 한다」.외과의인 해부학 교실의 교수에게 연락이 있었다. 며칠 후, 미국 병사인 포로 2명이 옮겨져 왔다.
마취를 한 뒤 폐수술이 시작되었다. 투명한 액체가 몸에 넣어졌지만, 그 액체가 대용 혈액으로서 시험된 바닷물이었던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731부대의 만행이 처음 드러난 발단은 1981년 일본 교수가 쓴 논문이었다. 일본 국립 나가사키 장기대학의 쓰네이시 케이이치 조교수는 1981년 5월 <사라진 세균전 부대>란 제목의 연구서를 통해 731부대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밝혀냈다. 쓰네이시 교수는 “세균전 전문부대인 731부대가 유행성출혈열을 세균전에 이용하기 위해 많은 한국인과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인체실험까지 한 뒤 이들을 모두 독살했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731부대의 인체실험 방법까지 상세히 기술했다. 보고서가 밝힌 실험 방법은 아래와 같다.
“건강한 인간에 병원체를 보유한 진드기를 빻아 넣어 만든 식염수유제를 주사해 , 유행성출혈열에 감염시킨다. 발병으로부터 5일 이내에 산사람으로부터 내장을 적출, (중략) 병원체가 남아있는지를 조사하기 위해 결국은 산 채로 해부한다. (중략) 패전 직전에는 증거인멸을 위해 이 실험에 이용한 포로들에게 밥에 청산가리를 타 죽이거나 권총으로 모두 사살했다.”

쓰네이시 교수의 연구 보고서에 이어 731부대의 실상을 폭로한 추리소설도 출간됐다. 일본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모리무라 세이이치는 1982년 <악마의 포식>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출간한다. 모리무라는 “죽을 때까지 비밀을 지키겠다”고 서약한 731부대 소속의 전직 요원 60여 명으로부터 정보를 얻는 데 애를 먹었다고 실토하기도 했다. 이 책은 출간한 지 4개월 만에 70만 부나 판매됐다.
1992년 4월에는 일본군 731부대의 인체실험 자료가 공개됐고, 1993년 8월에는 731부대 세균전 자료 등이 발견되기도 했다. 1995년 7월에는 ’1940년 당시 일본군 731부대의 세균전은 육군참모본부의 지시와 당시 일왕 히로히토의 승인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라는 문서도 발견됐다


일본에서 731부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무렵, 관련자들의 폭로와 생체실험을 입증할 만한 증거들이 쏟아졌다. 옛 731부대 관계자 6명이 당시의 만행을 폭로한 책도 출간됐다. 이들 가운데 여러 건의 해부를 목격했다는 부대원은 “나는 수술용 칼로 생체의 가슴을 절개한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그는 “대부분의 절개 수술은 마취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실시됐다”며 “실험 대상자들은 비명을 질렀지만 그 비명은 곧 사라졌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참고문헌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소장 일본군 전쟁범죄 관련 ‘Interagency Working Group(IWG)’문서군 중 한국 관련 자료
<제 731 부대: 일본관동군 세균전부대> 송소석
신동아 2005년 8월 호, <패전 60년, 다시 불거진 일왕 전쟁책임론> 이창위
<역사를 개작하는 우파세력의 최근 동향> 타와라 요시후미
<우리는 가해자입니다> <아카하타신문> 편집국
죄를 벌하지 않고 영웅으로 만드는 풍토가 사라지지 않을 나라가 일본이 아닐런지..
저러다 원전관련 방사능 피해 사실도 숨기는 자신들을 영웅이라 생각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