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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2= 몽롱탑
그림3= 몽롱탑 위치
4. 요동성 연극(경극)용해성역사소설 의용군연의(義勇軍演義)
. 의의: 근대에 일본이 요동을 침략했을 때 의용군으로 참전한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경극에 나
오는 이야기를 각색해서 고붕(高鵬)이 병사들에게 들려준 이야기
어니하(淤泥河)에서 왕을 구한 설인귀"라는고사에서 유래된 것이다. 당 태종의 동정(東征)시 이 곳(해성,
海城)의 서남쪽에 다다렀을 때 고려대장 연개소문은 10만의 병사를 거느리고 당태종을 잡으러 오고 있
었다. 이세민이 당황하여 말고삐를 당겨 달아나는데 연개소문이 긴창을 곧추 세우고 뒤에서 추격을 해왔
다. 어느 순간 말이 멈춰서서 보니 앞에는 길고 넓고 깊은 진흙뻘강인 어니하(淤泥河)가 있었는데 어니하
는 서안시에?당태종은 우습게 생각하고 “설마 당나라가 운세가 다해 고구려에 물려주고 고구려의 신하
가 되겠는가”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고구려 장군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어 말고삐를 당겨 달아나려는
데 "이세민이다"라는 함성과 함께 들리면서 쫒아 오니 말의 네 다리가 세자도 넘는 진흙뻘강으로 빠져들
어 빠져 나올려고 발버둥을 칠수록 더욱 깊게 진흙수렁속으로 빠지게 되어 연개소문에게 붙잡히게 되었
다.
(연개소문) 당나라 왕아 ! 네가 항복을 하면 내 너에게 큰 상을 내릴 것이노라. 당태종은 이 말을 듣고 "당
나라의 땅은 넓고 물자는 풍부하고 진귀한 보물은 황실에 가득가 득한데 상은 무슨 상을 준단 말이냐?
내 비록 오늘 지형을 잘 살피고 준비를 못하고 추격을 당해 이 곳까지 와 진흙구덩이에 빠졌지만 백만
당병을 거느리고 남김없이 쓸어버릴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연개소문은 활과 화살을 잡고 당태
종을 조준하고 수하에게종이와 붓을 가져오라 명한 뒤 당왕에게 항복문서를 쓰라고 명령했다. “만약 항
복문서를 쓰지 않는다면 화살 한 방에 죽을 것이다.”당왕은 항복문서를 앞에 놓고 통곡을 하였다.이 때
갑자기 가까운 곳에서 벽력과 같은 함성이 들리는데 "왕께서는 마음 놓으시오, 신(臣) 설인귀가 구하러
왔습니다.
연개소문 너 어디에 있느냐?"라고 하여, 보니 흰 옷과 흰 갑옷을 입고 손에는 긴 창을 꼬나들고 젊은 장수
가 산 위에서 말을 달려 나는 듯이 달려와서연개소문의10만대군을 물리쳤다. 연개소문은 옷을 붙잡고 혼
비백산하여 멀리 도망을 쳤다. 설인귀는 왕을 구하려고 장창으로 말의 배 밑을 푹 찔러 양 어깨로 힘을
써서 사람과 말을 강 위로 끌어 올렸다. 당왕은 기뻐하며 젊은 장수에게 유격장군으로 삼고 훗날 안동도
호부에 봉하고 요동을 다스리도록 했다.
"......却说唐王征东来到了城西南的一个小山头了望,高丽大兵十万人马一齐向这边掩杀过来.
唐王心里发慌,拨马就跑.高丽大将盖苏文举起长矛在后面紧追.唐王李世民所骑战马飞奔着,
'呱达达......'一下,这马就停住了.你猜怎么着?原来前面是一条长长的、宽宽的、深深的、
泥泞巴唧的淤泥河.唐王这一看可傻了眼喽.难道大唐江山气数已尽?难道我大唐帝国就这么断送给你们?
难道我大唐的国君要向你们俯首称臣?想到这,面对高丽大将步步逼近的枪尖,他一抖马缰绳,喊了声'驾',
那匹战马四蹄扬空猛然一跃,怎么了?没过去.这河啊,太宽了.战马的四条腿全插进三尺
-> 위의 원문 출전 : http://www.ylch.net/lianzai/z003.htm
이전에도 연개소문은 당태종을 뒤쫓아 우물속에 숨어 목숨을 건져 지금도 산동성에 그 우물과
기념탑이 있다고 중국지방의 역사홍보로 인터넷에 띄웠는데 중국정부에서 이를 제거시켰다고 한다.
5. 결론
1) 이 내용의 가치는 고구려가 양자강하류 강소성까지 밀고 내려왔다는 사실이고, 이 글에서는 당태종이
항복직전에 연개소문이 물러났다고 하는 데, 사실은 당태종이 항복을 하고 항복절차를 밟아 구걸하는
장면이 SBS 대하드라마 연개소문에서 나왔다. 더군다나, 한단고기(임승국역저)에서는 '고구려 연개소
문은 당태종의 뒤를 쫒아 가서 장안성(서토지방의 또다른 장안성)을 점령,항복시키고, 양자강이북 땅을
복속시켰다'고 나온다. 그러나, 원래 서안이 고구려장안성이었기 때문에, 몽롱탑과 우물은 강소성이 아
닌 섬서성서쪽, 감숙성에 있어야 한다. 대륙당국에서 몽롱탑이야기를 내세운 것은 당의 영토가 양자강
에 이르렀다는 것을 억지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림4= 고구려 장안성 주변
2) 당태종이 빠졌던 어니하도 요동건너 황하의 진흙탕으로 보아야 한다.
가장 주목할 만한 곳은 바로 섬서성 서안 즉 장안 가까운 곳에 어니하가 있었고 산서성 대동(大同) 에도
있다. 안원전의 21세기 담론에서도 서안을 둘러 본 소감에서도 나오듯이 그 쪽 지역은 평시에는 흙먼지
날리는 메마른 땅이다가도 비가 오면 완전 갯벌처럼 푹푹 빠지는 진흙뻘 밭이 된다는한다.
그러나, 위치상으로 볼때 어니하는 서안(고구려 장안성)이 아니라 최전방지대 요동성주변을 지나 요하
(황하)상류로 보아야 한다. 당 태종은 그들이 출발했었고, 그들의 영토인 서토(감숙성쪽)로 후퇴를 했기
때문이다. 끝.
첫댓글 네.원래 설인귀가 고구려를 멸망시켰다던 유적이...우루무친가..타클라마칸 돈황지댄가에 있다 합니다...그림도 멋지게 그려져 있고여...사라진 투란제국이 고구려였을지도 모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