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7:60
돌에 맞아 죽어도 감사한 죽음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진리를 배반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켰다는 점.
자신을 박해하는 자들을 용서하며 갈 수 있었다는 점.
기도하면서 죽을 수 있었다는 점.
그리고 죽으면서 하늘 아버지와 예수님을 바라보며 죽음의 순간을 맞았다는 점이 귀한 복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떠드는 사람은 많은데 기도하는 사람은 적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기도하는 자를 얼마나 간절히 찾으실까 싶습니다.
기도하며 죽었던 예수님의 귀한 제자 스데반을 닮은 사람들이 많아야 다음 세대에 복음이 전달되겠다 싶습니다.
떠드는 자 많은 세상에서 우리라도 기도의 용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사탄은 우리의 초점을 우리의 문제에만 맞추기 원해 무거운 짐을 주지만 주님의 도우심으로 무거움 짐으로 넘어짐 김에 다음 세대와 세상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되기를 소원해 봅니다.
우리가 그렇게 되면 참 좋겠습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4절)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57절)
스데반의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렸으나 회개가 아닌 이를 갈았고,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았다고 합니다.
귀를 열고 들으려고 애써야 하고, 마음에 찔렸다면 회개하고 돌아서야 함에도 더 성을 내는 공의회 의원들을 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고 그 말씀으로 인하여 마음에 찔림이 와서 눈물로 회개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참으로 감사할 일임을 묵상합니다.
말씀에 귀가 열려지고 그 말씀이 아멘으로 받아들여진다면 그 시간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시간임을 깨닫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허투로 받는 어리석은 자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스데반 집사가 하늘이 열리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서 계신 것을 본 것처럼 저도 모든 의심과 두려움을 떨치고 온전한 믿음의 자리에 서 있기를 소망합니다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55절)
스데반 집사는 죽음 앞에서도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합니다. 그는 아브라함부터 다윗, 솔로몬까지 이어지는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들과 함께하셨는지를 선포합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버림받았고, 모세는 광야에서 도망자 신세가 되었으며, 다윗은 죄 가운데 넘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이 누구인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사람을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함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핍박 앞에서도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볼 수 있었던 스데반의 순전한 믿음처럼, 저도 성령으로 충만하여 흔들리지 않기를 원합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만 바라보며, 말씀을 지식이 아닌 삶으로 증거 하는 참된 제자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행 7: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얼마나 성령충만해야 이런 환상을 볼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것 또한 보고 싶다고 보는것이 아니라 주님이 그의 눈을 열어 보여 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그 옆에 계시는 주님의 모습을 본 스데반은 죽어 가면서까지 돌로 친 이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전하는 모습과 대비되는 저의 화난 모습이 떠오릅니다
저도 성령충만하여 십자가 사랑을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스데반은 아브라함부터 모세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조상의 이야기들을 나열합니다. 역사 속에서 기억해야 할 교훈들을 이야기해 주었지만 사람들은 이기심과 분노로 들어야 할 말들을 듣지도 않았고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던 군중들의 모습이 스데반을 에워싼 군중들과 오버랩됩니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받지 못한 사람들은 언제나 성령의 뜻을 거스르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스데반은 그들의 손에 죽지만 스데반의 거룩한 순교는 새로운 인물 사도 바울의 등장을 예고합니다. 힘 없이 죽어가는 것처럼 보였던 십자가의 예수님도 그리고 군중들의 돌에 맞아 무기력하게 죽어가던 스데반의 죽음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할례를 받고 사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눈과 귀가 어두워져 볼것을 보지 못하고 들을 것을 듣지 못하는 삶이 아니라 매일매일 성령의 뜻을 알고 순종하며 살아가기 원합니다.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공회에 선 스데반은 담대하게 하나님을, 그의 말씀을, 그의 은혜를 전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대중들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완악한 이들은 그를 향해 돌을 던졌습니다.
그러한 상황가운데 스데반의 부르짖음을 보며 너무 놀라웠습니다.
그는 그런 이들을 저주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의 마지막 고백, 마지막 부르짖음은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였습니다.
그는 그 앞에 선 자들을 긍휼히 생각였습니다.
묵상을 통해 뉴스를 보며 요즘 나라에 대해 국회에 대해 비판하던 저의 모습이 생각이나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이 나라 이땅을 위해 일하는 이들이 하나님 안에서 선과 의를 구별하고 분별하여 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기는커녕 저러니 이 나라가 이모양이 되었지,,, 나라를 말아먹으려고 작정했나? 어쩜 이렇게 제대로 된 사람이 하나도 없지? 자기 욕심에 나라를 팔아먹는구나 등등의 비판을 하였습니다. 돌을 던진 이들과 다름없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스데반의 담대하고 강한 믿음을 보며 어려운 만큼 더욱더 간절함으로
“그들이 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게 인도해주세요. 그들에게 이 죄를 묻지 마시고 이 시간을 통하여 우리가 한마음이 되어 주 앞에 나아가기 원합니다.”
기도해야 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잘못된 길로 나아가는 이들과 같이 그들을 비판하고 미워하며 똑같이 어둠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럴 때일수록 더 그들을 긍휼히 여기며 또한 모든 것은 하나님 만이 하실 수 있음을 고백하고 의지하며 그들을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그가 하신 지난 날의 은혜의 시간들을 기억하고, 또 그가 앞으로 하실 일에 기대와 소망을 품으며 믿음의 자리, 내가 서 있어야 하는 자리를 지키는 믿음의 자녀 된 삶이 되어야 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불안정한 지금 이시간 하나님께서 바로잡아주시고 주님께서 온 땅을 이끌어가심을 이 땅의 모든 백성이 깨닫고 주의 길로 따라 나아갈 수 있기를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스데반의 말이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회개할 기회가 되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스데반의 말을 듣고 그들의 마음이 찔렸지만 하나님을 외면하고 스데반을 돌로쳐서 죽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을 끝까지 성령을 거스르는 행동을 했습니다.
반면 스데반은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눈 앞에 두려움과 자기를 죽이는 자들에게 분노하기보다 하늘을 주목하여 보고 자기를 죽이는 저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말라고 기도하며 죽음을 당합니다.
스데반이 성령님으로 충만하기에 모든 것을 다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도 아닌 집사이지만 첫번째 순교자가 된 스데반!
세상이 감당 못할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모든 두렵고 어려운 상황을 성령님께서 감당하게 도와주시고 힘주셔서 끝까지 기도의 끈을 놓지 않고 잘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하기를 오늘도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제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모든 상황을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거뜬히 잘 감당하게 하실 줄 믿고 기도하며 나갑니다.
매일 살아갈 힘과 지혜주실 성령님 충만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