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은 수출로 질주, 스페인은 ASF에 흔들
한국은 수입 확대·소비 전환 속 기회와 리스크 공존
브렛 스튜어트 글로벌 애그리트렌즈 대표 발표
글로벌 육류시장의 무게중심이 흔들리고 있다. 쇠고기 가격은 전례 없는 속도로 치솟고, 중국 양돈산업은 공급 과잉과 수요 변화로 대규모 손실 국면에 들어섰다. 스페인은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여파로 주요 수출시장 접근에 제약을 받고 있으며, 브라질은 아시아를 중심으로 돈육 수출 네트워크를 빠르게 넓히고 있다.
이 같은 변화 속에서 돼지고기는 다시 한 번 ‘가격 경쟁력 있는 단백질’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한국 시장은 1인당 돼지고기 소비량이 세계 최고 수준에 속하는 데다, 쇠고기 가격 상승과 외식비 부담, 가정간편식·편의점 식품 확대가 맞물리며 돈육 수요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브렛 스튜어트 글로벌 애그리트렌즈(Global AgriTrends) 대표는 지난 12일 서울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칠레포크 세미나에서 “글로벌 돈육시장은 계속 변화하고 있으며, 공급과 수요, 가격, 정치, 인플레이션, 전쟁, 물류, 질병 등 모든 요인이 시장을 흔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쇠고기 가격 급등은 한국을 포함한 세계 시장에서 돼지고기에 실질적인 기회를 만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쇠고기는 급등, 돼지고기는 상대적 안정…단백질 소비의 균형이 바뀐다
현재 글로벌 육류시장에서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쇠고기 가격의 급등이다. 스튜어트 대표는 “지난 20년간 시장을 분석해왔지만 지금과 같은 쇠고기 가격 상승은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미국, 호주, 브라질 등 주요 쇠고기 생산국이 동시에 사육두수 재건 국면에 들어가면서 공급 확대에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그는 닭고기는 90일, 돼지고기는 약 10개월이면 공급을 늘릴 수 있지만, 쇠고기는 암송아지를 남겨 번식시키고 다시 비육해 시장에 내놓기까지 3년 반가량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쇠고기 가격 강세는 2026년은 물론 2027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 지점에서 돼지고기의 기회가 열린다. 쇠고기가 고가 단백질로 이동할수록 소비자들은 상대적으로 부담이 낮은 돼지고기와 닭고기로 눈을 돌리게 된다. 한국에서도 수입 쇠고기 가격은 최근 6년간 60% 이상 상승했고, 돼지고기와 가금육 가격도 올랐지만 쇠고기만큼의 충격은 아니다.
고물가 시대에 돼지고기는 다시 ‘가성비 단백질’이자 가정식·간편식 시장의 핵심 원료로 부상하고 있다.
중국 양돈산업, ASF 이후 과잉투자 후유증…“2026년까지 구조조정 지속”
글로벌 돈육시장의 가장 큰 변수는 여전히 중국이다. 세계 돼지의 절반가량이 중국에 있을 정도로 중국은 압도적인 생산·소비 시장이다. 그러나 2018년 ASF 발생 이후 중국은 대규모 살처분과 가격 급등을 겪었고, 이후 정부 주도의 대형 양돈장 확대와 다층식 사육시설 투자로 생산을 빠르게 회복했다.
문제는 회복이 과잉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스튜어트 대표는 “중국은 현재 돼지고기 공급이 많고 수요는 약해 양돈농가가 손실을 보고 있다”며 “마리당 손실이 65달러 수준에 이르고, 이는 매달 거의 10억 달러에 가까운 손실”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수요 구조도 바뀌고 있다. 과거 중국 소비자는 돼지고기를 중심으로 단백질을 소비했지만, 최근에는 쇠고기, 닭고기, 수산물 소비가 늘고 있다. 공급은 과잉인데 수요는 분산되는 구조다. 이 때문에 중국 양돈산업은 2026년까지 청산과 구조조정 국면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브라질은 수출로 성장…필리핀·일본 중심 아시아 공략 가속
중국이 흔들리는 사이 가장 공격적으로 부상하는 국가는 브라질이다. 브라질은 국내 소비가 10년 가까이 정체된 상황에서 수출을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다. 2025년 브라질의 돈육 수출은 아시아를 중심으로 빠르게 늘었고, 2026년 1분기에도 전년 동기 대비 18% 증가했다.
특히 필리핀과 일본이 브라질 돈육 수출 증가의 핵심 시장으로 떠올랐다. 스튜어트 대표는 “브라질은 필리핀에 중국보다 세 배 이상 많은 돼지고기를 수출하고 있으며, 일본 시장에서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브라질의 강점은 가격 경쟁력이다. 환율 측면에서도 브라질 헤알화는 한국 원화 대비 상대적으로 수출에 유리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다만 가격 경쟁력이 곧 프리미엄 시장 장악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한국 시장에서 브라질산은 저가 공급원으로 존재감을 키우는 반면, 칠레산은 품질·추적성·지속가능성·시장 맞춤형 제품 개발을 기반으로 프리미엄 수입돈육의 지위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스페인 ASF, 한국 수입시장에 직접 영향…저가 유럽산 유입 확대
스페인의 ASF 발생도 한국 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스페인은 유럽 최대 돼지고기 생산국이자 세계 2위권 수출국이다. 2025년 11월 야생멧돼지에서 ASF가 확인된 이후 일본과 필리핀 등 일부 핵심 시장 접근이 제한됐고, 그 결과 스페인산 돼지고기가 한국으로 더 적극적으로 유입되고 있다.
스튜어트 대표는 “한국 수입업체들은 이미 체감하고 있을 것”이라며 “일본과 필리핀으로 가지 못하는 스페인산 돼지고기가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더 저렴한 물량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2026년 1분기 한국의 돼지고기 수입은 전년 동기 대비 23% 증가했고, 스페인산은 67% 늘었다.
다만 위험은 남아 있다. 현재 ASF는 제한된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지만, 스페인 돼지고기 생산의 42%가 집중된 카탈루냐 지역으로 확산될 경우 글로벌 돈육 교역은 다시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질병 리스크는 이제 단순한 방역 문제가 아니라 국제 공급망과 가격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다.
한국, 생산은 안정적이나 수입은 빠르게 증가…2026년 돈육 수입 11% 이상 늘 듯
한국 돼지고기 시장은 국내 생산이 전체 공급의 약 3분의 2, 수입이 약 3분의 1을 차지하는 구조다. 1인당 돼지고기 소비량은 약 35kg으로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이다. 한국 소비자에게 돼지고기는 삼겹살, 목살, 보쌈, 찌개, 도시락, 간편식 등 식문화 전반에 깊숙이 자리 잡은 핵심 단백질이다.
스튜어트 대표는 2026년 한국의 돼지고기 수입이 연간 11%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그는 “이 전망이 오히려 낮을 수 있다”며 “20%까지 늘어날 가능성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여전히 한국의 주요 공급국이며, 스페인과 독일, 네덜란드 등 유럽산 물량도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국내 돼지가격도 빠르게 오르고 있다. 2026년 들어 ASF 발생으로 약 15만 마리가 살처분됐고, 이는 국내 생산의 약 1%에 해당한다. 여기에 사료비 상승, 물류비 부담, 이른 바비큐 시즌 수요가 겹치며 가격 상승 압력이 커졌다. 경기 회복세도 소비를 뒷받침하는 요인으로 거론됐다.
고물가 소비자, 삼겹살에서 도시락·가공육·HMR로 이동
한국 돈육시장의 또 다른 변화는 소비 방식이다. 고유가, 전기요금 부담, 외식비 상승이 이어지면서 소비자들은 더 저렴하고 편리한 단백질을 찾고 있다. 이는 미국을 비롯한 세계 시장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흐름이다.
스튜어트 대표는 “소비자들은 비싼 부위에서 더 저렴한 가공제품으로 이동하고 있다”며 “베이컨, 소시지, 돼지고기 도시락, 간편식, 편의점 제품 등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편의점에서는 돼지고기를 활용한 덮밥, 김밥, 도시락, 조리육 제품이 빠르게 늘고 있으며, 일부 제품은 1,100원에서 3,300원대 가격으로 외식 대체 수요를 흡수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소비자들은 여전히 맛, 안전성, 편의성, 휴대성, 원산지 추적성을 중요하게 본다. 특히 한국 시장에서는 국내산 선호가 강하지만, 수입산 중에서도 칠레산처럼 품질과 추적성, 시장 맞춤형 제품력을 갖춘 경우 프리미엄 수입돈육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칠레산 돈육의 차별성…“수출 중심으로 설계된 유일한 산업 모델”
이번 발표에서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칠레 돈육산업에 대한 평가다. 스튜어트 대표는 “미국은 생산량의 25%, 유럽은 15%, 브라질은 33%를 수출하지만, 칠레는 50% 이상을 수출한다”며 “칠레처럼 산업 자체를 수출 중심으로 설계한 나라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칠레가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시장을 겨냥해 프리미엄 돈육 제품을 개발해왔고, 그 결과 한국 수입가격에서도 프리미엄이 확인된다고 설명했다. “시장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그의 표현처럼, 한국 바이어들이 칠레산에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는 것은 품질, 지속가능성, 추적성, 시장 적응력에 대한 평가가 반영된 결과라는 것이다.
한국 시장에서 돈육의 위계는 대체로 국내산이 가장 높은 선호를 받고, 그다음이 칠레산 프리미엄 수입돈육, 이후 일반 수입돈육으로 구분된다는 분석도 제시됐다. 이는 수입돈육 시장이 더 이상 단순한 가격 경쟁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질병·물류·보호무역은 상시 리스크…생산성 혁신이 생존 조건
글로벌 양돈산업의 리스크는 복합적이다. ASF, 구제역, PRRS 등 질병 문제는 계속 확대되고 있으며, 물류비와 운송 불안정성도 여전하다. 보호무역과 반덤핑 조사, 관세, 위생검역 제한도 시장을 흔드는 요인이다. 멕시코의 미국산 햄 반덤핑 조사, 중국의 EU산 돼지고기 관세 부과, 스페인 ASF에 따른 시장 접근 제한 등이 대표적 사례다.
이런 환경에서 스튜어트 대표가 강조한 해법은 생산성이다. 그는 “세계 농업은 더 적은 토지와 더 높은 비용 속에서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해야 한다”며 “우리는 더 적은 것으로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밀농업, 유전개량, 자동화, 로봇, 인공지능, 데이터 기반 사육관리, 생명공학 기술은 양돈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도구가 되고 있다.
과거 농업 생산 증가는 더 많은 토지, 더 많은 시설, 더 많은 화학투입재에 의존했다. 그러나 앞으로의 성장은 데이터와 생물학, 자동화, 최적화에서 나온다. 글로벌 양돈산업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 돈육시장, ‘수입 확대’보다 중요한 것은 시장 재설계
2026년 한국 돈육시장은 공급 측면에서 비교적 유리한 위치에 있다. 미국, 스페인, 독일, 네덜란드, 칠레, 브라질 등 다양한 공급원이 존재하고, 글로벌 쇠고기 가격 강세는 돼지고기 소비 확대에 우호적인 환경을 만든다. 그러나 단순히 수입 물량이 늘어난다고 시장 기회가 자동으로 커지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는 가격에 민감해졌지만 동시에 안전성, 맛, 편의성, 추적성, 지속가능성을 요구한다. 외식에서 내식으로, 원물 소비에서 가공·간편식으로, 단순 저가에서 합리적 가치 소비로 시장이 이동하고 있다. 이 흐름을 읽지 못하면 수입 확대는 가격 경쟁으로만 귀결될 수 있다.
글로벌 양돈시장은 지금 쇠고기 고가화, 중국 구조조정, 브라질의 부상, 스페인 ASF, 유럽산 저가 물량 확대, 칠레산 프리미엄 전략이 동시에 작동하는 복합 전환기에 있다. 한국 시장은 이 변화의 수혜자가 될 수도, 가격과 질병 리스크에 흔들리는 취약 시장이 될 수도 있다.
결국 관건은 ‘얼마나 많이 들여오느냐’가 아니라 ‘어떤 돈육을, 어떤 소비 방식에 맞춰, 어떤 가치로 팔 것인가’다. 글로벌 단백질 시장의 격변 속에서 돼지고기는 다시 기회를 맞고 있다. 그리고 그 기회는 가격이 아니라 품질, 편의성, 신뢰, 생산성 혁신을 결합한 시장 설계에서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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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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