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지금 나는 깨어있다 원문보기 글쓴이: 추공
[영화] 화엄경(華嚴經)
장선우 감독
1993.06.26 개봉
출연: 오태경, 원미경, 이혜영, 신현준, 독고영재, 정수영, 엄춘배,
김은미, 김혜선,이호재, 이대로, 박종설
- 진여일여 일깨운 선재동자 피리소리 -
출처 - 주간불교 / 편집 - 미주현대불교
“하늘은 비를 잃어 허공이 되고 강은 강을 잃어 바다가 되지요. 꽃은 꽃을 잃어 열매가 되고요. 나는 또한 마음을 잃어 허공이 되었어요. 마음을 잃어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탐내고 원망하고 다투는 어리석은 바다를 헤어나지 못해요.” 영화말미 선재의 대사이다. 선재는 길을 떠났다가 선지식을 만나고 그 여정의 끝에 선재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 깨달음은 바로 모든 것을 비움으로써 모든 것을 얻는 역설적 화법의 ‘공(空)’이다. 이는 “모든 분별로부터 떠났으므로 어떤 것에도 해당되는 것이 없고, 해당되는 것이 없으므로 해당되지 않음도 없다”는 원효의 일심사상과도 일맥상통한다. ‘염정불이 진속일여(染淨不二 眞俗一如)’를 깨닫기 위해 선재는 지극히 낮은 곳을 향해 흐르는 물처럼 떠돈다.
영화〈화엄경〉은 고은의 동명소설을 감독이 독자적인 시선으로 재해석한 것이지만 기실 원작은 《화엄경 입법계품》이라고 봐야 한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화엄경 입법계품》에서 선재동자가 만나는 53선지식의 인물들이다. 53선지식의 직업을 살펴보면 매우 다양하다.
놀라운 사실은 뱃사공이나 매춘부처럼 천민출신도 등장하고, 53인 중 여성이 20명이나 된다는 것이다. 수많은 아라한을 제쳐 두고 한낱 무명초 같은 대중들을 선지식으로 지목한 까닭이 무엇일까? 바로 구도의 길 위에서는 사회적 신분이나 차별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장선우 감독은 화엄경 제작을 고민하던 중 휴먼 다큐멘터리 〈인간시대〉에서 절도 전과가 있는 한 사내가 고아를 키우기 위해 고물상을 한다는 내용을 보고서 화두를 풀 수 있었다고 한다. 영화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불교적인 은유로 만들어진 인물이다. 의사해운은 약사여래불을 떠올리게 하고, 꿈 속 마니는 어감부터 마구니를 연상시킨다.
구도의 여정도 불교적 사유로 가득 차 있다. 어린 소년 김박사로부터 우주생성의 비밀을 듣는 장면은 불교의 우주관 ‘무시무종(無始無終)’을 담고 있다. 자애로운 연꽃여인에게서 대접받은 진수성찬이 재와 폐수로 바뀌는 장면은 원효스님의 일화를 매우 닮았다. 감로수가 실은 해골바가지에 고인 물이라는 것을 알고 일체유심조를 깨달은 원효스님처럼 선재도 일체 모든 욕망이 한낱 꿈같은 것임을 깨닫고 있는 것.
영화 속 여주인공 이련의 캐릭터 또한 매우 인상적이다. 요부의 성적(性的) 이미지와 관세음보살의 성적(聖的) 이미지가 모두 깃들어 있다. 실은 이련은 “애욕이 보살이 씨가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전하기 위해 감독이 창조한 인물이다. 영화 〈화엄경〉의 최고 백미는 어머니의 상징이다. 선재가 길을 떠난 이유는 자신을 버린 어머니를 찾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영화는 선재가 구도의 길 끝에서 세상 모든 이가 모두 어머니였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막을 내린다. 이 세상 만유중생이 모두 관세음보살이라는 감독의 시선은 참으로 깊고 따뜻하다. 영화를 보고 나면 모든 사물이 다시 보이는 까닭도 이 때문일 것이다. 돌아 보라. 넝마주의의 부처를……. 가난하지만 따뜻한 가슴을 지닌 우리의 관세음보살을…….
유응오 기자 arche@jubul.co.kr
“만유중생 모두 부처 처처가 다 화엄세계” “만유중생이 모두 부처님이고 처처(處處)가 모두 화엄세계라는 깨달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장선우 감독은 화엄경 제작경위에 대해 이같이 설명하면서 “불교와의 인연 때문에 만든 작품이 바로 화엄경”이라고 강조했다.
장 감독의 불교에 대한 애정은 매우 각별한데 이는 그의 시집 《이별에 대하여》에 잘 묻어 있다. 시집에는 불교 가르침을 따르고 있는 저자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가 불교와 인연을 맺은 것은 그의 말대로라면 전생의 전생부터이다.
그런 전생의 인연으로 지금도 평택 만기사 주지 원경스님을 비롯해 중앙신도회 최연 사무총장 등 출재가자를 막론해 불교인들과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대중 곁에서 동사섭을 실천하다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문화의 강을 건너 화엄의 바다에 다다른 감독.
그가 현재 구상중인 영화는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따리의 저술이기도 한 〈천 개의 고원〉이다. 장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사랑과 자아를 버리면 구원 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이다. 장선우 감독은 서울대 고고인류학과를 졸업했으며 베를린영화제(44회) 알프레드바우어상(특별상)·제32회 대종상영화제 감독상 등을 수상했다.
유응오 기자 arche@jubul.co.kr 주간불교 835호 2005년 2월
http://cafe.daum.net/mobuddhism/JKIl/59?q=%BF%B5%C8%AD%20%C8%AD%BE%F6%B0%E6
길가에 버려진 갓난 아기 선재를 주운 전과자 문수는 그 일을 계기로 새 삶을 꾸리기로 하고 넝마주이를 하며 정성껏 선재를 돌본다. 그러나 문수가 사고로 죽어버리자, 선재는 화장터에서 만난 소녀 이련이 같이 살자고 하는 것도 뿌리치고 어머니를 찾아 길을 떠난다. 선재는 여행 도중 스님 법운, 장꾼 지호, 의사 해운, 장님 가수 이나, 꿈속의 요녀 마니, 장기수 해경 등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인간사의 희로애락을 배우고 체험한다.
얼마 간의 시간이 흐른 후 선재는 이련과 재회하고 그녀와의 사랑으로 아들을 낳는다. 그러나 그는 또 다시 길을 떠나 천문대로 향하고, 그 곳에서 소년 김박사를 만난다. 김박사에게서 별의 생성과 소멸에 대한 얘기를 듣고 이련이 있던 곳으로 내려오지만 그녀가 죽은 아이를 묻고 길을 떠난 것을 알게 된다.
다시 시작되는 여행에서 선재는 늙은 등대지기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현실에서 요녀 마니를 만나 유혹을 받는다. 오랜 여행으로 지쳐 쓰러져 잠이 든 선재는 꿈속에서 자애로운 연꽃 여인의 대접을 받고 깨어난다. 그는 그것이 재(齋)와 폐수였음을 알고 깨달음을 얻는다.
제44회 베를린영화제에서 영화예술에 새로운 조망을 제시한 작품에 수여되는 알프레드 바우어상을 수상한 작품.
[화엄경 - 예고편 -]
Ⅰ
동쪽으로 간 까닭은?>에 견주어 볼만한 작품이다.
Ⅱ
고은과
이 10개의 모티브는 ① 진리의 큰 바다는 믿음으로써 들어가고 지혜로써 건넌다. ② 모든 것은 낮아서 바다가 되고 하늘은 거기에 내려와 있나니. ③ 허무처럼 큰 공간은 없다. ④ 흐르는 것을 따르세요, 흐르지 않는 것을 따르지 마세요. ⑤ 애욕을 비웃지 마라, 보살의 시작이다. ⑥ 있다, 그리고 없다. ⑦ 불가사의한 중생의 업. ⑧ 이 세상에 홀로 있는 것은 없다. ⑨ 세상은 자신을 잃어가면서 세상이 되었구나 등 9개의 화두(話頭)와 고리 지워져 있다.
영화 <화엄경>은 선재가 어머니를 찾아 나서는 여행을 따라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선재는 아버지(문수)의 죽음을 계기로 어머니를 찾아 나서게 된다. 선재는 "착한 사람을 보면 눈을 크게 뜨고, 나쁜 사람을 만나면 고개를 돌리고, 그러다 보면 반드시 어머니를 찾는다"는 아버지의 말에 대한 믿음을 지니고,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노란 담요를 가슴에 품고서 길을 떠난다. 그렇게 길을 나선 선재는 여러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영화 <화엄경>은 구도행을 담은 것인 동시에, 다양한 인생과의 '만남'이 담겨진 것이기도 하다. 이련, 법운, 해운, 해경, 김박사(의 아들), 등대지기 등이 선재가 현실 속에서 만난 인물들이라면, 관능의 여인 마니와 연꽃을 든 여인 등은 현실 너머의 세계에서 만난 존재들이다. 선재가 만난 인물(혹은 존재)들은 깨달음의 세계(영화에서 어머니 찾기로 제시되고 있는)를 갈구하는 선재에게 다양한 길을 제시하고 있다.
Ⅲ
승려이면서도 속세 한복판의 삶을 사는 법운은 선재에게 '믿음'을 가지고 '지혜'로 마음의 눈을 닦아야 한다고 말한다. 법운은 선재의 '길'이 스스로 겪어야 하는 길임을 또한 강조한다. 법운은 선재에게 '우주도 본래 혼자 컸다'는 것을 깨우쳐준다. 욕쟁이 의사 해운은 선재에게 사람이 하늘이나 우주보다 더 큰 것이라고 말한다. 선재는 이나를 통해 사람이 우주보다 클 수 있는 가능성을 읽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에 의해 자궁이 도려내어지고 눈을 찔려 시력을 살실해버린 이나가 오히려 그를 위해 노래를 부르는 것을 지켜보면서 숙연함을 느낀다. 이러한 이나의 존재는 영화<화엄경>의 근본적 취지에 가장 근접해 있다. 감옥에 갇혀 자유를 상실한 해경은 불교적 진리를 더욱 분명하게 깨우쳐 준다. 해경은 평등이 무엇인가를 묻는 선재에게 "정말 평등이란 모든 존재는 실체도 없고 생긴 적도 없다는 거야. 세상이란 거울에 비치거나 물위에 비치는 그림자와 같다. 너나 나나 몸과 마음이 한낱 거울에 비치는 그림자와 같다는 점에서 우리는 평등하다"고 답한다. 해경은 또한 선재와 이별하면서 "너에게 허무함만 남겨줘서 미안하구나. 하지만 허무처럼 큰 공간도 없다. 허무만이 모든 걸 받아들일 수 있단다"라고 말한다. 해경이 설한 '공'(空)에 담겨진 뜻은 영화의 결말에 담겨진 불교적 전망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련은 선재의 구도행에 있어 중요한 존재이다. 이련은 영화 처음 부분의 화장터 장면에서 아버지를 잃고 슬픔에 젖어 있는 선재에게 이런 저런 말을 붙이고선, 선재의 아버지를 위해 꽃을 띄워준 소녀이다. 소녀 이련은 선재를 붙잡지만 선재는 길을 떠난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이련은 성숙한 처녀(
영화 말미에서, 두 사람은 다시 만난다.(이 때, 이련은 다른 사내의 아내가 되어 있다). 어머니를 찾았느냐고 이련이 묻자, 선재는 "세상 전부가 제 어머닌걸요. 저 밤하늘의 별까지 다 제 어머니였어요. 이련까지도 제 어머니지요"라고 답하며, 내내 부여안고 다녔던 노란 담요를 이련에게 건네준다. 연꽃을 든 여인(
꿈에서 깬 후, 선재는 자신이 서 있는 현실을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영화에서 이는 선재가 쓰레기와 폐수를 토해내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선재는 다시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현실로 귀환한 선재는 이전의 선재와는 다른 존재이다.
이제, 선재는 긴 깨달음의 '통과제의'를 거쳐 새로이 변화된 존재이다. 그의 존재 변화는 영화 말미에 이련에게 전해준 오도송(悟道頌)에 잘 나타나 있다. "세상은 자신을 잃어가면서 세상이 되네요. 하늘은 비를 잃고 허공이 되구요. 강은 강을 잃어 바다가 되지요. 꽃은 꽃을 잃어 열매가 되구요. 나는 또한 마음을 잃어 허공이 되었어요. 마음을 잃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탐내고 원망하고 다투는 어리석은 고통의 바다를 헤어나지 못해요".
/신 광 철 <한신대교수.종교문화학>
[-영화- 화엄경 , 전체영상] |
[영화 화엄경 , 전체영상] -1993년 개봉 -
http://cafe.daum.net/peacesm/56zL/53?q=%BF%B5%C8%AD%20%C8%AD%BE%F6%B0%E6&re=1
첫댓글 [흥국사 수월관음도. 보물1332호]
수월관음과 선재동자(아래 왼쪽)입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