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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7일(목)
* 시작 기도
주님...
구약 시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의 공식은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신약 시대에 들어와 그 공식이 바뀌는데 나는 너희의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고후 6:18).
법적인 관계에서 부자지간이라는 친밀한 관계로 발전합니다.
이는 구약의 건물 성전이 아니라 내가 바로 성전임을 천명하시는 주님의 말씀으로 인합입니다.
성전된 내가 어찌 우상과 일치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나는 이런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으로서의 본분을 다 하고 있는지요?
거짓과 불의를 행하는 나는 질그릇임을 고백합니다.
이런 나를 성전이라 불러주시는 주님 앞에서 그저 고개를 들지 못하는 면목없음으로 설 뿐입니다.
나의 행위로 날 택하지 않으시고 오직 하나님의 뜻으로 택하신 것은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나의 행위로는 죽기에만 합당하오나 그런 날 위하여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셨으니 오늘도 주 앞에서 할 말이 없습니다.
나 또한 정욕으로 이끌어가는 나의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으로 비추소서.
주의 뜻을 이루는 새 날이 되기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시 47:1-9
제목 :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다.
1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지어다.
2 지존하신 여호와는 두려우시고 온 땅에 큰 왕이 되심이로다.
3 여호와께서 만민을 우리에게, 나라들을 우리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시며
4 우리를 위하여 기업을 택하시나니 곧 사랑하신 야곱의 영화로다(셀라).
5 하나님께서 즐거운 함성 중에 올라가심이여 여호와께서 나팔 소리 중에 올라가시도다.
6 찬송하라 하나님을 찬송하라. 찬송하라 우리 왕을 찬송하라.
7 하나님은 온 땅의 왕이심이라. 지혜의 시로 찬송할지어다.
8 하나님이 뭇 백성을 다스리시며 하나님이 그의 거룩한 보좌에 앉으셨도다.
9 뭇 나라의 고관들이 모임이여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다. 세상의 모든 방패는 하나님의 것임이여 그는 높임을 받으시리로다.
* 나의 묵상
본시는 좁은 의미로 보면 이스라엘의 왕 다윗이 오벧에돔의 집에 안치되어 있던 언약궤를 다윗성에 설치된 장막으로 옮겨 안치하는 사건을 그 배경으로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가 사가(私家)에 있다가 왕의 궁에 설치된 장막으로 옮긴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 그 자체인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선민을 비롯한 모든 열방들이 손뼉을 치며 기뻐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다.
그리고 보다 넓은 의미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초림하신 후에 구속 사역을 다 마치시고 부활 승천하여 만왕의 왕으로서 하늘 보좌에 앉으심으로 1차 성취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영광스런 그리스도의 나라를 완성하심으로 궁극적인 성취를 이루실 것이다.
1-2절, 시인은 만민을 향하여 지존하신 여호와 그리고 온 땅의 큰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촉구한다.
3-4절, 또한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나라들을 우리에게 굴복하며 복종케 하시며 우리가 물려받을 땅 곧 기업을 정하셨는데 하나님이 사랑하신 야곱의 자랑거리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당신의 백성인 선민으로 택하셨다.
그리고 그들을 애굽에 종으로 파시고 430년간 종살이를 하게 하셨다.
그 후에 그들을 당신의 주권으로 이끌어내셨고 가나안을 그들에게 기업으로 주셨다.
그 기업을 차지하는 과정에서 그들을 대적하는 이방 민족들을 그들에게 굴복하게 하셨다(출 17장, 아말렉을 이기게 하심).
이렇게 하나님은 야곱 곧 이스라엘을 당신의 자랑거리로 삼으셨다.
5-7절, 이제 선민을 통하여 승리하신 하나님은 보좌에 오르신다.
그 하나님을 향하여 찬송할 것이다.
다윗은 아비나답의 집에 안치되어 있던 언약궤를 다윗성으로 옮기려고 그 집에 도착한다.
그런데 아비나답의 아들들인 웃사와 아효가 새 수레를 만들어 그 위에 언약궤를 싣고 나오는 것이다.
다윗은 손을 쓸 겨를도 없이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하지만 조금 늦더라도 다윗은 그들을 제지했어야 했다.
그리고 새 수레가 아닌 제사장들로 하여금 어깨에 메도록 했어야 했다.
그런데 그냥 진행을 시키는 바람에 하나님께서 웃사를 치셨다.
웃사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고, 다윗은 그 곳 이름을 베레스 웃사라 불렀다.
언약궤는 곧바로 오벧에돔의 집에 안치되었고 석달 후에 다윗은 다시 그 언약궤를 제사장들의 어깨에 메고 다윗성으로 올라간다.
이 장면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좌에 오르시는 장면을 연상케 하는 것이다.
이 때 성전의 찬양대와 나팔 등 각종 악기로 찬양을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높인다.
이뿐 아니라 이 장면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시고 마지막 때에 심판주로 오실 때의 장면을 예시하기도 한다.
(고전 15:24-25)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노릇하시리니
그 때는 우리 주님이 심판하시는 때이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은 영생을 얻고 믿지 않는 자들은 심판 곧 멸망을 받는다.
(26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이렇게 만왕의 왕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만물을 복종케 하신다.
그리고 아들 자신도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아버지께 복종한다.
(28절)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8-9절,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만물을 복종케 하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보좌에서 열방을 치리하시며 그 거룩한 보좌에 앉으신다.
그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백성들로 인하여 영광과 높임을 받으신다.
먼저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하나님 아버지의 복종 아래 들어가신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진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의 복종 아래에서 찬양을 할 것이다.
(갈 3: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이들이 받는 복은 곧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복이다.
(갈 3: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이렇게 그리스도 예수의 소유가 된 자들은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하나님의 기업을 받는다(갈 3:29).
이들이 진짜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들이다.
다윗이 아비나답의 집에서 다윗성으로 언약궤를 옮기는 과정에서 실패를 한다.
이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와서 그리스도로서 승리의 쾌재를 외쳐야 함에도 십자가에 죽어버린다.
이를 보면 다윗이 1차 언약궤 운반에서 실패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야 됨도 실패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실패가 아니다.
이미 그 일은 하나님의 계획 안에 들어 있던 것이다.
아들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와서 승전가를 외치는 개선장군이 아니라 십자가에 죽음으로 거짓의 아비 마귀를 이기는 것이다.
겉으로 볼 때는 날카로운 검과 창으로 마귀를 박살내는 것이 이기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거짓의 아비된 마귀의 종노릇 하는 모든 백성들을 온전히 살리기 위해서는 아들이 십자가에 대신 죽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다.
(요 3:14-15)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렇게 아들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3년 동안 공생애의 삶을 사신다.
그리고 공생애 마지막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신다.
그 걸음을 환영하며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극진히 환대하는 무리들은 호산나를 외치며 노래한다.
호산나는 우리를 구원해 주소서, 라는 뜻이다.
그들이 믿었던 예수는, 지금 로마의 압제하에서 정치적인 자유를 주는 메시야가 되어 달라는 말이다.
하지만 예수는 자유를 주는 그리스도는 맞지만 현재의 상황을 해결하는 그런 요술방망이 같은 메시야가 아니다.
메시야는 단순히 육신의 자유를 주는 것이 아니라 죄로부터 자유를 주는 자여야 한다.
그래서 거짓의 아비인 마귀를 멸하고 거기에 매여 있는 당신의 백성들을 풀어 자유케 해야하는 것이다.
(요일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초림)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아들은 바로 이 일을 위하여 오셨으며 그것이 아버지의 뜻이기에 그 일에 복종하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무덤에 장사되심을 믿는 자들은 영생을 얻었다.
그리하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 아들을 하늘로 부르신다.
그리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게 하셨다.
(빌 2:8-11)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이제 마지막 때가 되면 심판주로 오실 것이다.
그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을 믿는 자들은 아들의 신부로 서게 된다.
(계 7:9-10, 13-14)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이렇게 구원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또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신다(계 7:17).
나는 예수를 알되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이 아는 메시야 곧 다윗과 같은 정치적인 자유를 주고 경제적인 부요를 주며 사회적인 정의를 가져다주는 예수로만 알았었다.
그래서 대학을 다니면서는 사회 정의를 이루고자 앞장을 서기도 하고 그런 이념적인 책을 읽으면서 나를 새롭게 하고자 하였다.
그런 열정이 나를 신학의 길로 이끌었고 목사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예수는 나의 이념적인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목사가 되고 교회 사역을 하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어지럽고 혼란한 사회를 좀 바르게 세워보고자 애를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런 나에게 하나님의 공의로 심판이 임하였다.
그 심판은 나에게 말씀으로 인도하셨다.
나에게 주신 말씀은 내가 요술방망이로 붙들고 있던 그런 멋지고 아름다운 구절들이 아니었다.
나도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무덤에 장사되는 복음의 메시지였다.
그 복음의 메시지 앞에서 나는 두 손을 들고 항복하였다.
주님이 날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것처럼 나 또한 주님과 함께 나의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리고 내 앞에 다가오는 모든 상황들이 무덤과 같았다.
예전에는 믿음이 있노라 하면서 그런 고난의 상황들을 기도로 돌파하려고 애썼지만 이제는 그 고난이 나에게 주신 은혜로 믿고 그저 수용하였다.
그것이 내게는 은혜의 통로였음을 믿는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나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신다.
나는 질그릇이기에 여차하면 넘어져 깨진다.
하지만 내 안에 있는 보배이신 진리가 나를 일으켜 세운다.
오늘도 그 진리와 함께 일어나 아버지 품으로 나아간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베레스 웃사’는 하나님께서 웃사를 치셨다는 뜻입니다.
이로 인하여 다윗은 통분히 여겼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통분히 여김은 하나님이 웃사를 죽임으로 인함이 아니라 자신이 웃사를 제어하지 못하여 이런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한 분노였음을 압니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역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에게 참된 자유와 승리를 주기 위함이었지요.
그런데 나는 주님의 오심을 온전히 알지 못하고 내 맘과 내 뜻대로 왜곡한 자였습니다.
내가 좋은 것만 얻으려는 위선자요 이간질하는 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런 나에게 주님은 십자가 죽음으로 오셨습니다.
그 죽음은 나에게는 실망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요 계획임을 알고서 나는 그 자리에 엎드렸습니다.
나의 어리석음과 우둔함 그리고 나의 죄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사실을 안 후로 나 또한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주님과 함께 죽고 함께 장사되는 연합과 이를 믿는 것이 나를 생명으로 인도하는 것임을 믿습니다.
나의 생각과 의지가 아닌 오직 예수로 인하여 아버지께 나아가는 이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