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시청-여의도… 지하철역 50곳 이름 팝니다”
서울교통公, 역명 병기 공개입찰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역명 옆에 서울대학교병원이 병기된 모습.
‘을지로3가(신한카드).’
서울 지하철 2·3호선 을지로3가역은 역 이름과 기업 이름이 함께 표기돼 있다. 기업들의 요청이 이어지자 서울교통공사가 올 3월 이름 병기 권리를 공개 입찰에 부쳤는데 3년간 8억7400만 원을 쓴 신한카드가 낙찰받았다. 기업·기관 이름을 병기한 33개 역 중 낙찰액이 가장 높다. 교통공사는 5일 “강남역과 시청역 등 주요 지하철역 50곳에 대해 지하철역 이름에 추가로 기업 등의 이름을 표기하는 ‘역명 병기 유상판매’ 사업을 공개 입찰한다”고 밝혔다. 기존에는 기업·기관의 요청이 있을 때만 판매했지만 연간 적자가 1조 원 안팎에 달하는 등 재정난이 심해지자 선제적인 판매에 나선 것이다. 지난해 하루 평균 이용자 수 1위(6만7000여 명)인 강남역은 입찰 시작가가 3년간 8억7600만 원이어서 최고가를 경신할 가능성이 높다.
강남역 8억대, 시청 7억대… 역이름 팔아 지하철 적자 타개
“지하철역 이름 팝니다”
하루 이용자수 최다 강남역, 역명 병기 최고가 경신 가능성
재정난 해소-기관홍보 윈윈 평가… 美-日 등 해외서도 확산 추세
서울교통공사가 역명 병기 확대에 나선 것은 늘어나는 적자 때문이다. 서울교통공사는 2020년 1조1137억 원, 지난해 9644억 원의 적자를 냈다. 올해도 1조 원 안팎의 적자가 예상된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이용객이 줄면서 적자 폭이 크게 늘었다”며 “역 이름 병기 권리를 팔아 재정난을 조금은 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강남역 등 50개 역 공개 입찰
서울교통공사가 이번에 입찰 대상으로 내놓은 역은 8월에 계약 기간이 끝나는 8개 역과 새로 원가 조사를 마친 42개 역 등 모두 50곳이다. 새로 입찰에 나오는 역에는 전국 지하철역 중 수송 인원이 가장 많은 강남역과 시청역, 홍대입구역 등 번화가 역이 다수 포함돼 있다. 주요 환승역인 여의도역, 공덕역 등도 판매 대상이다.
외부 감정평가기관에서 유동인구, 주변 상권, 역 수송 인원 등을 반영해 산출한 입찰 시작가는 3년 기준으로 2호선 강남역(8억7598만 원)이 가장 높다. 교통공사 관계자는 “최종 낙찰액은 입찰 시작가보다 높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입찰에 참여하려면 서울에서는 해당 기업 및 기관이 대상 역에서 1km 안에 있어야 한다(서울 외부에선 2km 이내까지 가능). 낙찰받으면 해당 기업·기관 이름이 역 이름과 함께 출입구와 승강장 역명판 등 10여 곳에 표기되고 전동차 안내 방송에도 나온다. 계약 기간은 3년이고 한 차례 연장할 수 있다.
○ 교통공사 ‘재정난 해소’… 기업은 ‘홍보’
역명 병기는 박원순 서울시장 시절이던 2016년 시작됐다. 서울교통공사는 재정에 도움을 받고, 기업·기관은 홍보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에서 ‘윈-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신용산역(아모레퍼시픽), 을지로4가역(BC카드), 혜화역(서울대학교병원) 등 현재 33개 역에서 이름을 같이 쓰고 있다.
역명 병기 사업은 해외에서도 새로운 수입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 뉴욕 지하철을 운영하는 MTA는 2009년 애틀랜틱 애비뉴역 이름을 영국 금융기업인 바클레이스에 연간 20만 달러(약 2억5000만 원)에 팔고 역 이름 뒤에 ‘바클레이스 센터’를 붙였다. 일본에서도 2000년대 중반 경영난을 겪던 소규모 지방 철도에서 시작돼 대도시까지 확산되고 있다.
일각에선 공공시설인 지하철 역 이름을 돈을 받고 파는 것에 대해 ‘공공성을 훼손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선인 서울교통공사 신성장본부장은 “지하철의 공공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사업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강승현 기자
“시청역 강남역 팝니다”
“을지로3가, 신한카드역입니다.” 올해 1월 서울지하철 을지로3가역 이름이 신한카드에 팔렸다. 낙찰가는 역대 최대인 8억7000만 원. 을지로3가역은 승하차 인원만 월 160만 명이다. 신한카드는 역내와 열차 내 안내방송을 통해 신한카드역 이름을 듣는 사람이 월 300만 명 이상일 것으로 보고 있다. 확실한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서울교통공사가 전국 지하철역 수송 인원 1위인 강남역과 시청역, 을지로입구역, 여의도역 등 주요 역 이름을 판매한다. 서울지하철 1∼8호선 50개 역이 대상이다. 입찰 대상은 역에서 1km 이내의 기관과 기업이다. 낙찰되면 3년간 기관 이름을 부(副)역명으로 표기한다. 여러 기관이 같은 가격을 제시하면 공익기관 학교 의료기관 기업 다중이용시설 순으로 낙찰된다.
▷역명 병기는 지역 이미지에 영향을 주는 만큼 주민들의 관심이 높다. 교육기업 에듀윌은 2020년 노량진역을 사들이려 했으나 학원이 노량진 대표 시설이 아니며 홍보 성격이 너무 짙다는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실패했다. 비싼 금액에 낙찰되는 역명은 대부분 기업들 차지다. 을지로3가역 다음으로 비싼 역은 역삼역(센터필드·7억5000만 원) 을지로4가역(BC카드·7억 원) 을지로입구역(IBK기업은행·3억8100만 원) 신용산역(아모레퍼시픽·3억8000만 원) 순이다.
▷역명 병기 사업은 2016년 처음 시작했다. 당시 12개 역명 판매에 나섰는데 첫 입찰에서는 홍제역 한 곳만 팔렸다. 하지만 홍보 효과가 입증되면서 해마다 판매가 늘어 지금은 33개 역이 부역명을 갖고 있다. 일본과 미국 영국 등 다른 나라들도 같은 사업을 하고 있다. 서울시가 참고한 스페인 마드리드 도심의 ‘솔 광장 역’은 2012년 삼성전자 후원을 받아 ‘솔 갤럭시 노트 역’으로 불리다 이듬해 다국적 통신사 보다폰에 3년간 300만 유로에 팔리면서 ‘보다폰-솔 역’으로 개명했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대목 중 하나는 서울 대중교통이다. 청결하고 정확한 데다 요금까지 저렴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면에서 운영 기관의 부채가 쌓이면 결국 시민들의 세금으로 적자를 메울 수밖에 없게 된다. 서울교통공사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승객 수가 크게 줄면서 올해 적자가 1조 원 안팎으로 불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공사가 한동안 중단했던 역 이름 판매 사업을 지난해 다시 시작한 이유다. 서울시는 버스업계 만성 적자를 타개하기 위해 올해 하반기 버스정류소 이름도 판매한다고 한다. 이런 노력들이 시민 부담을 줄이면서도 서울 대중교통의 명성을 지켜내는 도우미 역할을 해내길 기대한다.
배극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