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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희와 동수의 결혼식이 다가오고 있었다. 일곱 사람이 우진의 별장에 모였다. 그들만의 마지
막 파티를 했다. 여름이어서 다들 수영복을 입고 앞에 풀장에 모여 있었다. 은오와 마희, 안나
가 한 켠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정작 간다니까.. 마음이 이상해.”
마희가 울먹이며 말하자 안나가 눈을 크게 뜨고 마희를 툭 어깨로 밀었다.
“야.. 정신 차려. 누구라도 알아채면 물거품 되는 거야.”
“응. 알았어. 하지만..”
다시 마희가 훌쩍이자 두 사람이 마희를 안았다. 안나가 은오를 바라보았다.
“행복해?”
“조금 불안하기도 해. 잘 할 수 있을지..”
“서로만 믿고, 서로만 사랑하면 되는 거야.”
“응.”
“나를 사이에 두고 두 사람만 이야기 하지 마.”
마희가 눈물을 닦고 고개를 들며 말하자 두 사람이 피식 웃었다.
“용케 재원이를 데리고 왔네?”
안나가 고개를 돌려 꼬치를 끼우고 있는 재원이를 바라보았다.
“죽어도 따라온다고 해서..”
“기지배.. 너야 말로 어떻게 할 건데?”
마희의 물음에 안나가 고개를 약간 기울였다.
“아마도 우린.. 이렇게 늙을 것 같아. 사람들 몰래 숨어서 사랑하면서..”
“야~.”
“괜찮아. 난 분란이 일어나는 거 좋아하지 않고, 저 녀석도 그럴 테니까.. 그러나 저러나 보고 싶어지면 어떻게 하지?”
안나가 은오를 바라보며 물었다.
“메일 보내. 그건.. 괜찮을 거야.”
“그래. 사진도 보내고, 메일도 보낼게.”
“응.”
안나가 이번에는 마희를 바라보며 약간 걱정스럽다는 듯 물었다.
“너도 그런 집에 시집가서 어떻게 하니?”
“뭘~. 내가 너희들이랑 있을 때만 이렇게 약하지. 사업해서 그런가 누가 나를 밟으려고 하면 더 일어나더라고.”
“좋은데?”
“가만 안 둬.. 어디서 돈 있다고 사람 우습게 보고 말이야.”
“잘 해라~. 그래도 시댁인데..”
“동수 하는 거 봐서..”
“그런데 저 사람은 왜 온 거야?”
안나가 혼자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있는 석찬을 바라보며 말하자 마희랑 은오가 고개를 저었다.
물에서 나온 석찬이 바비큐를 만들고 있는 세 사람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너는 왜 온 거냐?”
우진의 말에 동수가 피식 웃었다.
“형~. 제가 일등 공신인데.. 이러시깁니까?”
우진이 웃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 가고 나서 네가 힘들까봐.. 그게 걱정이다.”
“걱정하지 마세요. 대신.. 행복하게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그럼.. 나중에 만나면 되죠.”
“그래.”
석찬이 고개를 돌려 웃다가 울다가 바쁘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아깝다..”
“뭐가?”
“선생님 애인은 나이스 바디고, 동수 와이프는 엄청난 미인인데.. 둘 다 배필이 있으니까요. 아깝죠.”
“안나는 왜 빼?”
우진이 재원을 바라보다가 석찬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재원이 시선을 들어 석찬을 바라보았다.
“뭐.. 여자답지는 않잖아요.. 수영복을 입어도 저렇게 섹시하지 않을 수가 있나..? 별로 매력이 없어서 아깝진 않은데..”
재원이 손에 들고 있는 대나무 꼬치를 엄지손가락으로 부러뜨리자 우진과 동수가 웃음을 참느
라 고개를 돌렸고, 이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석찬이 혀로 입 안을 쓸고 있었다. 석찬이 고개를
돌려 익은 꼬치를 손에 들려고 하자 재원이 막았다.
“있다가 함께 드시죠.”
“배고파서 그래요. 이거 한 개만 먹읍시다.”
“있다가 함. 께. 드시죠.”
재원이 힘주어 말하자 석찬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우진과 동수를 바라보았다.
“그래, 인마. 같이 먹자. 조금만 기다려.”
꼬치를 내려놓으며 석찬이 눈썹을 찡그리며 그녀들을 바라보는 재원을 바라보았다.
일곱 사람이 옹기종기 테이블에 모여 앉아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재원이 준비 해 놓은 큰 타월을 안나 어깨에 둘러주었다.
“어.. 고마워.”
“오~~. 뭐야~~.”
은오와 마희가 그들을 보며 웃으며 놀렸다. 그러다 마희가 동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왜 안 덮어줘?”
“아.. 추워?”
동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안으로 들어가고 우진이 자신이 입고 있던 셔츠를 벗어 은오 어깨에 올려주었다.
“괜찮은데..”
“이거 하느라 불 앞에 있었더니 좀 더웠어.. 그냥 하고 있어.”
“뭐야~~. 여기가 더 한데? 빨리 안 와?”
마희가 동수를 재촉했다. 헐레벌떡 타올을 들고 나온 동수가 마희 어깨에 둘러주자 마희가 예쁜 미소를 지었다. 다들 웃음을 터트렸다. 음식을 나른 재원이 안나 옆에 앉았다.
“이거 먹어.”
그가 자신의 꼬치에서 고기를 빼서 안나 접시에 주고 안나 접시에 놓인 피망을 가져가 입에
넣었다. 안나는 아무렇지 않게 고기를 입에 넣고 씹는데 주위가 조용해졌다는 걸 깨달았다.
고개를 들어 보니 그들이 닭살스럽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선생님. 개똥아.. 뭐하세요.. 뭐하니..”
안나의 말에 우진과 동수도 자신의 파트너를 챙겼다. 석찬이 “괜히 왔구만.. 괜히 왔어..” 라고 중얼 거리며 고기를 입에 넣고 석양을 바라보며 열심히 씹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일곱 명이 거실에 모였다.
“남자들은 남자들끼리 자고, 여자들은 여자들끼리 자자.”
우진의 말에 여자들이 소파에서 일어나 분홍색 느낌의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러니까.. 진짜 선생님 같다.. 하아~.”
우진이 한 숨을 내쉬며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남자들 넷이 뭐해요?”
“뭐하긴.. 게임 할까?”
“무슨 게임?”
넷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여자들은 샤워를 마치고 나와 거실에 나란히 앉아 와인을 마시고 나란히 누웠다.
“언제 또 이렇게 있을 수 있을까?”
“내 생각에는 곧 이럴 수 있지 않을까? 뭐.. 그렇게 오래 사실라고..”
안나의 말에 다들 키득거렸다.
“그래도 선생님 어머님이신데.. 악담은 좀 그래.”
“그래도 좋은 분이어야 말도 좋게 나오지..”
“맞아.. 동수 어머니도 쌀쌀맞더라.. 그런 집에서 선생님이랑 동수는 어떻게 살았을까?”
안나가 손을 들어 마희의 손을 잡았다.
“그 집으로 네가 들어가잖아. 나는 정말 네가 걱정이다..”
“내가 그 집에 왜 들어가서 사니? 따로 살 거야. 지금 사는 집에서 살기로 했어.”
“그래?”
“응. 동수가 한 고집 하더라? 그리고 생각보다 봐주시는 것 같은데.. 영 불안해. 시집살이 엄청 시키면 어떻게 하지?”
“넌 잘 할 거야. 일도 똑부러지게 잘 하고, 음식 솜씨도 좋지, 마음씨 좋지, 사람 마음 움직이는 선수잖아. 잘 할 거야. 문제는 나야.. 타국에서 선생님이랑 어떻게 살지..”
“너도 잘 할 거야. 진짜 문제는 안나야. 재원이 어쩔 거니?”
“어쩌긴 뭘 어째..”
“아까 보니까 엄청 챙기더만~. 응?”
“그러게. 부럽게..”
“너는 선생님이 입고 있는 셔츠 입었잖아. 네가 갑이지..”
“아니야..”
은오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참. 재원이 집에서 나왔어.”
“그래?”
“응. 오피스텔 구해서 이사했어.”
“서운해 하셨겠다.”
“응.”
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너희들은 진도 어디까지 나갔어?”
마희의 물음에 안나와 은오 모두 눈을 크게 떴다.
“진도는 무슨 진도?”
안나가 마희에게 도리어 물었다. 뭔가를 알아챈 안나가 인상을 찡그리며 마희를 바라보았다.
“설마.. 너는..”
“응.”
안나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
“진짜?”
마희도 일어나 앉으며 “응.” 이라고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넌 아니지?”
안나가 은오를 바라보며 말하자 은오가 얼굴을 붉히며 일어나 앉아 시선을 피했다.
“아~! 진짜~?”
은오가 고개를 조금 끄덕였다.
“언제?”
“나는 지난 번 벚꽃 축제 갔다 와서 동수네 집에서 사랑했는데..”
안나가 고개를 돌려 은오를 바라보았다.
“나는 지난 번에 너희들 만나서 선생님이랑 외국으로 간다고 말하기 전날.. 여기 와서.”
안나가 입을 오므리고 고개를 푹 숙였다.
“아~~. 드디어 내 친구들이.. 내 친구들이..”
은오와 마희가 미소를 지으며 안나를 안았다.
“야~. 요즘 우리 같은 여자들도 별로 없어.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이랑 했잖아. 그러니까 이해해 주라..”
“그래. 너도 나중에 재원이랑..”
안나가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홱 들었다.
“미쳤어? 그.. 그걸.. 왜.. 재원이랑..”
“그럼 다른 사람이랑 할 거야?”
“아니?”
“평생 그렇게 살 거야?”
“처음이라 겁이 나긴 했는데.. 생각보다 괜찮았어..”
안나가 고개를 저으며 귀를 막았다.
“아~. 몰라~.”
그러다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너희들이 이제 결혼한다는 게 진짜로 실감이 난다.. 이 유부녀들..”
“너도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면 좋을텐데..”
“난 아마 어려울 거야. 너희들은 진짜 내가 읽은 순정만화처럼 해피엔딩인데.. 난..”
안나가 고개를 저었다.
“네가 제일 순정만화같아. 말이 되냐? 부모님 재혼으로 만난 남, 녀가 서로 사랑에 빠지는 건 가장 흔한 스토리라고..”
“결론이 구질구질해서 그렇지. 내가 읽은 것 중엔 주인공 중 하나가 죽더라.”
마희와 은오가 숨을 들이마시고 안나를 바라보았다.
“진짜?”
“그래~. 반대가 반대가.. 아주 그런 반대가 없어. 그러다 결국 남자 주인공에 물에 빠져 죽었지?”
“야~. 그런 끔찍한 소릴..”
“그런 순정만화도 있다고.. 결론이 해피엔딩은 안 될거야.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해도.. 안 돼..”
“그럼 이렇게 사랑하지 뭐. 안 그래?”
“그래.. 도망가는 나도 있는걸?”
“마희야.. 넌 제발.. 제발 이혼같은 거 절대로 생각하지 말고.. 행복해라. 응?”
“알았어..”
셋은 다시 와이잔을 들었다.
“참.. 은오는 이거 해야지.”
마희가 냉장고에서 팩을 꺼내와 은오를 바닥에 눕혔다. 그리고 은오 얼굴에 팩을 올려주었다.
“아 차가워..”
“참아.. 이래야 내일 촉촉하지..”
은오가 피식 웃었다.
“남자들은 뭐하는데 이렇게 조용하지?”
“글세..”
마희와 안나가 반대편 쪽을 바라보았다. 남자들 넷은 둥글게 모여 앉았다. 그리고 바닥을 유심히 살폈다. 재원이 자신에게 있는 카드로 바닥에 놓인 숫자들을 섞기 시작했다.
“아~. 그걸 만지면..”
석찬이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카드를 완성한 재원이 그들을 바라보았다. 우진이 그의 패를 보더니 말했다.
“하나 남았냐?”
“네.”
“그럼 이번엔 끝내줄까?”
우진이 숫자카드를 자신이 갖고 있는 것과 바닥에 놓인 것을 섞어 배열하기 시작했다.
“그게 그렇게 되네..”
“끝났다.”
우진이 미소를 지었다.
“맥주 마실래?”
“네.”
재원만 대답하고 아직 카드가 많이 남은 동수와 석찬은 바닥을 노려보고 있었다. 우진이 피식 웃으며 냉장고로 향했다. 잠시 후 2번째로 이긴 재원이 우진 옆으로 갔다.
“한 참 걸리겠지?”
“아마도요.”
“그럼 좀 쉬자.”
두 사람이 테라스에 놓인 의자에 앉아 맥주캔을 땄다. 우진이 캔을 내밀자 재원이 두 손으로 건배를 했다. 맥주를 한 모금씩 마시고 우진이 재원을 바라보았다.
“마희야.. 동수랑 결혼해서 잘 살테니 걱정이 없다만.. 너희는 어떻게 할 거냐?”
“선생님으로서 걱정해 주시는 건가요?”
재원이 무표정한 얼굴로 우진을 바라보았다. 우진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복잡하다.. 내 제자들이기도 하고, 내 아내의 친구와 그 애인이기도 하고.. 여하튼 너희들을
엄청 걱정하고 있어.”
“선생님 걱정이나 하세요. 우리나라도 아니고 외국에서.. 선생님 그렇게 사라지시고 다들 얼마나 힘들어 했는지 아세요?”
“들었다. 부모님이 은오를 보살펴주셔서.. 참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 너도 힘들었을텐데.. 고맙다.”
“은오누나.. 괜찮은 사람이에요. 선생님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분명히 더 행복했을수도 있었다는 걸 기억하시고.. 행복하게 해 주세요.”
“네 앞가림이나 해.. 누나를 사랑해서 어쩌자는 거냐..”
“선생님이나 저나.. 마음이 가는 걸 막지 못해서 지금 이러고 있는 거 아닙니까..”
그가 피식 웃으며 재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른들에게 맞서 싸우지 못하고 도망가는 주제에 내가 할 말은 아니다만.. 행복해라.”
“선생님도.. 행복하세요. 건강하시고요.”
“그래..”
“그리고 이거..”
재원이 안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냈다.
“선생님과 단 둘이 있을 때 드리고 싶었어요.”
“돈이냐?”
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됐어. 너나 써라.”
“가셔서 한 동안은 일자리 구하셔야 하고, 집도 구하셔야 하고.. 돈 들어갈 곳이 많을 거예요.”
“너한테 손 벌리지 않아도 그 정도 여유는 있어.”
“축의금이예요. 축의금 안 받는 신랑이 어딨어요?”
우진이 재원이 내민 봉투를 받았다.
“고맙다.”
“선생님이랑 은오누나가 행복해야 제가 사랑하는 여자도 행복해 해서요.. 그래서 하는 거니까 너무 부담갖지 마세요.”
“그래..”
동수가 테라스로 나와 맥주캔을 따고 한 모금 마셨다.
“네가 3등이냐?”
동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한 번 더 해요.”
석찬이 나왔다.
“힘들어.. 그만 자자.”
“네.”
우진이 일어나자 재원도 일어나 거실로 들어갔다.
“어? 다시 하자니까요?”
“됐어, 인마.. 꼴찌 주제에..”
“흥! 꼭 다시 하고 말 거야..”
동수가 피식 거리며 웃었다.
다음 날 저녁이 다가오자 여자들이 방에 들어갔다. 남자들은 뒤편 잔디밭을 꾸미기 시작했다. 1시간 후. 석찬이 문을 두드렸다.
“준비 다 되었으면 나오세요.”
“네.”
안나가 대답하고 은오를 마지막으로 단장해 주고 있는 마희에게 말했다.
“우리도 얼른 준비해서 나가자.”
“응. 다 됐어..”
은오가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 속에는 흰 드레스를 입고, 면사포를 쓰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손에 들고 있는 부케를 바라보며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야~. 안 돼~. 화장 번져..”
은오가 고개를 들어 눈을 깜박였다.
“울지 마.”
“너나 울지 마.”
“알았어..”
안나와 마희도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밖으로 나왔다. 뒤편 잔디밭으로 가자 꼬마전구와 촛불과
꽃으로 꾸며진 웨딩식장이 나타났다. 크림색 턱시도를 입은 우진이 고개를 돌려 웨딩 드레스
를 입은 은오를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그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 은오 앞에 서서 면사포를 뒤
로 넘겨주었다. 정장을 입은 다섯 사람이 은오와 우진 주위에 둥글게 섰다.
“반지 교환하세요.”
우진이 보석 상자를 열었다. 작은 다이아몬드 알갱이들 한 가운데 커다란 다이아몬드가 박힌 반지였다. 우진이 반지를 빼서 은오의 손가락에 끼워주었고, 은오도 그렇게 했다.
“서로 평생 사랑하세요.”
“멋진 아들, 예쁜 딸 낳고 알콩달콩 사세요.”
“건강하세요.”
“오래오래 행복하세 사세요.”
“아프지 말고.. 타국에서 아프면 더 힘들테니까..”
마희가 훌쩍이며 말했다.
“부디 오랜 시간 후가 아니라 가까운 시일 내에 만날 수 있길 바래요.”
안나도 눈물을 글써이며 축복의 말을 했다. 은오가 눈물이 고인 눈을 들어 우진을 바라보았다. 석찬이 웃으며 말했다.
“이제 키스 하세요.. 두 분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두 사람이 키스를 하자 나머지 사람들이 꽃잎들을 뿌리며 축복했다.
“자.. 찍습니다.”
석찬이 타이머를 맞춰 놓고 달려와 자리를 잡았다. 빨간 불이 깜박이더니 플래쉬가 번쩍 했다. 그렇게 단 한 장의 웨딩사진이 찍혔다.
우진과 은오를 별장 집에 두고 동수와 마희가 한 차, 재원과 안나가 한 차, 석찬이 한 차.. 이
렇게 세 대의 차가 별장을 빠져나왔다. 마희가 눈물을 흘리며 손수건으로 닦았다. 동수가 손
을 들어 마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만 울어.. 우린 가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연기해야 한다고.. 응?”
“응..”
울먹이며 마희가 대답하고는 다시 눈물을 터트렸다. 마희를 달래던 동수도 창 밖을 보며 콧물을 훌쩍였다.
안나도 차 안에서 창 밖을 보고 있었지만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재원이 손수건을 내밀자 받아 들고 손수건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그냥 울어. 누가 본다고..”
“네가.. 보잖.. 아..”
“남이야? 한 두 번 본 것도 아니고.. 그러다 속 병난다. 그냥 실컷 울어.”
재원의 말에 안나가 고개를 뒤로 젖히며 소리를 내며 통곡했다. 옆 차선 조금 뒤에 차를 세운 석찬이 울고 있는 안나를 바라보았다.
“저 여자가.. 울기도 하네. 매일 땍땍 거리는 쌈닭인 줄 알았더니.. 그런데 저 남자는 남동생이라고 하지 않았나? 뭔 분위기가 이상하지?”
석찬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신호등이 바뀌자 차를 출발시켰다.
별장 안에 들어온 은오와 우진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미안해.”
“아니에요. 너무 근사하고, 멋진 결혼식이었어요. 내가 부르고 싶은 사람은 다 있었는 걸요? 고마워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은오의 눈에 눈물이 고이자 우진이 얼굴을 숙여 눈가에 입술을 맞췄다.
“재원이가 내가 아니었으면 진작에 너는 행복했을 거라면서 행복하게 만들어주라고 하더라.”
은오가 피식 웃었다.
“재원이 말이 맞아. 네가 나를 사랑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바람에 너만.. 고생이구나.”
“선생님이랑 함께면.. 어디든, 어떤 일이든 상관 없어요.”
“힘들면 말해. 참으면 병 난다. 그것만 지켜 줘.”
“네. 선생님도 힘들면 말씀하세요.”
“그래.. 사랑해..”
“사랑해요.”
우진이 천천히 입술을 맞추었다.
안나의 집 앞에 오자 퉁퉁 부은 안나가 한 숨을 내쉬었다.
“미안해. 너무 울었다.”
“얼굴 끝내준다.”
“그래?”
“응.. 통통하니 귀엽네.”
“치..”
재원이 손을 들어 그녀의 볼을 살짝 쓸었다.
“들어가.”
“응..”
안나가 내리려다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차 마시고 갈래?”
재원이 고개를 저었다.
“나.. 들어가면 키스 하고 싶어질지도 몰라. 지금도 엄청 참고 있는데.. 너는 싫잖아. 그냥 들어가.”
“그래?”
“응..”
“그럼.. 조심해서 가.”
“응.”
안나가 눈을 질끈 감고 재원의 볼에 입맞춤을 했다.
“나.. 오늘 잠 못잔다.”
재원이 피식거렸다.
“같이 있어줘서 고마웠어. 조심해서 가.”
“응.”
안나가 내리고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고 그의 차가 출발하자 집으로 뛰어 들어왔다.
석찬은 맥주캔을 들어 입에 대고 한 모금 마신 후에 테라스로 나갔다. 깊은 한숨을 내쉬는 석찬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하아~. 앞으로 할 일이 태산인데.. 왜 하필 이런 날에 그 얼굴이 떠오르냐고.. 쯧..”
그가 눈을 감으며 깊은 한 숨을 내쉬었다.
****
마희의 결혼식 날이 되었다. 동수 할머니가 한실장을 불렀다.
“뭔가 조용하니까 더 수상해. 잘 지켜보도록. 사람 붙였지?”
“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한실장이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예식장 한 켠으로 걸음을 옮겼다. 은오와 안나가 마희에게 갔다.
“예쁘다~.”
“고마워.”
마희의 콧끝이 붉어지자 “야~. 안 돼~” 라고 은오와 안나가 동시에 말했다.
“흠흠.. 알았어.”
“결혼 축하해.”
“고마워.”
“행복해라.”
은오가 마희를 보며 미소짓자 마희가 고개를 뒤로 젖히며 눈을 깜박였다.
“야.. 안 되겠다. 나가자. 떨지 말고, 넘어지지 말고 잘 해.”
“응.”
은오와 안나가 밖으로 나왔다. 재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진은 그들 가족들과 함께 참석한
내빈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일부러 우진을 바라보지 않았고, 우진도 그렇게 했다.
석찬은 밖에서 차를 대기시키고 식장 안으로 들어와 우진 옆에 섰다.
드디어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멋진 동수와 예쁜 마희의 결혼식이었다. 마희 아버지가 손수건
으로 눈물을 닦으셨다. 은오와 안나도 가방에서 마희 결혼식 청첩장을 꺼내 눈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부채질을 했다. 마희 부케는 안나가 받았다. 안나가 만세를 부르듯 하자 다른 하객들
이 웃음을 터트렸다. 안나가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사진을 찍었다. 폐백이 끝나고 신혼여행
을 가기 위해 인천공항으로 갔다. 그들이 어떤 일을 벌일까 걱정이 된 동수 모든 가족이 인천
공항까지 따라나왔다.
“잘 다녀와라.”
“네, 삼촌. 올 때 선물 사 올게요.”
“그래. 즐거운 여행 보내.”
“네..”
마희가 우진을 바라보며 떨리는 미소를 지었다.
“계속 있으실 거예요? 전 그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일이 있어서.”
우진이 고개 숙여 어머니와 누나와 매형에게 인사를 하고 인천공항을 나와 석찬이 대기하고 있는 차에 올랐다.
“잘 다녀 와.”
은오와 마희가 서로를 안고 인사를 했다. 안나도 마희와 안고 인사를 나누었다.
은오와 안나, 재원이 주차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우리도 가자.”
“네.”
세 사람도 주차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실장이 급하게 뛰어 왔다.
“왜. 무슨 일인데!”
“사장님이.. 사라지셨습니다.”
“뭐?”
“쫓아가던 차량이 길을 막은 트럭에 꼼짝 못하는 사이에 감쪽같이 사라지셨다고 합니다. 아마.. 이리로 다시 오시는 건 아닌지..”
“들어가 살펴 봐!”
우진 어머니가 발길을 돌려 인천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멀리에서 은오와 우진이 달리고 있었다.
“저기 있잖아!”
우진 어머니의 말에 한실장과 그가 부리는 자들이 뛰기 시작했다. 한참을 쫓고 쫓기는 달리기를 하다가 한실장과 무리들이 한 자리에 모여 고개를 저었다.
“비행기에 탑승했나 명단 확인 해.”
“네.”
다들 다시 흩어졌다. 하지만 그들을 찾을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탑승자 명단에서 이름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우진 어머니가 한실장의 뺨을 때리고 몸을 돌렸다.
“찾아 내. 어디로 갔는지.. 찾아내란 말이야!”
“네..”
그들이 사라진 후 우진과 은오를 태운 비행기가 하늘을 날아갔다. 밖에서 보고 있던 동수와 마희, 안나와 재원이 비행기를 바라보았다.
“어디로 가는 건지.. 모르지?”
“응. 저기에 없을 수도 있고.. 석찬이가 만들어 준 여권이 잘 먹혔나보다..”
“범죄 아니야?”
“하지만 그 방법밖에 없다고 했어..”
“너희들도 신혼여행 잘 다녀와.”
“응. 다녀와서 보자.”
“응..”
마희와 안나가 서로를 안고 눈물을 흘렸다.
비행기 안에서 우진 품에 안겨 은오가 눈물을 흘렸다.
“무서워?”
은오가 고개를 저었다.
“무섭지 않아요. 그냥.. 그냥 눈물이 나요..”
우진이 그녀를 더욱 꽉 끌어안았다.
석찬이 우진 사무실에 들어가자 화난 얼굴을 하고 석찬을 바라보는 우진 어머니가 보였다.
“오셨어요?”
“어디 있어? 어디로 갔지? 둘이 같이 갔어?”
석찬이 우진 어머니를 지나쳐 우진이 쓰던 책상에 앉아 우진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우진 어머니가 인상을 찡그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네가 그 자리에 왜 있어?”
석찬이 미소를 지었다.
“모르셨습니까? 이제 여긴 제 자립니다.”
“뭐?”
“우진 형이 저한테 넘겼다고요.. U-zin 호텔은 이제.. 제가 사장입니다.”
소파에서 벌떡 일어난 우진 어머니가 손에 잡힌 꽃병을 그에게 집어던졌다. 석찬이 피하지 않아 벽에 맞고 튕겨져 나온 유래 조각이 그의 광대뼈 부근을 스쳐 상채기를 냈다.
“말이 돼? 네가.. 네까짓 녀석이 어떻게 U-zin 호텔 사장이야? 내가.. 그렇게 둘 것 같아?”
석찬이 책상 위의 서류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모든 절차가 이미 끝난 거라서요. 법적 대응하셔도 별 소득은 없으실 겁니다. 제가 예전에 말씀드렸잖습니까. 형.. 내버려 두시라고요. 그리고 제가 아주머니한테 무시당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그가 벨을 누르자 비서가 들어왔다.
“이 분 모시고 나가게.”
“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네가 감히.. 감히..”
“조심해서 가십시오. 멀리 안 나갑니다.”
우진 어머니가 바람 일 듯 몸을 홱 돌려 사무실을 나가고 석찬은 눈을 감았다.
“형.. 잘 살아야 해.. 내가.. 여긴 내가 막을 테니까.. 후우~.”
그가 긴 한 숨을 내쉬었다.
신혼여행 비행기 안에서 마희가 어두운 창밖을 바라보았다.
“뭐가 보여?”
마희가 고개를 돌려 동수를 바라보았다.
“아니.. 그냥.. 선생님이랑 은오는 어디쯤일까. 괜찮을까.. 어디든 가서 잘 지낼까..”
“삼촌 능력 좋아. 머리도 좋고. 은오도 여려 보이지만 강단 있고.. 아마 잘 살거야. 우리가 모은 돈도 드렸어. 석찬이한테 회사 맡기면서 주식을 돈으로 바꾸어서 당분간은 괜찮을 거야.”
“보고.. 싶어질 것 같은데..”
“하지만 안 되는 거 알지? 우리가 연기를 잘 해야.. 두 사람이 오래도록 행복하게 지낼 수 있어. 할머니.. 아시면 분명 가만히 두지 않으실거야.”
마희가 손가락으로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나랑 결혼해서 너까지 힘들게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해.”
“그런 소리는 왜 해..”
“그냥.. 미안해서. 나는 너랑 이제 계속 같이 있으니까 좋은데.. 내 욕심에 널 힘든 집안으로 데려와서..”
“너만 나한테 잘 하면 돼. 바람 피우면.. 죽어~.”
“안 피워. 절대로..”
“어떻게 알아..”
“너나 딴 남자한테 눈길주지 마. 알았어?”
“너 하는 거 봐서..”
동수가 고개를 숙여 마희 입술에 쪽 입맞춤을 했다. 그리고 자신의 품에 안아 다독였다. 마희가 눈을 감고 그의 품에 안겨 찔끔 거렸다.
재원의 차를 타고 오면서 안나는 계속 눈물을 닦았다.
“그만 울어. 행복하게 살려고 간 사람들 웃으며 보내줘야지. 언제까지 그럴건데?”
“몰라.. 나도 멈추고 싶은데.. 잘 .. 안 돼..”
“하여간.. 지금 세 여자 다 울고 있을 테지.”
재원이 고개를 저으며 차를 세웠다.
“들어가.”
안나가 고개를 돌려 자신의 집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숙이고 그의 손수건을 만지작거렸다. 재원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안 가..?”
안나가 마른 침과 눈물을 삼켰다.
“나 오해하게.. 얼른 들어가서 쉬어.”
“혼자 있기.. 싫은데..”
핸들을 잡은 재원의 왼손에 힘이 들어갔다. 재원이 어색한 웃음을 터트리며 그녀에게 말했다.
“장난하지 마..”
“진짜야. 혼자 있기 싫은데.. 그렇다고..”
안나가 말을 마치지 못하고 다시 마른 침을 삼켰다.
“무슨 뜻인지 알겠는데.. 내가 가능할까 모르겠어서.. 잠깐 있어줄 수는 있는데. 힘들어지면 갈까..?”
“너희 집으로 가자.”
“그래?”
“응.”
“알았어.”
재원이 자신의 집으로 차를 몰았다.
재원의 오피스텔에서 안나는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거 마셔.”
재원이 따뜻한 차를 내밀었다.
“고마워.”
안나가 머그컵을 받아 들고 한 모금 마셨다.
“조금 이따가 데려다 줄게.”
“응.”
재원이 그녀 옆에 서서 창에 비친 그녀를 바라보았다.
“잘 도착했을까? 아직도 하늘 위를 날고 있을까?”
“모르지. 먼 곳이면 아직도 하늘 위에 있을테고.. 가까운 곳이면 도착했을 테고..”
“보고 싶으면.. 어떻게 하지..”
안나가 다시 고개를 숙이며 눈물을 찔끔거리자 재원이 한 숨을 내쉬었다.
“나 좀 봐봐.”
“왜..”
“얼른.”
안나가 콧물을 훌쩍이며 재원에게 몸을 돌렸지만 고개를 숙여 눈물을 손가락으로 닦느라 그를
바라보지 않았다. 재원이 그녀의 손에 들린 찻잔을 부드러운 손길로 가져가 옆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그녀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뭐하는 거야..”
코맹맹이 소리로 그녀가 자신의 어깨위에 놓인 그의 손을 바라보고는 인상을 살짝 찡그리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눈물에 직효인 방법을 알고 있지.”
그녀가 눈을 흘겼다.
“뭐.. 설마.. 10년 전 마당에서 키스한 거.. 그거 말하는 거야?”
“확실히 그만 울었잖아. 그리고 그건 키스가 아니라 뽀뽀 축에도 못 들어간다니까?”
“뭔 소리래.. 그게 그거지.”
“내가 또 뭘 모르는 사람 잘 알려주기로 유명한데..”
“웃기시네~.”
안나가 피식 웃었다. 재원이 고개를 숙여 안나의 입술에 쪽 뽀뽀를 했다. 안나가 순간 몸이 굳으며 흠칫 놀라 손을 들어 입을 가렸다.
“어~어! 뭐하는 거야!”
“이게 뽀뽀..”
안나가 그를 흘기듯 바라보았다. 재원이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손 절대로 안 치울 거야.”
입을 손으로 막아 그녀의 목소리가 우물거리듯 들렸다.
“그렇게 해.”
“응?”
재원이 그녀의 손바닥에 입술을 지그시 눌렀다. 손바닥에 느껴지는 그의 부드러운 입술 감촉
에 안나가 숨을 들이마신 채로 긴장을 하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재원이 그녀를 끌어당겨 품
에 안고 고개를 약간 옆으로 기울였다. 잠시 후 그가 천천히 그녀의 손바닥에서 입술을 뗐다.
“이게.. 키스..”
붉어진 얼굴로 안나가 천천히 눈을 떠서 그를 바라보았다.
“차이를 알겠어?”
안나가 몸을 돌리며 손을 내렸다.
“갈래.”
“그럴 줄 알았지. 기다려. 데려다 줄게.”
“택시타고 가면 돼.”
“위험하게 그렇게 하게 둘 것 같아?”
“하지만..”
“손 안 댈게. 됐지?”
안나가 그를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재원이 피식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차키를 가지러 방에 들어갔다. 안나가 떨리는 숨을 내쉬며 그의 입술이 닿았던 손바닥은 다른 손가락으로 쓸었다.
첫댓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