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하나님은 종종 “기드온의 양털”을 사용하시는가?
이 질문에 대해 우리는 흔히“아니다”라는 대답을 듣는다. 그러나 오스왈드 챔벌즈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찾는 어떤 방법도 우습게 여겨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잘못된” 방법을 사용한 어떤 이들도 실제로 인도해주셨기 때문이다.
양털의 주인공인 기드온은 실제적으로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방법으로 자기에게 하나님이 하나님되심을 증명해주시기를 구하였다. 물론 하나님은 그의 불신앙적인 기도에 응답하실 필요가 없으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두 번이나 응답해주셨다.
하나님은 또한 히스기야왕(열왕기하 20:8-11)에게도 그렇게 하셨다. 실제로 하나님은 히스기양의 병이 나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히스기야에게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낫게 하시고 삼일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게 하실 무슨 징조가 있나이까 ?) “해의 그림자가 십도를 앞으로 나아갈 것을 원하는가 혹은 십도를 뒤로 물러갈 것을 원하는가?”라고 질문하시면서, 히스기야에게 “양털 한 장을 내놓도록” 요구하셨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양털“을 내놓아내서 안되는가? 이는 몇몇 사람들이 이것을 ”기드온의 양털“ 이라고 왜곡하여 부르며 종종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에 사용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 남자가“주님, 만일 내 여자친구가 오늘 밤 푸른 옷을 입었으면 그녀에게 제가 청혼해도 되는 것으로 알겠습니다”라고 기도했다. 그날 밤 그녀에게 푸른 옷을 입게 하는 하나님의 특별한 기적은 없었다. 하나님은 진정한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이런 일을 못하실 분이 아니시다.
래리 존슨과 내가 결혼하기 전에 래리는 내게 청혼을 해도 되는지 알기 위해 일종의 “양털”과 같은 한 가지 조건을 하나님께 내밀었다. 그러나 레리는 어떤 하나님의 기적이 그가 내게 청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지 알지 못했다.
레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기도에는 밥이 순교한 후에도 내가 13년 동안 나의 왼 손에 계속 끼고 있던 밥과의 결혼반지가 포함되어 있었다. 내가 십 삼년동안 미망인으로서 그 반지를 왼손에 끼고 있는 동안 누구도 내게 청혼하지 않았는데, 이는 그 반지가 내가 누구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볼리비아 코차밤바에 있는 선교회 아파트 앞마당에 들어서면서 우리 선교사 중 한 사람이 잔디 위에 엎드려서 잔디 속을 헤치는 것을 보았다. 그녀의 딸도 엄마를 돕고 있었는데 마치 뭔가 아주 작은 것을 찾는 것 같았다.“엄마가 결혼반지를 잃어 버렸어요.”라고 딸이 설명했다. 그들은 찾고 또 찾았지만 결국은 찾지 못했다.
“결혼반지를 잃어버렸으니 어떻게 하죠?”라고 엄마가 말했다.
나는 그녀의 상실감을 느낄 수 있었다. “여기, 제 것 받아요!” 그리고 나는 곧 말했다. ”13년이 지났으니 당신처럼 그렇게 반지에 감정이 있진 않아요!”
그녀는 고마워하며 그것을 받았다. 그리고는 반지에 대한 내 덤덤함을 알고 나서 덧붙여 말하길 “당신도 알겠지만 어쨌든 그 반지는 오른손으로 바꾸어 껴야했어요”하며 나를 계속하여 계몽하러 들었다.
나는 그 반지를 그 후에 오른 손으로 바꿔 낄 필요가 전혀 없었다. 아직도 그 친구는 내가 준 그 결혼반지를 끼고 있다. 그러나 래리는 그 날 하나님이 그녀로 하여금 반지를 잃어버리게 하시고 나를 그 순간에 그 곳에 가게 하셨다고 믿고 있다. 래리가 가장 놀란 것은 그를 내게 멀리 있게 했던 그 왼손의 반지를 내가 끼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것이다! 래리의 “양털”에 하나님이 응답하신 것이든 아니든, 레리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때에 그 장애물을 옮겨주신 것을 믿었다.
7) 하나님은 지도자를 통해 인도하신다.
한 번은 몇몇 신학생들이 내게 “신학교의 규칙을 지켜야만 합니까?” 라고 물어 본 적이 있다.
그에 관한 대답은 자명하다. “너희들이 신학교에 속하여 학교의 권위아래 있기 때문에 학교의 규칙을 지키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은 없다. 그러나 만일 너희를 지도하는 인도자들에게서 가령 너를 죄에 빠뜨리게 하는 죄를 발견했다면 너는 그곳을 떠나는 것이 더 낫다. 너희가 떠나면 규칙을 지킬 필요가 없다.”라고 대답했다.
컬럼비아 성경대학의 여학생 처장님은 “내가 실수할 지도 모른다. 우리 대학의 총장님인 맥퀼킨 박사도 실수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네 눈에 들어온다면 그것은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녀는 이것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었는데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서, 우리자신이 신학교의 법 아래에 있었기 때문이다.
선교지에서 우리는 지역본부나 실행위원회 인도 아래 있게 된다. 그러나 나는 바라건데 우리는 우리의 지도자들과 진정한 교제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그들의 지휘 아래서 인도하신다는 것을 알고, 그러나 그들이 우리가 해야 할 것을 말해 주기를 수동적으로 기다리지 않는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한때 나는 새 선교사들의 배치 여부를 결정하는 지역본부의 결정에 대해 수동적인 태도를 가진 적이 있었다. 선교 지도부에서 내게 무엇을 하라고 결정하면 마치 로봇처럼 그것을 순종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위해 내가 더 이상 기도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었다. 그래서 그런 마음가짐으로 안식년을 가진 후에 나는 내가 해야할 사역을 정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내게,“진, 우리는 당신에게 세 가지 선택을 주겠습니다. 당신은 이것이나, 저것이나, 또는 제 3의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역을 선택하겠습니까? ”라고 말했다. 나는 처음 시작으로 돌아가야 했다. 나는 선택해야 했고, 나는 나 자신의 선택을 위해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했다.
그러나 내가 어떤 것을 선택하기 전에 지도자들 사이의 의사소통의 혼란으로 말미암아 (당시는 라디오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이미 그 사역들을 감당하기로 결정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사역들마저도 이미 사라져버렸다.
지금까지도 나는 당시의 나의 태도를 후회한다. 그때 나의 동역자로 한 신참 선교사가 왔다. 그녀는 어떤 사역을 해야 하는지에 관해서 아무것도 몰랐고 오직 전적으로 나를 의지했다. 나는 내가 영적인 무기력함에서 깨어나 나 자신과 나의 동역자와 그리고 새로 임명된 지역본부 위원회 임원들을 위해, 하나님이 우리와 그들을 인도해 주실 것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비록 지역본부 위원회 지휘 아래에 있었지만 나는 하나님 앞에서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할 책임이 있었다. 나는 내 자신의 믿음을 훈련해야만 했다.
믿음은 교리가 아니다. 믿음은 기독교인 각 개인의 삶의 방식이며, 모든 기독교인의 삶의 방식이며, 곧 여성 사역자들의 삶의 방식이다.
또 물론 드물지만 선교회에도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선교회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역자가 주님의 이름이 만홀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행하는 것을 보고, 그의 인도를 따르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때이다.
그러한 경우는
(a) 곧 바로 그 일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것이다. 그러나 먼저 기도함으로 준비해야 한다.
(b) 다른 한 지체와 함께 주님의 사랑을 가지고 그에게 권면할 수 있다.
(갈라디아서 6장 1절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
(c) 그 사람의 리더에게 보고한다. 그러나 보고하기 전에 당사자에게 이 일에 관해 당신이 보고할 것임을 통보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d) 그 일을 해결할 다른 방법이 없다면 하나님께 기도한다.
80세의 신실한 룻 팍슨 선교사는 중국에서 사역할 때 동역자 중에 주님의 이름에 명백히 수치가 되는 일을 하는 한 선교사가 있었다. 룻 팍슨 선교사와 그의 한 친구 선교사는 기도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으므로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했다. 그들은 “주님,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이 선교사를 변화시켜 주시거나, 아니면 당신의 사역에서 이를 제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다.
룻 팍슨 선교사는 이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하나님은 응답하셨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기대했던 방법이 아니었어. 우리는 그가 하나님께로 돌아와 진정으로 회개함으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보기 원했지만 하나님의 방법은 그렇지가 않았어. 뜻밖에도 그는 갑자기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본국에서는 하나님의 일을 하지 못하고 세상 직장을 다녔지. 어쨌든 그 이후 그는 다시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사용되지 못했어.”
성령님은 인격적이시며 개인적으로 우리를 인도하기를 원하신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 10: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야 1:5).
성령님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길 원하는 그 마음을 아신다. 이러한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게 하신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때때로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고통도 주님께로부터 온 것임으로 받아들일 때 하나님은 고통중에도 주님의 기쁨과 평강을 더해 주신다.
첫댓글 하이짱님 감사 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